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의 목소리만이 쩌렁거리며 공간을 울렸다. 아까 느낀 기분 나쁜 쇳소리의 외국어가 스멀거리며 곰팡이 서린 기운을 공기에 섞으며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련 이후 세 친구의 날카로워진 감각은 아주 답답하고 어두운 기운이 코앞까지 자신들을 둘러싸며 덮쳐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준비해! 다들!”
긴장된 목소리로 일어나 튕겨나갈 듯한 모습으로 고운이가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날카로운 모습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무대 쪽을 보고 있던 세찬이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은 고운이가 왼쪽은 우람이가 어둠의 저쪽에서 몰려오는 무언가를 뚫어지듯 응시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백정이와 부네가 나와도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긴장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세 친구는 똑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우람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램프 라이터를 언제라도 꺼낼 수 있도록 꽉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에헤이~! 이리 오너라~!”
어둠을 뚫고 머리 위쪽에서 울리듯 우렁찬 목소리가 갑자기 행사장 안을 울려 퍼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어.”
순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우람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갑자기 해가 뜬 것처럼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주변에 앉아 있던 귀빈들과 행사장 안을 가득 채우고 플래시를 터뜨리던 취재진들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어진 것 같아.”
옆에서 고운이가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의 물병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말했다.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우람아!”
세 친구가 자연스럽게 경계를 드러내게 만든 것은 멀리 어둠처럼 보이는 검은 그림자들이었다. 주변의 원을 둘러싸듯 이상하게 생긴 검은 그림자들의 세 친구를 포위하는 듯한 형태로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 친구가 그간 수련했던 제3의 감각은 앞에서 스멀거리며 몰려오는 검은 존재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경고를 몸속 전체에서 아드레날린과 함께 왕성하게 분출하며 경보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조금씩 환해진 환경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 검은 그림자들의 뒷 쪽에 있는 하얀 여우 얼굴의 가면을 쓰고 길게 머리를 뒤로 하나로 묶은 빨간 입술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가면과 똑같은 여우의 얼굴을 한 존재가 그 곁에 지키고 서 있었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뒤에서 지휘관인 듯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가면의 뒷모습은 분명히 당황하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이는 듯하였다.
“자아! 이제 우리 놀아볼까? 선생님 얘기 들으면서 과연 이 미끼를 물까 긴가민가했는데 이건 뭐 영락 없구만~!”
어디서 목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상모를 돌리며 몸을 풍차처럼 점차 빨리 돌리는 존재가 먼지를 일으키며 큰 원을 만들며 우뚝 검은 그림자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던 앞을 막아섰다. 머리에 상모를 쓴 작고 다부진 존재의 뒤로, 게임기를 들고 배낭을 한쪽으로 삐딱하게 메고 선 남자가 연신 게임기 화면을 보며 풍선껌을 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아까 만났던 우현이 형이잖아?”
우람이가 그를 알아봤다.
“초랭이?”
세찬이와 고운이의 입에서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의 앞에 당당하게 우뚝 서 있는 상모를 돌리던 존재는 무색 저고리에 괘자를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비뚤어진 얼굴 표정을 익살스럽게 짓고 있는 이는 영락없는 초랭이 탈의 얼굴이 맞았다.
“한 판 만들어 뒀으니 너희는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이상 이곳에서 저얼대 못 나가~!”
초랭이 탈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상모의 존재가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여우 가면의 존재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우 가면의 존재가 말 모를 외국어를 뱉어냈다.
“칙쇼[제길]! 도오시따노야[어떻게 된 거야]?”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말해.”
풍선껌을 씹으며 우현이 개구지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희의 함정에 빠진 것 같구나. 이렇듯 영혼을 다루는 이들만을 가두는 기술을 구사할 줄이야. 이거야 조금은 놀랄 일이구나. 하지만 결국 이곳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은 너희도 마찬가지이니... 너희는 독 안에 갇힌 쥐 꼴이다. 탈과 함께 너희들의 모든 얼굴을 뜯어내 주마!”
여우 가면의 존재가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라? 한국말을 할 줄 아네?”
“민나 고로싯데 시마에[전부 죽여 버려라]!”
“얘들아! 설명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지금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 마음대로 놀아보려무나. 내가 만든 마당 안에서는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일반 사람들은 이 안을 들어올 수도, 볼 수도 없단다. 어디 맘껏 너희들 실력을 보여주려무나.”
우현이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고운에게 눈을 찡끗거리며 뒤쪽을 경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각형의 방어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안에서는 맘대로 불러내도 된다는 거지?”
