방상씨의 탈 - 4

네엣. 꿈속을 들어갈 수 있는 부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831


네엣. 꿈속을 들어갈 수 있는 부네


고운이의 행동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세찬이의 앞으로 슁-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회오리바람 이 일어났다. 세찬이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고운이는 공방 안에 있던 항아리 안의 물에 손가락을 넣고 그 물방울을 펜던트에 가만히 떨구었다. 그러자 갑자기 펜던트 안에서 거친 바다 물결이 일듯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환한 빛이 새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펜던트 안에서 시작된 물보라 소용돌이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이 힘 있게 물길을 휘감으며 공방 전체를 날려버릴 듯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세찬이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나무상자를 놓칠세라 손에 힘을 꼬옥 쥐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소용돌이의 바람 속에서 고운이는 기도를 하듯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놀라 뭐라고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물길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은 소용돌이가 그쳤고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를 보고 있던 세찬이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소용돌이가 너무 세차서 그 기세에 눌려서 만은 아니었다. 그 소용돌이가 그친 가운데에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 누나!”


조용히 눈을 뜨는 고운이의 앞에 할아버지와 함께 꿈에서 보았던 얼굴이 곱고 아름다운 누나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웃어 보이는 그 누나의 몸에서는 방금 물속에서 나온 것처럼 온몸에서 푸른 구슬 같은 파란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그래도 볼 건 다 보는 모양이네?”


우람이가 백정이의 다리에 기대어 불만스러운 얼굴로 계속 투덜거렸다.


“이제 믿겠어? 부네를 보니까?”


“부네? 그럼 이것도…?”


하회탈 중의 하나인 부네탈. 정말 누나의 얼굴은 부네탈을 닮아 있었다.


“정답!”


고운이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웃었다.


갸름한 얼굴, 반달 같은 눈썹, 오똑한 코, 조그마한 입은 할아버지가 설명해줬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보다 훨씬 오랜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미인이라고 꼽히던 얼굴이라고 했다. 눈꼬리와 입 끝에 웃음기가 배어 있고 반달 같은 눈썹은 예능적 소질이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누나의 얼굴은 그 부네탈의 얼굴과 비슷했기 때문에 꿈속에서 봤을 때도 낯이 익었던 거였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을 보고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누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찬님! 절 기억하시는군요. 당신이 보았던 꿈은 그냥 단순한 꿈이 아니랍니다. 당신을 제가 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부탁을 하셨던 거랍니다.”


“그럼 그때 할아버지가 제 앞에 나타났던 것도 정말이란 말인가요?”


“그래요. 저는 고운이의 영혼에 눈을 뜬 부네랍니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셨고 고운이가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었죠.”


세찬은 자신의 앞에서 말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진정 부네탈의 그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부네’라고 소개한 누나는 분명히 자신이 꿈속에서 본 그 때 모습 그대로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제 믿겠지? 네가 보는 그대로니까 말야.”


고운이는 차분히 자신이 부네를 만나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다.


몸이 아픈 고운이는 요양을 위해 시골 외숙모 댁에 내려왔다. 외숙모가 할아버지의 식사나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와드리면서 자신도 자연스럽게 공방에 놀러 오게 되었는데, 공방에 처음 들르던 날 알지 못할 맑은 장구소리에 이끌려 이곳까지 와보니 부네가 자신을 꺼내 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대한 얘기를 할아버지에게 했고, 할아버지에게 그 신기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게 되었다.


영혼이 맑은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과 맞는 탈의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주인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주인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는 거였다. 그렇게 부네의 목소리를 듣게 된 고운이를 위해 할아버지는 부네탈의 펜던트를 만들어 주셨고, 그 펜던트로 진정한 부네를 만나려면 물의 기운을 가진 고운이가 펜던트에 물을 먹이고 부네를 불러야 부네가 그 부름에 응답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람이도 같은 경우였어?”


세찬이의 질문에 우람이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며 거들먹거렸다.


“당연하지. 할아버지 손자라는 녀석이 그런 것도 여태 몰랐냐? 우리 백정인 원래 이름이 ‘회광’이야. 장인들이 쓰는 나무를 배달해주시던 우리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나무를 가져다 드리면서 할아버지를 처음 알게 되었어. 나는 고운이처럼 피리소리는 아니었지만 힘찬 북소리가 들려서 공방까지 왔는데 백정이가 갑갑하다면서 내보내 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백정이를 만나게 된 거라구. 봄, 가을 두 철만 아빠를 따라왔기 때문에 너랑은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부네가 할아버지랑 같이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오게 된 거야. 방학식을 하루 남기고!”


“우람이가 백정이를 만날 때는 불이 필요해. 그래서 우람이는 좀 곤란할 때가 많지.”


고운이가 설명을 더해주었다.


“불?”


“그래.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은 불의 기운이기 때문에 부네의 물처럼 간단하지가 않아. 어른들처럼 라이터를 가지고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좀 곤란하거든. 물론 아빠가 일하시는 곳이나 이곳처럼 부뚜막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을 얻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 그래서 몰래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었는데 아빠한테 걸려서 얼마나 혼났다구.”


우람이가 혼나던 때가 생각이 났는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럼 난 왜…?”


거기까지 설명을 듣고 난 세찬이는 매년 두 번씩이나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던 자신은 왜 그런 소리를 듣거나 탈들의 영혼을 만날 수 없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두 친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맞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왜 자신은 이제까지 그렇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그건 내 추측이긴 한데 아마도 생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생일?”


세찬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생일이 이번 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두 살이 되는 생일에 나나 우람이가 모두 친구들을 만났거든. 너도 아마 이번 달이 생일이지?”


