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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14. 2022

투자자와의 미팅 기본 프레젠테이션방식도 익히지 못했지만

결국 시장에서 배운 수많은 실패와 비아냥을 이겨내고 시장을 장악하다.

182번째 대가의 이야기.


체스키는 폴란드와 이탈리아 출신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체스키는 당시 최고의 명문이라는 RISD(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 ;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 진학하게 된다. RISD에 진학하고 나서 그는 자신의 괴짜 성향을 살려 학교 하키팀에 마스코트를 하나 남기게 된다.


스포츠에 도통 관심이 없던 동문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스코티’라는 누가 봐도 인상적인 마스코트를 디자인했다. 스코티의 디자인은 남성 성기와 매우 유사한 풍자적 모양이 특징인데, 현재도 RISD의 하키팀인 너즈의 마스코트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시에서 태어난 블레차르지크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신동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고등학교 때 스팸 사업자를 위한 웹 호스팅 사업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학비를 포함해 제법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버드대에 진학해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후 약 3년 동안 여러 IT 기업에서 수석 개발자로 일하다가 게비아의 권유를 받고 에어비앤비에 합류했다.


동갑내기였던 브라이언 체스키(Brian Joseph Chesky)와 조 게비아(Joseph Gebbia Jr)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인 대학인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만나 친해졌다.

체스키가 졸업을 할 무렵, 게비아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우리는 언젠가 회사를 창업할 거고 사람들은 그 회사에 대해 책을 쓰게 될 거야.”


체스키는 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직장을 구했고, 게비아는 RISD의 자매 학교인 브라운대에서 비즈니스 관련 공부를 계속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스비는 체스키에게 창업을 하자고 설득했고, 체스키는 무모한 도전을 하기를 어려워했기에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게비아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친구인 체스키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함께 하자는 권유를 하게 된다.


어느 날 체스키가 먼저 게스비에게 전화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자’라는 말과 함께 창업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날아온다. 하지만 청년들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학력에 대비하여 눈이 높았고 그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는 그들의 수준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좋은 직장에 계속해서 떨어지자 일단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지만, 결국 둘의 눈높이를 만족하지 못한 채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맘에 들지 않은 수준 낮은 회사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백수로 노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신세대스러운 결정을 한다. 심지어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 두 명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하지만, 직장도 없이 백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집주인 할머니는 아파트의 월세를 올려 받겠다는 통보를 한다. 당장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집주인 할머니의 요구액을 맞춰야만 했다.


체스키와 게비아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2007년 10월,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 산업 디자인 학회 연례 콘퍼런스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전국적인 학회였기였기에 주변 호텔은 이미 꽉 찬 상태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디자이너들이 호텔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을 보고 자신들의 위기를 타계할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여행객들에게 자신의 아파트 일부를 숙박용으로 빌려주고 아침까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에어베드(AirBed, 공기 침대) 3개를 구입하고 호텔을 예약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들의 방을 빌려주고 아침식사까지 서비스했다. 여행객들은 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호텔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에 합당한 금액에 가성비 만족도가 높았다며 호평했다.


호텔보다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1주일 만에 무려 1000달러의 돈을 벌어서 집주인 할머니의 억지스러운 아파트 월세 인상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2008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숙박 공유 서비스로, 손님이 방을 빌리는 값은 주인에게 지불하고 이를 중개해준 대가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시스템의 회사, 에어비앤비(Airbnb)를 창업한 1981년생 브라이언 체스키(Brian Joseph Chesky)와 조 게비아(Joseph Gebbia Jr)와 조 게비아의 예전 룸메이트이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엔지니어인 1983년생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 세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공식적으로 에어비앤비에서 방을 빌려준 사람을 ‘호스트’라고 부르며 들어가는 사람을 ‘게스트’라고 부른다. 원래는 호스트가 에어베드 같은 잘 곳을 빌려 주고 같이 아침 식사도 하자는(Air Bed & Breakfast) 의미로 출발한 사이트지만 지금은 조금 변질되어 방 하나 정도가 아니라 여러 개의 방을 고쳐서 집 전체를 빌려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수료는 숙박비의 6~12% 정도이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좋은 호스트를 만나면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보다 넓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과거형을 쓴 것은 세계에 코로나 허리케인이 집어삼킨 후 항공사업과 함께 큰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졸지에 쏠쏠한 수입을 본 두 친구는 이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렇게 홈페이지를 만들어 방을 빌려주길 원하는 사람과 호텔을 예약하지 못한 관광객들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이름은 자신들이 빌려준 공기 침대와 아침식사에서 따온 에어베드&브렉퍼스트(AirBed & Breakfast), 줄여서 ‘에어비앤비(Airbnb)’라고 짓게 된다.

