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8

네엣. 키츠네멘[여우가면]의 습격 - 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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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와 쇠가 강하게 맞닿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고 눈을 찔끔 감았던 세찬이가 눈을 뜨자 눈앞에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검은 그림자 덩어리를 막고 손으로 두 그림자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린 도깨비 같은 검붉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감히 내 짝지에게 건방지게 칼붙이 따위를 들이대는 게냐?”

“바,방상아?”


그때였다.


갑자기 과아앙-하며 웅장한 징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 우람 태평소의 소리와 연이어 다른 국악기들과 함께 터져 나왔다. 마치 행사의 공연처럼 시끌벅적한 국악기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영상자료실에서 공부 겸해서 친구들과 함께 보았던 국악의 웅장한 음악이 전체에 울려 퍼졌다.


“대취타(大吹打)*...?”


마치 불을 밝힌 것처럼 중앙의 커다란 태양 같은 조명과 함께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색깔의 도포를 펄럭이며 익숙한 얼굴을 한 이와 체격이 좋은 남자가 그들의 앞쪽에서 검은 그림자들을 막아섰다.


세찬이가 놀라며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남자와 그 옆의 또 다른 도포 차림의 남자를 보았다. 짧지만 특별한 수련을 통해 예민해진 세 친구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앞을 막아선 한 남자가 최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양반...탈...?”


세 친구의 입에서 중얼거리듯 동일한 단어가 새어 나왔다.


“어딜 남의 나라에 와서 시답잖은 욕설을 찍찍 뱉어내는 게냐! 썩 닥치지 못할까?”


공간의 한쪽을 열며 환한 빛 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여우 가면에게 호령을 하며 혼내는 이는 아까 봤던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게임회사 회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아저씨가 분명했다. 아까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체격도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곁에 투명한 하늘색 도복의 존재는 그보다 조금 더 크고 훨씬 더 다부진 마치 남자의 모습을 훨씬 더 단단한 옥으로 조각한 듯한 힘과 느낌을 주는 듯했다. 손에는 뭔가 복잡한 조각이 새겨진 나무 막대에 화려한 술 장식이 달려 있는 묵직한 것을 쥐고 있었다.


“선생님! 왜 이리 항상 늦으시는 건데요?”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며 연신 초랭이와 호흡을 맞추던 우현이 회장의 곁으로 다가서며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당장 죽어도 상관없는 것들이긴 하다만, 아직까지는 죽지 말아야 할 것들과 갑자기 사라진 너희들 감추고, 행사 좀 정리하느라 늦었다. 미안하구나. 너희들에게도.”


남자가 씩 웃으며 천천히 공중에서 내려와 세찬이 쪽으로 다가섰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방상님. 이렇게 인사 올리게 되었습니다.”

“어허~ 이 녀석 보게. 나도 저쪽에서 얘기는 언뜻 전해 듣긴 하였다만 영생(永生)을 사는 양반이라니...내가 현생(現生)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 이런 인간이 다 나왔다 하길래 긴가민가했었는데,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게로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인간이 있었다니 어허~!”


어안이 벙벙해서 양쪽을 쳐다보는 세찬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방상이 세찬이의 뒷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서는 어깨 위로 들쳐 없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난쟈 아래야 [저건 뭐냐]?”


여우 가면과 여우는 방상이와 양반의 등장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시,시니가미[저승사자]? 오니[도깨비]?”

“내 짝지에게 칼붙이를 들이댔던 죄는 조만간 다시 묻도록 하마. 아주 엄중히.”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방상이가 노려보는 모습만으로도 여우와 여우 가면은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방상이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양반 쪽을 보며 말했다.


“일단 저 반 푼 어치도 안 되는 것들을 상대하려면 역시나 그 녀석들이 있어야 하것다. 게다가 지금 내 짝지는 이 자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듯하니, 우리가 자리를 피해 주마. 한층 강하게 만들어서 돌아올 테니, 조만간 다시 보자꾸나.”

“우리도 도와야 하잖아!”


세찬이가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외쳤다. 아래쪽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은 그림자들과 맞서 싸우던 친구들은 너무 많이 지쳐 보였다. 양반과 초랭이의 등장으로 판세는 역전되었지만 부네와 백정은 고운이와 우람이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겨워보일 정도로 몰리고 있었다.


“안타깝냐? 분한 게냐? 그렇게 분하고 안타깝다면 더 배우고 힘을 키워서 돌아오는 게다. 지금부터 너는 저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할 게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먼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네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함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 저들을 지키고 돕자면 네가 이를 악물고 더 분발해야 한단 말이다.”


함께 수련하고 함께 강해지고자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방상이가 갑자기 나타나 싸움을 직접 돕지도 못하고 도망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 세찬이는 분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멀어진 친구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뜨거운 눈물이 툭하고 가슴으로 떨어졌다.


“어서 오르거라.”


