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까무룩 해지며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는데 갑자기 몸이 오싹하며 추위가 느껴졌다. 정신을 잃기 전에 몸이 꽉 조이는 튜브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물컹하다 싶은 순간 잠시였지만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핏 보였던 것도 같았다.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몸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이면서 점점 사랑방에서 멀어져 간다 싶더니 뭔가의 힘에 이끌려 휑하니 하늘로 올라가더니 청룡열차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느낌에 놀라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방상이가 곁에 있었다.
“정신이 좀 드냐?”
“어? 방상아?”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여기가 저승 초구문이다. 이제부터는 잘 따라와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큰일이니까. 시간이 별로 없어.”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방상이의 모습을 보면서 세찬이는 놓칠까 싶어서 얼른 일어나 뒤를 따랐다. 둘은 강림도령이 일러준 대로 포도리청 호안성을 지나 헹기못에 다다랐다. 그랬더니 정말 헹기못 바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인가 보다.’
세찬이가 방상이의 얼굴을 한번 보니 방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가 말을 걸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가 달려들며 세찬이가 입고 온 할아버지의 적삼 두루마기 쾌자를 잡았다.
“나도 데려가 주오.”
놀란 세찬은 강림도령이 알려 준대로 떡을 자잘하게 잘라서 뿌렸다. 그러자 주위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저승에 가지 못해 배고파하던 이들이 떡을 주어먹느라고 옷소매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세찬이는 눈을 질끈 감고 헹기못에 풍덩 뛰어들었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수영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못에 뛰어들고 보니 이곳은 수영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몸에 바위를 묶어놓은 것처럼 회오리쳐 감기는 물길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디깊은 곳으로 한없이 떨어졌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이 다시 아득해졌다.
“아니! 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보다 어째 정신을 잃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게냐?”
눈을 뜨고 보니 방상이의 등에 업혀 있었다.
“이제 정신 차렸으면 내려라.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녀석이 어르신의 등에 계속 업혀서 갈 테냐? 여기가 저승 연추문이다.”
“연추문?”
문이라고는 했지만 문 모양의 틀이 덩그러니 하나가 있을 뿐, 문 안쪽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붉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가시밭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들은 얘기가 없는데…어쩌지?”
난처해하는 세찬이를 보며 방상이가 뜨고 있는 2개의 눈을 떼구루루 굴렸다.
“넌 왜 내가 저승 통과패인 줄은 아는 게냐?”
“아참! 그러고 보니 왜 아까 강림도령이 그렇게 말했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세찬이도 방상이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아까 방상이의 얼굴 모양을 한 도깨비 탈 펜던트가 저승 통과패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제부터 갈 길이 굉장히 길어서 꼬박 한나절을 걸어야 할 테니 내 너에게 알려주마.”
“한나절을 걷는다고? 여기 길이 어디 있다고 한나절을 걸어간다는 거야? 온통 가시밭이잖아?”
“기다려봐라. 이 방상씨의 능력을 보여주마! 후웁!”
방상이가 갑자기 기운을 모으려는 듯 기마자세를 하고서는 얼굴을 쑥 내밀고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감겨 있던 아래쪽의 눈 2개가 떠지면서 방상이의 4개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온통 가시 천지였던 눈앞에 뱀의 몸처럼 기다랗고 가느다란 길이 가시밭의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와! 길이 나타났다.”
“가자.”
방상이의 모습은 아까의 장난기가 어린 모습에서 조금 달라져 있었다. 키도 조금은 커지고 몸집도 커진 것 같았고 이전의 모습이 장난스러운 아기 도깨비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엄격한 경찰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투도 이전의 그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방상이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주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방상씨(方相氏)의 탈.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탈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시기로 따져도 하회탈의 할아버지는 되는 격이었다. 하회탈이 만들어진 것이 12세기였으니까 방상이의 설명대로라면 방상씨가 만들어진 것은 6세기, 즉 하회탈보다 6백 년이나 더 오래된 일이었다. 부네가 방상씨를 몰라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방상씨의 탈은 원래 사람이 죽고 초상을 치를 때 상여의 맨 앞에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악귀를 쫓아내는 기운이 담긴 눈이 4개나 있어 그 빛을 통해 악귀들이 힘을 잃기 때문이고 저승을 가는 사람의 길잡이를 충실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 탈을 만들 때는 당연히 주술성이 강하고 영혼이 담겨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주술 능력이라든지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 했다.