두 사람은 먼저 젊은이들에게 혹할만한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한 명의 동업자를 더 찾았다. 게비아의 예전 룸메이트였던 개발자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함께하자고 권유했다. 블레차르지크역시 이 사업 아이디어가 괜찮은 아이템이라 여겨 바로 합류하게 된다.


이렇게 2008년 8월 셋은 에어베드&브렉퍼스트 닷컴을 오픈하고 사업에 나섰다. 그렇게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20대 중반이던 이 세 젊은이들이 시작한 기업은 불과 10년 만에 전 세계 2억 명 이상의 사용자, 20개의 지사, 26개의 언어를 지원하는 글로벌 숙박 공유 서비스로 급성장하게 된다.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몸값이 높은 유니콘 스타트업(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보유한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그 가치는 310억 달러에 이른다(2017년 투자 조사기관 피치 북 기준). 3000명을 조금 넘는 직원을 보유한 이 기업이 힐튼, 메리어트 등 100년 전통을 보유한 호텔 브랜드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숙박 관련 기업이 된 것이다.

체스키

현재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는 체스키이다. 신규 사업 진출과 다른 회사 인수를 결정하는 등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게비아는 최고 상품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에어비앤비 사업과 함께 ‘네이버후드’라고 하는 자신만의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네이버후드는 스타트업의 사무환경에 어울리는 모듈형 사무가구를 판매하는 업체이다. 자신의 전공이었던 산업디자인을 살린 그만의 새로운 도전이다.


블레차르지크는 최고 기술 책임자를 거쳐 최고 전략 책임자 겸 에어비앤비 차이나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쿠바, 중국 등 에어비앤비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진출이 어려운 국가에 에어비앤비를 안착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블레차르지크

처음 창업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해서 지난 콘퍼런스 같은 기회가 떡하니 세 사람을 기다려줄 리 만무했다. 낯선 여행객들에게 자신의 집을 빌려준다는 파격적인 개념 자체가 일반인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에어비앤비가 그들의 생각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에는 여행객들에게 집을 빌려줌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가 에어비앤비 외에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유사한 서비스가 이미 시장에 존재했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항상 빈방을 단기간 빌려준다는 광고는 인터넷에 꽉 차게 올라왔다. 심지어 최초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체스키와 게비아조차 에어비앤비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었다고 그들은 회고했다. 체스키는 훗날 월세를 내기 위한 돈만 벌고 더 좋은 아이디어로 다른 사업을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고 토로한 사실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업이라고 시작해놓았는데, 정작 수요는 생각보다 적었고,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빚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빚을 막기 위해 신용카드를 하도 많이 만들어 신용카드를 보관하기 위한 바인더까지 따로 구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사무실을 구할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결국 체스키가 사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15명의 직원이 체스키의 집에 옹기종기 모여 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체스키는 사무실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회사를 운영하고 서비스의 규모를 확대하려면 외부 투자를 받는 것은 필수코스였다. 하지만 투자자와 벤처 캐피털 측의 반응은 현실만큼이나 냉혹하고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관광객의 수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구체적인 지적을 하는 곳도 있었고, 자체 숙박시설 하나 없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곳도 있었다.


난립하는 숙박 공유 서비스 속에서 에어비앤비만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하나같이 가슴 아픈 핵심이었고 셋은 그렇게 한동안 아무런 투자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유지하기에도 허덕이는 현실에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사실 그들은 스타트업이라던가 창업에 대한 기본도 갖추지 못한 마음만 앞서간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였다. 특히 회사 경영이라고는 경험은 고사하고 공부한 적도 없는 디자이너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투자자와 벤처캐피털 측에서는 ‘당신들의 뭘 믿고 투자를 덜컥하라는 거냐?’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했다. 두 사람은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는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보다는 회사의 비전과 목표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학교 강의 프레젠테이션에서나 나올 스타일로 투자유지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심지어 체스키는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가 엔젤(엔젤투자자)을 소개해주겠다는 말을 하자 이를 ‘이 사람은 아직도 천사가 있다고 믿나 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업계 관련 지식이 전무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주변 지인들이 지원해줬던 것도 아니었다. 체스키는 사업을 시작한 후 LA에 거주하던 자신이 존경하던 디자이너에게 에어비앤비 사업에 대해 들려주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한 다음과 같은 답변뿐이었다.

“설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요?”


그런 시행착오 아닌 맨땅에 헤딩하기는 그들이 갖고 있던 절실함과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도리어 공부하기 시작하여 알게 된 ‘사용자 중심으로(on demand)’라는 콘셉트로 난국을 타개하게 된다.


