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이와 고운이가 돌아간 후에도 세찬이는 한참 동안 혼자서 할아버지의 사랑방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어있는 붓이나 조각칼들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금방이라도 건넌방에서 ‘세찬아~!’하고는 자기를 불러줄 것만 같았다. 다락방에 감춰둔 곶감을 꺼내서 손에 쥐어주시며 너털웃음을 띄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병원에서 이름 모를 기계 속에 둘러 쌓여 누워 계신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까 어렵게 구해온 도깨비 모양을 한 탈을 손에 쥐고 있자니 할아버지가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왜 자신은 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인지 자꾸만 화가 났다. 어쩌면 자질이 없는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가 저승으로 가신 것은 아닌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솟아나 속이 상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시골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할아버지가 없는 방학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자 이제까지 꾹 참고 있던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다. 손에 들고 있던 눈이 4개나 되는 못생긴 탈이 어른어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게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던 약속이 깨질까 봐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눈물이 그렁거리다가 툭하고 눈앞에 들고 있던 못생긴 탈로 떨어졌다.
순간 두근-하고 가슴이 펄떡였다. 눈앞이 화끈거리며 쿵덕거리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놀라서 눈을 깜박이는 순간 또 눈물이 탈로 떨어졌다.
두근-
아빠가 청진기로 언젠가 들려줬던 사람의 심장소리 같은 것이 청진기로 듣던 것보다 훨씬 크고 엄청난 것으로 바뀌어 울렸다. 온몸을 전기가 휩싸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청진기로 들었던 그 심장소리처럼 두근거리는 박동이 귀에서 몸에서 온몸 여기저기에서 울려버리는 것 같았다. 마치 자기 심장에 청진기를 대고 듣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쿵덕거리는 느낌에 견딜 수가 없었다. 손에 있던 못생긴 탈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고 손 안이 따스하다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느낌은?’
- 누구냐?
너무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탈을 떨어뜨릴 뻔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커다랗고 웅장한 소리가 온몸에 스피커를 달아놓은 것처럼 여기저기 울렸다.
‘뭐지? 이 소리는?’
- 누가 날 깨운 거냐?
다시 한번 그 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누구세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안정될 즈음 낮에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 한번 온몸을 엄습해왔다. 오후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런 느낌을 받으니 이 밤늦은 시간에 뒤를 돌아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왠지 돌아보면 귀신이라도 떡 하니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린 것도 같았다.
- 너냐? 날 부른 게?
“네? 으악!”
뒤에서 나는 목소리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고개를 반사적으로 돌렸다. 순간 세찬이는 까무러쳐 쓰러지는 줄 알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에 들려있던 탈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탈이 모습 그대로 온통 짙은 검붉은 색 연기로 온 몸을 휘감은 듯한 도깨비가 한 마리가 떡 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누, 누구세요?”
“세찬이라… 그게 네 이름이더냐?”
그 도깨비는 귀도 크고 눈도 4개나 되는 외모에 체구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온몸이 나뭇결인 듯도 싶고 진흙 덩어리 같기도 한 묘하게 생긴 모습이 붉은색을 띤 묘한 갈색으로 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나이테 같은 이상한 줄무늬가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죠?”
“바보 같은 녀석!”
가만히 보고 있자니 처음 봤던 것만큼 흉측하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장난기 어린아이의 표정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세찬이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보리라 다짐하고는 어렵게 입을 뗐다.
“난 세찬이가 맞아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어디서 나타난 거죠? 하회탈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나타날 수 있는 거죠? 난 펜던트도 없고 탈을 다룬 경험도 없는데…”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걸 물어보면 어쩌라는 게냐? 부네나 회광이 같지 않아서 서운하기로도 한 게냐?”
“어떻게 그걸 다…”
“아냐구?”
놀란 세찬이의 앞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는 도깨비는 자신의 소개도 하지 않은 채 재미있다는 듯이 세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네 할아버지를 구해오려면 얼른 저승을 가야 해. 그러자면 준비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란 말이다. 아까 부네에게 설명 들었겠지만 나도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천년이 훨씬 지나버렸기 때문에 예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구나. 하여간 일단 부네가 알려준 것은 있을 테니 준비를 하자. 곧 고운이라는 녀석이 떡을 가지고 올 게다.”
