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2부 - 17

아홉. 각성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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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각성


공방에서 나와 차에 오르려던 우현은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고 한꺼번에 눈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기운에, 묘한 붉은 색의 기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보였다. 굳이 계기판에 나오는 데이터를 보지 않더라도 눈앞에 선할 정도의 사악한 기운이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회마을 한 공간 자체를 저들의 결계로 막을만한 중요한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로군. 이쪽에서도 질 수 없지.”


이어폰을 눌러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연락, 들으셨죠? 지금 바로 그 기계들, 제가 전송한 장소에 재설치해주세요. 그리고 설치하시는 대로 얼른 지도의 그 반경에서 벗어나세요. 시에 연락해서 주변 분들도 대피하도록 유도해주시고요.”


전화기를 다시 누르려는데 큰 컨테이너차가 공방 쪽으로 들어왔다.


“늦는다고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만. 하여간 시간 한번 기가 막히다니까.”


컨테이너 기사가 차에서 내려 문을 열자, 그 안에서 빨간 오토바이가 나왔다.


“잘 있었니? 내 애마야. 오늘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너와 달려야겠다.”


가죽 재킷과 헬멧을 장착하고는 마을의 중앙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현이 탈 박물관 쪽으로 핸들을 당겼다. 먼지를 날리며 오토바이가 탈 박물관에 다가올수록 숨을 조여 오는 듯한 답답함이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그의 오토바이 뒤에 초랭이가 우뚝 서서 팔짱을 끼고서 앞에서 밀려 나오는 검은 그림자를 무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스멀거리며 검은 그림자가 두서너 개 동시에 튀어나오며 우현의 오토바이를 막아섰다.


부아아아앙~


초랭이는 발을 박차며 공중 위로 솟아올랐고, 우현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들어 올리며 그림자를 피해 가까스로 박물관 입구 쪽으로 들어선 오토바이의 핸들을 확 돌렸다. 강한 엔진음과 함께 흙먼지가 안개처럼 일었다. 빙글거리며 돌고 자리에 쓰러진 오토바이를 덮치려던 긴 일본 군복의 반야 가면들이 주춤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우현과 초랭이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반야 가면

“너희랑 실랑이할 시간이 없다구....”


우현은 이미 박물관의 입구에서 중앙 쪽으로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동시에 건물의 처마 꼭대기 쪽에 지붕 위로 초랭이가 쏜살같이 중앙에 우뚝 선 건물 쪽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평행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던 둘이 무언가가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한 듯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탈 박물관의 가운데 안채에서 시커먼 덩어리들이 줄지어 앉은 까마귀처럼 건물 전체에 쭉 늘어서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준비를 한 것은 이쪽만이 아니라고 시위하는 듯했다.


“킷다노까이[왔는가]? 오마에라노 하카니[너희들의 무덤에]”


멀리 본관 건물의 입구 앞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키츠네멘이 기분 나쁜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초랭이와 헬멧을 막 벗은 우현의 모습을 보며 지긋이 노려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는...? 무사하신가?”

“아! 코노 크소바바노 코토까이[이 빌어먹을 늙은이 말인가]?”


그가 손가락을 뒤로 까딱거리자 붉은 악마의 반야 가면을 쓴 검은 그림자 둘이 정신을 잃고 있는 할아버지를 양쪽에서 들고서 끌고 오듯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에게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 나한테.... 죽는다.”

“아직도 자기 입장이 어떤지 모르는 듯하구나. 이 영감은 물론이고, 너희들도 탈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 이상,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죽는다.”


마츠모토가 계단의 아래쪽에서 검은 군복의 반야 가면들을 이끌고 날이 잘 선 일본도를 빼어 들고 나서며 낄낄거렸다.


“탈은...?”

“너희들이 그토록 애달프게 찾는 것이 바로 이건가?”


멀찍이 본관의 반대편 지붕 위에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서 있는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천으로 잘 묶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냉큼 가지고 와서 이 앞에 무릎 꿇고 내놓아도 성치 않을 판에 어디 건방지게 그 위에서....”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회장이 어느 사이엔가 그의 곁을 무시하듯 시쳤고 다시 그의 두루마기가 언뜻 보였다 싶은 순간, 의자에 앉은 키츠네멘의 앞에 우뚝 서서 보따리를 내려두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탈들이 상자 뚜껑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 보였다. 놀란 마츠모토가 뛰어 올라와 물건을 일일이 확인하며 보따리를 다시 여몄다.


