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13

일곱. 격돌, 보름을 앞두다.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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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격돌, 보름을 앞두다.

“노곳다 모노와 스베떼 마다나노까[남은 물건들은 모두 아직인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고 날카로웠다. 심지어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정적마저도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얼음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수화기를 들고 대답하는 이는 계속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시와케 고자이마센[면목이 없습니다.]”

“네가 지금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네가, 그리고 너희 할아버지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우리 일본의 도움 없이 지금의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우린 언제고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확인한 것은 백정, 부네, 양반, 초랭이탈까지이다. 나머지 선비, 이매, 각시, 할미, 스님, 주지탈까지 아직 여섯 개나 남아 있단 말이다. 나머지를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져다 놓지 못하면 너와 너의 집안 목숨은 없다. 단순히 돈과 권력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저희도 백방으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빠가야로[바보같은 놈]!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게냐?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놈들과 연계를 하란 말이다. 지금 장관 자리에 있는 놈이나 판검사 자리에 있는 놈들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찾으란 말이다.”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사건과 하회마을 탈 박물관에서의 사태로 보는 눈들이...”

“네 년의 변명이 이리 길어지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보구나. 아직도 우리의 개가 되겠다고 하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는데도 말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반드시 제가 찾아내겠습니다.”

“마떼르죠[기다리마]”

“하이[네]”


손톱을 새빨갛게 칠한 여자 국회의원은 화장이 번들거릴 정도로 땀에 흥건해진 이마를 닦으며 전화를 공손히 끊었다. 숱한 사진과 표창장으로 둘러싸인 난초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국회의원 사무실에 여자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문으로 내던졌다.


“보좌관들 당장 들어오라고 해!”


핸드폰이 문에 부딪혀 박살 나는 소리에 놀라 뛰어 들어온 비서를 보며 그녀가 소리 질렀다.


“네,”


여자 비서는 잔뜩 겁에 질려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도대체 그놈의 탈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냔 말이야! 문화재청장이란 놈은 도대체 그 탈 몇 개 꺼내오지 못하고 뭘 하고 있냔 말이야!! 엉! 야!”


그녀는 박살난 핸드폰의 부품들 중에서 본래 휴대폰에 속해 있어야 할 것이 아닌, 작은 부품이 소파 밑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통화 내용부터 핸드폰이 박살 나는 상황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가만히 귀에 꽂혀 있던 레시버를 뺐다.


“급하긴 급했나 보네. 지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면서...”


남자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격조했습니다.”

“네가 먼저 연락을 다 주고... 오래 살고 볼일이구나.”

“어차피 오래 살고 계시잖아요.”

“그래. 어쩐 일이냐?”

“뭐 국립중앙박물관 사건 때부터 전후 사정이야 다 아실 테니 각설하고. 그들에게 동조하며 한국인이랍시고 나대는 꿩들을 이참에 모두 털어버리려고 준비 중입니다만... 제 힘만으로는 아무래도 모두 날려버리기도 전에 막혀버릴지도 몰라 선생님의 도움을 청하려고 합니다.”

“전부터 말했지만, 그건 이렇게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을 이제 너도 알지 않느냐? 한꺼번에 뿌리를 거둬낼 것이 아니라면 섣불리 건드리는 것이 오히려 또 다른 것들로 대치되고 더 진화되고 더 강화시켜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게다. 정작 한 마리의 꿩을 잡을 것이 아닌데 괜한 총소리로 엄한 꿩 몇 마리만을 잡고 다른 꿩들이나 더 큰 놈들이 그 소리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면 5년간이나 이 큰 처단을 준비한 네 입장이라면 억울하고 많이 속상하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겠느냐?”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오랜 시간 준비했던 것만큼 뜻을 같이 하는 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안다. 내가 왜 모르겠느냐. 허나, 나는 수많은 세월, 뜻을 가진 이들이 이익을 좇는 것들에게 해를 당하는 모습을 봐온 자. 내게 배움을 얻은 녀석이라면 아무리 대의가 앞선다 하더라도 개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무조건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5년간의 너의 준비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완벽을 기하자는 의미인 게다. 내 말을 네가 못 알아들을 녀석도 아니고... 이번은 경고의 의미로 네가 그렇게 눈엣가시로 보던 여의도의 까투리 한 마리 정도로 하자꾸나. 그들 역시 너에 대해 이미 눈치를 채고 압력을 넣고 있더구나.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 내, 너의 그 과격함이 늘 걱정이구나.”

“왜 선생님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시면서, 그럴 수 있으시면서 이렇게 나라가 나라 같지 않은 꼴로 추락하는 모습을 이때껏 방치하고 그저 참고 눈감아주신 겁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주어진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일에 함부로 이런 힘을 쓰라고 함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공부하고 힘을 키운 것은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나라를 좀먹고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히고 얼굴을 잡아 뜯어내고, 이 땅의 민초들을 잡아끌고 가 그 영혼을 노예로 만들어 이 땅을 다시 침략하는데 앞잡이로 세우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느꼈겠지만, 이제 모두가 눈을 떴고, 네가 말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감정에 휩쓸려 그때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거다. 네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네가 힘든 자리에서 노력해주고 있음을 내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도 못해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때까지 제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에게 경고라는 것이 과연 필요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가장 설치고 나댔던 까투리를 집어넣어 그들의 행동을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곧 아이들의 준비가 끝날 게다. 그들이 수련동을 나오는 날은 섣달그믐이다. 아마도 사부로 역시 그때를 노리고 있을 게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한편, '쿵~' 하고 거대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묵직하게 울렸다. 앞에서 씨익 웃고 있던 우람한 아저씨는 회광만큼이나 거대한, 온몸이 근육의 돌로 이루어진 것 같은 체격에 뜯어진 도복을 입고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맨발로 턱 하니 서서 우람이를 맞았다.


