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왔던 사람들이 먼저 들어왔고 공방의 불을 켜고 하얀 양복을 입은 백발의 남자가 들어섰다. 나이가 많은 남자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아까 왔던 사람들보다 수가 훨씬 많아 보였다. 백발의 남자가 들어오자 다른 사람들이 주위로 물러서는 것으로 보아 그가 그 남자들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이곳이 그 영감의 공방인가?”
“하이! 마츠모토상.”
백발의 남자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긴 머리를 한 올도 남김없이 뒤로 넘겨 묶은 모습이 굉장히 날카롭고 강한 인상이었다. 그들을 보는 세찬이의 눈에는, 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쓰러뜨리게 만든 것 같아 속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생각보다 초라하군.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거라곤 하나도 없는 영감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돈 좀 쥐어주면 말을 듣고 물러날 것이지 기껏 요 모양 요꼴로 지낼 거면서 그렇게 튕겼다는 건가? 꽤 달라졌는가 하고 기대했던 내가 미안해지는군. 하나도 변한 것이 없군 그래.”
“그렇습니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지금 서울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어서 마땅히 자신의 후계자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아니라서 정부의 보조를 제대로 받고 있지도 못하고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근근이 탈을 만들며 지냈다고 합니다.”
아까 오전에 봤던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던 남자가 옆에 서서 조심스레 설명을 했다.
“그렇군. 그런데 찾는 물건은…? 갑자기 쓰러졌다면서 그 사이에 어디로 빼돌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 점이 좀 이상합니다만, 분명히 갑자기 쓰러진 탓에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저희가 바로 찾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도 못했을 텐데…”
“그렇다고 나보고 이 먼 길을 왔다가 그냥 빈손으로 가라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지금 그 탈들을 가져가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혼이 담겨 있는 탈이 아니겠나?”
백발의 남자가 지팡이로 바닥을 꽝 찍으며 다시 한번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예. 그건…”
“긴 말 하지 않겠다. 앞으로 3일을 주겠다. 3일 안에 그 물건을 찾아오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본국에 돌아가지 못한다. 알겠나?”
“하!”
백발의 남자가 날카로운 눈매를 휘두르며 부뚜막 뒤의 어둠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주 잠시였기는 했지만 세찬이는 그의 눈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의 왼쪽 눈은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의 왼쪽 눈은 인형의 눈처럼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고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상어의 눈처럼 정면만을 응시하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눈이었다. 분명히 그의 왼쪽 눈은 오른쪽 눈과 달랐다. 그의 왼쪽 눈은 눈동자가 움직이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음.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 오늘은 이만 간다.”
“예.”
그렇게 백발의 남자와 잠시 눈길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세찬이의 심장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마치 언젠가 악몽 속에서라도 마주친 것 같은 그의 눈빛은 언제 다시 만나더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아주 안 좋은 느낌이었다.
그들이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떠난 후, 세 사람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고운아! 저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거야?”
“아니야, 그건. 하지만 관련이 없진 않은 것 같아.”
고운이의 뜻 모를 대답에 우람이가 거들고 나섰다.
“무슨 대답이 그래? 정확하게 말해봐.”
“나도 자세한 걸 다 알지는 못해. 부네가 설명해 줄 거야. 부네가 할아버지의 꿈속에 들어가서 보았던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부네에게 들어봐.”
부네가 고운이의 설명에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보셨겠지만 저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탈과 우리나라를 수호하는, 대대로 물려 내려온 영혼이 담긴 탈을 찾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읽었던 내용에 의하면, 할아버지와 저 백발의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저 백발의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어요. 할아버지를 다른 사람을 통해 협박해왔던 저 백발의 남자는 ‘마츠모토’라는 일본 사람이에요. 국제적으로 고미술품이나 골동품을 밀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세계의 부자들에게 자신이 밀수하고 훔친 미술품이나 예술품들을 파는 아주 나쁜 사람이지요.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영혼이 담긴 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는 할아버지를 찾아왔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절대 그걸 팔 수 없다고 하셨고 할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돈으로 회유하려고도 하고 사람들을 시켜 협박하기도 했었나 봐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절대 그들의 협박이나 설득에 넘어가지 않으셨지요. 하회탈도 그렇지만 저 사람들은 영혼이 담긴 탈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그 탈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단지 그 탈들을 모았을 때, 지금은 없어져서 전해지지 않는 하회탈까지 모으면 국제적으로 엄청난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팔아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전설 같은 것을 들었나 봐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추궁했고 마츠모토는 어떤 영문인지는 잘 몰라도 할아버지의 비밀에 대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와 마츠모토는 직접 만난 적이 없는데도 마츠모토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기억에 대해 꿈을 통해 읽은 것은 그 정도예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왜 갑자기 쓰러지신 거죠?”
