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총채 같은 종이 술이 길게 늘어진 막대기를 들고서 검은 그림자의 뒤쪽을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들이 우람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림자 부대를 제압하는 우람이와 고운이의 귓가에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지금 부리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731부대에서 비밀리에 조작되어 지금까지 일본의 신사에 억지로 가둬져 있던 우리 민족혼들이다. 양반을 필두로 한 우리가 부리는 탈의 영혼들이 그들을 소멸시킬 수는 있어도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일본군에 의해 두 번이나 이용당하고 심지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최전방의 적군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가 큰 판을 벌인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우리 땅에 우리의 얼로서 화해주고자 함이다.”
“말이 쉽지. 쓰러뜨리지 않으면서 조종하는 놈만 보내는 게 그렇게 쉽겠냐고...”
백정은 그림자들의 공격에 적극적인 공격이 아닌 한쪽으로 밀쳐버리며 공격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식으로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 뒤로 끝없이 밀려드는 검은 그림자들이 덮쳐 백정을 눌러버리려던 찰나 맑디맑은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파문변격랑(波紋變激浪; 작은 파문이 거대한 파도로 변한다)!”
부네의 양손에서 커다란 물이 파도의 격랑처럼 밀려와 그들을 한참 뒤로 밀어 던져버렸다.
“늦어서 미안해. 방위 설정을 나머지 두 군데 것까지 발동시키게 하느라 늦었어.”
“뭐야! 진작에 이런 공격이었다면 근거리에서 땀 뺄 필요도 없었잖아.”
“이제 풀어도 되는 거지?”
우람의 질문에 고운이 이제 막 색깔이 바뀐 목걸이를 꼭 쥐며 대답했다.
“응.”
우람이가 손을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운이도 공중에서 부네의 뒤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져 공중에 울렸다.
“봉인 해제!”
순간 우람이와 고운이의 이마에 각기 다른 문양의 다른 색의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고운이에게는 옅은 푸른빛에서 강한 심해의 푸른빛이 물방울 세 개가 떨어지는 것처럼 도드라졌고, 우람이의 이마에서는 붉고 강한 불꽃 모양의 문양이 옅은 노란빛에서 훨씬 강한 붉은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색이 강해질수록 회광과 부네의 옷 색이 그와 비슷한 색으로 둘러싸여지는 듯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 번 여우 사냥을 해볼까?”
우람이가 뭔가 달라진 분위기의 얼굴로 키츠네멘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나,나니[뭐,뭐냐?]”
백정의 손에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검이 들려져 있었고, 부네의 손에는 파란 심해의 물빛이 어린 활이 들려 있었다.
“오호~ 구상화(具象化)의 단계까지 넘어선 건가? 겨우 1년 만에? 이런! 이제 이 몸의 천재 칭호는 무서운 후배님들에게 반납해야 하겠구만.”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보며 계기판을 들여다보면 우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초랭이가 마주 서 있던 대상과 대치한 상태로 우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부네의 활은 한꺼번에 여러 활로 퍼져가며 다가서는 그림자들을 밀쳐내고 가두었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영혼 노예들의 힘은 끝이 없었다.
“이 많은 영혼 노예들을 죽이지 않고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구!”
우람이가 이쪽저쪽으로 불의 검을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해나가는 회광의 뒤를 따르며 외쳤다. 정작 그들을 밀치고 나아가 키츠네멘을 잡아야 했지만 그 앞으로 나가는 것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온다.”
도포를 날리던 양반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초랭이와 붉은 기둥의 끝에 서 있던 존재들조차 움찔하며 온몸을 휘감아오는 지각변동을 감지했다.
쿠르르르르르-
마치 흰 상자 안의 붉은 상자 전체를 누군가 들고 흔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진동이 울렸고, 쭉 하늘의 중앙 공간이 찢어지며 청아한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공간을 찢고 들어올 수가 있다고?”
우현이 놀란 눈으로 손에 들고 있던 계기를 떨어뜨리며 주저앉아 찢어진 자신의 공간을 보았다.
