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멍한 상태로 조금 지났을까.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눈앞에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왔다 갔다 했다.
“정신이 좀 드니?”
엄마였다. 엄마의 옆에는 고운이의 모습도 보였고 아줌마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고운이는 한참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세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어. 5분만 늦었어도…”
달려 나가 간호사를 부르러 나간 엄마의 옆으로 고운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누워있는 곳은 원래 이승에서 출발점이었던 할아버지의 사랑방이 아니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는 물론이고, 왜 자신이 이렇게 누워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내가 꿈을 꾼 건 아니지? 아얏!”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운이가 한쪽 팔을 꼬집었다.
“아프잖아! 왜 꼬집고 그래?”
“꿈일 리가 없잖아! 바보!”
그때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엄마가 뛰어 들어왔다.
“세찬이가 깨어났다구?”
뒤이어 아빠가 중환자실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네? 여보!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빠는 세찬이가 일어난 것을 보며 부둥켜안고 아무 말도 없이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듯했다.
“세찬아! 엄마는 할아버지를 보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라? 알았지? 우리 애기?”
엄마와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가고 고운이만이 세찬이 곁에 남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된 것인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세찬이가 정신을 차린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당분간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는 말과 함께 내일 퇴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야?”
“이틀. 꼬박 이틀이나 그러고 있었어. 저승에 다녀온 기분이 어때?”
저승.
그제서야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세찬이는 그제서야 자신이 꿈을 꾼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영혼을 모시러 저승에 다녀왔다는 생각이 났다. 고운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할아버지의 영혼도 자신과 함께 분명히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기억났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깨어나셨어?”
“그게…”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셨는지가 궁금했다. 고운이가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할아버지의 영혼과 함께 이승으로 돌아왔는데 할아버지가 일어나시지 못했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고생을 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몸을 돌려 일어나려고 하는데 침대 왼쪽으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뭐지?”
저승에 갈 때 매고 갔던 가방이었다. 세찬이가 의아해하는 고운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가방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용에게 받았던 여의주와 서천 꽃밭에서 받아온 꽃다발 뭉치들이 들어있었다. 분명히 저승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확실했다.
‘그래. 이거면 될 거야.’
영문을 몰라하는 고운이에게 세찬이가 따라오라는 표시를 하며 웃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정도의 여유를 보이는 것을 보면 세찬이에게 뭔가 묘수가 있을 것이라고 고운이는 생각했다. 조그만 가방을 옆으로 메고 간호사 누나에게 물어물어 할아버지의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잠들어 계셨다. 벌써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이라 엄마는 집에 돌아가 아침에 오시겠다고 하고는 나가셨다. 아빠는 종일 할아버지의 곁에서 있었는지 지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세찬이는 가방을 열어 조심스럽게 얼마 되지 않는 환생꽃과 숨트일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산소호흡기를 떼고 할아버지의 앞에 그 꽃들을 가져갔다. 고운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일어난 신기한 광경에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버렸다.
분명히 한 움큼 세찬이의 손에 들려있던 색깔이 서로 다른 두 꽃이 할아버지의 호흡에 빨려 들어가듯이 천천히 없어지는 것 같더니 가습기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사르륵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세찬이가 고운이를 보고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커억-하는 소리를 내고는 갑자기 숨통이 트인 사람처럼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아빠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세찬이가 얼른 가방을 뒤로 감추며 뒤로 슬쩍 물러섰다. 아빠가 울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느 사이엔가 눈을 뜨고 아빠의 손을 꼬옥 잡았기 때문이었다.
“얘야! 오랜만이구나.”
“아버지!”
아빠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심장박동이 움직이는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할아버지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가 모두 잘못했어요.”
“원 녀석 하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됐다, 이제.”
아빠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그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할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할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고 했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품 안에서 아이처럼 그렇게 눈물을 보이며 엉엉 울었다. 세찬이와 고운이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다시 세찬이의 병실로 돌아왔다.
다음날 세찬이는 바로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기력이 워낙 쇠해지셔서 하루정도 병원에서 검사를 더 받아야 한다고 아빠가 얘기해주었다. 세찬이는 할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를 쉬시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찬이는 공방으로 올라갔다. 공방에 있던 할아버지의 작품들과 도둑맞은 물건들을 되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소중한 물건들을 훔쳐간 나쁜 사람들을 혼내줘야 한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막 공방으로 올라가는데 공방이 있는 쪽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운이와 세찬이는 서로 마주 보고는 불길한 느낌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빠른 걸음으로 공방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공방 앞에 검은색 승용차들이 몇 대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세찬이는 고운이의 손을 잡고 반대쪽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뒤로 돌아가니 공방의 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환하게 보였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도둑놈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람이가 양복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붙잡혀 바둥거리고 있었다.
