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무는 12월의 어느 날, 한강 위로 흰 눈발이 날리던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
또각거리는 뚱뚱한 경비원 봉구의 구둣발 소리만이 긴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울려왔다.
“아함! 졸려 죽겠네.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매번 돌아야 돼?”
셔츠의 단추가 터져 나올 듯이 옷이 끼어 배를 실룩거리며 걷던 봉구가 무전기에 대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 치이이. 규칙대로 안 하다가 그나마 이런 자리도 짤리고 싶어? 그래도 야간 근무라고 수당도 더 받잖아? 제대로 근무하라고. 오버!
무전기 너머에서 경비실의 CCTV에서 화면을 보고 있을 파트너 경비원 경식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여기 뭐 가져갈 게 있다고 이렇게까지 순찰 규칙을 정해놔서 제대로 잠도 못 자게 맥을 끊어 놓냔 말이지.”
- 치이이익. 무전도 전화기처럼 그렇게 말하지 말고 ‘오버.’라고 끝에 늘 붙이라고 했잖아. 정말로 영화에서처럼 은행강도 같은 놈들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거야?
“오버는 무슨! 정말 오버하는 거라구! 오버! 됐냐?”
투덜거리며 무전기를 끄던 경비원 봉구는 복도 끝의 어둠에서 붉은빛이 작게 밝아져 오는 것을 보고 눈을 비볐다.
“어라? 뭐지, 저건?”
무전기를 바꿔 들고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며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두 개이던 붉은 불빛이 4개로 그리고 8개로 늘어났다.
“어이. 지금 내가 걷는 복도에 쥐새끼 하나 다닌 흔적이 없는데 저 앞에 보이는 것들은 뭐야?”
- 치이이. 오버를 끝마다 부치라니까 그러네. 지금 위치가 어딘데? 오버.
봉구의 눈앞에 복도 끝 멀리 암흑에서 붉은 쌍 불빛들이 많아졌다.
“쟈마다.[방해다]”
뭔가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자 붉은 쌍의 불빛들이 앞으로 빠른 속도로 쏟아져 다가왔다.
“탈 특별 전시관 쪽에서 뭐가 나오는 것 같은데...누구야? 꼼짝 마!”
-치이이익.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어엇? 오지 마! 뭐야! 꼼짝 마! 총을 내가...어, 으아아아악!”
-치이이익. 봉구야! 야 정봉구! 무슨 일이야? 야! 왜 그래?
CCTV를 바라보고 있던 경식은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봉구의 비명을 들으며 무전기로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러 개의 화면 중에 방금 봉구가 말한 방면에는 화면이 치직거리며 흔들거리는지 명확하게 형체라곤 보이질 않았다.
검은 덩어리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듯한 형상이 잠시 보였던 것도 같았지만 무슨 형태인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화면을 재조정하는 버튼을 누르자 몇 초 후에 다시 깨끗해진 화면에는 복도 바닥에 봉구가 쥐고 있어야 할 무전기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들어왔다.
“봉구야! 어디 있어? 어디야?”
떨어져 있던 무전기에서 울리는 경식의 목소리가 자정의 어둠을 찢듯 복도에 울림을 만들어 나갔다.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박물관 정문의 새벽 정적을 깨며 모여들었다.
“으이그 추워! 새벽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호출을 받고 삐친 머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용산으로 불려온 김 형사가 옷깃을 여며 쥔 채 구시렁거렸다. 먼저 도착해서 그를 기다리던 파트너 장 형사가 그를 맞았다.
“왔어요?”
“확실하게 사망자가 나온 거야?”
“아니요, 그게... 죽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보기도 그렇다네요.”
“그게 말이야, 뭐야? 너 형사 맞아?”
“아니 그게....”
장 형사를 나무라며 막 사무실 동의 현관을 들어서는데 로비에서 남자 두 명이 나와 그들을 맞았다. 경찰 제복 같은 옷을 입은 남자와 헝클어진 머리에 정신없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저기, 담당 형사분들이시죠?”
“누구시죠? 여기 민간인 통제도 안 했어?”
“저는 여기 경비 담당자입니다만, 여기 우리 유물...”
날카로운 김 형사의 반응에 경찰 제복과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를 밀치며 뒤에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나섰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오 세명 부장이라고 합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잠시 저랑 얘기 좀 합시다.”
“뭡니까? 아직 현장도 보지 않았어요! 수사에 방해되니까 이따가 부르면 그때 오세요.”
“장 형사님. 사망자는 없구요. 아까 서장님한테도 연락이 왔었는데, 일단 이 분들 얘기를 들어보시라고..., 일단 위에서 그렇게 얘기가 됐답니다.”
“얘기는 무슨 개뿔이.... 절도 사건도 아니고 피해자가 사망한 것도 아니라며?”
“피해자는 경비원인데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기는 했는데 뇌사상태랍니다.”
“일단 여기서 이렇게 떠들 게 아니라 이 안으로 좀 들어오시죠.”
오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의 남자가 김 형사의 코트 소매를 잡아끌었다. 못 이기는 척 불편한 표정으로 김 형사는 그를 따라나섰다.
“놓고 갑시다.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로비에서 오른쪽 ‘수장고’라고 쓰여 있는 안내 표지판 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보존 과학팀’이라고 적인 사무실 문패가 보였다. 김 형사는 잔걸음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부장을 보면서 그도 어지간히 놀라 새벽부터 호출되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간마다 카드 같은 출입증을 갖다 대거나 지문을 확인하는 시스템까지 다양한 신분 절차 과정을 통해 ‘제7수장고’라고 적힌 곳까지 들어갔다. 오 부장이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보안장치 7개를 해제하고 들어왔습니다. 여긴 우리나라 국보급 수장품을 수장하는 수장고입니다. 오늘 새벽에 문제가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아까 보셨겠지만 보안장치 7개를 모두 풀어야 유물 앞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도난당했다는 겁니까?”
