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 8

여덟. 망각의 계곡과 망각의 개울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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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망각의 계곡과 망각의 개울


서천꽃밭에서 받은 꽃들을 들고 꽃밭의 끝 쪽으로 나오자 다시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지평선 끝 저 멀리 계곡으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보였다. 분명히 바라보면서 걸어갔는데 망각의 계곡은 보이질 않았다. 길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그때 어디선가 시끄러운 새소리들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저기!”


방상이가 가리킨 것은 곁에 서 있는 앙상한 나무였는데 그 꼭대기 둥지 안에서 까마귀 새끼들로 보이는 아기새들 일곱 마리가 저마다 시끄러운 소리로 울고 있었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울고 있니?"


세찬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러자 까마귀 새끼들이 한입을 모아 대답하였다.


"저희들은 배가 고픈데 벌레를 잡아먹을 기력이 없어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찬이는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 주위에 기어 다니고 있던 벌레들을 잡아 둥지까지 올라가 그들에게 먹여 주었다. 그러자 까마귀들이 기력을 찾아서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커다란 어미 까마귀가 날아왔다.


“그렇게 찾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구나.”


어미새로 보이는 까마귀는 발이 세 개나 되는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새는 새끼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서는 다시 세찬이와 방상이 앞에 와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혹시 방상님이 아니신지요?”


세 개의 발을 가진 까마귀가 방상이를 알아보았는지 아는 척을 하며 물었다.


“너, 나를 아느냐?”

“저승에 사는 이들 중에 방상님을 모르는 이들이 있을 리 없지요. 혹시나 했었습니다만, 말로만 전해 듣고는 처음 뵙습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방상이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니 방상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세찬이는 도대체 방상이가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묻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영혼을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다시는 살아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까마귀님. 혹시 망각의 계곡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세찬이의 질문에 세 발 까마귀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승 온갖 곳을 날아다녔는데 왜 그곳을 모르겠습니까? 이렇게 저희 아이들을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을까 했는데, 제가 그곳까지 안내해드리지요. 제 등에 타시지요.”


날개를 접고 있어 작아 보였던 세 발 까마귀가 막상 등 위에 오르려니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호라. 누군가 했더니 네가 그 삼족오(三足烏)라는 녀석이었구나."


방상이가 이제야 생각이 난 듯 날아가는 까마귀의 등위에서 웃어 보였다.


“저 같은 미물을 다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저 아래 보이는 것이 망각의 계곡입니다. 망각의 개울로 둘러싸여 아래에서 보면 여간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다리가 없어 개울에 발을 담그기라도 하면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리니 아주 위험한 곳이랍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했던 거로구나.’


그제서야 작은 계곡의 틈을 비집고 개울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삼족오’라고 불린 까마귀가 내려섰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언제고 이곳에서 나가실 때 저를 다시 불러주세요. 이 깃털을 하늘로 날리시면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삼족오는 세찬이에게 자신의 검은 깃털을 하나 남겨주었다. 깃털을 가방에 넣고 다시 세찬이와 방상이는 계곡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정승이 서 있고, 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탈이니 조각들이 서 있는 것이 할아버지의 공방과 비슷하면서도 묘한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조그만 초가집 같은 것이 보였다.


“계신가요?”


대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들어가기 전에 세찬이가 조심스레 안에 사람을 불렀다.


“뉘시오?”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몸에 여기저기 나무 조각들이 묻어 있는 품으로 봐서는 그도 나무로 조각을 하는 장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묘하게 생긴 탈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처음 보는 탈의 모양이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이 허도령이 사시는 곳인가요?”


세찬이의 질문에 탈을 쓰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물었다.


“내가 허 씨 성을 가진 사람은 맞소만, 허도령은 또 누구요? 난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하오. 난 그저 허 총각이라고 하오만. 그대들은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되었소? 이곳은 살아있는 영혼이 들어올 곳이 못 되는 곳이오만은…”

“저희 할아버지를 찾아왔는데요. 이곳에 이틀 전에 살아있는 영혼이 한 분 오시지 않았던가요?”

“원체 이곳은 우리 부부 내외만이 사는 곳이오만은…어여들 돌아가시오.”


탈을 쓰고 있는 ‘총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며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상이는 그저 가만히 총각의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세찬이는 여기에서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시간을 감안할 때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멍하니 둘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간 총각은 무엇을 하는지 도통 다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채의 툇마루에 앉아 있던 세찬이가 걱정스러운 듯 방상이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방상아?”

“아니 뭔가 이상해. 아까 저 자가 분명히 자기를 총각이라고 그랬었잖아? 그런데 총각이라면서 어떻게 아내가 있을 수 있지? 아까 분명히 부부가 같이 산다고 하지 않았나?”

“어? 정말 그렇네?”

“그러고 보니 부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그래. 저 자가 하는 말은 뭔가 이상해. 들어가 보자. 직접 물어봐야겠어.”


둘은 다시 공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내가 작업하는 것을 들여다보지 말란 말이다!”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총각이 호통을 쳤다. 흠칫 놀란 세찬이는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방상이가 뒤에서 어깨를 잡아 주었다.