“흐흐. 그렇게는 안되지. 네가 백정탈을 불러낼 수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거든.”
검은 양복들의 우두머리인 남자가 그들의 앞쪽에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이제서야 비밀을 알아냈는데 이대로 우리가 물러설 수는 없지 않겠니? 꼬마야. 하하! 다른 탈들은 모두 어디 있지? 그리고 어떻게 탈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거지?”
남자는 이미 하회탈의 영혼을 불러내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말을 할 건지 어디 볼까? 어떻게 해줄까? 이대로 마을의 호수에 던져버리면 될까? 그것도 아니면…”
“이익!”
당장이라도 아래쪽으로 달려들 것 같은 표정의 세찬이를 보며 고운이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두 사람을 꽉 잡아챘다.
“이런이런! 여기에 숨어들 있었구만. 큰 형님의 말씀이 딱 맞군 그래. 어디선가 훔쳐보고 있을 거라 하시더니…”
“이거 못 놔?”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지만 힘센 남자들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운이도 꼼짝없이 그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큰 형님! 숨어있던 쥐새끼들을 잡아왔습니다.”
“오호! 이제 모두들 모이신 건가?”
세 사람 모두가 꼼짝없이 잡혀서 큰 형님이라고 불린 우두머리의 앞으로 내팽개치듯 끌려 나왔다.
“너희 둘도 탈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전승자인가?”
“…”
“오호!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시겠다는 건가? 꼬마들치곤 꽤나 의리가 있는 녀석들이군. 그러면 이건 어떨까? 방법을 알려주면 너희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마.”
“쳇! 그런 말을 믿기라도 할까 봐?”
우람이가 그의 말을 비꼬았다. 세찬이가 가만히 있다가 생각을 바꾼 듯 그에게 제안했다.
“잠깐만요. 정말 말하면 우릴 그대로 풀어줄 건가요?”
“야! 너 뭐 하는 거야?”
고운이가 놀란 눈으로 세찬이를 노려보았고 우람이가 소리를 지르며 세찬이를 제지하려고 들다가 뒤에 있던 남자에게 맞아서 쓰러졌다.
“물론이지. 역시 할아버지와는 달리 총명한 손자로군. 넌 뭔가 말이 통할 것 같구나.”
“좋아요. 그러면 날 놔줘요. 방법을 직접 보여줄게요. 내가 저승에 갔다가 서천꽃밭에서 가지고 온 꽃들을 보여줄게요. 그게 있어야만 탈이 영혼을 불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저승? 오호. 마츠모토상의 말이 사실이었군. 그 영감이 쓰러졌던 것이 저승을 다녀와서라고 하더니만 그게 정말 사실일 줄이야. 좋다. 서천꽃밭의 꽃이라… 그게 뭐지?”
“이걸 한번 보세요, 다들. 이 꽃의 향기를 한번 맡으면 백 년을 살고 두 번 맡으면 천년을 산다는 꽃이니까요. 할아버지도 이걸로 깨어나신 걸요.”
“오! 그래?”
남자의 지시가 떨어지자 세찬이를 잡고 있던 남자가 세찬이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세찬이는 웃으며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웃음꽃을 꺼내 그들에게 뿌렸다. 그러자 백발의 남자와 모여있던 사람들은 모두 갑자기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배를 움켜쥐고 대굴대굴 굴렀다. 그때 우람이와 고운이는 재빨리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세찬이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꽃의 향기를 그들이 모두 마셔 꽃이 연기로 변해 사라진 다음, 이번에는 싸움꽃을 꺼낸 세찬이가 꽃들을 그들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깔깔대며 웃던 남자들이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서 서로 노려보며 싸우기 시작했다. 말다툼을 하는가 싶더니 멱살을 잡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갔다. 이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악심꽃을 꺼내 세찬이가 그들의 한가운데로 뿌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빛에 살기가 돌기 시작하며 주먹질과 발길질이 점점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한 명 두 명 쓰러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모두 다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고운이가 재빨리 쓰러져 있던 남자 중의 한 명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도착한 경찰들에게 끌려가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렇게 웃고 싸우고 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없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문을 몰라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작품들은 모두 아직 일본으로 넘어가기 전이어서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통보도 받았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졌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직 무리를 하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있긴 했지만, 누구보다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찬이와 고운이 그리고 우람이가 할아버지를 맞았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곁에 있는 동안 서울 병원의 일이 밀려 돌아가야만 했고 엄마도 아빠를 따라 돌아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늘 그렇듯이 겨울방학 동안 세찬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물론 고운이의 외숙모가 할아버지를 수시로 돌봐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세찬이의 엄마, 아빠는 자주 내려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날 오후.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쉬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사랑방을 들어갔다.
