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11

여섯. 제주도에 사는 이매탈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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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제주도에 사는 이매탈

“곤나니 무즈카시갔다노까[그렇게 어려웠던 일이었나]?”

“모시와케 고자이마센[면목이 없습니다.]”

“니도토 곤나 이이와케와 키키타쿠 나잇떼 잇뗏다로[두번다시 그따위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았나]?”

“혼또니 모시와케...[진심으로 뵐 면목이...] 컥!”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이 그의 목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우욱!”


목이 움켜잡힌 여우 가면은 발을 동동 거리며 어쩌질 못했다. 그 절대적인 힘의 팔은 길고 굵게 어둠에서 갈색 군복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따이 돈나니 나가이 지깡가 시츠요데 아르나노까[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냐]!”

“모,모시와케 고자이..[죄,죄송합니]”


툭 하고 여우 가면을 내던지듯 그가 팔에 잡고 있던 힘을 풀었다.

목을 움켜잡은 여우 가면은 신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사이고노 기카이다.[마지막 기회다.]”

“하![네]”

“카나라즈 못떼 키나[반드시 가지고 오란 말이다]!”

“하![네]”


주먹을 움켜쥔 여우 가면의 손 안에서는 긴 손톱에 눌려 금세라도 피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막 쓰러져 있던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걱정과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서러움에 세찬은 아랫입술이 터질 정도로 이를 악 물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아야만 했다.


“조금 긴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두거라. 너라면, 이제부터 정말로 네가 지키고 싶은 이들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할 게다. 우리는 지금 이매탈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그전에 이매에 대해서 알아야 해. 그전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마.”


방상이가 진지한 얼굴로 별이 가득한 바다 같은 혹은 잔잔한 호수 같은 하늘을 흘러가는 배의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

“처음에 그들은 이 땅에 속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이 땅을 침략한 이들을 통해서 건너오게 되었지. 이매(魑魅)라는 존재는 원래 귀신이었단다.”

“귀신?”

“사람의 얼굴을 하고 네 다리가 달린 귀신이라고 하는 중국의 오래된 기록들이 있긴 한데, 그건 처음 그것이 동물이나 사람에게 융합된 모습을 보고 놀라서 기록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말 그대로 귀신들이었다. 나무나 돌에 정령들이 화해서 된 것들이었지. 실제로 그들은 사람이 죽어서 변하는 혼백이 아닌 정령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악의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는 자연의 일부였단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대자연의 오래된 품에서 생겨난 그들의 공간이 사람들의 침입으로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들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그들의 공간을 모두 침범하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지.”

“사람들은 정령은 볼 수 없지 않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

“그것도 그렇네.”

“왜 부네나 백정이 고운이나 우람이와 동화되어 수련을 하는 사이에도 내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리고 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늘 궁금하고 힘들어했다는 거 내가 잘 안다.”


이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그간 자신이 마음고생을 했던 이야기로 훅 들어오자 세찬이가 울컥하고 다시 그때의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사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물어보고 원망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그걸 알면서도 왜 그동안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건데?”

“사실 지금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공간은 네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란다. 느낄 수 있니?”

“응?”

“지금 네 몸의 상태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죽어 있는 것도 아닌 반 영혼의 상태로 나와 함께 있고 있는 거란다. 아주 위험한 일이지.”

“그럼 지금 내 몸은 어디에 있다는 거지?”

“아까 봤던 양반을 부리는 자가 이런 사정을 알고 다른 네 친구들을 훈련시키는 것과 동시에 너의 육체를 잘 보호하고 있을 게다.”

“그러면 나는 지금 영혼의 상태인 거야?”

“영혼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육체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이 필요하다는 거고, 아까부터 중간중간 네가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건, 그 수련이 이미 아까 배에 탈 때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거지.”

“지금도 수련 중이라고?”


가슴이 억눌리는 감정이 높은 하늘까지 솟아오른 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몸 여기저기에 납을 매단 것처럼 무겁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쩌릿 거리고 저렸던 것이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는 방상이의 설명이 왠지 쉽게 납득이 갔다.