세찬이가 다시 물었다.
“그건 그들과는 또 다른 문제였는데 이매탈 때문이었어요.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읽은 것이 맞다면,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것은 가을쯤에 온 편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올 겨울이 지나고 내년에 칠십 세가 되시면서 후계자가 없는 것을 걱정하셨어요. 그대로 있다가는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시던 중에 우연히 편지 한 통을 받으셨어요.”
“편지요?”
세찬이는 자신이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도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고민에 대해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네. 할아버지에게 주술을 위한 굿을 준비하는 사람이 편지를 보냈어요. 자신이 전통 주술이 담긴 탈을 가지고 굿을 해야 하는데, 그 탈을 할아버지에게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요.”
“주술이라면…”
세찬이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는 ‘주술’이라는 말이 나오자 귀가 번쩍 트였다.
“네. 대부분은 주술을 위해 탈을 만들어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데 그 사람은 할아버지의 경력이나 솜씨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할아버지의 감정까지 읽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도 그 사람을 마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고민을 하고 계셨는데 그즈음에 회광이 우람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었고, 제가 고운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준비하고 있던 일의 때가 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준비하고 있던 일의 때라니?”
이번엔 우람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는 당신께서 탈을 만들지 못할 것을 걱정하셨고, 당신 대에서 혼이 담긴 탈을 만드는 작업이 맥이 끊기게 되면 어쩌나 하고 늘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원래는 세찬님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해주었으면 했는데 세찬님의 아버님은 할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길 원하지 않으셨고 할아버지도 굳이 억지로 그 일을 넘겨주기 싫어하셨거든요.”
그러고 보니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아빠가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늘 방학이면 할아버지에게 내려와 지내긴 했지만 어려서는 엄마가 데려다주셨고 그 이외에는 늘 혼자서 다녔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찾아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왠지 할아버지가 계시는 안동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빠는 늘 병원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가 만드는 탈이나 작품들을 집에 가져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네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에 고운님과 우람님을 만나게 되면서 할아버지께서는 지금이 모든 하회탈의 영혼들이 일어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작업을 하시면서 이매탈에 대해 고민을 하시기 시작했거든요.”
“이매탈은 하회탈 중에 유일하게 턱이 없는 탈인데, 다른 하회탈들은 모두 턱이 있는데 이매탈만 턱이 없다는 건 당연히 완성이 아니라는 거지. 탈을 쓰는 사람의 턱을 대신한다는 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다른 턱이 있는 탈과 비교하자면 설명일 수가 없어. 자료에 의하면, 이매는 원래 선비의 하인이야. 이 탈은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아. 그리고 눈꼬리가 눈구석보다 아래로 내려와 있어.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와 있는 건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바보의 천진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표현한 거라고 전해. 또 다른 탈에 비해 주름살이 적은 것도 특징인데 바보에게 정상인처럼 세파의 흐름을 정확히 판단하고 대처할 능력이 없는 만큼 정상인이 생각하는 고뇌는 없었다는 거지. 입모양이 우리 부네랑 비슷하기도 해. 그래서 여성적이라고도 불리지. 갓 태어난 아기의 천진스러운 웃음이 이매탈의 입가에 가득히 들어 있다나 할까?”
“넌 무슨 탈 연구 박사냐?”
우람이가 고운이의 설명을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사실 우람이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할아버지를 만났고 나무가 좋아서 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는데 고운이처럼 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회탈에 대해서는 겨우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서 백정 탈에 대한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고운이와 세찬이를 보고 있자니 자신만 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 같아서 괜스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냥 외삼촌 서재에 있던 책을 좀 읽은 것뿐이야. 외삼촌이 민속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시거든.”
“그랬구나.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갑자기 이매탈이나 다른 영혼을 다룰 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지? 그건 할아버지가 일부러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말야.”
세찬이가 다시 궁금해진 것을 부네에게 물었다.
