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9

다섯. 민족혼을 노예로 부리는 음양사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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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민족혼을 노예로 부리는 음양사


“정신들이 좀 드냐?”


기분 좋게 푹 자고 일어나는 아침 같은 느낌에 눈을 뜬 우람이의 눈에 낯선 공간이 들어왔다.


“어? 여기가 어디예요?”


눈앞에 게임기를 들고서 게임기 화면 너머로 자신을 빼꼼히 바라보고 있는 대학생 형의 모습이 보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침상에서 갓 빤 기분 좋은 햇살 냄새가 느껴졌고, 방향제인지 피톤치드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지금 물어보고 있던 중이었어.”


고운이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건너편 침대에 앉아 대학생 형을 새초롬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고운이 너도 같이 와 있었던 거야? 세찬이는?”

“그것도 지금 막 물어봤어, 대답을 들으려던 참이야.”

“전부터 느꼈지만 우리 꼬마 애기씨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내공이라니까...풋!”


우현이 게임기에서 눈을 떼고 의자에 몸을 묻으며 다리를 편하게 꼬았다.


“우람이도 일어났으니 다시 물어볼게요. 일단 우리가 왜 여기 와 있는 거죠?”

“너희가 기운이 쇠해서 쓰러져서 데리고 왔고, 너희는 꼬박 하루가 넘도록 잠만 잤단다. 배고플 테니까 일단 뭣 좀 먹으면서 얘기 나누는 건 어떨까? 나도 너희들 일어나는 거 기다리느라 아직 식사 전이거든. 침대에 앉아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우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대의 이불을 젖히며 우람이가 따라나설 듯 벌떡 일어났다.


“좋은 생각이에요. 저, 지금 무지 배고팠던 참이에요.”

“우람아! 우린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고운이가 우람이를 제지할 새도 없이 우람이는 일어나서 우현이의 곁을 따라나섰다. 고운이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 둘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호텔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방문을 열고 나서자 길고 넓은 복도가 나왔다. 복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맛 좋은 냄새가 났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서자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맛 좋은 음식들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와! 여긴 호텔 같은 곳이에요? 완전 초호화 뷔페네요.”


우람이는 입이 떡 벌어지게 차려진 음식에 금세 행복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천천히 얘기하자구. 꼬마 애기씨도 너무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우리 초랭이도 만났잖아. 우리가 최소한 적이 아니라는 건 증명한 거 아닌가? 두 사람을 구해서 이렇게 보호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때 반대쪽 방의 문이 열리며 정장을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음식을 옮기는 여자들과 테이블 쪽으로 들어왔다.


“어르신께서 부족한 것이 없도록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친구 분들의 부모님께는 엠쓰리 특별 겨울캠프에 선발되어 행사장에서 바로 이곳으로 참가하는 것으로 연락 잘 드렸습니다. 특별 겨울 캠프는 한 달간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필요한 짐들은 댁에 가서 부모님들을 통해서 받아오긴 했지만, 필요한 것들은 저희들이 다 준비하였습니다. 이곳에 계신동안 불편함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이 식기 전에 드시도록 하시지요.”

“이곳의 집사님이셔. 선생님을 오랫동안 보좌해오신 분이기도 하고...”


우현의 소개에 나이가 지긋한 남자는 지그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악의라고는 찾기 어려운 정말 사람 좋은 미소였다.


“고운아! 이것도 좀 먹어봐.”


이미 우람이는 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 산해진미를 즐기고 있었다. 고운이는 매섭게 우람이를 흘겨보았지만, 집사라고 소개받은 아저씨의 깍듯한 말과 행동이 부담스러워 여전히 경계를 쉽게 풀기는 어려웠다.


“일단 너희 둘은 한 달 동안 여기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게 될 거야. 아마도 부네와 백정을 ‘제대로’ 다루는 훈련이기도 하겠지만, 너희들이 요 몇 주간 한 기본기가 어느 정도 되어 있으니 바로 자신의 특성을 찾는 훈련을 하게 될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거든.”


우현은 게임기를 앞에 두고 떡갈비를 한 입 크게 배어 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도 조금 있다가 오실 거야. 엊그제 행사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정리하고 오시느라 좀 걸린대. 게임이 론칭된다는 소식이 퍼지고 나서 회사 주식이 또 급등했고, 외신에서는 난리도 아니었거든.”

“다른 건 천천히 대답해줘도 괜찮은데, 세찬이는 어디에 있는 거죠?”


고운이가 우현이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방상이가 데려가는 건 봤지? 아닌가? 싸우느라 정신없어서 너희는 못 봤나 보구나.”