방상이가 쳐다본 공중에는 허름한 배가 하나 떠 있었다. 어깨 위에서 흐느끼는 세찬이를 내려놓지도 않은 채 배는 천천히 그 공간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방상이와는 별개로 공간은 양반의 화려한 움직임과 함께 어느 사이엔가 정리가 되었다. 양반은 하늘색 도포를 휘날리며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다시 보내는 것처럼 묘한 기술을 사용하며 달려드는 상대를 날려 보냈다.


“분석 끝났어요! 샘! 총 66개 귀기(鬼氣)! 영혼을 담보로 가둬두고 부리는 전형적인 음양사네요. 키츠네멘의 능력치는 아직 미상이구요! 예상대로 66개의 귀기를 다루는 자는 바로 저 자라고 나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쓰러져 있는 고운이와 우람이의 곁에서 부네와 백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양반을 부리던 회장이 그들의 앞으로 나서며 우현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에게 실전은 아직 너무 일렀나 보구나. 내가 일단 저것들을 잠재우마. 가두고 날려버리는 게 가능하겠느냐?”

“한 판 만든 것만도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인데요. 뭐 어쩔 수 없죠. 선생님이 시키시면 해야죠. 안 하면 또 혼날 게 뻔하잖아요. 한번 해 볼게요.”

“그럼, 간다!”


회장이 손에 들고 있던 굵고 붉은 막대기를 휘두르자, 양반이 반대쪽으로 뛰어오르며 하늘색 도포를 휘둘렀다. 불이 한쪽에서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 돌개바람같이 것이 일어나며 주변의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민나 고로싯데 시마에[전부 죽여버려라]!”


잔뜩 독기 오른 키츠네멘의 목소리와 함께 여우가 몸을 날려 양반의 앞쪽으로 다가섰다. 등에 차고 있던 기다란 것을 뽑아 들었다. 두 개의 짧지만 반짝이는 예리한 일본도였다.


“물러나라!”


다가오던 검은 그림자 덩어리들에 한꺼번에 빛나는 오랏줄*을 던져 한꺼번에 묶어 던지듯 양반 쪽으로 날아드는 여우에게 내던져버렸다. 검은 그림자들은 묵직한 신음소리를 내며 여우와 함께 한참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블록~!”


게임기를 만지고 있던 우현이 뭐라 외치면서 버튼을 누르자, 고운이와 우람이의 주변에 사각 큐빅 모양의 선이 그려졌다.


“전송!”


우현의 계기 조작과 외침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사각 큐빅의 공간 안쪽으로 조금씩 흐려지는 듯 점점 체스판같이 나눠진 공간 자체가 한 칸 한 칸 깜박이다가 이내 사라져 갔다. 이어 양반과 초랭이, 그리고 회장과 우현이 사라졌다. 사라지며 회장이 키츠네멘을 보며 말했다.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게다. 너희들 것이 아닌 것을 다시는 함부로 다루지 못하도록 해주마.”


여우가 던진 날카로운 검이 사라져 버린 양반이 서 있던 자리에 푹 하고 꽂혔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여우와 여우 가면은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자신들이 서 있던 안동의 탈 박물관이 아닌 낙동강이 멀리 보이는 산속, 그것도 한밤중임을 깨달았다.


“칙쇼[젠장]! 도오낫데 시마우나노까[어떻게 된 거야]?”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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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취타(大吹打)


부는 악기인 취(吹)악기와 때리는 악기인 타(打)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에서 ‘대취타(大吹打)’라는 곡명이 붙여졌다. 조선조 궁중의 선전관청과 각 영문(營問)에 소속된 악수(樂手)들에 의해서 임금이 성문 밖이나 능(陵)으로 행차할 때, 혹은 군대의 행진 · 개선 또는 선유락(船遊樂) · 항장무(項莊舞) · 검기무(劍技舞)와 같은 궁중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던 음악이었다.

원래는 행렬의 앞에 위치하여 가던 악대인 타수(打手:연주자)와 행렬의 뒤에 위치하여 따라가면서 연주하던 세악수로 이루어진 형태였으나, 시대가 바뀌고 무대화되면서 취타수의 편성을 축소하여 연주하게 되었다. 대취타의 악기 편성은 시대와 의식의 규모에 따라 달랐으나 현재는 악기 편성은 취(吹) 악기로서 유일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태평소와, 나발 · 나각(소라) 등 일정하게 한 음을 내는 관악기, 북 · 장구 · 징 · 자바라 같은 타악기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연주자 외에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집사(執事)가 있다. 집사가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가 오른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높이 들어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고 호령하면 징을 치고 연주가 시작된다. (국악정보, 2010. 7., 국립국악원)


주2)오랏줄


인을 나포하거나 호송을 하기 위한 끈이며 일명 홍색 명주실로서 오합사로 다섯 겹을 꼬아 합해 만든 포승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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