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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07. 2022

바른 것만 따르고 익히기에도 시간이 없단 말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해보겠다는 청개구리들에게.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악사 지(摯)가 처음 벼슬할 때에 연주하던 「관저(關雎)」의 끝장 악곡이 아직까지도 洋洋하게 귀에 가득하구나!”

이 장의 해석은 크게 어려운 것이 없으나 관련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장이 어떤 의미로 언급된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공자의 언급은 언제나 그렇듯 간략하다. 악사였던 지(摯)가 연주했던 시경의 첫 장인 「關雎(관저)」의 끝장 악곡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찬미이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자가 추억하는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악사 지(摯)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그가 연주했다는 시경의 첫 장 「關雎(관저)」가 어떤 음악이고 왜 이것을 공자가 언급하고 있는지 그 행간을 읽으면 된다.


먼저 악사 지(摯)에 대해 주자가 주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그것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사지(師摯)는 노(魯) 나라의 악사로 이름이 摯이다. 亂은 음악의 마지막 장이다. <史記>에 말하기를, “‘關雎’의 끝장은 <國風>의 시작이 된다.”라 하였다. 洋洋은 아름답게 성하다는 뜻이다. 孔子께서 衛나라에서 魯나라에 돌아오시어 음악을 바로잡으셨는데, 이때 마침 악사인 師摯가 樂官에 임명된 초기였다. 그러므로 음의 아름답고 성대함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사지(師摯)와 공자와의 인연에 대해서는 위에 설명한 대로, 공자가 막 음악에 대한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만났던 당시 음악 담당 관리가 사지(師摯)였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공자는 음악 전문가로서 그를 높게 평가하였는데 공자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음악 선생님이었고 무엇보다 그에게 금(琴)을 배우며 음악의 실제에 대한 눈을 뜨고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사양자(師襄子)라고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그이다. <논어>에서는 뒤에 배울 ‘미자 편(微子篇)’ 9장에서 등장하는 태사지(太師摯)라고 언급되어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인물이다. 나중에 태사지(太師摯)는 제나라로 망명해버렸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 시기에 대해 다소 충돌되는 언급들이 있어 혼란을 야기하는데, 정리하자면 공자가 세상을 뜨고 나서 노나라의 제반 사정이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지자 제 나라로 망명해버렸다는 것이 맞다.


9장의 내용에 ‘자왈(子曰)’이라는 구절이 빠져 있어 그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어 뒤에 고증학자들이 고증한 결과가 위의 설명의 결론으로 귀결된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과 상황에 대해서는 알았으니 이제 <시경(詩經)>의 언급에 대해 살펴보고, 도대체 왜 뜬금없이 이런 언급을 공자가 했는지 행간을 읽어보기로 하자.

<시경(詩經)> 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교 경전의 하나이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은 물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언급할 때도 반드시 들어가는 경전이다. 고대 중국의 시가를 모아 엮은 경전으로, 본래는 3,000여 편이었다고 전하나​ <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311편을 가려냈는데 이 중 여섯 편은 제목만 전하기 때문에 305편으로 간주되고, 305편은 다시 크게 풍(風)·아(雅)·송(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에 실린 노래들은 철기(鐵器)의 보급으로 농경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봉건제가 정착되어 사상과 예술이 처음으로 활짝 피던 주(周) 왕조 초에서 전국(戰國) 중기에 불려졌다. 분포 지역은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한 주(周) 나라 직할 경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는 만년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 육경(六經) 중에서 시를 첫머리로 삼았다. 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정서를 순화하고 다양한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그 만한 전범(典範)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공부했던 내용에서도 공자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思無邪).”라고 설명한 바 있고, 아들 백어(伯魚)에게는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시 공부를 권한 바 있다.

<시경(詩經)>의 시들은 서정시, 사회시, 전례시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서정시는 중국 정통 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성격의 것으로 발전하게 되고, 사회시는 공용적인 문학론의 근거가 되며, 전례시는 고대의 시의 실용적인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시경(詩經)>에 대한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 정도로 간략하게 이해하되 그렇다면 이 장에서 의미하는 바의 행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關雎(관저)」라는 시는 <시경(詩經)>의 가장 첫 번째 작품이고 원문에서 ‘亂(란)’이라고 한 것은 그 악곡의 마지막 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용을 모두 인용하기는 그렇지만 굳이 간략히 소개하자면 애정시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애정시가 <시경(詩經)>에는 79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는 훌륭한 시인이 적은 시를 모은 시집이 아니다. 당시 풍습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민요성 노래를 모은 것이다. 즉, 그것은 시의 내용들이 편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노래인 팝송이나 가요로 비유하자면 옛날 특정시기의 그 넓은 중국의 유행가를 모두 모아 정리했는데 하나같이 장엄하고 좋은 노래가 수록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의 의미로 그리고 그 당시 민중들이 왜 그런 노래를 지어 불렀는지에 대한 행간을 읽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저급한 경우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애정시 79편 중에서도 「關雎(관저)」는 <시경(詩經)>의 처음에 편집되어 놓인 이유가 공자의 편집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정악(正樂)이다. 이는 본받을만한 노래임을 표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 공자가 자신의 음악 선생이었던 악사 지(摯)가 연주했던 「관저(關雎)」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것은 상대적으로 애정시이면서도 내용이 음란하기 짝이 없던 음악으로 분류되는 「정풍(鄭風)」 이나 「위풍(衛風)」을 폄하하는 효과를 내어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을 따라야 할 것을 일러주기 위한 내용으로 비유한 것이다.