셋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대선 정국이었다는 점을 활용해 수집 가치가 있는 아침 식사용 시리얼 ‘오바마 오스’와 ‘캡 앤 매케인즈’를 만들어 팔아서 회사를 근근이 유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도 회사의 본업을 잊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블레차르지크가 서비스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동안 체스키와 게비아는 뉴욕, 시카고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에어비앤비 사용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자신들의 집을 빌려주는 임대 사업자가 되어 달라고 마케팅에 나섰다.


고생 끝에 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치열함을 눈여겨본 인큐베이터와 벤처캐피털의 도움을 드디어 받게 된 것이다. 2009년 폴 그레이엄이 주관하는 인큐베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세쿼이아 캐피털로부터 58만 5000달러의 첫 투자를 받게 된 것이다.


이때에 맞춰 셋은 에어베드&브렉퍼스트라는 긴 이름을 대신 ‘에어비앤비’라는 간결한 이름으로 회사와 서비스의 정식 명칭을 변경한다. 침대 및 공용 공간만 빌려주던 서비스에서 주택 전체, 아파트, 성, 보트, 통나무집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빌려줄 수 있는 서비스로 변경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의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에어비앤비 본사

이를 바탕으로 현재 에어비앤비는 땅 위에 정식으로 세워진 주택뿐만 아니라 티피(아메리칸 원주민의 텐트), 이글루, 개인이 보유한 섬 등 사람이 숙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되었다.


폴 그레이엄과 와이 콤비네이터는 에어비앤비 서비스 발전을 위한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체스키에게 서비스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라는 조언을 했다. 서비스를 좋아하는 100만 명보다 서비스에 열광하는 100명이 더 낫다며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만 사업을 진행하지 말고 뉴욕에서도 사업을 진행하라고 권유했다.


이 조언을 새겨들었던 체스키와 게비아는 에이비앤비의 서비스 지역을 뉴욕으로 확대하고 에어비엔비에 참여하려는 호스트들의 집에 방문해 사진을 온라인에 일일이 찍어 올리는 열정을 보였다. 뉴욕에서 에어비앤비를 경험한 관광객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도 에어비앤비를 도입하고 싶어 했고, 이는 에어비앤비가 미국 전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큐베이터와 투자를 받고 1년 후, 5천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에어비앤비의 월 매출은 5만 달러로 10배 이상 상승했다.

세 사람은 무엇보다 수입이 적어 어려웠던 시기에서부터도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의 핵심 가치는 ‘쉽고 멋지게’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에어비앤비에 올라오는 숙박시설은) 누구나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멋져야만 했다. 그 핵심가치는 두 사람이 디자이너 출신이기에 나온 참으로 디자이너다운 발상이었다.


물론 뒤늦게 합류했던 블레차르지크는 체스키와 게비아의 이러한 철학을 현실화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개발자였다.


블레차르지크는 24시간 내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누구나 이용하기 쉬우며, 숙소 리스트는 멋지게 보이는 서비스를 구현해냈다. 마우스를 세 번만 누르면 예약을 완료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가치에 맞게 사용을 간편화 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숙소가 더욱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전문 사진사가 숙소를 무료로 찍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 모든 것은 앞서 설명했던 ‘사용자 중심으로’라는 서비스의 핵심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에어비앤비에겐 빈 집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준다는 핵심 사업 아이템을 공유하는 수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이들은 사용자 중심으로라는 에어비앤비의 핵심 철학을 흉내 내지는 못했다.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경쟁사를 제치고 숙박 공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노력을 하고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니 행운도 뒤따랐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많은 집주인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공급 급증에 힘입어 에어비앤비는 급격한 성장세를 타게 된다.


2011년 1월 회사 설립 후 3년 만에 100만 건의 예약을 수주했고, 1년이 지난 2012년 1월에는 500만 건의 예약을 받아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2011년 5월에는 독일의 유사 서비스 업체를 인수해 해외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후 런던, 파리, 밀라노, 바르셀로나, 모스크바, 상파울루, 서울, 베이징, 도쿄 등에 지사를 차례대로 설립해 전 세계적인 서비스로 거듭났다.

에어비앤비는 밀레니얼 세대의 선호와 소셜미디어의 확산 덕분에 사용자 수를 급격히 늘릴 수 있었다. 많은 사용자들이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이용함에 따라 호텔, 콘도 등 전통적인 숙박업소는 위기에 처했다. 호텔 컨설팅 기업인 HVS는 2016년 보고서를 통해 미국 뉴욕 소재 호텔들이 에어비앤비로 입은 피해는 연 4500만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물론 체스키와 에어비앤비는 이러한 조사 결과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체스키는 ‘에어비앤비는 호텔의 경쟁자가 아닌 숙박 업계를 함께 성장시키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내가 성공한다고 당신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는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들며 ‘여행과 숙박 산업은 시장 규모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에어비앤비와 호텔이 함께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다’라고 역설한다.