“도난...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데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우릴 데리고 온 이유가 도대체 뭐냐구요?”
계속 날 선 질문을 던지는 김 형사에게 오 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격납장이 잘 보이도록 불을 켰다.
“이 격납고의 물건들을 알아보시겠습니까?”
격납장은 미송 뼈대와 오동나무 판재를 소재로 전통적인 결구(結構) 방식에 따라 제작되어 있었는데, 그 위로 익숙해 보이는 나무로 조각된 탈 같은 모형들이 보였다.
“이거, 하회탈이랑 비슷하게 생겼네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이게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하회탈의 원형입니다. 흔히 말하는 오리지널이지요.”
“그런데 뜬금없이 저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시는 건.... 어?”
탈을 물끄러미 보던 김 형사의 눈에 이상한 모습이 들어왔다.
“네. 얼굴 윤곽들이 모두 없어져버렸습니다.”
그저 언뜻 보았을 때는 하회탈처럼 턱이 붙어 있고 그런 모양이려니 했는데 탈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얼굴 표정이 하나도 없이 그저 탈 모양의 나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초기의 형태들은 원래 표정이 없는 형태던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그렇다고 기계로 갈아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곳은 아까 보여드린 것처럼 아무렇게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정도의 철통경계라면 당연히 cctv도 돌고 있겠죠?”
김 형사의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오 부장은 바로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cctv는 물론이고 자외선 감지기부터 모든 보안 시스템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다는 게 저희도 미칠 노릇입니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네? 그건....”
김 형사의 질문에 오 부장이 움찔하며 장 형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김 형사님. 그게.... 저어...”
“빨리 말해. 내가 알아야 할 것 중에 아직도 얘기 안 한 게 또 있어?”
“아까 혼수상태로 확인되었다는 경비원의 얼굴도 여기에 있는 탈처럼 되어 있답니다.”
“뭐라구? 그게 말이 돼? 일단 보안실로 갑시다. 당시 cctv 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예.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비를 총괄한다는 제복을 입은 남자가 김 형사의 앞으로 길 안내를 위해 앞서 걸어 나갔다.
“이건 뭐죠?”
분명히 검은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뚱뚱한 경비원이 걸어가는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같다가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듯 깜박거린 후에는 노이즈가 발생했다. 같은 시간대의 다른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뭘 말씀하시는 거죠?”
경식이 다시 화면을 돌리며 김 형사에게 물었다.
“아까 30초 전으로 다시 돌려보세요. 네. 거기요. 스톱!”
노이즈가 발생하기 직전의 화면에서 분명히 작긴 하지만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뭔가가 어둠 속에 분명히 잡혔다.
“여기가 아까 그 탈들이 보관되어 있던 수장고 앞이 맞나요?”
“아닙니다. 여긴 수장고의 보안장치의 한참 앞쪽에 있는 입구 쪽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자가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수장고 쪽으로 가잖아요.”
김 형사가 손가락으로 뒤쪽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그런가요?”
화면을 응시하던 장 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씩 8배 느린 화면으로 돌려주세요. 옆의 화면이 그 복도에서 이어지는 곳이죠?”
“네. 어? 정말이네?”
경식이 스크롤을 돌리며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어제 새벽에 계속 확인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끊기듯 중간중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인 듯 보이는 뭉쳐진 검은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가 중간중간 조금씩 수장고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스톱! 거기서 멈춰 봐요.”
수장고의 7개인지 9개인지 모를 안전장치는 어느 하나 작동하지 않았지만 어둠보다 조금 더 짙어 보이는 사람의 형태는 미끄러지듯 수장고 바로 앞에서 또렷하게 그 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문 앞에서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 이후로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숨죽이며 스크롤을 돌리던 경식이 집중하며 화면을 응시하는 김 형사에게 물었다.
“조금 빨리 돌려보세요. 이 형체가 다시 나타날 겁니다.”
“네?”
경식은 김 형사의 뜻 모를 요구에 시키는 대로 스크롤의 속도를 빠르게 앞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
김 형사가 멈추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경식의 손이 툭 하고 멈췄다. 그리고 방금 보았던 그 섬뜩한 화면의 무언가에 이끌리듯 역으로 천천히 스크롤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 천천히 역으로 검은 형체가 보였고 눈 부위로 보이는 근처에서 붉고 연한 빛이 보였다. 연한 그 불빛이 진해지며 그의 얼굴 윤곽이 언뜻 보일 듯했다. 그리고 결코 보이지 않는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 키에레[사라져].
그 목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들린 것처럼 화면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서로의 얼굴만을 보았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그 말소리를 동시에 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로 들린 것이 아니라, 지금 누군가 등 쪽에서 얼굴을 내밀어 은밀하게 귀에 속삭이고 사라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치익-하는 소리가 들리며 화면이 10여 초 화면 영상이 나간 조정상태로 변해버렸다.
“이건 갑자기 어떻게 된 거죠? 왜 갑자기 화면이 이런 거죠?”
“새벽부터 봐도 이런 부분은 없었는데?”
그리고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 다시 돌려본 화면에는 아까 그들이 보았던 검은 사람의 형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기괴한 집단 최면에라도 빠졌다가 깨어난 사람들처럼 화면 앞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 바로, 얼이 빠져 있던 장 형사의 팔을 끌며 보안실을 빠져나온 사람은 김 형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