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을 벗자 갑자기 모습이 변하고 기억이 완전히 없어진 사람 같은 두 노인을 보면서, 세찬이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상이가 두 노인을 부축하는 사이, 세찬이가 방상이에게 말했다.
“아까 꽃감관에게 받았던 기억을 살리는 꽃이 있었잖아? 그 꽃을 사용해보면 어떨까?”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 해보렴.”
세찬이는 기억을 살리는 꽃을 조심스레 꺼냈다. 워낙 양이 적었기 때문에 두 묶음으로 나누어 각각 ‘총각’이라고 했던 노인과 할아버지에게 꽃향기를 맡게 했다. 꽃향기를 한껏 들이마시자 꽃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져서 이내 연기처럼 세찬이의 손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꽃향기를 맡은 두 사람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동자 가운데 보이지 않던 검은 초점이 또렷하게 다시 돌아와 있었다.
아직도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세찬이를 보던 할아버지가 세찬이를 보고서는 그제서야 부둥켜안으며 알아보는 듯했다.
“세찬아! 아이구, 우리 세찬이! 니가 이곳까지 어쩐 일이냐? 이 위험한 곳을…”
노인 역시 정신이 돌아왔는지 방상이와 할아버지 세찬이를 보면서 물었다.
“그대는 방상씨가 아니시오? 내 이 저승에서 실제로 그대를 만나게 되다니… 그런데 저들은 뉘시오?”
“자네가 허도령이 맞는가?”
방상이 되물었다.
“그렇소만. 방상씨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오?”
할아버지와 허도령은 그동안의 일에 대해 아무런 기억을 못 하는 사람들 같았다.
“허도령 자네가 만든 하회탈의 혼령이 씌워 이제까지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구만. 이제 하나하나 기억들이 나기 시작할 걸세.”
방상의 설명을 듣고 나서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허도령은 그간의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랬었구려. 원래 난 신령님이 금기를 어겨 죽고 나서 이곳에 들어와 모든 것을 지우고 싶어 스스로 망각의 개울에 들어 기억을 지우고 이곳 망각의 계곡에서 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내가 하회탈을 만들고 이매탈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우리 세상을 구하려는 마음에서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만든 하회탈은 이매탈까지 모두 12개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에 빼앗긴 탈이 3개나 되어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그 모습이 어떻게 생긴 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찻길이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그 영혼을 잃어갔지요. 지금 이승에 남아 있는 탈들의 영혼도 맑은 영혼을 찾지 못한 나머지 성불하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러던 중 일본에 빼앗겨 그 존재마저 기억이 희미해진 3개의 하회탈의 영혼이 성불하지 못하고 이곳 저승으로 찾아와 저에게 붙어 버렸습니다. 3개의 탈은 각각 ‘떡다리, 별채, 총각’이었습니다. 그중 총각탈의 혼이 저에게 씌어서 저는 그때부터 그 영혼에 씌어 지냈습니다. 안에는 물론 내 영혼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갇혀 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며칠 전에 남아 있는 하회탈들의 혼을 성불시키기 위해 찾아온 후손이 있었지요. 바로 이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 마저 총각은 떡다리 탈의 영혼을 붙여버려 망각의 개울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렇게 지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탈들의 영혼은 성불하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아까도 별채탈이 이 꼬마의 얼굴에 붙으려고 했지만 방상씨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 저 안에 숨어 버렸습니다.”
“그럼 하회탈은 원래 아홉 개가 아니었나요?”
세찬이가 물었다.
“그렇단다. 세찬아. 원래 이매탈을 합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하회탈은 모두 아홉 개뿐이었는데 원래는 12개가 완전한 하회탈이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장인들이 있었더라면 복원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허사가 되어버리고 기억에서 차츰 잊혀버리고 말았지.”
할아버지가 세찬이에게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면 이곳에서도 사라지는 건가요?”
“이승과 저승은 전혀 다른 세계이지만 빛과 그림과 같이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는 세계란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존재할 수가 없는 거지. 이미 새로운 맑은 영혼들을 만난 부네탈이나 백정탈은 그 영혼의 주인을 만나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많은 탈들의 우리 혼은 너희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면서 잃어버린 상상력이나 맑은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단다. 옛날에는 별들을 보면서 별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것들이 정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에 모두 영혼이 담겨 있고 동물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은 모두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단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에 바쁘다고 옛날 이야기나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저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기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는 아무도 고개를 들어 별을 보지 않지. 아니, 별을 보고 싶어도 매연에 둘러싸인 도시의 하늘에서는 더 이상 별을 보기 힘들어졌지. 달에는 분명히 토끼가 살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달을 보면서 분화구가 어떻고 행성이 어떻고를 생각할 뿐 그 속에 담겨 있는 우리들의 혼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단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점차 우리 혼들이 하나둘 죽어 가는 거지. 그렇게 죽은 영혼들은 성불하지 못한 채 이렇게 나처럼 저승을 헤매는 거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나 너희 같은 어린아이들이 꿈을 믿지 않고 전설을 믿지 않으면서 과학적이지 않네 어떻네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동안, 우리네 전설이나 이야기 속에 담긴 상상이니 우리네 꿈들은 모두 사그라져 버리는 거지.”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있고, 고운이도 있고, 우람이도 있고 아직 꿈을 믿고 별을 보면서 꿈을 키우는 아이들은 많이 있는 걸요. 그리고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실망하지 말고 이매탈을 완성해 주세요. 다른 하회탈들이 가지고 있는 서운한 마음을 모두 풀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아질 거예요. 약속드릴게요.”
