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16

여덟. 격돌, 섣달그믐, 출사표. - 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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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지그시 감고 활시위를 잡고 있던 부네가 외쳤다.


“드러내라.”


활시위를 꼬집든 비든 그녀의 화살은 시위를 떠나면서 수십 개의 화살로 퍼졌고 사방으로 퍼지며 공중의 목표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잡아냈다. 바닥으로 가운데가 깨져버린 토기들이 젖은 부적과 함께 떨어졌다. 부적이 붙어 있는 채로 떨어진 토기들은 사방으로 동그란 방사형의 형태로 마치 중앙에 있는 부네를 중심으로 생긴 파문처럼 모양을 냈다. 그 원의 저 끝 쪽에서 사부가 걸어 나왔다.


“한 개도 놓치지 않으셨네요. 이제 108개까지 무형의 물화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군요. 10배의 영압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구요. 나쁘지 않은 성과예요.”

“후 우우우~~”


숨을 가늘게 내쉬며 부네의 모습이 흐려지던 자리에 고운이가 눈을 가리고 묶었던 끈을 풀며 말했다.


“아직 완전히 일심동체로 념(念)까지 움직이며 시간을 조절하는 것에는 아직도 자유롭게 제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수련이 더 필요해요. 시간이...”

“아니, 이제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고운님은 이미 물의 기운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에 대한 충분한 습득이 끝난 상태세요. 지금 금(金)의 기운을 활용한 것도 이미 영압 5단계를 넘어섰을 때, 융합을 이뤄냈으니까요. 지나친 욕심은 몸에 무리를 주게 됩니다.”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힘을 더 기를 수 있다면...”

“이제 고운님은 현실에 나가더라도 이전의 약했던 몸을 기억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하게 단련이 되셨어요. 이건 우리들이 가진 껍질을 벗는 것. 그 첫 번째 탈피(脫皮)를 아주 훌륭하게 마치셨어요.”

“탈피(脫皮)요?”

“나비가 되어 가는 첫 단계인 셈이죠. 이제까지 몸이 안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그리고 고운님의 영적 성장과정에서도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모두 통과하였으니 그 첫 번째 탈피는 이루신 셈이지요.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다 여유 있게 이곳을 내보내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섣달그믐이 꽉 차는 날까지 잡고 있으려 했던 것은 제 욕심이었습니다. 용서하세요.”

“그건 아마 우리가 같은 성향이고 시공을 초월해 같은 존재였기 때문인 건가요?”

“이, 이미 알고 계셨던 건가요?”


사부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숲을 지나면서 그리고 제가 가진 운명을 어렴풋하게나마 읽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사부님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제 가족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이유에서 일까, 하고.”

“탈의 영혼을 부리는 이들은 하늘로부터 선택된 이들. 그들의 삶은 탈의 영겁을 지난 세월을 거쳐 함께 윤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 부네의 영혼과 함께 하는 자가 바로 고운님이 되신 것. 전대 계승자인 제가 이것을 드릴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부가 한쪽 팔을 들자, 하늘에서 문이 떨어지며 정자 앞으로 거대한 문이 드러났다. 문 앞으로 함께 걸어 나오며 사부가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유독 파란빛을 내는 목걸이를 풀어 고운의 목에 걸어주었다.


“현세로 가서 영압이 완전히 풀리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거예요. 10배까지 수련을 했으니 그 기운의 조절이 언제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 목걸이가 알려줄 겁니다.”

“사부님.”


문이 열리고 고운이가 걸어 나가려는 모습을 보며 사부가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떨리듯 입을 열었다.


“고운아! 엄마가 그동안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 고운이의 곁을 떨어져 본 적이 없단다. 같은 운명을 타고나서 고운이에게도 이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이렇게 예쁘게 자란 모습을 다시 엄마에게 보여줘서 너무 고마워.”

“어, 엄마? 엄마!”


사부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익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하지만 오래된 사진에서 보았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혹시나 하는 수천 번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고운아. 사랑해. 엄마는 늘 네 곁에서 널 지켜보고 있단다. 잊지 마렴.”


엄마가 달려와 고운이를 와락 안았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고운이가 엉엉 큰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태어나면서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그 따뜻한 품이 이렇게 익숙할 줄은 몰랐다. 수련동에 함께 하는 365일 동안 밥을 해주고, 옷을 챙겨주고, 엄하게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밤마다 곁에 다가와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하던 모든 기억이 고운이의 눈물을 따라 흘렀다.


“엄마! 같이 가요. 엄마!”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잖니. 우리 고운이가 지켜줘야 할, 고운이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예쁜 우리 딸. 엄마가 많이 사랑해.”

“엄마!”


멀어져 가는 엄마의 모습과 함께 문이 닫혔다.


한 팔을 뻗어 엄마를 외치던 고운이가 목걸이를 꼬옥 잡았다.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에 단호한 결심이 함께 맺혀 있었다.


“엄마가 하시려던 일을 이제 내가 맡아서 반드시 완수해내고야 말겠어.”


“다 왔습니다.”


차가 공방의 앞에 내린 멈추고 기사가 연신 기계의 화면을 응시하며 뭔가 조작하고 있는 우현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공방에 들어서는 우현을 짐 정리를 마친 기사와 할아버지가 맞아주었다.


“오! 왔구나. 아이들은 모두 같이 온 게냐? 세찬이는?”


할아버지는 우람이와 고운이, 그리고 세찬이의 모습을 우현의 뒤에서 찾았다.


“그게...저어, 선생님과 함께 올 거예요.”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던 우현이 겨우 거짓말을 지어내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어르신과 함께 오기로 했구나.”


