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사건 데이터망에 들어가 유사 사건을 검색하던 장 형사가 책상을 쾅하고 치며 일어났다. 주변에서 조사하던 사람들이나 다른 일을 하던 동료들이 깜짝 놀라 김 형사 쪽을 바라보았다. 김 형사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답해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마치 얼굴을 통째로 잡아 뜯어낸 것처럼 피해를 입은 사건이 한 달 새에 무려 다섯 건이나 일어났다. 물론 뉴스에 나오지도 않았고, 일반인들은 그것이 동일범에 의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겠지만 김 형사만은 확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 해괴한 사건을 접하고 난 후, 설사 특수부의 부장 검사 나리가 손을 떼고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더욱 유사 사건에 대한 수사를 몰래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등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라는 점과 범인의 족적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정도였다.
“네. 없어진 것은 없다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득 없는 전화를 끊고 다시 지도를 펼쳤다. 사건이 터진 장소마다 굵은 붉은 사인펜으로 표기했고, 이번에 사건이 터진 지도 위치에 붉은 엑스를 다시 그렸다.
‘음... 뭘까? 목적이 뭔가를 찾고 있는 거라면 없어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사인펜의 뒤통수를 담배처럼 물고 있던 그의 눈에 멀리 전광판의 르포 프로그램의 속보 예고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굵은 글씨로 ‘친일파 후손과 위안부 사법 농단’이라는 글이 화면의 아래로 또렷이 보였다. 이어 뉴스 속보에 국회의원이 검찰에 소환되었다는 뉴스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친일파니 뭐니가 이 나라에서 설친다는 게 말이 되나?”
장 형사는 차에 시동을 걸며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시따 스베떼노 모노오 다스 코토니 시요[내일 모든 것을 내놓는 걸로 한다]”
“하[네]”
섣달그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키츠네멘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까지 손에 넣은 탈의 영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하회탈의 영혼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일 하루만이 영혼들을 가두고 일본으로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더 속이 탔다.
결국 지금 준비하는 제단을 통해 일본에 묶어 두었던 모든 영혼 노예들을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한국 탈의 영혼을 빼앗아야만 했다. 빼앗지 못한다면 최소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망가뜨리기라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했다.
“마츠모토가 왔습니다.”
손가락을 까닥이며 들어오라는 표시를 했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마츠모토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하회탈의 영혼은 고사하고 다른 탈들의 본래 영혼들까지도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얘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뒤져봤지만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
키츠네멘은 아무 말이 마츠모토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찾고 있는 것들이 최대한 감춘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돈을 대주던 현 의원 말인데요. 갑자기 특수부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너무 급속도로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게, 다들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고 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본국에서....”
“다마레[닥쳐라]!”
“하,하[아, 네]”
“나니모 츠차이 미치가 나이 오마에오 이마마데 난데 츠레데 잇다도 오모우나노까?[아무런 쓸모도 없는 네 놈을 지금까지 왜 함께 하며 왔다고 생각하나]?”
“소레가[그것이...]”
“한국말로 해야 알아듣나? 네가 탈을 가지고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굳이 너 같은 죠센진(한국놈)을 뭐하러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이 쓸모없는 쓰레기 같으니라구!”
“아무래도 내일 영계의 문이 열릴 때를 기점으로 하회마을을 공격해서 모두 끄집어내는 한 이 있어도 제가 반드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랑[필요없다]! 고레이죠 오마에노 손자이와 자마 고레 이죠모 이카모 나이다.[이 이상 네 놈의 존재는 방해만 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레라가 민나 아찌니 이끄죠.[우리가 모두 그쪽으로 가자.]”
키츠네멘은 땀을 흘리는 마츠모토를 보며 손가락을 밖으로 튕겨냈다. 육중한 마츠모토의 몸몸이 마치 공기총에 밀려나듯 공중을 날아 멀리 벽에 꽂히듯이 부딪혔다.
“이소게[서둘러라]!”
“으으, 하[네]!”
신음소리를 토하며 겨우 기어서 몸을 일으켜 세우던 마츠모토가 대답했다.
“아직 양쪽 모두 소식이 없나?”
여러 개의 모니터 화면이 가득한 방 안으로 들어온 회장이 물었다.
“데이터 상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나올 기미가 전~~ 혀 안 보여요. 이미 예상치는 한 달이 넘은 단계에서 마친 상태였는데.... 이후에 급격한 상승 이후 수치에 잡히지도 않아요. 아무래도 저희가 개입하는 게...”
손에 들고 있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연신 뭔가 버튼을 누르고 우현이 답답한 듯 대답했다.
“초랭이의 능력과 부네의 능력을 한꺼번에 사용한 시도 자체도 처음이었지만, 우리가 그 공간까지 들어가려면 세 능력을 융합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잖은가? 그건 화이트 해커계의 천재라고 불리는 네가 제안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생각 같다 않다만...”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다구요. 녀석들은 분명히 섣달그믐을 디데이로 노리고 대대적인 공격을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건 우리에게 두 번이나 당했던 안동이 될 확률이 높다구요. 아니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잘못되어서 그 안에 갇혀 버리게 되기라도 하는 날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실 문제가 아니라구요. 시간의 간극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가 초랭이의 공간으로 결계를 만든 것 자체가 위험한 시도였는지도 몰라요. 전 지금 불안해 죽겠다구요. 제가 만든 수련동에 행여라도 아이들이 잘못되어 갇히기라도 하면... 부네와의 능력과 융합이라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30일을 365일로 시간까지 늘리는 건 역시 모험이었던 거 아닌가 몰라요. 아휴!”
