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상관없이 음식을 조금씩 먹고 있던 우현도, ‘말살’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음식을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민족혼을 말살하다니요?”
“그 당시 731부대에 끌려갔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반인들도 많았지만 독립투사이거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많이 끌고 갔단다. 1945년 8월 9일, 그러니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져 광복이 되기 일주일 전에서야 소련군의 참전으로 731부대는 자신들의 자료나 증거물들이 강탈당할 것을 우려해, 바로 모든 부대시설을 파괴하고, 실험자들을 처분한 뒤 철수하도록 명령했지. 그래서 4일 동안 스스로 주요 건물들을 모두 폭파시켰고, 당시 생존해 있던 수백 명의 마루타들도 모두 몰살시켰단다.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은 폭탄이나 총탄에도 죽었지만 영혼을 노예로 삼아 만든 원귀들로 사람들을 괴롭혔지.”
“원귀요?”
“생각해보렴. 총이나 무력으로 억누르려 하면 결코 죽음을 맞더라도 맞서 싸우지만, 그 영혼이 지독한 고문으로 노예가 되어버리면 그 나라의 민족혼은 그 민족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을 동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란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나라를 지키려는 이들의 영혼을 자신들의 수하로 쓰기 위해 지독한 주술을 연구하고 그 연구의 결과물로 지난번 너희들이 봤던 아주 강한 원귀로 만들 수 있었지.”
“그러면 지난번 봤던 그 검은 그림자의 귀신 가면을 쓰고 있던 것들이...”
“그래. 겉모습은 일본군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우리 민족의 영령들이란다. 그래서 지난번에 그 원귀들을 함부로 해할 수 없었던 거지.”
“그랬던 거군요.”
“자아, 식사를 대강 마쳤으면 이제부터 제군들이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도 될까?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수련실로 데리고 오게.”
“예. 어르신.”
집사가 마련해준 옷으로 갈아입고 안내된 곳은 넓은 회의용 책상이 놓여진 응접실 같은 곳을 지나 나오는 뒤뜰 정원이었다. 잘 손질된 꽃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연못 같은 것이 오랫동안 공들여 가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수련장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좁은 곳에서 수련이 가능해요?”
우람이가 주변의 공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
“이 몸이 힘을 좀 쓰면 그게 아주 무리는 아니지.”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우현이 우람이의 곁에 다가서며 말했다. 그들의 곁에 회장이 다시 나타났다.
“자아, 이제부터 자네들은 우현군이 만든 수련 공간으로 들어가서 수련을 하게 될 게다. 너희들에게 시간이 너무 짧아 아무래도 설 전에 그믐 한 달을 1년으로 늘려서 사용하는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시간을 늘려요?”
“우현 군. 두 판, 하나에 365일짜리로 준비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준비는 다 된 거겠지?”
“네. 뭐 급한 대로 말씀하신 대로 하긴 하는데, 부네가 도와줘서 365일 정도는 완전 괜찮을 것 같아요.”
우현이 손에 있던 게임기의 자판을 두드리고 버튼을 누르자 천장 쪽에 모니터 화면의 커서 같은 깜박임이 있는 듯하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우람이와 고운이 앞에 커다란 문이 하나 떨어졌다.
“어? 이거 뭐예요? 마술 같은 거예요?”
갑자기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져 나타난 거대한 문의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며 우람이가 물었다.
“우현군이 부리는 초랭이의 능력을 우현 군만의 오랜 수련과 작업으로 특화시켜 구현한 기술이네. 우현 군이 부리는 초랭이는 영혼을 다루는 자들 이외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공간을 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전자기 능력과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융합시켜 우현 군과 초랭이 만의 능력으로 고유화시키게 된 거지. 지난번 자네들이 갑자기 사람들이 있던 공간에서 이동된 것을 기억하지?”
“그러면 부네처럼 시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지. 초랭이의 능력은 시간은 간섭할 수 없어. 오로지 공간을 자유롭게 조장하는 것이 가능하지.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은 하회탈 중에서는 부네 이외에는 할 수 없는 고유의 능력이란다. 물론 내가 흉내를 내는 정도로 반나절 정도는 옮겨둘 수 있긴 하지만, 그건 여간 체력과 영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할 필요가 없지. 부네, 나와 주겠나?”
고운이가 손에 물을 대지도 않았는데, 부네가 램프의 요정처럼 우물의 위로 물안개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뵙네요, 수현 님.”
“그래.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안에서 우리 얘기는 다 들었을 거야. 초랭이가 만든 판 안의 30일의 시간을 365일로 늘려줄 수 있을까?”
“지금의 고운님의 힘이라면 부족하지만, 초랭이가 만든 판 안에서라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부네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물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러면 너희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1년처럼 쓸 수 있는 ‘수련동’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안으로 들어가 있는 365일 동안 너희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특화된 능력을 깨워야만 한다. 지금처럼 한 시간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음마 단계로는 일본의 음양사와 싸우는 것은 그저 자기 한 몸 방어조차도 하지 못하는 짐이고 방해가 될 뿐일 테니까...”
“그런데 누가 가르쳐 주는 거죠? 회장 아저씨가 가르쳐주는 건 아닐 테고...”
우람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불가(佛家)에 이런 말이 있단다. ‘네 안의 부처를 깨워라.’라는...”
“네?”
그때 두 개의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저쪽의 공간에 커다란 덩치를 한 찢어진 도복을 입은 거대한 체격의 털보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
다른 쪽의 공간 안에서도 고운 비단으로 된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날카로운 눈매로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운이의 앞에 열린 문 안쪽에서 그녀를 맞았다.
“이제 이 문은 섣달 그믐날에 너희들이 열고 나오기 전까지는 밖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거다. 너희들이 그 안에 능력을 깨울 수 있을지는 너희들이 할 탓이다. 그럼 한 달 뒤에 보자.”
“이 안에 들어가면 된다는 거죠?”
먼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입는 여자가 다소곳이 서 있는 문 안으로 고운이가 발을 옮겼다.
“그 안에 들어서게 되면 너희는 육체는 반수면 상태가 될 게다. 자세한 설명은 그 안에서 듣도록 하려무나.”
그렇게 인사하는 회장과 뒤에서 손을 흔드는 우현의 모습을 뒤로 문 안에 들어선 두 친구의 뒤로 무겁게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