방상이의 설명을 채 모두 듣기도 전에 둘은 어느 사이엔가 뱀 같은 길의 끝에 서 있었다.
“아!”
세찬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길이 끝난 곳에는 또 다른 길이 없었다. 길이 끊긴 곳은 한없는 절벽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엄청난 바다가 펼쳐져 있어 한도 끝도 없어 보였다.
“어쩌지? 방상아?”
“곧 녀석이 나타날 게다.”
“녀석?”
방상이가 다시 이마에 뜬 2개의 눈을 감자, 아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계속해서 변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영혼의 주인인 세찬이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아까 했었기 때문에 세찬이는 다시 묻지 않았다.
“저기 온다.”
방상이가 가리킨 쪽에서 바다가 갈라지듯 물결이 차오르며 푸른 비늘 같은 것이 보였다.
“설마…”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커다란 뱀 같은 것이 보였다. 물고기도 아니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용을 닮은 커다란 뱀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이 눈앞에 몸을 일으키고 세워 물을 쏟아 내리면서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말소리가 전달되는 것이었다.
“방상씨로군. 이제 몇 천 년 만인가?”
“오랫만이로구만. 이무기. 넌 여태껏 승천을 못한 게냐?”
방상이는 그것을 ‘이무기’라고 불렀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직전의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방상이가 설명해주었다.
“이제 하늘로 승천하기만 하면, 용이 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승천을 하지 못하니…”
“좋다. 우리가 서천꽃밭을 지나 그 꽃밭을 관리하는 상제를 만나 왜 네가 용이 되지 못하는 건지 알아다주마. 그러니 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해 다오.”
방상이의 제안에 이무기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둘은 이무기의 머리에 타고 2만 리가 넘는다는 황천 바다를 순식간에 건널 수 있었다.
“벌써 하루가 다 가려고 한다. 달릴 준비는 된 게냐?”
“응!”
부네에게 들었던 설명대로라면 이제 한 고비만 넘기면 바로 서천꽃밭이었다. 그 이후에는 할아버지를 찾기만 하면 되는데 정작 마지막 고비가 문제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컹컹거리는 소리가 천둥벼락 소리보다 훨씬 더 크게 울리며 양쪽에서 들려왔다.
“놈들이 온다.”
부네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천꽃밭에 가기 직전에 그곳의 침입자들을 지킨다는 천리동이와 만리동이.
자현장자가 기른다는 개였다.
부네에게 들었던 설명에 의하면 서천꽃밭의 입구에는 장자가 기르는 개가 있는데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동이 개와 만리를 가는 만리동이 개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사나운지 맹수도 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번 물리면 그 영혼은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방상이는 다시 4개의 눈을 뜨는 단계로 변신해서는 세찬이를 한쪽 팔에 휘감아 들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숲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흰 사슴을 냉큼 올라탔다. 부네가 이곳에 오면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던 흰 사슴이었다. 흰 사슴이 놀라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벌써 천리동이와 만리동이가 침을 질질 흘리며 사나운 이빨을 앞세우며 보이기 시작했다. 흰 사슴은 하루에 오천 리밖에 달릴 수 없기 때문에 금세라도 잡힐 것이 뻔했다.
“얼른 준비해.”
“응”
세찬이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남아 있던 소금으로 만든 떡을 뒤로 내던졌다. 미친 듯이 달려오던 천리동이와 만리동이는 서로 떡을 먹으려고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피투성이가 된 두 개는 힘이 조금 약했던 천리동이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소금으로 만든 떡을 먹고 난 만리동이는 너무도 짠 나머지 물을 먹으러 다시 돌아가는 바람에 세찬이 일행을 쫓아오지 못했다.
그제서야 둘은 서천꽃밭에 당도할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흰 사슴은 사라지듯 달아나 버렸다. 눈에 펼쳐진 장관 속으로 사라져 가는 흰 사슴의 뒤로 관복을 입은 사람이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어떤 녀석들이 감히 이 서천 꽃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게냐?”
그 쩌렁쩌렁한 음성에 움찔 놀라 세찬이는 금세라도 방상이의 뒤로 숨을 뻔했다. 그러나 관복을 입은 남자는 방상이의 모습을 보자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니, 이거 혹시 방상님 아니시오?”