“네 데이터에 의하면 아직 아이들의 생체반응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일단은 우리가 먼저 하회마을로 가서 그들을 막고 있는 수 외에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겠구나.”
“행여 반영 혼 상태의 아이들이 시간의 미로에 갇혀버리게 된다면 어렵게 찾게 된 부네와 백정의 영혼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생명에도 당연히 영향이 미친다구요. 선생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그곳의 균형도 엉망이 되어 깨져버리고 말 것이구요.”
“네 말이 맞다손치더라도 섣불리 그들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것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수련동에서의 365일간의 수련을 무사히 온전히 끝마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상씨쪽도 아직 아무런 징조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 둘 만으로라도 섣달그믐을 버텨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구나.”
“선생님은 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짊어지려고 하는 그게 가장 문제라구요. 우린 좀 더 효율적인 분업이 필요해요. 게다가 저는 본래부터 백업 담당이지, 전투 전문이 아닌데, 너무 함부로 활용하신다니까요.”
“그래그래. 그렇다고 기회만 있으면 칼부터 휘두르려 하는 녀석까지 부르는 것을 너도 원치 않는 걸로 안다만.... 게다가 다른 이들과는 아직 접촉을 하기가...”
“아이고. 알았다구요. 간다구요. 가. 결계는 어느 쪽에서든 열리게 할 수 있을 테니, 모두를 데리고 안동으로 가지요. 내일 하루는 정말 긴 하루가 되겠네요. 어떤 의미로든. 에휴!”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해요?”
숨이 턱에 까지 찬 백정 회광이가 가파지른 절벽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며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 정도로 버거울 정도라면 행여 수련동에서 나가는 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사부가 절벽의 바로 위에 특유의 맨발을 삐죽 내밀며 웃어 보였다.
“아! 다 왔군요. 한참 남은 줄 알았네. 후웁!”
마지막 끝 돌부리를 잡고 몸을 공중으로 한꺼번에 들어 올린 백정 회광이 동심원을 그리듯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사부의 곁에 섰다. 회광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우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련동에 들어올 때 볼록 나왔던 배는 이미 흔적도 없고, 키도 사부의 어깨 이상으로 삐죽 올라왔고, 사부가 마련해줬던 도복이 사부의 것만큼이나 너덜너덜 찢어져, 훈련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압을 10배까지 하고 여길 오르는 건, 정말 무리라구요. 10배로 수련한 지 한 달이 넘었다고 하더라도 여긴 아무래도 무리라구요. 어떻게 자기 무게의 10배를 짊어지고 이 깎아지른 절벽을...”
툭-
궁시렁거리고 투덜거리던 우람이의 목을 굵은 사부의 팔이 감았다.
“저 떨어지는 해가, 네가 수련동에서 보는 마지막 저녁 놀이다.”
사부의 목소리가 왠지 울컥하며 잠긴 듯 작게 울렸다.
“네? 벌써 1년이라구요?”
“네가 단지 365일에 10배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 바늘 절벽을 오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사실 이 사부는 네 나이에 5배의 무게에도 이곳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었단다.”
“사부님?”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얘기하기보다는 수련에 집중해야 할 하루도 아까워 우리 이야기를 많이 해주지 못했구나. 하지만 그것은 곧 네가 알게 될 이야기들이니, 오늘은 접어두마. 단 한 가지. 나, 그리고 우리는 네가 있기까지 걸어온 길에 서 있던 또 다른 너였다는 것. 수백 년을 거듭되는 세월, 백정 회광을 영혼을 접하는 이들은 여럿이 아니라, 단 하나의 영혼이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계승자는 바로 너 우람이라는 거다.”
“사부님. 무슨 말씀인지 너무 어렵습니다.”
“녀석하곤. 우리가 그리고 내가 다시 윤회에 걸쳐 다시 태어난 것이 바로 너라는 뜻이다. 너는 바로 나인 것이다.”
사부의 굵은 팔과 손이 우람이의 머리를 뒤흔들 듯 쓰다듬었다. 사부는 팔에 있던 굵은 염주 팔찌같은 것을 우람의 팔에 채워주었다. 염주 하나하나마다 불꽃 문양과 뜻 모를 묘한 글씨 같은 문양이 찍혀져 있었다.
“네 화기(火氣)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게다.”
“사부님! 이렇게 갑자기, 저한테는 나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하셨던 분이...”
“가거라. 너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또 다른 이름의 나여! 백정 회광의 이름을 짊어진 자여. 너에게 이제 우리의 남겨진 운명을 넘겨주마.”
갑작스레 절벽 위에서 떨어진 문이 쿵하고 그들의 앞에 떨어졌다.
말없이 사부가 등 근육이 불어질 정도로 힘을 쓰며 거대한 문을 밀었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가거라. 문을 오래 잡고 버틸 힘이 이젠 없구나.”
등을 보이며 사부가 문을 잡고서 힘을 쓰는 것이 보였다.
“그럼 다시 찾아뵙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우람이 사부의 등에 대고 큰 절을 올리고는 사부의 팔 곁을 지나 문을 나섰다. 언뜻 이었지만 사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싶었는데 문이 스르륵 닫혔다. 마지막 자신을 보는 사부의 얼굴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