“지금 고운님의 설명처럼 이매탈은 완성하지 못한 탈이라고도 하지요. 그 이매탈에는 다른 하회탈과는 달리 그에 대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전설…?”
우람이와 세찬이가 동시에 외쳤다. 그것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었다.
“우리 하회탈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고려 중엽이었어요. 아마 12세기 경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당시 하회마을엔 허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마을에 모여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때 마을에 각종 질병과 안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어요. 마을이 저주를 받아서 재앙이 들었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때 마을에 살고 있던 허도령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허도령은 마을의 재앙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모진 시련을 이겨 나갈 수 있을까 탄식하며 지냈어요. 그러다가 내내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마시기 시작해서 금세 취해서는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지요. 그렇게 잠에 들었는데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허도령에게 12개 탈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기억하고 지금부터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100일 동안 이 탈들을 만들어서 쓰고 굿을 하면 마을에 내린 재앙이 모두 물러갈 거라고 일러주었어요. 이렇게 계시를 해준 신령님은 탈이 모두 완성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작업을 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해서는 안된다는 금기(禁忌)도 잊지 않고 일러주었지요. 잠에서 깬 허도령은 너무도 또렷하게 12개의 탈 모습을 기억하고는 그것이 예사로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새벽에 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가서 목욕재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금줄을 치고 뒤뜰에 있던 오리나무를 베어 정신을 모두 집중해서 12개의 탈을 만들기 시작한 거지요.”
“금기가 뭐지?”
우람이가 부네의 설명에 의문이 났는지 물었다.
“금기라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말하는 거야.”
고운의 설명에 이어 부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금줄을 치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입신의 경지에서 탈 만드는 것에만 열중을 하니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친 줄만 알았어요. 다만 허도령을 사모하던 옆집 처녀만이 허도령을 위해 끼니를 준비해서 문 앞에 가져다주었어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록 허도령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는 걱정도 되고 허도령의 모습도 너무 보고 싶어 방을 둘러싸고 있던 금줄을 넘어서 방 안에서 허도령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지요. 그리고는 미친 듯이 탈을 만드는 것에만 열중하던 허도령을 보기 위해 방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았지요. 그때는 이미 모든 탈들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이매탈의 턱을 만들 때였는데 ‘누구도 작업하는 것을 들여다보게 해선 안된다’는 신령님의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고 말았어요. 그래서 그때 완성되지 못한 이매탈은 턱이 없는 채로 전해지게 된 거지요. 남아 있던 탈들을 가지고 굿을 해서 마을의 재앙은 없어졌지만 허도령은 죽고 말았고 허도령을 사모했던 처녀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다가 따라서 죽고 말았어요.”
“아!”
이야기를 알고 있던 고운이만 빼고는 두 사람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하회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부네의 설명을 듣고 나니 하회탈의 이매탈이 왜 턱이 없는지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세찬이는 그것과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언뜻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번엔 세 사람 모두가 놀라서 부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부네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고운이도 할아버지가 이승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곧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세찬이는 금세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돌아가신 건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완전한 영혼의 탈들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매탈을 만들었던 허도령을 찾아 이매탈의 턱을 완성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그 염원을 가지고 영혼이 몸을 떠나서 지금 저승에 있는 허도령을 만나러 가셨어요.”
“저승이라구요?”
“네. 허도령이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허도령에게 직접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저승으로 가셨어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하기 어려운 일이고 위험한 일이기도 해요. 물론 그건 할아버지의 너무도 강한 의지가 그렇게 만들고 만 것인데,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이 지금처럼 억지로 육체를 떠났을 경우엔 3일 안에 그 영혼을 찾아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그 육체는 영영 영혼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이제 하루가 다 지나버렸으니까 이틀 안에 할아버지의 영혼이 돌아오지 못하면…”
거기까지 말하다가 세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닫아버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건…”
부네가 말을 하려다가 잠시 세찬이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왜 말을 못 해요? 가르쳐주세요. 할아버지의 영혼을 찾아올 수는 없는 건가요?”
“그러려면, 그러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영혼이 있는 그곳으로 가야만 해요.”
“부네! 그곳이라면…”
고운이가 부네의 말을 막고 나섰다. 부네의 말대로라면 세찬이마저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고,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저승으로 직접 가서 할아버지의 영혼을 찾아오거나 허도령과 담판을 내는 일밖에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