비유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시경(詩經)>을 공부하는 이들이 왜 <시경(詩經)>을 공부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지 못하고 음란하거나 난삽한 내용의 민요에 관심을 보이거나 그것을 부르는 것에 대한 지적을 직접적으로 한 것이 첫 번째 표면적인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공자의 가르침이 갖는 고급 수준을 이해하는 배우는 자들은 이 내용을 통해 단순히 공자가 <시경(詩經)>의 좋은 음악만을 골라서 그것을 본받으라는 표면적인 가르침으로 그칠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공자는 타고난 스승이자 선생님이었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30여 년 가까이 가르쳐보니 공자의 입장이 이제사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배우는 학생들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도 열심히 하지 않지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할지를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인데 호기심이 많은 인간의 본성 탓인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 보지 말라는 것,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기어코 해보고 나서 후회를 하더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 길을 먼저 걸어온 스승의 입장에서는 그런 허튼짓을 할 시간과 여력조차 없다고 가르치지만 미숙한 그들은 결코 그 말이 뼛속 깊이 들어와 아로새겨지지 않는다.


불량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고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만 입에는 맛있게 만든다. 맛이 없는 불량식품을 굳이 찾을 어리석은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불량식품은 단 한 번만 입에 대더라도 인간의 감각적인 부분을 확실하게 자극하여 중독성을 느낄 정도로 확 끌어당기는 것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건강식이나 기존에 먹어보지 못했던 자극을 만들어 유혹하는 것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를 보게 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어떤 성정을 바르게 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지만, 인간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획기적으로 시선을 끌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는다. 우습게도 그것들은 계속되어 더 자극적이고 더 기괴한 것들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인간의 감각 자체가 한 번 경험하고 유사한 감각을 경험하게 되면 그와 유사한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악순환인 셈이다. 안 좋은 것이고 경험하고 나면 구토가 나올 정도의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자극을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된다. 그리고 금세 그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새롭고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던 구조 아닌가?

맞다. 마약이라는 것의 특성이 바로 그것과 일치한다. 불량식품이 되었든, 포르노그라피가 되었든, 마약이 되었든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면 수요가 없다면 그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데 굳이 만드는 사람들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 시장이 훨씬 더 커져가고 우리 건강과 영혼을 안 좋게 물들이고 썩어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마약 중독자의 4년사이의 차이

공자는 수천 년 전 인간에 대해 연구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어떻게 탈선하고 어떻게 일탈하는지를 이미 현장에서 본 것이다.

초중고와는 달리 머리 큰 성인 이상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선생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과정을 훨씬 더 명확하고 명료하며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사회생활의 일반인들 역시 관찰과 통찰을 통해 그러한 과정을 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뭔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그것을 아주 면밀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공자는 그러한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을 교육을 통해 배워 절제하고 조절하라고 가르쳤고, 이 장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것을 계속 연마하여 익히기도 어렵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경지가 되기에도 여력이 없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즐기고 그것에 탐닉하는 이들을 후려친 것이다.


허구한 날 사람들에게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일을 했던 법비들은 처음에는 그것이 이익을 위해서이거나 정말로 나쁜 놈들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그 범위가 넓혀지고 그러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까지 그런 짓을 하고 나면,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

가장 빨리 취하고 그 죄책감과 죄악을 지워버리고 망각해버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폭탄주이다. 폭탄주가 법조계에서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주류문화로 자리 잡게 된 데는 그들의 양심이 처음에는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양심을 지워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쥐어진 칼자루를 여기저기 흔들며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다는 마약에 취하게 되면 그들은 이제 죄악을 지우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저 망가질 정도로 쾌락을 느끼고 자신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정복감을 만끽하기 위한 윤활유로서 마시고 즐기게 된다.


공자가 이 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한 단계는, 바로 폭탄주를 마시며 빨리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양심을 가지고 있던 그 단계이다. 스승의 역할을 제자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망가지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호기심에 해서는 안될, 행동에 발을 담그려고 하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자는 거기까지 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느꼈기에 경전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민요 하나를 공부하고 들어도 난삽하고 음란하기 그지없는 민요를 통해 그 향락을 느끼며 노래했던 이들의 타성에 물들지 말라는 말을 그와 반대되는 정악을 찬미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러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행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초심자들이나 아무런 생각 없이 선생님이 해석해주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초심자 수준의 이들에게는 <시경(詩經)>도 아직 공부하지 않았으니 이 글을 읽고 첫 장이라도 궁금해하며 제대로 공부하라는 가르침일 수 있다.


한편, 이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는 고급 수준의 배우는 자라면 잠시만 방심해도 어긋날 수 있는 마음을 다잡으라는 스승의 죽비를 맞고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잡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공자는 두루 일러주는 것이다.


이번 대선 투표에서 사상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만큼 여느 어떤 대선 때보다 이번 대선은 뜨겁다. 다들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이네 뭐네 했지만,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것이고, 행여 나라가 잘못 흘러갈까 봐 걱정스러워하는 마음들이 투표장에 가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목소리를 내자는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것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혹세무민 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비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꾸며내는 자들이 워낙 많이 설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탓이 크다. 어제 잠시 유튜브의 영상 몇 개를 둘러보면서 이전의 생각은 여전히 변치 않았다.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애저녁에 넘겨버린 자들이 판단이 흐린 이들을 뒤흔들겠다고 할 말 못 할 말을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정확하게 TV토론을 통해, 그가 얼마나 허술하고 부족하며 거짓으로 점철되어있는 허수아비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음에도 그를 지지하는 자들이 생기고, 그를 찍으면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질 거라는 작자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철수’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그들을 지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의 생각이 정말로 정말로 궁금해졌다.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도통 잘 알지 못하겠으나, 왜 수천 년 전 중국에서 공자가 무지몽매한 행동을 거듭하는 제자들을 보며 가슴을 두들겨댔는지 절실하게 공감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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