할아버지가 안심하며 우현이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정작 내일이 설날인데,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이런 날에, 큰 일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현은 왠지 서글퍼졌다. 하지만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이 없다고 다시 자신을 추슬렀다.


“이제 할아버지는 잠시 여기 기사님을 따라 자리를 피해 주세요. 전화로 말씀드린 그대로 움직여 주시면 돼요.”


우현은 사전에 전화를 통해 설명했던 내용을 간단히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설명을 대강 들었던 터라, 할아버지는 미리 중요한 기초 작업이 완료된 나무들과 별도로 나무 상자를 준비해서 기사에게 건넸다. 기사는 그 짐들을 바로 차로 옮기고 할아버지는 준비해뒀던 몇 가지 짐들을 챙겨 기사와 함께 먼저 공방을 나섰다.


“아이들이 내려오면 내일 아침에 모두 함께 만두를 넣은 떡국이라도 함께 먹으며 새해를 맞자꾸나.”


그렇게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공방을 나섰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틈이 없지!”


우현이 공방으로 들어가 안채의 사랑방으로 들어가 계기판을 들고 온 모니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차 트렁크에서 준비해왔던 이름 모를 장비들을 공방의 사방에 설치하고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으며 전화를 눌렀다.


“네.”


탈 박물관 쪽의 장비 설치를 맡고 있는 집사였다.


“아저씨. 탈 박물관 쪽으로 다시 가지는 않겠지만 녀석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쪽으로 모든 탈들을 옮긴다고 잔뜩 정보를 흘렸으니 머지않아 들이닥칠 겁니다. 일단 여기에 판을 만들 거예요. 아마도 이번 판은 녀석들을 가두는 역할까지 해야 할 테니까 큰 판이 될 거예요. 얘들이 제대로 오늘 이쪽으로 넘어온다는 가정하에 준비를 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질 경우에는 선생님과 저 말고는 힘이 될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할 거예요. 지금 설비가 끝나면 제가 이쪽에서 판을 벌여도 같은 파동의 판을 그쪽에서 열 수 있도록 연결할게요.”

“네. 이쪽은 일러줬던 대로 모든 설치를 마쳤습니다.”




끼이이이익--


한적한 설을 하루 앞둔 안동의 시골에서 들릴 리가 없는 차가 급정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막 방 안으로 들어가 모니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한 우현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기사와 할아버지가 탄 차가 하회마을의 어귀를 빠져나가려고 할 순간이었다. 차가 크게 흔들리며 할아버지가 앞쪽으로 부딪힐 뻔한 순간 가까스로 손으로 지탱하며 버텼다. 차 안의 상자와 가방이 모두 흔들리며 뒤집히며 쏟아져 나왔다.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뒤를 따라 잡힌 것 같습니다. 아까 마을 어귀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다가 따라붙은 것 같습니다.”


기사가 앞에서 갑자기 추월해서 차 앞을 틀어막은 검은 밴을 보며 차의 미러를 통해 뒤쪽을 보았다. 이미 뒤쪽에서 똑같은 검은 색의 밴이 후진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밴의 차 문이 열리며 우람한 덩치의 남자들이 여럿 우르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기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절대 나오지 마세요.”


검은색 밴에서 내린 남자들이 차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도열하며 뒤쪽에서 세단 차량의 누군가가 내리는 것을 맞이하는 것이 보였다. 언뜻 여우 가면과 같은 하얀 얼굴이 보였다 싶었다. 기사가 얼른 문을 잠그는 도어록 버튼을 누르자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잠겼다.


“이 차는 방탄유리로 되어 있으니 우리만 나가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곁에 하얀 여우 분장을 한 것 같은 얼굴이 창을 바라보며 빼꼼히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얼굴이 마주친 그 순간 와장창 하며 차창을 부숴버리며 기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으아아악!”

“고고니와 나니모 나이죠[여긴 아무것도 없다.] 고노 야츠오 츠레데 코이[이 늙은이를 끌고 와라]”


여우 얼굴의 존재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기사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창문으로 끄집어내어 길가에 내던졌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뒷짐을 지고 차로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띠리리리-


“네. 선생님.”

“예상대로 미끼를 물었다. 놈들이 꼬마를 끌고 갔다.”

“네? 할아버지를요? 벌써요? 저는 탈 박물관 쪽으로 움직이고 있길래, 아직인 줄 알았어요. 그러면 저희도...”

“준비는 다 끝났다. 그들이 먼저 인질 교환을 원한다고 알려왔다. '마지막 남은 인간문화재의 맥을 끊고 싶지 않다면 모든 탈의 원형을 고스란히 가지고 오라'는 통보를 보내왔다. 꼬마가 다치지 않게 하려면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만 한다. 방상씨에게서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거냐?”

“네. 전혀요.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하회마을 전체를 그들의 공간으로 묶는 도박을 한 것 같구나.”

“네? 하회마을 전체를요?”

“얘기했던 대로 플랜 B로 간다. 소식이 없는 쪽은 버린다. 지금의 전력만으로 대처한다. 준비사항들은 차질 없겠지?”

“저쪽에서 어떤 말이 움직일지 아직 모르는 상황인데 그렇게 여유 있는 ‘양반’처럼 말씀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음. 그 유치한 또 체스식 비유인 건가? 하지만 네말처럼 나는 ‘양반’이 맞는걸. 허허”

“선생님 아재개그, 정말 재미없는 거 아시죠?”

“그쪽에서 기다리마. 이번에는 곱게 현해탄을 건너게 하지는 않는다. 방상씨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그래야죠.”


전화를 끊는 우현의 표정에서 이전까지 가득하던 장난기가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금부터 구하러 갈게요, 할아버지. 무사하셔야 해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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