“어? 안 계시네?”
가만히 누워서 쉬고 계셨어야 할 할아버지가 방안에 없었다. 공방으로 올라간 세찬이는 할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소리가 들려 나오는 곳은 공방의 뒤쪽에 있는 목재 보관창고였다. 막 다가가서 할아버지를 부르려고 하는데 누군가 손을 잡아끌었다.
“쉿! 조용히 해.”
“응?”
먼저 와 있던 고운이와 우람이었다.
“할아버지가 뭔가 하시는 것 같애.”
우람이와 고운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세찬이와 함께 목재 보관창고의 한쪽 창 곁에서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듯한 말소리를 듣고 있었다. 분명히 목재 보관창고 안에는 할아버지 말고 아무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할아버지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 늘 하듯이 한쪽 공간에 작은 제사상 같은 것을 차리고는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 어떻게 된 건가? 저승까지 다녀와서는 이매탈을 완성하는 것은?
“미안하게 되었네. 허도령이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더군.”
놀랍게도 할아버지의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하회탈들의 혼이었다.
- 우리가 왜 성불하고 싶어 하는지 자네는 모르고 있는 겐가?
“그거야…”
여러 하회탈들의 혼들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할아버지의 앞에 늘어서서 할아버지를 추궁하는 듯한 말투로 계속 물었다.
- 이런 갑갑한 곳에 갇혀 우리가 계속 저승을 떠도는 영혼이 되는 것을 더 이상은 원하지 않네.
“하지만 아직 우리 것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 하네만…”
- 그렇지 않아. 자네의 아들만 보아도 그렇지, 어려서 그렇게 많은 탈들의 영혼을 볼 수 있던 아이가 이제는 의사가 되고 세찬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서는 우리들의 모습은커녕 우리들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나?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기대하고 싶지 않네.
“하지만…하지만 말일세. 생각해보게. 세찬이가 아팠을 때 내가 그대들의 힘을 빌어 탈을 쓰고 춤을 춘 것은 다 무엇이며 그대들이 세찬이에게 옮겨지려는 악한 기운을 떨쳐준 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였는가? 고운이가 부네를 만나게 되면서 약한 몸이 나아져가고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은 다 자네들의 의지가 아니었던가? 부네가 영혼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여리고 약한 풀들이 매연에 죽어 가는 것을 가여워하는 고운이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우람이가 백정탈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죽어 가는 야생동물을 가여워하고 개발을 위해 산들이 깎여나가는 것을 아파했던 마음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그대들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방상씨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도 미리 예견된 세찬이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설득에 이번에는 하회탈들이 주춤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 바라보면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얘기를 하며 상의하는 것도 같았다.
- 좋네. 그렇다면 우리가 이대로 성불하는 것은 보류하기로 하겠네. 우리도 방상씨의 탈이 가지고 있는 운명을 가진 자네의 손자를 지켜보기로 하겠네. 우리가 세상에 나온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이니 쉽게 돌아가려고 했던 생각도 서두르지는 않기로 하겠네. 그러나 이번에 탈을 만들어 주술의 굿을 하겠다고 했던 자의 정체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으니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야.
“고맙네. 고마워. 조심하지, 조심하구말구.”
할아버지가 그들을 설득하는 순간 하회탈들의 혼들은 어디론가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할아버지!”
얘기를 모두 듣고 있던 세찬이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뛰어나갔다.
“그래! 세찬이로구나.”
좀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할아버지의 품 안은 여전히 따뜻했고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은 이전과 똑같았다. 세찬이는 자신이 할아버지를 저승에서 무사히 모시고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하회탈들을 설득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다른 탈들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전승자들이 어딘가 꼭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