“아리마스. 아리마스[있습니다. 있어요.] 맞습니다. 모든 탈들이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마츠모토가 보따리를 이리저리 움켜쥐고 상자째로 들고서 계단을 내려서려 하자 회장이 지긋이 그 위를 손에 들고 있던 부채로 눌렀다. 약간도 들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마츠모토가 소리쳤다.


“뭐냐? 놓지 못....”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회장의 손에 들려 있던 붉은 부채를 휘두르자 마츠모토가 계단 밑으로 나뒹굴 듯 나가떨어졌다.


“꼬마부터 내놓고 물건을 챙기더라도 챙기는 게 맞지 않겠나?”

“사아 고노 지지사에 시네봐 오마에라노 쿠니와 모오 니도토 곤나 모노오 츠쿠르 코토가 데키나이노다로[자아, 이 늙은이만 없어진다면 너희들의 나라는 두 번 다시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내지 못할 테지]?”


순간 사악한 기운이 뜨거운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전면으로 몰려나오며 의자 뒤에서 하얗게 표백된 듯한 여우의 얼굴이 어둠에서 드러났다.


“오마에라가 고고데 이끼데 카에르 코토가 데키르또 오모우나노까?[너희들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햐크멘코[백면호(白面狐)]!”


여우가 할아버지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가 회장의 앞쪽으로 한꺼번에 휙하며 내던졌다.


할아버지를 잡고 있던 여우는 어느 사이엔가 할아버지가 자신의 품 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눈앞에 서 있던 회장의 모습도 사라져 버린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우는 눈앞에 놓인 보따리의 앞으로 들어와 심호흡을 하듯이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쥐었다가 다시 펼치자 손가락 사이에 4개의 구슬이 끼어져 있었다. 들이마시는 숨이 시작되자 보따리의 탈들이 덜컥거리며 흔들거렸다.


회오리바람이 일며 순식간에 보따리 안에서 모래 같은 것이 일어나며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래를 전부 마셔버린 백면호가 핏발이 선 붉은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 환술은 너희 나라의 것보다 훨씬 오래된 오리지널이란다. 게다가 양반의 아주 기초적인 능력 중의 하나이고 말이지.”

“칙쇼[제기랄]!”


키츠네멘의 날카로운 절규와 여우의 괴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탈 박물관의 어둠 속에서 꾸역거리며 붉은 색과 흰색이 섞인 뿔 달린 반야 가면을 쓴 일본 군복의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총끝에 달린 총을 들고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랭이의 뒤쪽으로도 검은 그림자들이 낮은 포복으로 총을 겨누는 그림자가 보였다.


“서, 선생님. 아무리 우리가 의도했다고는 하지만 얘네 오늘 야스쿠니 신사뿐만 아니라 전 일본 신사에 박아둔 영혼 노예들을 모두 동원한 모양인데요? 이대로면 정말 오늘 여기서 살아나가기 어려운 거 아닌가요?”

“기대하던 바 아니더냐? 어디 한바탕 놀아볼까나~ 안 그러냐? 초랭아?”


회장이 다가서는 그림자들을 보면서 부채를 확 펼치자 동시에 태평소의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삐리리리리-

태평소와 징소리 그리고 웅장한 대취타의 음악이 탈 박물관의 공기 흐름을 바꿨다.


“뭐, 뭐야, 이건?”

홍해가 갈라지듯 양반이 검은 그림자의 반야 얼굴 가면 부대를 젖히며 들어섰다. 쓰러진 그림자들은 다시 일어나 전열을 정비했다. 초랭이가 상모를 돌리며 상모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팽이같이 둥근 원을 만들어 아래로 뛰어내려 우현과 할아버지를 보호하는 반투명 구를 만들었다.

초랭이 탈

여우가 손가락을 접으며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반야 가면 부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자리를 채웠다. 어느 사이엔가 넓은 건물과 공간을 모두 메우고 맨 뒤에는 총을 들고 노리고 그 앞으로는 다시 활을 들고, 다시 그 앞으로 칼을 들고 3중으로 사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결카이 가이도[결계 가동]!”


쇳소리 같은 명령과 함께 탈 박물관의 사방에서 붉은 기둥 같은 것이 올라왔다. 붉은 기둥의 끝에 각기 다른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마다 손을 모으고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뭔가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기둥의 꼭대기에 서서 커다란 붉은 천막이 쳐지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급했나 보군. 원군들을 이리 많이 끌고 온 것을 보니...”