“아,아리에나이[말도 안되는]”
쑥 하고 그 안에서 들어온 존재는 검은 도포를 펄럭이는 팔짱을 끼고 우뚝 선 방상이였다. 찢어진 공간은 금세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막혀버렸다.
“고생들이 많네~ 너무 늦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제 정리 좀 해볼까?”
“세찬이는...?”
고운이가 세찬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아래로 내려와 정중앙에 패를 들고 있는 세찬이의 모습이었다.
“출두하라, 삼별초!”
검은 소용돌이가 세찬이가 들고 있던 검은 패를 중심으로 점차 거세지더니 검은 먼지 구름들이 사그라들었다.
뿌우우우-
거대한 뿔피리 같은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며 울리듯 사방으로 퍼졌다.
“저, 저건?”
쿵쿵- 쿵쿵-
세찬이를 둘러싸고 이매탈을 쓰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을 한 이들이 한쪽에는 말을 타고 다른 한쪽에는 활을 들고 또 다른 한쪽에는 검과 도끼를 들고 공간을 가득 채웠다. 창을 들고 있던 이들이 쿵쿵 거리며 박자를 맞추듯 발을 구르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이매탈?”
“저들의 영혼을 속박으로부터 풀어주자~”
나지막하며 묵직한 세찬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활 부대가 마치 공중을 향해 활을 날리듯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우람이와 고운이에게 달려들던 검은 그림자의 가슴과 이마에 팍하며 꽂혔다. 기괴한 신음을 내던 이들이 마치 검은 먹물을 뒤집어썼다가 비를 맞는 사람들처럼 그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활 끝은 오래되고 낡은 부적 같은 종이를 노린 듯이 그곳에 박혀 있었다. 온전히 사람의 형체가 드러난 이들은 환한 빛을 내며 공중으로 직선으로 쏟아져나오는 광선처럼 솟아오르며 사라졌다. 놀랄 틈도 없이 말을 타고 창을 들고 있던 이매탈 부대가 창으로 영혼 노예들을 찌르자 그들 역시 똑같이 마치 검은 오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사람들처럼 찢어진 부적을 내던지며 하늘로 밝은 빛을 내며 솟구쳐 올랐다.
“곤나 돈데모나이 고도가[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이제 너희들 차례다.”
허리춤에 쌍도끼를 차고 있던 이가 붉은 기둥의 끝으로 말을 달려 공중으로 솟구치며 도끼를 빼어 들고 들고 있던 반야의 얼굴을 한 존재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그가 손에 끼고 있던 긴 칼 같은 장갑을 내밀며 공격을 막았다.
“고레이죠 본타이토 하나레떼 타타가우나오와 무리다[이 이상 본체와 떨어져서 싸우는 것은 무리다] 못다이나이케도 마다 아오[안타깝지만 나중에 보자]”
기분나쁜 쇳소리가 공중에서 울리고 붉은 기둥에 있던 존재들이 저마다 손을 모으고 사라지듯 형체가 흐릿해지다가 없어졌다. 동시에 붉은 기둥도 천막 같은 막도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마다 펄럭거리며 문자와 문양 같은 것으로 적힌 종이가 천천히 떨어졌다.
“다메데스.[안됩니다.] 토지코메마리마시다[갇혀버렸습니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바꿔가며 움직이던 여우 얼굴이 키츠네멘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다레가[누가]! 카나라즈 스베데노 손자이오 고로세[반드시 저 모든 것들을 죽여버려]!”
키츠네멘이 절규하듯 외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수옥(水獄)”
고운이의 목소리가 작지만 강력하게 화살처럼 꽂혔다.
달려들던 키츠네멘이 공중에 떠올랐고, 물방울이 보이며 물로 만든 사각 공간이 키츠네멘과 여우 얼굴을 한 존재가 함께 그 안으로 갇혀버렸다.
“고레이죠 다메데스. 슈군[이 이상은 무리입니다, 주군.]”