“에? 아니, 그것보다…”
세찬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다시 도깨비가 말을 막았다.
“아참! 난 '방상씨'라고 한다. 그냥 편하게 '방상이'라고 부르면 된다. 그리고 너와는 원래부터 이루어질 짝이었으니 그리 알거라. 네가 가지고 있는 열쇠는 원래 내 얼굴이었는데 오늘 네가 들은 피리소리가 날 만들었던 나무로 만든 피리라서…, ‘만파식적’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는 게냐? 모르겠지. 공부라고는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은 녀석이니 원! 하여간, 지금 네 손에 있는 게 그 펜던트인가 뭔가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이더냐?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엇?”
원래 탈을 쥐고 있어야 할 세찬이의 손에는 아까 상자를 여는데 썼던 열쇠 펜던트가 ‘방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도깨비의 탈로 바뀌어져 있었다.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그 열쇠로 된 나무가 방상씨의 탈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터라 모든 것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딸깍-
문 앞에 뭔가 소리가 났다.
“세찬아. 나야. 고운이.”
고운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멋!”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떡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고운이는 처음 보는 방상씨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도 놀라 어쩔 줄 몰랐다.
“호오. 너도 내가 보이는 게냐? 상당한 녀석들이긴 한 모양이로구나. 하긴 천년이나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어라?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냐? 헤헤. 넌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구나. 부네의 주인다워. 얼른 떡부터 내놓고. 세찬이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테냐?”
“아. 알았어요.”
“아까 설명을 모두 들었지? 곧 강림도령이 올 시간이다. 너희 할아버지가 쓰러진 것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으니 이제 한 15분 후면 올 때다. 준비를 해야 해.”
그러고 보니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부네는 할아버지의 영혼을 찾으려면 저승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 세찬님. 고운이가 소금으로 만든 떡과 쌀로 만든 떡을 3개 만들어 올 거예요. 그중에 한 개만 소금으로 만든 절편이니까 그 떡은 따로 주머니에 보관하세요. 할아버지의 사랑방에 가만히 한지를 펼쳐두고 그 앞에 쌀로 만든 시루떡을 두세요. 할아버지의 영혼은 지금 육체가 없기 때문에 강림도령이 할아버지의 영혼을 데리러 사랑방에 먼저 들를 거예요. 그러면 그 떡을 먹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세요. 그리고 그 떡을 먹고 나면 강림도령에게 어떻게 저승을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고운이가 떠나고 방상씨와 세찬이만 남아 떡을 준비해두고는 다락방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숨었다. 자정을 넘기고 새벽 1시가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방안에 차가운 기운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방상이는 가만히 눈 2개 만을 뜨고서 재미있다는 듯이 밖을 보고 있었다. 방상이가 가만히 세찬이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자 추운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표정이 풀리는 듯하다가 세찬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분명히 문도 열린 적이 없고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도 없었는데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검은 입술을 한 홀쭉한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지만 방상이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표정인 듯했다.
“박기철이라…. 어디로 갔는가? 이곳이 맞는데…”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가 방안을 모두 얼려버릴 것 같은 느낌의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방을 나서려고 하다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배고프던 참에 이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는 뭔고? 아, 어떤 착한 녀석이 여기에다가 떡을 두었는가?”
뭔가 혼자서 떠들던 남자는 방 한가운데에 있던 시루떡 덩어리를 보더니 씨익 웃어 보이며 허겁지겁 그 떡을 집어먹었다. 한꺼번에 다 먹어 치울 듯했는데 한참을 먹어도 떡은 잘 줄어들지 않고 아주 조금씩 고물만이 없어질 뿐이었다.
“아! 거참 맛나다. 내가 배고픈 것을 어찌 알고서는…”
떡을 반쯤 먹었을까. 이제 만족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방상이가 다락문을 열며 세찬이를 불쑥 밀었다. 세찬이는 갑자기 뒤에서 밀치는 힘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쓰러질 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저는 강림도령을 위해 떡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강림도령에게 떡을 대접해드리고 부탁 하나를 드리려고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차가운 표정의 강림도령은 떡을 먹고 그냥 나가려던 것이 미안했던 것인지 아니면 세찬이의 행동이 재미있었던 것인지 가만히 뒷짐을 지고서 세찬이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올 줄 알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요상할세! 너는 내가 보인단 말이냐?”