“으음, 바,방상이요? 방상이가 그날 나타났어요?”


입에 계속 음식을 넣으면서 우람이가 되물었다.


“응. 그 난리통에 놀란 눈으로 자기 짝지만 달랑 데리고서는 사라져 버렸지.”

“그럼 우릴 공격했던 그 이상한 것들을 뭐였어요?”

“일단 좀 먹자.”

“그 대답은 내가 해주마.”

“선생님 오셨네요.”


언제 왔는지 감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던 엠쓰리의 회장이라는 아저씨가 반대쪽에서 웃으며 나타났다. 집사라고 했던 아저씨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회장은 손을 들어 인사를 받고서는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았다.


“고운이라고 했던가?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부네를 제법 잘 다루더구나.”

“양반을 다루는 분이시죠?”


고운이의 당돌한 태도에 우현은 이제 상관없다는 듯이 우람이와 함께 식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밥도 밥이었지만 곁에 있던 수정과와 식혜를 양쪽에 가져다 두고 마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씩 대답해주지. 어제 너희들을 습격했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함정에 빠졌던 녀석들은 일본에서 온 음양사와 그 일당들이다. 너희들이 하회탈의 영혼을 깨웠다는 것도 모르고 그 영혼마저 모두 훔쳐 가겠다고 우리나라에 발을 들인 놈들이지.”

“일본이요?”


할아버지가 저승을 다녀오는 고초를 겪은 일을 통해 마츠모토 일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그간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터라 회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들의 행동과 정체가 앞뒤 논리에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하회탈을 훔쳐가는 것뿐만이 아니란다. 그들이 다뤘던 그 검은 그림자의 귀신 가면들이 기억나니?”

“네. 백정이 주먹에도 쉽게 쓰러지지도 않고 쓰러뜨리더라도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우람이가 다시 생각이 났는지 회장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양반이나 초랭이의 힘으로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상을 입힐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치명상을 입혀 소멸시킬 수만도 없는 사정이 있었단다.”

“네? 그건 또 왜죠?”


고운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들이 단순한 잡귀가 아닌, 그들에게 볼모로 잡힌 불쌍한 우리 민족의 영혼들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민족이라구요? 일본에서 왔다면서요?”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인 음양사가 부리는 귀신은 맞지만, 그들은 분명히 우리 민족이었던 영혼이 그들의 주술에 갇혀서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는 것이란다.”

“그게 무슨...”


뜻 모를 설명에 우람이와 고운이가 의문의 시선이 엉켰고, 그 시선은 다시 회장에게 향했다.


“731부대*라고 들어봤니?”

“네. 마루타 실험을 했던 만주에 있었다는...”

“오. 생각했던 것보다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나 보구나.”


고운이의 대답에 회장이 흐뭇하게 웃어 보이며 가볍게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입안에 넣었다.


“원래 고운이가 알고 있는 것처럼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에 주둔하면서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몽골인 등을 대상으로 마루타 생체실험을 벌인 일본의 세균전 부대를 말한단다. 그런데 그 부대를 이끌던 ‘이시이 시로’라는 자가 일제의 세균전 연구책임자였는데, 실제로 그는 다른 얼굴을 가진 악마였단다. 바로 그곳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의 영혼을 가두고 영혼을 노예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주술사와 음양사들을 통해서 계속했지. 영혼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주술을 걸어야만 했고 주술이 걸린 상태에서 죽였어야 했거든.”

“그럼 영혼 노예를 만들려고 산 사람들을 일부러 죽였단 말이에요?”


우람이가 입맛이 뚝 떨어진 표정으로 들었던 젓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악랄한 거지. 사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세균 양성 실험을 하며 얼마 만에 사람이 죽는지를 실험했던 놈들이니 영혼 노예를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실험을 한 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 같은 것도 안 느끼는 거지.”

“그래서 그들의 목적은 뭐죠?”

“으음. 아주 좋은 질문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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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731부대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32~45년까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마루타 생체실험을 벌인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다. 일본 국왕의 칙령을 받아 만든 특수부대로 일제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만주국 영토 내에 자리 잡았다. 조선인과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신체 해부, 냉동 실험, 세균 투입 등 각종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하였다. 일제 세균전 부대의 본대 격으로, 이시이 시로 일본 육군 군의 중장의 이름을 따 ‘이시이 부대’로 불리기도 한다. 731부대는 8 개부와 4개 지부로 나눠져 있었는데, 군의관들은 모두 대학 출신의 의학자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731부대는 인체실험 대상자로 희생된 마루타(丸太, 일본어로 통나무라는 뜻)라는 말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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