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또 다른 수련동으로 들어간 고운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녀린 몸을 가진 여자 사부였다. 공간은 우람이가 들어간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 공간이었다. 거대한 소리를 울리며 문이 닫히자마자, 눈앞에 거대한 자연이 펼쳐졌다. 문 안쪽으로 꽤 넓은 정원이 나왔고 다른 한 켠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연못과 그 흐르는 물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정자와 안채로 연결되어 있었다. 안채로 보이는 공간은 조그만 2층의 구조로 되어 있는 고풍스러운 집이었다.
“이곳에서 저와 함께 1년이나 보내게 될 텐데, 괜찮겠어요? 만약 두렵거나 밖에서의 수련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나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어요.”
가느다란 몸의 여자는 매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깍듯하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말투와 군더더기 없는 행동들이 마치 감정이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무섭고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첫인상은 차갑고 냉정했다.
“아니요. 저는 더 많이 배우고 더 강해지려고 자진해서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고운이가 앙 다물었던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며 다부진 대답을 했다.
“저는 고운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군요. 고운님의 결심이 그렇다면 저 역시 그 결심에 부합하게 최대한 돕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사부’라고 부르면 돼요. 제 이름을 소개하는 것은 수련을 제대로 끝마칠 수 있다면 그때 가서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고운님이 제 이름을 알 수 있는 자격이 될지 보겠습니다. 앞으로 365일은 이제까지 고운님이 살았던 그 어느 세월보다 길고 힘들 겁니다.”
“네.”
“영압 2배!”
손가락을 튕기며 ‘사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외쳤다.
“웁!”
고운이가 선 자리에서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숨쉬기가 어려우실 것 같네요. 이게 고운님이 밖에서 지내던 육체와 영혼이 느끼던 중량감의 딱 2배입니다. 육체에도 영혼에도 이 수련동 안의 모든 공기에 적용됩니다. 이 물방울을 터트릴 수 있다면 그때부터 좀 더 자세한 수련에 대해서 얘기해드리도록 하지요.”
사부가 던진 물방울들이 크고 작은 것들이 영롱한 빛을 내며 숨쉬기조차 버거운 고운이의 머리 위로 떠다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렵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힘겨워서 당장이라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하나입니다. 주변을 보세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이 공기의 중량감에 자연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지요.”
어렵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자의 뒤편 대나무 숲의 대나무는 작고 여린 열매를 바람에 작게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자신처럼 잎이 쳐져있거나 아래쪽을 향해있지 않았고, 물 위에 놓여 있는 연꽃은 수면 위에서 가만히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꽃잎을 하늘거렸다. 어렵사리 몸을 움직이며 그녀가 자리를 잡고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호흡이다. 모든 것은 호흡에서 출발한다. 나부터 바로잡는다.’
천천히 자신의 숨에 모든 것을 집중하기 시작한 고운이의 수련 첫날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지 어떤지 정자에 자리 잡고 앉은 여자 사부는 가만히 찻잔에 차를 따르며 연못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터져라!”
여기저기 영롱한 빛을 내며 떠다니던 물방울은 고운이의 외침과 동시에 터져버렸다.
“이제 같이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기본기를 익히는데 1주일에서 이틀이 모자란 시간이 흘렀다. 고운이는 사부와 똑같은 가벼운 걸음으로 정자의 탁자에 조신하게 앉았다. 그녀의 앞으로 두 손으로 공손히 찻잔이 놓여졌다.
“빈속을 조금은 따뜻하게 해 줄 거예요. 부족한 기운을 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거구요.”
“감사합니다. 조언해주신 덕분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몸도 그렇지만 머리가 좋지 못해서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겸손함은 익히 들었던 그대로네요. 이 수련동이 안배된 이래로 2배의 봉인에서 4배의 봉인으로 일주일 안에 적응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원리를 깨치는 것과 제가 가진 기운과 동화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건 뿐인걸요.”
“그래요. 가볍게 요기를 하고 나서 수련의 첫 공부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미리 준비된 죽과 삶은 야채들로 요기를 마친 고운과 사부가 정자에 다시 마주 앉았다.
“고운님의 기운이 물을 다스리는 기운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계시라 믿어요. 이 물 잔을 잡고 가만히 기운을 집중해보세요.”
가만히 그녀가 앞으로 내민 옥색 잔을 고운이 잡고 눈을 감았다. 눈 깜짝할 순간 물 잔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며 손으로 넘쳐흐르고 탁자를 적셨다. 놀란 고운이가 잔을 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정도로 놀랄 필요까지는 없어요. 4배의 봉인에 적응이 된 고운님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일단 밖으로 나갈까요?”
정자로 이동한 사부는 손에 묻은 물을 닦으며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고운이를 보며 가만히 웃어 보였다.
“고운님은 자신의 감정을 아주 잘 조절하고 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죠?”
“사실 자신의 영혼을 누르는 중압감을 2배로 조정하고 육체를 움직이는 능력을 2배로 제한한 이 공간에서 채 3일도 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기운을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은 고운님이 처음이에요. 이 수련동이 만들어진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죠. 하지만, 아까처럼 자신의 기운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다른 이들은 물론, 자신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답니다. 특히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답니다.”