두루마기를 입은 회장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여우 가면이 있는 곳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칙쇼[제길]! 민나 고로싯다라 키에르 하즈[모두 죽여 버리면 없어질 터] 고로세[죽여라]!”


천천히 다가서는 회장을 중심으로 여우의 뒤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지난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숫자로 공간을 가득 메웠다.


조금씩이긴 했지만 양반과 초랭이, 그리고 할아버지를 안고 있는 우현과 부채를 든 회장이 그 포위망을 뚫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양반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회장이 가만히 그의 소매를 막았다.


“어허, 양반이 그리 급하게 마지막 수를 내놓으면 쓰나? 이 정도 시간을 끌어줬으면 이제 그들이 올 문을 열어줄 시간이 된 듯한데...”

양반탈

그가 이제까지 할아버지의 곁에서 기기를 연신 두들겨대던 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기계에서 긴 진동이 왔다.


“네. 반응이 왔습니다. 백정이 들어간 곳에서부터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입술이 바짝 타는 듯한 느낌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우현이 기쁜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동쪽부터 문을 엽니다. 한 판 벌려볼까나? 얼쑤~”


꽹과리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며 붉은 네 개의 기둥 경계에서 땅을 뚫고 일어 나오듯 주황색 빛을 찢으며 불타오르는 듯한 거대한 덩어리가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문이 엄청난 삐그덕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그 안쪽에서 힘찬 북소리가 둥둥거리며 멀리서 점점 거대하게 울려 퍼져 나왔다.


“화룡폭렬(火龍爆裂; 불의 용이 폭발한다)!”


불을 머금은 용의 형상이 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달려 나온 회광의 양쪽 주먹을 통해 뻗어 나와 가까이 다가들던 그림자 부대를 거둬내듯 던져버렸다. 불꽃 덩어리 속에서 막 나온 듯한 불길에 휩싸인 백정 회광의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 제법 근육이 몸에 붙은 듯한 다부진 체격의 우람이가 씨익 웃으며 걸어 나왔다.

백정탈 3D 랜더링 과정

“오랜만이네요. 우현이 형. 다녀왔습니다.”


우람이가 문을 통과하자 마치 얇은 전자 장막 같은 것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전기 자기장을 통과하는 듯한 모습이 사라지자 그의 몸에서 기운이 가시고 빛들이 사그라들며 우람의 몸이 다시 한 달 전 문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에 문 안쪽에서 언뜻 보였던 훨씬 키가 크고 몸도 다부졌던 우람의 모습에서 한 달 전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와! 이거 뭐예요? 무슨 에너지장 같은 거예요? 어벤저스의 토르라도 된 느낌인데요. 하하하하!”

마냥 신기해하는 우람이는 수련동을 들어가기 전의 천진난만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우우우우웅--


다시 우현의 손에 들려 있던 기계에서 긴 진동이 왔다.


“이번엔 서쪽 문이 열립니다.”


서쪽의 붉은 경계 쪽의 바닥에서 물이 조금씩 스며 올라오더니 이내 물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듯하며 거대한 물이 모여들며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내리며 커튼 모양으로 퍼졌다. 흐르는 폭포 쪽으로 달려들던 검은 도깨비 부대들의 총구를 향해 까랑까랑한 외침이 들렸다.


“빙설난무(氷雪亂舞; 얼음 눈이 어지럽게 춤춘다.)!”


물속에서 수십 개의 물화살이 쏟아져 나오며 외곽에 자리 잡고 있던 총구를 겨누던 검은 그림자를 향해 하나하나 쏟아져나갔다. 부네가 물로 만든 듯한 활을 들고 단호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부네탈

그 곁에 한 달 전에 비해 훨씬 여성스러워지고 부드러워진 고운이가 서 있었다.


“수옥(水獄; 물감옥)!”


손을 움켜쥐며 고운이가 외치자 부네가 똑같은 동작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활에 엉켜있던 물이 방울을 만들며 그림자 부대 한 명 한 명의 그림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물 덩어리로 움켜잡듯 가두어버렸다.


키츠네멘이 당황해하는 그림자 부대의 앞으로 달려 나왔다.


“나니오 싯데이르노까 스로나노까[뭐하고 있는 게냐]! 삿사토 고로세[얼른 죽여]!”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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