세찬이가 힘 있게 말했다. 세찬이의 그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세찬이의 손을 꼬옥 잡아 보였다.
“자네의 손자는 자네를 많이 닮아 있구만.”
허도령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고 손을 꼬옥 잡아 보였다. 두 사람은 뭔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찬이는 그제서야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할아버지! 이제 시간이 없어요. 우린 빨리 돌아가야만 해요.”
“그렇구나. 하지만 이 할애비는…”
“아니네. 자네는 아직 이곳에 오기엔 일러. 어서 가게. 이곳에서 내가 이매탈을 완성하고 기다리고 있겠네.”
허도령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세찬이와 방상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허도령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세찬이가 삼족오에게 받았던 검은 깃털을 꺼내 들었다. 검은 깃털을 공중에 날리자 어디선지 검은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날아왔다. 세 사람은 삼족오의 등에 타고 저승의 입구에 있는 황천 바다까지 한 번에 날아갈 수가 있었다. 금세 서천꽃밭을 지나고 뱀 같은 가시덤불 길을 지나고 멀리 황천 바다가 보였다.
‘아! 이제 돌아갈 수 있다. 아참! 이무기!’
세찬이는 황천 바다가 보이자 이무기와 한 약속이 생각나서 삼족오에게 물었다.
“삼족오님. 삼족오님은 저승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녔으니 많은 것을 듣고 보셨겠지요?
“그야 그렇지요.”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요. 황천 바다의 이무기는 왜 아직까지 승천해서 용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아! 그 욕심쟁이 이무기 얘기였군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답니다. 그 이무기가 욕심이 너무 많아 여의주(如意珠)를 2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무거워서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는 거지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삼족오님.”
그렇게 황천 바다 앞까지 날아온 일행은 삼족오와 인사를 나눴다.
황천 바다 앞에 내려 기다리자 황천 바다를 가르면서 만났던 이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왜 승천을 못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왔느냐?”
“예.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여의주를 한 개만 버린다면 언제라도 승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여의주를 2개나 가지고 있었던 탓에 그 욕심의 무게가 무거워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거예요.”
“오! 그렇게 간단한 이유였다니… 방상씨 그대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짝을 만났나 보군.”
이무기는 그들을 황천 바다에서 저승의 입구까지 데려다주면서 턱 밑에 지니고 있던 여의주 한 개를 토해 세찬이에게 꺼내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방상씨가 전에 나와 함께 다니던 때에 얻은 것이라네. 원래 저승의 물건을 영혼이 가지고 이승으로 나갈 수 없겠지만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가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네. 자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으니 그때마다 많은 도움이 될 걸세. 내 선물로 주도록 하지.”
그렇게 얘기를 하고는 이무기는 곧바로 천둥 벼락을 울리며 하늘로 승천해 멋진 용이 되었다. 이무기가 준 여의주는 처음엔 굉장히 커다란 구슬이었는데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더니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만한 크기가 되었다. 저승의 입구에서 나오려는데 방상이가 세찬이를 잡았다.
“세찬아. 이곳은 저승이었기 때문에 내가 내 뜻대로 탈에서 나와 활동할 수 있었지만 이제 이승으로 나가게 되면 나는 다시 탈 펜던트 안으로 갇히게 될 게다.”
“갇힌다구? 그럼 영영 다시 못 보게 되는 거야?”
세찬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그것이 네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가 될 거다. 네가 날 부를 수 있을지,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 너의 숙제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저승에서 나가는 저승통과패가 필요하니 이대로 나갈 수는 없지.”
“내가 널 불러내지 못하게 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바보 같은 녀석!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우린 영원한 짝임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인연이란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아까 용에게 받은 여의주는 사실 내 영혼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신물(神物)이기도 해. 어찌 보면 이번 저승 여행이 너와 내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작이었을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이제 너의 숨결을 그 구슬에 불어넣기만 하면 되는 게다. 숙제를 냈더니 답부터 말해달라는 엉터리 같은 녀석 같으니! 네가 날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면 우린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게다. 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내가 네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알았지? 아까 약속했던 것처럼 절대 꿈을 잃어서는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되는 게다. 알겠지?”
“응! 고마워! 우리 다시 꼭 만날 수 있는 거지?”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세찬이는 왠지 방상이를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시간이 없다. 얼른 나가거라! 고운이와 우람이가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게다.”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방상이의 모습이 희미해지면서 다시 세찬이의 목에 걸린 펜던트 안으로 녹아들 듯 빨려 들어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 버렸다. 세찬이는 서둘러 저승 통과패로 펜던트를 보이고 할아버지와 함께 저승을 빠져나왔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몸이 붕 공중으로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물컹거리는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