“감정을 억... 눌러요? 제가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죠. 아니, 그건 어려서부터 오히려 감정을 단순히 절제하는 것만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요. 이제부터 고운님은 자신의 감정을 모두 끌어내고 다시 하나씩 정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실 겁니다. 앞으로 대응해야 할 대상들은 心魔(심마)입니다.”
“心魔(심마)요?”
“네. 그 심마를 거둬내고 감정을 모두 쏟아내 버리고 나면 이제까지 얻지 못했던 기반을 얻게 되실 거예요. 그 기반 위에 나머지 시간들을 수련에 집중하게 된다면 훨씬 더 빨리 우리가 오르길 원하는 단계에 오르실 수 있을 거구요. 그래서 심마의 숲으로 들어가시게 될 거예요. 고운님이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것마저도 이 心魔(심마)가 자라기에는 아주 좋은 텃밭 역할을 했던 셈이니, 이제 그 해결의 실마리도 심마의 숲에서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심마의 숲...이요.”
둘은 정자에서 나와 집 뒤편으로 펼쳐진 대나무 숲의 입구로 갔다. 앞에서 볼 때는 자그마한 후정 정도의 규모인 줄 알았는데 집 전체의 산 쪽으로 온통 끝이 없는 대나무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 숲을 그저 통과하시면 되는 거예요.”
“네. 다녀올게요.”
머뭇거리던 마음을 정리한 사람처럼 고운이가 성큼 숲 안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마치 수면 위로 걸음을 떼는 것처럼 쨍-하고 바닥이 한 걸음 한 걸음 울림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자 사부의 앞에서 조금씩 대나무 숲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삼별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武臣政權) 때 만들어진 특수 군대를 말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움막 같은 동굴 공간 안에 펼쳐진 긴 테이블 끝에 앉은 대장이 물었다. 처음에는 모두 똑같은 이매탈이라 구분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풍기는 기운을 어렴풋하게 읽을 수 있게 된 탓에 이제 그들의 미묘한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말했던 신의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겠군요.”
“네. 사실은...”
“삼별초는 본래 사병조직이었습니다. 그중 정예부대인 ‘야별초’라는 조직을 가지고 밤에 도적을 잡고, 도성 내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국가 정규군이었지요. 이후 규모가 확대되면서 좌우별초로 분리되었고, 처음 조직이 만들어진 지 20년도 더 지나서 몽골제국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거나 송환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 ‘신의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본래 우리 검술이나 무예는 물론이고 몽골의 전술이나 무기를 다루는 것에도 익숙했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매탈을...”
“방상님에게서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이매는 본래 우리 땅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존재는 원래 중국에서 생겨난 것으로 몽골군이 중국 본토를 해할 때 이미 중국의 정기에 오랫동안 깃들여 있던 것들이 몽골군에 묻어서 엮여서 딸려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매탈은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신 건가요?”
“그렇게 내려온 魑魅(이매)*들은 형체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우리의 자연에 내려왔을 때는 무리를 지어 한국의 산골에서 정기를 받아 재구성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몽골의 침략은 수년에 걸쳐 지속되었고, 그 사이 이매는 자연스레 강한 원령들과 결합하게 되어 형체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본래 정령이라는 것은 자신보다 더 강한 것들을 만나게 되면 본능적으로 끌려서 다시 하나의 기운으로 뭉쳐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나라를 지키겠다는 관료나 귀족도 아닌 이들의 영혼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의 원한과 분노는 너무도 강하고 풀뿌리같이 질겼답니다.”
“그랬군요.”
“그 영혼들이 분노를 조절하고 넋을 기리기 위해 이매의 이름을 단 탈이 만들어졌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우리의 얼굴을 갖기보다는 그 이매탈의 이름으로 민초들을 수호하려는 강한 염원만을 남긴 채 우리가 마지막으로 절명했던 이곳 제주도에 자리 잡게 되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왜 이매탈을 쓰고 계시는지...이매탈이 단 하나의 영혼이 아닌 이유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느낀 부분이 맞다면 이번에 뭍에 올라왔다는 왜놈들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들이 부리는 기운조차도 우리와 같은 일을 강요당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혼을 산채로 영혼 노예로 만들어 공격의 최전선에 세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함부로 영혼을 소멸시키는 행동도 할 수 없다고.”
“아마도 방상님은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저희에게 세찬님을 모시고 온 것일 겁니다.”
“네?”
“이것이 저희가 수백 년을 기다리던 이유이고, 신께서 안배하신 인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저희는 삼별초, 특히 신의군을 중심으로 한 전군, 모두가 이매와 융합을 하고 나서 악귀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여 그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부리는 짝지가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저희 전군을 통솔하려면 엄청난 영력이 소요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희가 이매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하나에 종속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설명이 조금 어려워지자 세찬이의 표정도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을 포로와 노예로 삼아 우리 민족을 공격하게 하는 일에 치를 떠는 신의군이 이제부터 그 왜놈들에게서 영혼을 모두 풀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하회탈의 영혼 중에서도 유일하게 영혼에 직접적인 속박과 해제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방상이가...”
“지금부터 세찬님은 저희가 가진 모든 전투능력과 전술 능력을 익히게 되실 겁니다. 단순히 병사로서의 기술은 물론이고 장수로서의 용병술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몽골의 전술까지 익히게 되실 겁니다.”
“제가 뭐부터 하면 되는 거죠?”
세찬이는 왜 방상이가 이 먼 제주까지 자신을 데려다 놓았는지 그제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