“어서 오너라.”

“아, 안녕하세요.”


들어올 때는 작은 공간인 줄 알았는데, 정작 문이 닫히고 나니 또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 한 느낌이었다. 돌로 만든 거대한 공간이 운동장보다 크게 마련되어 있는 수풀에 둘러싸인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집이었고, 사방은 수풀로 가득 차 있고, 새소리와 어디서 떨어지는지 모를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아무 말없이 천천히 건물 안쪽으로 걸어갔다. 조금은 어색할 정도로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그가 뭐라 외치며 손가락을 들어 딱 하며 소리를 냈다.


“영압 두 배!”

“웁!”


두리번거리며 아저씨를 따라 걸어 들어가던 우람이가 무릎이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버거우냐?”

“웁!”


마치 온몸에 무거운 솜이나 추를 턱 걸어놓은 것 같은 느낌에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무게감도 무게감이었지만 숨을 쉬는 것 자체도 굉장히 버거워졌다.


“지금 이것이 네가 지금까지 지내왔던 평상시의 육체가 느끼고 영혼이 느꼈던 공기의 2배 압력 무게이다. 당분간은 이 무게감에서 전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자연스러워지도록 하는 것이 기초 체력을 키우는 첫 단계이다. 네 몸이 바뀌고 나면 수련은 그때부터 시작하도록 하자꾸나.”


돌계단을 올라가 그 위에 가죽 의자에 앉은 남자는 탁자 위에 있던 사과를 하나 베어 물며 다시 손가락으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며 낑낑거리는 우람이 쪽으로 흔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얀 새의 솜털 같은 것이 위에서 하늘거리며 우람이 쪽으로 떨어졌다.


“먼저 그것을 잡을 수 있으면, 밥은 그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마.”

“네?”

“아! 소개가 늦었구나. 앞으로는 그저 나를 ‘사부’라고 부르면 된다.”


낑낑거리며 일어나서 눈앞에 하늘거리는 솜털을 잡으려고 손을 뻗자 솜털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위로 살짝 올라갔다.

그렇게 수련동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수련동의 시간은 정말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뜻을 잘 알지 못하던 한자가 가득 적힌 책을 읽으며 하는 공부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기초훈련을 벗어나 몸을 무겁게 누르던 기운에서 조금은 버겁지만 온몸이 쑤시는 근육통에 익숙해질 만한 시간이 되었다. 도장의 처마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모래시계가 바로 도장의 한 켠에 놓여 있어 그 모래가 다 떨어지는 것이 약속된 시간이 다 된다는 것만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수련동 안의 날씨가 비나 눈이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소매가 다 뜯어진 도복을 입고 도장 바닥에서 누워 잘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지내며 가르침을 이어갔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웃고 격려를 할 때에도 기운이 지나치게 넘치는 타입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까스로 도망 다니던 솜털을 쥐자마자 사과를 하나 던져주며 사부가 말했다.


“체력 하나는 타고난 녀석이구나. 자아,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뿐이다. 이제 적응이 된 듯하니, 너의 기운에 대해서 배우는 것부터 수련을 시작하기로 하자꾸나.”

“기, 기운... 이요?”


받은 사과를 와작 거리며 한 입 베어 물고 우람이가 물었다.


“탈의 영혼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기운이 있단다. 우람이 너의 경우 어떤 기운이 특화되어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지.”

“어떻게?”

“거기 나무를 집어 보려무나.”


우람이가 백정의 말대로 기다란 마른 나무를 하나 집었다.


“자아, 이제까지 수련했던 것처럼 정신을 가다듬고 나무에 너의 기운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해보려무나. 그것이 전에 말했던 '형상화'라는 거다. 그러면 뭔가가 보일 거야.”

“어?”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나무의 끝에서 불이 일어났다.


“우왁! 이건 또 뭐야? 나는 그저 수련할 때를 생각했을 뿐인데...?”

“네가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아주 확실한 증거인 셈이지. 네가 가진 기운이 불의 기운이라 회광을 불러낼 때도 늘 라이터 같은 것이 필요했던 거지.”

“그,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네 사부 아니냐? 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라서야 어찌 사부라고 부르겠냐 말이다. 하하하!”

“그러면 제가 불을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다는 건가요?”

“불러내기만 하면 의미가 없지. 이젠 회광을 부를 때도 그 라이터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행에 대해 공부했던 내용 기억하느냐?”

“네. 그 금, 목, 수, 화, 토...다섯가지...”

“옳지. 그 중에서 네 기운이 火(화)! 불이란 것이다. 불은 아주 작은 불도 금세 커질 수 있지. 또 그 불은 빛을 낼 수도, 뜨거움을 만들 수도 있고... 이제부터 너는 불로 다룰 수 있는 모든 단계들에 대해 도전하게 될 게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붉은 불이 아닌 푸른 불꽃을 쓸 수 있는 단계까지 올 테고 그러면 사악한 영혼을 태워서 정화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을...야! 듣고 있는 거냐?”


어느 사이엔가 우람이는 사부의 말을 뒤로 하고 나무에서 불을 내며 불꽃이 거세지는 모양을 보고 그 불꽃에 한껏 빠져 있었다.


“에휴! 저 엉뚱한 녀석! 얼른 이리 와서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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