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Mar 19. 2022

해킹피해 환불 원정대(Feat. Apple사) - 1편

사회는 결코 한 마리 쥐가 좀 먹는 것이 아니다.

1월 15일 토요일의 일이었다.


매주 한번 유일하게 캠퍼스를 나가는 장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버스 안에서 이메일을 체크하는데, 매달 오는 카드사의 결제 예정 내역이 도착해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5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었기에 정기결제를 연계해놓은 것 말고는 특별히 돈이 나갈 것이 없을 텐데, 결제 예정금액이 200만 원이 훨씬 넘어 있었다.


‘뭐지, 이건?’


금액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 내역을 살펴보았다. 다른 고정 내역을 빼고 뜬금없이 핸드폰을 결제하는 통신사의 금액이 200만 원이 조금 못 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어이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 요금은 통신사에서 사용하는 가장 최상위 VIP 요금제였지만, 나는 면제 제공을 받고 있던 터였다. 즉, 나는 통신요금을 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체크해보니, 통신사 사용내역에 ‘부가서비스- 애플 서비스’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고 토요일이라 어차피 SK텔레콤에 전화를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뭔가 이상해서 서울의 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오면서 한국 전화기의 유심을 딸의 아이폰에 심어주고 한국 전화의 쇄도로부터 해방을 느끼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딸 역시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으로 소액결제 서비스 따위를 신청한 적도 없고 핸드폰으로 소액결제를 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 SK텔레콤에 긴급 연락을 했더니 보이스피싱은 아니고, 애플사에 직접 문의를 하시라며 핸드폰 소액결제가 신청되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생전 통화해본 적이 없는 ‘그 대단한’(이 표현을 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후술 하기로 한다.) 애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아 자신들은 주말에서 저녁 10시까지 전화서비스를 하니 언제든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친절한 척(?) 매뉴얼대로 원고를 잘 읽어 내려갔다.


통화를 통해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200여만 원의 청구금액은 애플의 특정 게임에서 아이템 결제로 수차례 결제된 금액이라고 친절하게(?) 읽어주었다. 더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 상담원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속을 억누르며 물었다.


“기본적으로 돈이 결제가 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제를 승인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SK텔레콤을 통해 결제를 하겠다는 승인을 이미 하신 상태이기 때문에 통신사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씩 정리합시다. 첫째, 나는 게임을 하지 않구요. 둘째, 지금 그쪽에서 설명한 것처럼 무엇보다 핸드폰 소액결제가 인증이 되려면 SK텔레콤에서 승인이 되어야 지금처럼 청구가 가능할 텐데 나는 신청을 한 적이 없어요.”


“으음. 그건 저희는 알 수가 없구요. 일단 데이터 상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해당 아이디로 게임을 사용하며 유료 아이템을 수차례 결제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구요. 해킹 피해가 의심되는 사례 같은데 그 게임이 일단 뭡니까? 여러 가지인가요?”


“잠시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닙니다. 한 가지 게임만 사용하셨고, 유료 아이템을 수차례 구매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게임 이름은 <앙상블 스타즈>입니다.”

“난 처음 듣는 이름으로, 어찌 되었든 내가 사용하지도 않은 결제 금액을 결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런 경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이 상담원은 여유와 웃음을 어색한 영문을 번역하여 옮겨놓은 매뉴얼대로(?) 교육받았던 대로 말했다.


“고객님이 얼마나 황당하시고 속상하실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이의를 신청하실 수 있고, 지금 이렇게 전화를 주셨으니 저희 상담원에게 이의신청을 대신해달라고 요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이의신청을 대신 접수해드릴까요?”


“네. 그래 주면 고맙겠네요. 그러면 이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나요?”


“오늘 말씀해주신 내용을 제가 메시지의 형태로 전달하여 이의신청을 하면 48시간 이내에 회신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받게 되죠?”


