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돌아드는 하회마을. 시골의 아침은 생각보다 차갑고 맑았다. 까치가 집 앞에 있는 나무의 끝에 내려앉으며 특유의 소리를 내며 울었다.
“세찬아!”
익숙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서울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동무의 집 앞에 가서 벨을 누르거나 아파트의 현관에서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닌, 집 안에 있는 친구가 다 들을 수 있도록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큰 목소리의 메아리가 왠지 기분 좋게 울리는 아침이었다.
“고운이구나!”
“응. 숙모님 따라왔어. 할아버지도 이제 퇴원하신다고 해서 이것도 가져가라고 하셔서 심부름도 할 겸. 방학 숙제도 그렇고 우리 얘기할 것도 있잖아.”
고운이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세찬이를 보고 밝게 웃어 보였다.
“얼른 나와. 뭐가 부끄럽다고 기둥 뒤에 숨어서 그러고 있어?”
“쳇! 누가 부끄럽대?”
문 옆에 있던 우람이가 쭈뼛거리며 기둥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우람이도 왔었구나!”
오히려 세찬이가 앞으로 나오며 우람이를 반갑게 맞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좀 괜찮아지셨나 해서...”
“어서 들어와.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고 하셔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할아버지~”
고운이와 우람이의 목소리에 공방에서 할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띠며 공방 작업실의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짧지 않은 시간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깨어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건강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판단을 받고 공방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없는 동안 난장판이 되어 훑고 갔던 공방을 정리하고 이제 새롭게 작업을 시작하는 첫날 고운과 세찬, 그리고 우람이까지 모두가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건강해진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모인 것이었다.
“할아버지 좀 괜찮으세요?”
“그럼.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다. 괜히 너희들의 걱정만 끼쳤구나. 미안하구나, 이 할애비가 손주들 걱정이나 시키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야 우리 탈들도 우리 민족혼도 이어나갈 수 있잖아요. 저희들에게 가르쳐주셔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또 공부라도 해야 하는 거야?”
우람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것보다 그들이 부네와 백정을 봤으니,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탈들을 찾을 텐데요. 저희는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세찬이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우선, 그날 이후로 너희는 탈들에게 너희들이 알아야만 할 이야기들을 제대로 모두 듣긴 한 게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고운이가 조심스럽게 세찬이와 우람이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부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실 오늘 할아버지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도 부네에게 들은 것과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예요.”
“저도 회광이 여러 가지 알아야 할 것들과 배워야 할 게 많다고 할아버지에게 들으라고 해서 어떤 건 알겠는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몸이 훨씬 더 튼튼해져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 세찬이는 어떠냐?”
두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세찬이가 딱히 탈에 대한 이야기를 선뜻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느낀 할아버지가 물었다.
“사실 저는...그 날 이후로 만나지 못했어요, 방상이를...”
목에 걸고 있던 방상씨의 탈을 만지작거리며 세찬이가 기운 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랬구나. 할애비는 깨어있지 못한 동안 만난 너희들의 친구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을 하긴 하지만 지금 그네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보지는 못한단다. 우리 아버지 때, 아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네 탈들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얘기를 들어 알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할애비도 너희만 했을 때는 그렇게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을 법도 한데, 지금은 또렷하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마도 그것에도 무언가 이유가 있지 싶구나.”
“그건...”
뭐라고 대답을 하려던 고운이가 다시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에요.”
“그래. 내가 제대로 짚었는지 모르겠다만, 아마도 우리 탈의 영혼을 불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짐작만 했단다. 특히나 너희들이 열두 살이 되던 생일에 그들과의 소통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것도 뭔가 의미가 있겠지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이야기는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우리 문화에서는 원래 햇수를 나타내는 ‘띠’라는 것이 있는데, 그 띠는 십이지신이라고 해서 모두 12개가 있단다.”
“띠요?”
“그래. 너희들이 태어난 해마다 있는 그 띠 말하는 거다.”
“아! 돼지띠, 호랑이띠, 소띠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거죠? 엄마가 이모랑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어요.”