말을 마친 키츠네멘이 몸을 물 안에서 굴렸다. 그러자 여우의 형태로 변한 그가 입에서 불같은 구슬을 뱉어냈다.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물감옥이 터지고 물을 토하며 키츠네멘과 여우가 튀어나왔다. 콜록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키츠네멘의 앞을 여우가 젖은 옷을 털며 손가락으로 몇 가지 수인(手印)을 만들어내며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키츠네멘의 가면이 금이 찌직 가면서 그들이 연기 속으로 펑하고 사라졌다.
“이런!”
그들을 쫒으려는 우람이의 팔을 양반이 가만히 잡았다.
“놓아주자. 어차피 야스쿠니 신사에 깔려 있던 영혼들은 이제 모두 풀려났다.”
양반의 뒤에서 회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놈들이 할아버지를...”
우람이보다 훨씬 화가 나 있는 회광이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아니. 우리는 이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지. 이런 여우사냥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된다. 초랭이! 판을 열어 풀어줘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우현이 계기를 조작하자, 공간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 공간이 돌아오면서 키츠네멘은 여우와 함께 그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왜 여우를 그냥 보내준 거죠? 우리에겐 정보가 부족한 거 아니었나요?”
가장 먼저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진 것은 고운이였다.
“그놈들은 결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리고 필요한 정보는 포로를 잡아서가 아니라 풀어줘서 얻을 수 있는 거니까...”
세찬이가 들고 있던 검은 패를 허리에 차면서 대답했다.
“세찬아!”
우람이와 고운이의 눈에 뭔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세찬이가 서 있었다. 목에 걸린 방상이의 얼굴이 웃고 있는 듯이 흔들렸다.
회장이 걸음을 돌리며 대답했다.
“철수한다. 이제 우린 더 큰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나머지 동료들을 찾아야 하거든. 그들은 이미 한참 전에 눈을 뜨고도 우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봐야지. 그리고 나서 빼앗긴 우리 것들을 되찾으러 간다.”
회장의 뒤를 따르며 우현이 세 친구의 앞에 윙크를 해 보였다.
“말이 돼요? 그럼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실 걸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차에 오르자마자 들은 설명에 우람이가 버럭 화를 냈다.
“물론 할아버지를 미끼로 내놓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빨리 아무렇지도 않게 납치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우리는 탈의 원형을 할아버지가 옮기는 것처럼 보여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했던 계획이었다구!”
“차라리 우리를 미끼로 삼았으면 되었을 걸....”
우람이가 울컥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주먹을 꼬옥 쥐었다.
“아니야. 우리들이 움직였다면 그들은 결코 지금처럼 쉽게 속지 않았을 거야. 할아버지가 움직여서 그럴 거라고 정말로 믿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던 거라구. 할아버지에 대한 감시를 계속하던 그들은 이러는 편이 훨씬 더 믿기 쉬웠을 거야.”
고운이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꼬마 애기씨의 말대로야. 지금 최선은 그들이 있는 곳을 봉쇄하여 판을 만드는 것과 할아버지를 무사하게 구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이곳에서 멸절(滅絶)시키는 것. 그게 선생님의 계획이고 우리 목표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만남과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로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2부 끝...
3부에서 계속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다소 동화적 성격이 짙었던 1부에서 판타지 웹소설의 성격이 강한 스타일로 2부부터 탈바꿈을 했습니다.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2부를 연재한 것이 벌써 18일째였네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 이 남아 있습니다.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들이 나와 있는 인물들보다 훨씬 더 많으니까요.
무엇보다 이제 국내 편의 이야기의 시작이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성장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세계편을 시작하기까지도 한참이 남은 셈이니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안 한 셈이지요.
연재 전에 잠시 스포성 광고를 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웹툰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만간 그 작업과 동시에 해당 지자체(이젠 밝혀도 되겠죠? 안동시?)와 테마파크 사업까지 기획 하에 천천히 작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음악,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k-culture가 주류가 되어버린 작금의 시대가 도래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미국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애니메이션을 뒤집고, 한국을 대표할만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도 이제 나와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어차피 일본, 미국, 중국의 최상급 애니메이션의 작화에서부터 거의 전 과정의 스텝에서 감독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니까요.
<방상씨의 탈>이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바로 이 브런치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역사의 시작을 함께 해주신 독자이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