“네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너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면,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알려주마.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이제부터 설명할 내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지. 무려 천년이 넘도록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건 네가 내 능력과 상성이 아주 잘 맞는다는 거니까 말이다.”

“나만 가지고 있는 능력... 이 있기는 있었던 거야?”

“물론이지. 천하의 방상씨를 부릴 수 있는 자는 천년에 한 번 정도 나올까 말까 하다고들 전해진단다. 그런 인간은 원래 인간계에 존재할 수가 없지. 기껏해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방상씨의 탈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은 어찌 보면 신의 실수라고 말할 정도인 셈이지. 방상씨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인간이 인간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지. 그래서 나는 나를 만들어낸 그 하늘의 존재들이 나를 우롱하기 위해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하고 반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믿지 않았었지. 이전의 내 주인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었거든. 네가 원하는 답부터 알려주자면, 음, 어떻게 말해야 쉽게 이해가 갈까? 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부릴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존재이지. 지금 이 문장이 너와 너의 능력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일 게다.”

“보이지 않는 것들...?”

“나에 대해서는 도서관에서 제법 조사도 하고 공부도 하던 것 같던데...”

“남아있는 기록들이 거의 없었어. 궁중에서 나례나 장례 때 악귀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탈이라고... 궁중에서 임금의 행차나 사신의 영접 등의 행사 때도 사용되었는데, 주로 악귀를 쫓아내는 역할이었다고...”

“그래. 기본은 확실하게 알고 있군. 지난번 저승에 갔을 때 다른 녀석들이 나를 알아보는 건 기억하지?”

“응. 그런데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 까지는....”

“저승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걸 보고도 무슨 능력이 있냐고 내게 묻는 게냐?”

“아, 그럼....”

“보통 사람들은 한번 죽게 되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단절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되어 버린 순간, 서로 간의 세계를 간섭해서는 안 되는 절대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거지. 그런데 가끔씩 그런 것을 어기는 존재들이 생기거든. 그 신들의 섭리와 규율을 바로잡을 존재가 필요했고, 자연의 섭리를 지켜야만 하는 필요가 생기면, 신은 그 대리자에게 절대적인 힘을 부여하곤 하지. 아주 드문 경우이기 하지만 말이다. 그게 바로 나인 게다.”

“그러면 나에게도?”

“아니. 그렇게 쉽게 인정할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 정작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들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는 족쇄가 필요했거든. 결국 부리는 사람이 없이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둔 거지. 게다가 이런 존재를 다루기 위해 연약한 인간을 짝지로 채우려면 보통의 인간으로는 안 된다는 절대 성립이 불가능한 족쇄로 나를 천년이 넘도록 잠들게 했던 게지. 천년 동안 그리 복잡한 섭리 같은 것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거든.”

“그러면 내가 어떻게...?”

“나는 천년 동안 단 한번 눈을 뜨지만 결국 나와 함께 하는 인간의 운명과 같이 하지. 결국 깨어있는 시간이 단 100년도 안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나를 다루기 위해서는 부리는 자의 영혼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위험이 따르는 문제도 있고. 나를 부리는 시간만큼 명이 줄어든다는 양날의 검을 잡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단 말이다.”

“그렇구나. 그래서 함부로 나올 수 없었던 거구나.”

“이제 좀 이해가 가는 얼굴이로구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방상이가 현실에 나타나 활동하는 만큼 자신의 수명이 대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설명은 충분히 세찬이를 두렵고 위축하게 할 만 것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죽거나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도 천년 동안 잠들어 있으면서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거든. 하늘에서 신들이 그렇게 정했다고 해서 내가 그대로 따를 만큼 착하고 순진한 놈도 아니고... 헤헤.”

“그럼...?”

“지난번 저승에 다녀왔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를 확실하게 확인하느라 그동안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문제가, 해결되었다니?”

“얼추 다 왔다. 저기가 이매가 지금 자리 잡은 터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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