우람이가 들어본 일이 있다는 듯이 반갑게 대꾸했다.
“그래. 그 십이지신이라는 것이 12년을 지나면 다시 한 바퀴가 돌고 원점으로 돌아오거든. 결국 모든 해에는 띠가 있는 셈이지. 그런데 사람이란 그 띠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해가 되었을 때 이제 비로소 영혼이 다부질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된다고 하더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고운이가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조만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주마. 이 할애비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말해줄 수 있을 게다. 그때까지는 세찬이가 내려오고 나서 할애비 때문에 정신도 없이 지냈고 걱정만 했을 테니, 이제 할애비 건강도 되찾았으니 이곳을 잘 아는 고운이랑 우람이가 세찬이에게 우리 고을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친구로 지내도록 하려무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보고...”
“네. 할아버지.”
“그럼 우리, 내 방으로 갈까?”
할아버지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세찬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아까 할아버지와 얘기할 때부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고운이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며 방을 둘러봤다. 공방은 몇 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와봤지만 안채의 사랑방에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본래 안채 사랑방으로 사용하던 방은 손님이 오게 되면 손님용 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방학이면 늘 세찬이의 부모님이나 세찬이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겨울이라 군불을 때어서 그런지 훈훈한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 오래된 한국식 앉은뱅이 나무 책상과 옛날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화로, 그리고 오래된 화병 안에 꽂혀 있는 매화와 벽에는 깊은 산속이 그려져 있는 수묵화가 걸려 있었다. 책상에는 세찬이가 읽고 있던 책이 펼쳐져 있었다.
“단테의 <신곡>? 어려운 책을 읽네?”
고운이가 책을 보고 세찬이를 보며 웃어 보였다. 세찬이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책상과 함께 책을 한쪽으로 치우며 앉았다.
“아니야. 그냥 아빠랑 이번 겨울에 읽고 나서 얘기를 하기로 해서....”
“책 이름이 단테야?”
우람이의 담백한 질문에 고운이와 세찬이가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모처럼 지난번 저승 사건 이후 세 사람이 모인 것이었다.
“부네는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어.”
자리에 앉자마자 고운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회광이도 비슷한 말을 했어.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함께 움직이려면 내가 많은 힘을 갖춰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어.”
자신은 방상이와 만나지 못해 아무런 이야기도 들은 것이 없어 정보를 더할 수도 없다는 것이 세찬이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했다. 그런 세찬이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고운이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일단 우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보다는 부네가 알려준 대로 한번 우리 능력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어떤 건데?”
“지금 보여줄게.”
세찬이의 질문에 고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침 고운이의 외숙모가 문 밖에서 과일과 한과를 들고 서 계셨다.
“어머! 고운이가 내가 온 줄 어떻게 알고 문을 열어주니? 이것 좀 먹으면서 놀려무나.”
“감사해요. 외숙모! 저, 근데, 밖에 있는 대야 좀 써도 돼요?”
“대야? 대야는 왜 갑자기? 뭐하고 놀려고?”
“아니에요. 금방 대야만 얘들한테 보여주고 다시 가져다 둘게요.”
“우람아! 이거 먼저 받아. 내가 대야 가지고 금방 올게.”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고운이의 손에는 동으로 된 커다란 대야가 들려 있었다. 꽤 넓어 보이는 세수 대야에 물이 절반이나 차 있었다.
“웬 물?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 하는 수련이 세수부터 하고 시작해야 하는 거야?”
우람이가 물었다.
“그런 건 아니고, 여기에 솔잎을 하나 띄울 거야.”
고운이가 미리 따 가지고 들어온 갈색 솔잎을 한 가닥 띄웠다. 세수 대야의 물은 너무도 고요하고 잔잔했다. 솔잎은 가만히 자기 자리를 잡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솔잎을 가지고 어떻게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거지?”