손에 있던 휴대형 램프를 누르자 불과 함께 묵직하고 힘찬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둥- 둥둥-
땅이 조금씩 흔들리는 듯하며 땅에서 백정탈의 얼굴이 조금씩 그 형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흙이 털어져 나가며 우람한 체격의 백정이 우람이의 곁에 서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회광! 그동안 노력한 성과를 보여주자구!”
우람이가 거대한 회광과 함께 동쪽을 막아섰다.
“부네! 우리도 가자!”
고운이가 떨군 물방울은 손가락에서 공중에 퍼지며 작은 물방울 안개가 부네탈의 모습을 드려내더니 그 주변으로 안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소용돌이가 가라앉자, 그 안에서 부드러운 치맛자락을 날리며 단호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 다문 부네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찬이는 타는 마음으로 목걸이를 꽉 쥐고 있었지만 어쩌지 못하고 방상이를 마음속으로만 애타게 불렀다.
“왜? 놀랐냐? 하회탈의 영혼들이 이미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줄도 몰랐던 게냐?”
상모를 쓴 초랭이의 곁에서 게임기를 든 우현이 여우 가면에게 외쳤다.
“고로세[죽여]!”
여우 가면의 기분 나쁜 쇳소리 같은 명령에 뒤에 서 있던 여우의 얼굴을 한 존재가 손을 모으고 이상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림자들이 일제히 빠른 동작으로 가운데로 향했다. 기다란 일본식 전통 기모노를 입고 지옥에 사는 도깨비 같은 뿔을 달고 있는 악마의 얼굴 형태를 한 가면을 쓴 존재들이 칼과 창 그리고 활을 들고 덤벼들었다. 방상이를 불러내지 못한 세찬이를 가운데 두고 방어 자세를 취하듯이 부네, 백정, 초랭이가 삼각형의 형태로 나섰고 저마다 달려오는 검은 그림자들에 정면으로 맞섰다.
“에끼~ 물렀거라!”
초랭이의 상모는 마치 채찍처럼 다가서는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의 앞에 선을 그었다. 상모가 움직인 곳에는 움푹 땅이 패일 정도로 강한 공격의 흔적이 남았다.
“후웁!”
백정이 호흡을 한 데 모아 우람의 모습을 따라 하듯이 주먹을 움켜쥐고 힘을 모았다. 점차 백정의 주먹이 조금씩 붉어지는 것 같더니 붉게 달아오른 쇠덩이처럼 변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손바닥을 쫙 펼치자 불로 된 방패 같은 것이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날리는 검은 화살 같은 것을 막았다.
부네는 삼각형의 정점으로 올라서는 듯 공중에 올라서더니 조용히 깃털이 달린 부채를 꺼내 들고 탁 하고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부채가 한 바퀴 돌면서 옅은 안개 같은 막이 형성되었다. 얇은 얼음 같기도 하고 커다란 비눗방울 같기도 한 그것은 날아오는 검은 화살과 돌멩이 같은 것이 뚫지 못하고 떨어지게 했다. 반대로 안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백정은 전혀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백정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검은 그림자들은 금세 다시 형태를 다잡고 일어났고 기이한 신음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도 결코 사라지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 뒤에도 상당히 많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절거덕 거리는 일본식 게다를 신은 채 쏟아지듯 덤볐다.
“헉헉!”
직접적인 무력을 사용하던 우람이는 금세 체력이 동이 나버렸다. 숨을 몰아쉬며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긴 했지만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조깅을 하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고운이 역시 부네가 부채로 물방울을 만들어 내며 그림자들을 막아내는 것에 조금씩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상모를 쓴 초랭이 역시 쇠철찍같은 상모로 그림자 덩어리들을 날려버렸지만 그것들은 사라지는 만큼 다시 맞잡은 손가락 모양을 바꾸는 여우의 주문에 맞춰 내내 다시 생겨나고 부활하는 것을 반복했다.
“다이시타코모모 나이쟝[대단한 것들도 아니었구만]!”
여우 가면의 뒤로 비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세찬아! 안 돼!”
물방울 안쪽으로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들어오면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칼 같은 형태의 것을 휘두르며 세찬이를 덮치려는 것을 고운이가 보며 외쳤다. 얼른 몸을 피한다고 했지만 세찬이의 발차기는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에게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 듯 허공을 지났고 그들의 날카롭고 긴 일본도가 세찬이의 머리로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