“예.”
“어허! 이 쪼그만 녀석이 벌써 저승을 갈 나이는 아닌 듯한데 어찌 내가 눈에 보일꼬. 선택을 받은 몇 안 되는 인간 중에 하나인 게로구나. 그래, 떡을 준비하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었더냐?”
“그냥 알고 있던 대로 했을 뿐입니다.”
세찬이는 절대 누군가가 가르쳐주었다고 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 부네의 말을 상기하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호?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네가 나에게 할 부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넌 내가 뭘 하는 이인 줄 알고 있을 터인데…”
“잘 알고 있습니다. 저승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저승차사 중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분 인줄 압니다. 저는 이승에서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억지로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고 싶습니다.”
“뭣이? 저승으로 여행을 가? 그리고 그걸 다시 모시고 와?”
강림도령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세찬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움찔하고 놀랐지만 세찬이는 부네가 알려준 대로 강림도령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림도령께서도 원래 이승 분이셨는데 염라대왕을 잡으러 저승에 가셨던 분 아니십니까? 저는 할아버지를 모셔 와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승에 살고 있는 제가 저승에 다녀올 수 있는 방도만이라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런 어린 놈이 별 것을 다 아는구나? 요즘 세상에 나에 대해 이렇게 소상히 하는 녀석도 드물거늘 너는 도대체 뭘 하는 놈이기에 내 과거지사까지 그리 소상히 아는 게냐?”
“그래서 온전하게 쌀로만 떡을 만들어 강림도령께 올린 것입니다.”
세찬이는 차가운 기운을 연신 쏟아내는 강림도령과 얘기를 하면서 점점 더 자신이 냉정하고 침착해진다는 것을 느끼고는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할아버지와 얘기하는 것처럼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편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이젠 무섭거나 두려운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좋다. 내가 이리 맛있는 떡을 대접받고서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음. 저승법은 맑아서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법. 나중에 벌을 받더라도 길을 알려줄 밖에. 내 너에게 방법을 일러주기는 하마. 허나 그 다음은 모두 네 몫이다. 알았느냐?”
“예.”
부네의 말대로 1단계는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단계는 이제 세찬이가 겪게 될 아주 큰 시련과 어려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뜬 적삼이 있느냐?”
“있습니다.”
“내가 혼을 세 번 불러들이면 네 몸에서 혼이 빠져나오게 될 게다. 혼이 몸에서 나온 후로 3일이 지나면 돌아올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저승 초군문에 가거라. 저승 초군문 가기 전에 헹기못에 이르거든 헹기못 바위에 보면, 이승에서 제명에 못 죽고 남의 명에 간 사람 저승도 못 가고 이승도 못 와서 개미 떼처럼 모여 울고 있을 게다. 그 이가 ‘나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하고 적삼 옷소매를 잡을 것이니 그때 네 주머니에 숨겨둔 시루떡을 자잘하게 부수어서 동서 천지에 뿌리면 저승 초군문에 뿌려질 게다. 참, 저승 통과패는 있느냐?”
“네? 아, 아니요. 그것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세찬이 당황했다. ‘저승 통과패’라는 것에 대해 부네에게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부네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이런! 그게 무슨 말이냐? 저승 통과패가 없으면 저승에 들어갈 수는 있더라도 돌아올 수가 없단 말이다.”
그때였다. 다락방 쪽에서 툭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이의 앞에 펜던트가 떨어졌다.
방상씨의 얼굴을 하고 있던 도깨비 탈 펜던트였다.
“아니! 여기 있지 않느냐?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 이런 걸 까맣게 잊고서 흘리고 다니니, 어찌 저승을 가겠다고 하는 겐지 원. 쯧쯧.”
“예?”
그제서야 세찬인 저승 통과패가 방상이의 얼굴 모양을 한 도깨비 탈 펜던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러면 이제 되는 건가요?”
“다 되긴, 녀석! 성격도 급하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니 들은 대로 잘하거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강림도령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세찬이의 이름을 크게 세 번 불렀다. 그러자 세찬이는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