“이보시오! 부인은 어디 가셨소?”

“부인? 내 얼굴을 보면 모르겠냐? 난 총각이라니까… 무슨 놈의 부인이 있단 말이냐?”

“에?”


총각의 황당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세찬이는 다시 방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방상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엊그제 이곳에 도착한 사람은 또 어디 있소?”

“이곳은 평생을 나 혼자 지내는 곳인데 누가 또 왔단 말인가? 어서 이곳에서 나가라! 내 작업을 보지 말란 말이다!”


그때였다.

작업실의 뒤에서 나무를 한가득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방상이와 세찬이를 보고서도 아무런 기척 없이 나무를 하나하나 작업실에 내려놓는 그 사람은 허도령과는 다른 탈을 쓰고 있었다. 묘한 느낌을 주는 탈이었는데 이것 역시 세찬이는 본 일이 없었다.


“떡다리냐? 수고했다. 여기 와서 나무를 좀 깎고 있거라.”

“예끼, 여보슈! 혼자서 산다더니 저 사람은 또 누구시오?”


방상이가 다시 허도령에게 물었다.


“아! 보면 모르나? 떡다리 아닌가? 그리고 내가 언제 혼자 산다고 하였는가?”


세찬이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뜻 모를 말들에 머리가 아팠다.


“뭐 하는 거야? 방상아?”


나무를 정리하러 나오는 떡다리라고 불린 사람을 보고서는 방상이가 얼른 세찬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무래도 저 허도령이라는 자가 쓰고 있는 탈도 이매탈 전에 만들었던 하회탈인 것 같다.”

“하회탈?”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탈을 만드는 장인이었기 때문에 하회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나 하회탈의 모든 종류를 봐왔기 때문에 그 모습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도령과 떡다리가 쓰고 있는 탈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이보시오. 떡다리!”


방상이가 일을 하고 있는 이를 부르자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대답했다.


“댁은 뉘시오? 어떻게 날 아시오?”

“어?”


세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탈을 쓰고 아무리 다른 옷을 입고 몸은 건장한 청년인 듯했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할아버지와 아빠의 목소리를 섞어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아빠의 목소리는 거의 비슷했다. 그 목소리가 ‘떡다리’라는 사람의 탈 안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하, 할아버지?”


세찬이가 막 떡다리에게 다가가 말을 시키려고 하는데 허도령이 뒤에서 득달같이 달려 나와 방상이를 밀쳐냈다.


“아! 네 놈은 누군데 남의 일꾼에게 이것저것 귀찮게 말을 걸고 그러는 게냐? 얼른 썩 꺼지지 못할까?”


그러자 방상이 감고 있던 이마의 두 눈을 부릅뜨면서 모습을 다시 바꾸기 시작했다.


“네 이놈! 넌 저승에서 벌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런 몹쓸 짓을 하다니!”


방상의 얼굴이 무서워지면서 4개의 눈이 떠지고 그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허도령이 뒤로 주춤하고 물러섰다.


“넌…방, 방상씨가 아니냐?”


허도령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방상이의 원래 모습을 보면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네가 금기를 어기려고 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입신의 경지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으면 그 한을 곱게 탈을 만들면서 풀어야 할 것을, 망각의 계곡에 갇혀 있는 이가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영혼을 잡아두다니…그 죄가 더 커질 셈이냐?”

“잘못했습니다요. 잘못했습니다요.”


갑자기 허도령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방상이 앞에서 빌기 시작했다.


“세찬아! 얼른 저 떡다리의 탈을 벗겨보거라.”

“응.”


방상이의 힘 있는 목소리에 세찬이는 떡다리의 탈을 벗겼다. 탈을 뒤로 벗기는 순간 젊고 힘 있어 보이던 떡다리의 모습은 한순간에 힘없고 나이 먹은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


아까 보았을 때는 분명치 않았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세찬이가 그리워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세찬이를 알아보지는 못하는 듯했다.


“누구시오? 댁은?”

“네? 할아버지! 저예요. 세찬이…”


할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는 세찬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찬이?”


어렸을 때부터 늘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태어난 이후로 쭉 할아버지는 자신의 곁에 있어줬다. 비록 서울에 살면서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학교를 가기 전에는 할아버지의 곁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도 방학이면 내내 할아버지의 집에서 지내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영화 속의 화면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세찬아! 지금 할아버지는 망각의 개울 건넜기 때문에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을 게다. 맞느냐? 총각!”

“예. 예.”


총각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예끼! 이 거짓말쟁이 같으니!”


방상이가 오른손을 들어 총각이 쓰고 있던 탈을 확 잡아채듯 쳐버렸다. 탈이 뒤로 튕겨져 벗겨졌다. 그러자 이번엔 총각의 몸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인지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에? 당신은 누구시오?”


이번에는 그 노인이 이제까지 벌벌 떨던 방상이의 모습을 보고는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얼굴로 천천히 다가와 물었다. 세찬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갈수록 너무도 황당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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