“내가 부네에게 들은 걸 이제부터 설명해줄게. 먼저 부네나 백정처럼 우리가 불러온 탈의 영혼들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영혼과 연결이 되어 있대.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
“그럼 우리 영혼이 배터리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네?”
“맞아. 하지만 배터리는 새 걸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새 걸로 갈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수련을 통해서 그 용량을 키워야 한다는 게 수련의 주요한 이유이고 목적이야.”
“오! 그렇다면 운동을 하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백정에게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른걸?”
“그래? 부네의 설명과 다를 수도 있을 거야. 특히 세찬이의 경우에는 우리와는 다른 탈이기 때문에 방상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특히, 그때 이후로 세찬이는 방상이를 만나지도 못했잖아.”
고운이의 말에 세찬이는 애꿎은 방상이의 펜던트를 다시 한번 꽉 움켜쥐며 고개를 떨궜다.
“어쩌면 내가 너희들보다 힘이 부족하거나 그래서 방상이를 부를 수 없는 건지도 몰라.”
“아냐.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부네도 전에 말했지만 방상이는 우리 부네나 백정처럼 고려시대에 태어난 게 아니라 훨씬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줄도 모르는 시대부터 있어왔던 탈이기 때문에 그 영혼도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마 발동되는 방식이나 운용되는 방식이 전혀 다르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고운아.”
“아니야. 하지만 부네의 말처럼 백정도 그렇고 우리가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고 정신력을 키우는 수련을 해야 한다는 점과 우리가 이제까지 그런 수련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원래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들을 일깨우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나도 이제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은 몰라.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부네에게 직접 들어봐.”
고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세숫대야의 물을 한 방울 손가락에 찍어 목에 있던 펜던트에 찍자, 대야에 파문이 일면서 작은 소용돌이 같은 원을 그려내며 부네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네요. 세찬님.”
“누나. 오랜만이네요.”
세찬을 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어 보이는 부네의 얼굴은 여전히 부럽고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고운님이 설명하셨지만 이제부터 여러분은 여러분과 함께 하는 탈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답니다. 저희 탈의 영혼들은 지금까지 보여 왔던 힘과 능력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깃들어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의 능력과 비례해서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답니다.”
“어떤 능력들이 있는데요?”
우람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저 역시 모든 부분을 알고 있지는 못하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얘기해드릴 수도 없구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것들을 구현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훈련을 시작하시게 될 거예요. 일단 지금 앞에 있는 솔잎을 손을 대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죠.”
부네가 손가락으로 세수 대야에 떠 있는 솔잎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을 대지 않고 이걸 움직인다구요?”
세찬이가 놀라 다시 살포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부네에게 물었다.
“네. 여러분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으세요. 그 능력에 대해 빨리 눈을 뜨고 그 능력을 키워야만 한답니다. 사실 많은 시간이 있다면 천천히 수련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특별한 위기 상황이라 속성으로 알려드릴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주세요.”
“우리가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손도 안 대고 움직일 수가 있어요?”
“고운님. 한 번 보여주세요.”
말도 안 된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우람이를 보며 앞에 부네가 고운이의 어깨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고운이가 가만히 세수 대야 앞에 무릎을 꿇고 자세를 안정되게 잡았다. 그리고 물 위에 뜬 솔잎을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세찬이와 우람이는 영문을 모른 채 숨을 죽이고 솔잎을 함께 응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진지한 표정에 숨소리조차 가늘게 내고 있던 고운이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는 느낌이 들 때였다.
“어?”
우람이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입을 막았다. 솔잎이 천천히 물 가운데에서 흐르는 물 위를 떠다니는 듯 세숫대야의 가장자리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솔잎이 대야의 가장자리에 닿아 멈춘다고 생각할 즈음에 다시 대야의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세찬이도 처음에는 그저 약간의 바람이나 미동이 있어서 우연히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솔잎이 대야의 주변을 돌기 시작하자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믿길 수밖에 없었다.
“하아!”
고운이 온몸에 힘이 빠지는 사람처럼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이 약간 충혈된 듯했고 이마에는 어느 사이엔가 송글 거리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