아까까지 당당하고 무섭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 방상이 앞에서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이구려. 꽃감관. 잘 지내셨소?”
방상이는 특유의 헤벌쭉 웃는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꽃들이 훨씬 줄어든 것 같으니 이것은 웬일이요?”
세찬이는 온 천지가 꽃밭인데도 꽃이 적다고 하는 방상이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즘의 세상이 한참이나 변해버린 것을 모르셨겠군요. 봉인이 되셔서 이곳에 오지 않으신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요즘의 세상은 맑고 깨끗한 영혼이 드물어 그 영혼들을 살릴 꽃들보다는 그들의 다툼이나 미움이나 시기로 가득한 꽃들로 점점 꽃밭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제 꿈이나 사랑이나 희망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니 어찌하겠습니까?”
이야기를 하면서 꽃감관의 얼굴이 심각하게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얘기만을 하는 것이 미안했던지 꽃감관이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방상님이 이곳에 온 것이 이 얼마 만인지요? 천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었구려. 인연을 만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게지요.”
“아. 그러면 이 분이…”
‘꽃감관’이라고 불린 나이가 지긋한 이가 나이가 한참 어려 보이는 방상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것이 세찬이가 보기엔 이상하기만 했다. 수염이 펄럭이는 꽃감관은 세찬이를 보면서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에겐 지금 시간이 얼마 없으니 자초지종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영혼을 하나 찾고 있는데 좀 도와주시겠소?”
“영혼이요? 아, 오랜만의 방상님의 부탁인데 거절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세찬이가 얼른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와 계세요. 허도령이라는 분을 찾아오셨다고 하는데요.”
“허도령이요?”
꽃감관은 ‘허도령’이라는 말을 듣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는데요? 찾기 어려운가요?”
다급해진 세찬이가 꽃감관을 보며 물었다.
“허도령이라는 이가 있기는 했는데, 탈 만드는 일에 미쳐 있다가 금기를 깨서 망각의 계곡에 파묻혀 이매탈을 완성하겠다며 성불(成佛)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한 살아있는 영혼이 찾아와 그를 찾아갔다고는 들었는데 그 앞이 망각의 개울을 건너다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이다. 이를 어쩌면 좋다. 그분을 찾는 것 같기는 한데…”
“망각의 계곡?”
세찬이와 방상이가 동시에 외쳤다.
“망각의 계곡은 허도령이 금기를 깨었기 때문에 신령이 노하셔서 그를 가둔 곳입니다. 해서 다른 영혼들도 일절 들어가지 않는 곳인데, 며칠 전에 한 살아있는 영혼이 굳이 들어가겠다고 하다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망각의 개울에 발을 담그는 순간, 기억을 모두 잃게 된 것이지요.”
“어디지요? 그 망각의 계곡이라는 곳은?”
세찬이가 다시 꽃감관에게 독촉하듯 물었다.
“어차피 가도 똑같은 일을 겪고 말 터인데, 그곳으로 갔다가는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요. 가겠어요. 가서 반드시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오겠어요.”
“정 그러시다면 천년 만에 만난 방상님의 친구이고 하시니 이곳의 꽃들을 좀 드리도록 하지요.”
“예?”
꽃감관이 두 사람을 안내하면서 꽃밭을 지나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꽃을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꽃은 보통 꽃들이 아니랍니다. 인간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까지도 좌우하는 꽃들이지요. 사람들의 온갖 감정이 이 꽃들에 달려 있답니다. 자, 내가 꽃을 몇 가지 꺾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할아버님을 찾으러 가세요. 아마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면서 꽃감관은 꽃을 꺾어 한지에 싸서 조심스레 각각 다른 주머니에 넣어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것은 웃음꽃, 이것은 싸움 꽃, 또 악심 꽃. 그리고 이것들은 환생꽃이지요.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피오를 꽃, 숨트일꽃이구요. 마지막으로 몇 송이 없는 이것이 기억 살릴 꽃이랍니다. 서로 절대 혼동하지 말고 잘 기억해 간직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꽃감관님.”
둘은 그렇게 서천 꽃밭을 나와 허도령과 할아버지가 있다는 망각의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