“어떻게 그걸 알지? 내 생일까지?”


세찬이가 놀라 고운이에게 물었다.


“부네가 알려줬어. 부네의 능력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꿈을 통해 미래의 일이나 이전의 일들을 볼 수가 있거든.”


“아! 그렇구나.”


그제서야 세찬이는 자신이 왜 오늘 피리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상자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럼 내가 오늘 들었던 피리소리도 그런 것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지?”


“아마도.”


고운이와 우람이가 세찬이에게 다가서며 상자를 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너에게 펜던트가 없는데 혹시 미리 만들어서 그 상자 안에 넣어두신 게 아닐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 상자는 할아버지가 태어나시기 훨씬 이전부터 그곳에 묻혀 있던 겁니다.”


부네가 조용히 뒤에서 설명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태어나시기도 전에?”


우람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세찬인 탈을 다룰 수 없다는 건가? 넌 펜던트가 없어?”


“난…”


세찬이가 가만히 옷 속으로 손을 넣어 할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날 때 만들어 주셨던 탈 펜던트를 꺼냈다. 작고 가벼운 소재라서 어려서부터 몸의 일부처럼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다. 분명히 하회탈은 아니었지만 괴상하게 생긴 듯하면서 귀여운 도깨비 얼굴을 한 탈 펜던트를 꺼냈다. 그 도깨비 탈 모양의 펜던트를 보자 고운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게 그걸까? 부네?”


“아직 영기는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들이 태어난 것과는 다른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제까지 펜던트의 의미를 심각하게 여겨본 적이 없었던 세찬이는 그저 할아버지가 그것이 자신을 지켜주는 상징이라고 얘기해준 것만을 기억할 뿐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아니면… 혹시 이걸 가지고 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건가?”


“열어보면 되는 거잖아?”


성격이 급한 우람이가 세찬이를 재촉했다.


“하지만 이건 열쇠도 아닌데…”


그러자 고운이가 가만히 상자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여기 모양이 둥글게 되어 있어 자물쇠 구조가 아니구, 어쩌면 네가 가지고 있는 펜던트의 원과 크기가 비슷한 것도 같은데…”


“그래, 그럼, 어디…”


세찬이가 펜던트를 풀어 나무 상자함의 자물쇠가 있어야 할 곳에 꽉 붙어버린 입구의 움푹 들어간 곳에 넣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꼬마 도깨비 탈 펜던트는 그 안에 딱 들어맞아 쏙 하고 상자의 일부분처럼 들어가 버렸다.


“딱 맞다.”


세찬이의 말과 함께 전체가 한 덩어리처럼 붙어 있던 나무 상자는 거짓말처럼 뚜껑 부위가 쪼개지면서 금이 갔다. 너무나 오래되어 다 녹이 슬어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나무 상자함은 거짓말처럼 그 단단한 입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세찬이가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어라?”


기대에 부풀어 상자를 보던 우람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뭐야? 하회탈이 아니잖아?”


정말 그랬다. 상자의 안에는 하회탈이 아닌 기괴하게 생긴 투박한 나무탈이 하나 들어 있었다. 펜던트의 모양을 확대한 것 같은 기괴한 모양에 그저 작고, 투박한 나뭇결이 눈에 환하게 비춰지는 도깨비 탈이었다. 희한한 부분이라면 눈이 4개나 된다는 것이었는데 귀가 큼직하고 꽤 다부진 느낌의 도깨비 형상을 한 탈이었다. 언제부터 그 안에 있었는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는 것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의 물건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하회탈처럼 매끈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영혼을 불러일으킬만한 신비로운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역시 넌 아닌가 보다. 고운이 니가 괜히 오버한 건지도 모르잖아!”


“고운이, 넌 이게 뭔지 알겠어?”


세찬이가 고운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고운이도 이렇게 생긴 탈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고운이가 뒤에 서 있던 부네를 돌아다보았지만 부네 역시 고개를 저을 뿐 시원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도 처음 보는 탈이에요. 그리고 지금 그 열쇠를 봐도 그 상자가 열리는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아요, 그 상자 안에 탈이 봉인된 후로 말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뭐?”


세찬이가 부네의 대답을 독촉했다.


“꿈에서 보았겠죠? 세찬님도? 제가 드렸던…, 할아버지가 드리라고 해서 드렸던 그 도깨비 탈. 분명히 그렇게 생겼던 것 같아요.”


“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부네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거나 과거나 미래를 마음대로 다녀올 수 있다고 했지? 어떻게 안 될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세찬이가 절박한 마음에 부네와 고운이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부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 세찬님의 꿈속에 할아버님을 모시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내일이 지나야만 가능해요. 지금 고운님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이라면 3일에 한번 정도밖에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요. 물론 고운님이 차차 영혼의 힘을 더 키워나간다면 제 힘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더 커지긴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3일에 한번 정도가 고작이에요. 함부로 힘을 사용하다가는 고운님의 몸과 정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렇군요.”


부네의 설명과 함께 고운이도 미안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누군가 온다.”


가만히 서 있던 백정 회광이 묵직한 저음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일행은 순간 흠칫하고 공방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저기 숨자.”


고운이가 공방의 부뚜막 안쪽의 공간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공방 앞에서 웅성거리던 소리의 사람들이 공방의 문을 여는 것이 언뜻 달빛에 드러났다.


‘앗! 저 사람들은…’


그들은 아까 낮에 문화재 관리청 직원이라고 속이고 할아버지의 공방을 이리저리 뒤지고 할아버지의 작품들을 모조리 훔쳐갔던 사람들이었다. 세찬이가 흥분해서 밖으로 나가려던 것을 고운이가 가만히 손을 꼭 쥐며 저지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83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