물론, 에어비앤비는 급성장만큼 많은 문제점도 낳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집주인과 관광객의 대립이다. 관광객이 집주인의 집을 망쳐놓거나(기물 파손, 마약 파티 등) 반대로 집주인이 관광객들에게 잘못된 서비스(감금, 몰래카메라 등)를 제공하는 문제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집주인과 관광객 모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현재 에어비엔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에어비앤비는 창립 이래 계속 적자였으나, 2016년 하반기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유사한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우버가 리프트, 디디 추싱, 그랩 등 경쟁자의 약진으로 적자의 늪에 빠졌던 것에 비해, 에어비앤비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고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 꾸준히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실 뒤에는 기존의 경쟁자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에어비앤비 모두 사들였다는 전략이 주효했던 탓도 있다.


7,8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 중반에 그저 백수가 된 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친구 두 명이서 쌈박한 디자인을 가지고 승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기존에 있었던 사업 아이템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자신들이 우연히 돈을 벌었던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낸다는 것은 그들 자신조차도 신뢰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고 그들마저 인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그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운이 좋아 잭팟이 터진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 보여 오늘 세 젊은이들의 좌충우돌 창업기를 오늘 당신에게 소개하였다.

자아, 생각해보라. 물론 투자자금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나름 홈페이지를 만들고 자신의 집에 15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모여 우글거리며 회사랍시고 운영을 했는데, 당장 제대로 된 투자를 받으러 다녔던 두 회사의 대표가 다니는 곳마다 들었던 비아냥은 그들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말로 사무실을 차리고 아이템이 좋은 회사들도 쉽게 투자를 받지 못하는데, 홈페이지 하나 딸랑 만들어놓고 무엇보다 그 아이템은 다른 회사에서도 이미 운영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투자한 자본이나 숙박업체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직접 제공하거나 직영하는 사업소조차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 당신이 투자자였다면 그들에게 투자를 선뜻해줬겠는가?


그렇게 훨씬 좋은 아이템과 심지어 특허를 낸 상품까지 있어도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망하는 스타트업은 세계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들이 지금의 에어비앤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투자자들에게 형편없는 아이디어라는 혹평도 수차례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버티는 과정에서 오히려 배우고 시행착오를 보완해나가며 끝내 성공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아주 쉽게 들리지만 결코 할 수 없는 것, 환한 미래의 청사진이 없는데도 자신을 믿고 끝까지 버텨내고 버텨내면서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으로 끊임없이 보완해내서 더 나은 형태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저 버티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적과 비아냥을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세 젊은이들은 그 비싼 수업료를 내가며 배웠고 그들의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현장에서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낼 것이다.


그들은 경영학 수업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비아냥과 욕을 먹어가며 힘겨운 걸음을 집으로 돌리며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갔고 기어코 그것을 자신들만의 자산으로 만들어 변화시켰다.


처음부터 무엇이든 잘하는 이는 없다. 실수나 실패를 해도 그것을 통해 배우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을 대비하지 못하는 자는 그저 실패로부터 도망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패인을 분석한 이는 바로 ‘다음!’을 외치며 어느 사이엔가 웃음을 머금게 된다. 이번엔 이렇게 졌으니 그것을 보완한 다음에 다시 빨리 붙어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버튼 하나 누르면 게임오버에서 다시 시작하는 쉬운 과정이 아니다.


특히나 수업을 들으며 배우는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하루하루 빚이 쌓여가는 입장에서 그런 멘땅에 헤딩하기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단순히 그들이 젊거나 그들의 집안에 돈이 많아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기 실수를 보완하고 그다음에 또 싸울 수 있다면 다른 굴욕적인 일을 해서 실탄을 메우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배우고 익혀 완성시킨 시스템을 시장에서 적용시켜보고 싶다는 신나는 마음에 그 힘겨운 나날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들은 다시 코로나 정국이라는 허리케인을 정면으로 맞으며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형태로 그 위기를 버티고 이겨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번 그런 경험을 했던 사람은 두 번째 그런 위기가 왔을 때 쉽게 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배워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많이 실패했고, 인생의 쓴맛에 힘겨워했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실패로만 받아들였다면 당신에게 남은 것은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다시 복기하고 익혔다. 당신이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때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당신의 마음과 머리, 그리고 가슴에 새겨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쉽게 사그라 들거나 한 방에 날아가지 않는 법이다. 이제 그만한 실패를 경험으로, 자산으로 환치한 당신에게 무엇이 두려우냔 말이다. 이제 당신이 익히고 배우고 단련한 그것을 적용할 일만 남았단 말이다. 얼른 부딪혀보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고난에서 당신의 실패에서 태어난 당신만의 자신감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고 다시 한번 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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