“이메일로 연락드리고, 저희가 연락을 드립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48시간 기다리면 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1월 18일 화요일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18일 화요일이 되었지만, 이메일도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19일에 약간 짜증 난 상태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이전 상담원의 이름도 알 수가 없고 그 상담원과 연결될 수도 없겠지만, 기록에는 모두 남아 있을 테니 문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전화가 연결된 상담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기계적인 친절함을 내장하고 말했다.


“이전 상담원이 뭔가 잘못 안내를 드린 것 같네요. 저희는 따로 이메일을 보내드리거나 연락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건 잘못 안내했다고 보기엔 너무 얘기가 다른데요? 하여간 일단 그 이의신청은 그래서 결과나 나온 건가요? 피드백을 해줘야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하셔야 하는 거구요. 지금은 이렇게 전화 주셨으니 제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해킹으로 인한 피해이고 내가 사용하지 않은 거액의 금액을 청구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니 문제만 해결되면 그뿐이라는 생각에 참기로 했다.


“아, 이의신청이 기각되었네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도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구요. 알려드릴 수도 없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속상하신 마음 저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너무 답답해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재 이의신청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검토를 요청하게 되고 48시간 이내에 다시 답변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신청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상위 부서에서 검토를 하게 되는 건가요?”


“그건 저희도 잘 모르구요. 이의신청 내용을 다시 재검토해달라고 본사 서버에 보내는 거구요. 다만, 두 번째 이의신청을 하셨는데도, 기각이 될 경우에는 다시는 이의신청을 하실 수 없게 됩니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재검토를 요청하는 게 상위부서에서 검토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전과 동일한 프로세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재검토 신청을 해봐야 기계적인 답변이 나올 텐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 게다가 이전 상담원이 그런 식으로 대충 처리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건 애플 쪽의 실수인데 그쪽에서 제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뭘 모른다는 거죠? 미안하지만 이런 일선 상담원 말고 책임자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제가 선임 상담원입니다.”


“미안한데, 내가 직업상 이런 법적인 사례들을 많이 다루는 탓에 통화를 녹취했습니다. 이전 상담원의 실수에 대해서 증빙해야 할까요? 상담전화가 연결되기 전에 그쪽에서도 서비스 개선을 위해 통화를 녹취한다고 동의를 구하던데 그렇다는 건 그쪽에서도 이전 상담원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네? 지금 녹취하셨다고 하셨나요?”


“네. 지금처럼 한 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말을 바꾸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죄송하지만, 저는 통화 녹취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죄송하지만, 대화의 당사자가 통화를 녹취하는 경우, 대한민국의 현행법에서는 상대방의 녹취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해당 녹취는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통화도 녹취를 하고 계신가요?”


목소리만으로도 20대 초반임이 티가 두루두루 나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선임상담원이라면서요? 그 선임이라는 게 상담원 중에서 반장 언니를 의미하는 건가요? 최소한 책임자를 찾았을 때 본인이 책임자라고 대답하고 응대를 나설 정도라면 이 정도 상식은 가지고 있겠지요?”


뚜뚜뚜뚜----


“여보세요?”


전화가 끊겼다. 처음엔 국제전화라 뭔가 통신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싶어 다시 걸었다. 하지만 연결된 기계적 친절함을 내장한 어린 상담원과 조금 얘기를 하고 나서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네. 방금 통화하던 선임상담원과 전화가 끊기셨다구요? 잠시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어떻게 된 거죠?”


“아, 혹시 지금 통화를 녹음하고 계신가요?”


“네? 그건 왜 갑자기 묻죠?”


“저는 통화 녹취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동의하냐고 묻지 않았는데요?”


“그럼 통화 녹음 중이신가요?”


“네. 그렇다면요?”


뚜뚜뚜뚜....


그랬다. 애플 고객센터의 어리고 미숙한 상담원들에게 기계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철칙 중 하나인 것을 나중에서야 확인했다. 그들은 자신들과의 통화가 녹취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무조건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924


매거진의 이전글 도대체 구독자가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