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쳐 든 세찬의 아빠가 뛰어나가는 아들의 뒤를 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새 학기 첫날부터 지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달려는 수밖에 없지. 도통 늦잠이라고는 모르던 녀석이 이제 사춘기라도 밤새 뭘 하길래 아침에 깨워도 못 일어난 거야?”
“그러게요. 생전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그러지 않던 애가 요즘 좀 이상하다니까요.”
“으음. 이제 우리 세찬이도 사춘기가 오는 건가? 당신이 좀 잘 지켜봐야겠는데...”
“사춘기의 아들은 아빠 담당이라구요! 당신은 의사라는 양반이 그것도 몰라요?”
“으음, 그런가?”
요즘 부쩍 자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면서도 이제 어린아이만 같지 않다는 생각에 세찬이 아빠의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그가 읽던 신문에 실린 칼럼의 작은 사진 속 의사 가운의 여자가 새초롬하게 웃고 있었다.
“자자! 어떻게 새 학기 첫날부터 지각을 할 생각을 하냔 말이다! 요 녀석들아!”
막 교문을 통과하며 건물로 뛰어들어가는 세찬이와 다른 친구들을 보며 학생주임이 외쳤다.
“후우! 정말로 지각하는 줄 알았네.”
교실에 들어와 막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기가 무섭게 조례를 위해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아, 오늘은 입학식 끝나고 첫날이다. 첫날이라도 너무 들떠서 사고칠 생각하지 말고, 아직 너희들은 중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7학년쯤인 거 나도 알고 너희도 아니까 괜한 중학생 코스프레하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얌전히 완전한 중학생이 되기까지 차분하게 지내도록 하자. 알겠지? 그리고 요 며칠 안에 반장 선거도 해야 하니까 마음의 준비들도 잊지 말 것!”
드르르륵
막 담임 선생님의 훈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교실의 뒤쪽 문이 열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뒤쪽으로 쏠렸다.
“뭐지?”
문은 열렸는데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어이 거기 기어들어오는 학생! 니가 뱀이냐?”
“네?”
몸을 최대한 낮춰 낮은 포복자세로 기어 들어오던 듬직한 체구의 남학생을 보며 담임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막 주섬주섬 일어나는데 남학생과 세찬이가 눈이 마주쳤다.
“어?”
“히히!”
우람이었다. 우람이가 세찬이에게 찡긋 윙크를 해 보이고서는 담임선생님을 향해 앞으로 걸오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실 아침 일찍 왔는데, 매점에서 파는 국수가 아침에 있다고 해서 그거 먹다 보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보게? 새 학기 첫날부터 매점의 국수를 아침으로 먹고 오느라 늦으셨다? 아하! 네가 우람이구나?”
“네? 저를 아세요?”
“야! 강남 한복판에 저 이름도 생소한 안동 시골에서 올라와 버젓이 새 학기 첫날 전학의 형태로 입학한 녀석을 어떻게 담임인 내가 모를 수가 있겠냐?”
“히히히. 그런가요?”
“국수는 맛있게 드셨고?”
담임이 넉살 좋은 우람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 장터에서 먹던 국수까지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저희 고향 쪽에서 오신 분인지 아주 국물이 제대로더라구요. 든든하게 맛나게 잘 먹고 왔습니다.”
“그래. 그래도 삐질거리는 강남 녀석들보다 시원시원해 보이니 좋구나. 얼른 가서 자리에 앉거라.”
우람이가 싱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헤매고 있자 학생들이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졌다.
“에구 녀석아! 저기 빈자리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니 자리다. 자아, 그럼 조례는 이걸로 끝내고 수업 잘 듣고 이따 종례시간에 보자.”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 세찬이가 벌떡 일어나 막 자리에 앉아 가방을 펼치는 우람이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어? 세찬이 넌 몰랐어? 난 너한테도 회장 아저씨가 얘기한 줄 알았는데?”
“회장 아저씨가?”
“응. 아무래도 훈련도 그렇고 아무래도 안동에 있으면 기동성이 떨어진다나? 그래서 회장 아저씨가 장학금 주는 걸로 해서 서울 학교로 전학 오는 걸로 결정했어. 엄마랑 아빠는 서울 강남의 중학교로 들어간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시면서 당장 보내주시던걸?”
“그러면 부모님이랑 다 함께 올라온 건 아니구?”
“응. 일단 회사 기숙사에서 우현이 형이랑 같이 살면서 상황을 보기로 했어. 원래 회장 아저씨가 아빠 일자리도 그렇고 서울 쪽으로 모두 올라오라고 제안은 하셨는데 아빠가 원래 하시던 일이 아니라고 너무 큰 호의는 함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고 거절하셔서 일단 나만 유학 오는 걸로 됐어.”
“아, 그러면....”
막 세찬이가 뭐라고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첫 수업의 담당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세찬이와 우람이는 한 교실에서 새 학기 첫날을 맞이했다.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는 교문 앞으로 검은색 밴이 가로막고 섰다. 교문으로 내려오는 언덕에서 벌써부터 여학생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이제 나오시나 보네.”
매니저 한석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로드 매니저도 부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온 참이었다. 구름 떼처럼 여학생들이 뭉쳐 있는 가운데로 키가 훤칠한 산이의 반달눈이 보였다.
반달눈.
언제나 웃고 있어 눈동자를 볼 틈이 없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준 산이의 별명이었다. 정말로 마냥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내내 웃고 있어 눈웃음을 그려놓은 눈처럼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기가 어려운 얼굴이었다. 실제 성격도 그랬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힘들어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그룹을 이끄는 리더이자 센터였다.
“어? 형이 웬일이에요?”
다른 학교에서 수업도 째고 원정까지 와서 산이의 얼굴을 보겠다고 꺅꺅거리는 여학생들까지 몰려드는 상황에도 산이는 해맑게 매니저를 보며 물었다.
“됐고. 일단 타. 여기 있다가 얘들한테 맞아 죽겄다.”
“네.”
차에 막 타서 밴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산이를 따라와 차 안을 들여다보겠다고 달라붙어 있던 여학생들이 하나둘 뒤로 물러섰다.
“하여간 쟤들도 문제다. 차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렇게 목숨 걸고 달라붙는다니?”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만?”
산이 막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운전하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응? 너 요즘 많이 힘들다며? 그래서 대표님이 어렵게 그 유명하다는 선생님한테 예약을 했단다.”
“네? 유명한 선생님이요? 그게 누군데요? 왜 저만 가요? 수업 끝나자마자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연습도 아니고 저만 부른 거예요?”
“잠자코 따라와 보면 알아. 너한테만 특별히 조치해주는 거니까 고마운 줄이나 알어.”
“형. 혹시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난 기억도 안 난다니까.”
“알어. 나두 그때 니가 제정신 아니었다는 거 직접 봐서 잘 안다구. 그러니까 오늘 가서 그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겠다는 거잖아. 방송가에서도 그렇지만 자꾸 이런 말이 나오면 너희 방송 활동에도 그렇고 자꾸 이상한 얘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일단은 대표님이 어렵게 수소문해서 섭외한 선생님이니까 가서 얘기를 좀 들어보자.”
“선생님이라는 게 누군데요?”
“가보면 알어.”
매니저 한석은 머리가 복잡했다.
어젯밤 대표에게 불려 가서 나눈 대화가 다시 그의 머릿속에 복잡하게 이리저리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여러 개의 공이 튕겨 나오듯 포물선을 그려나갔다.
“이 정도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으면 보고부터 했었어야지 이 무식한 놈아!”
대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석을 다그쳤다.
“죄송합니다. 그냥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버젓이 다 찍혀 있을지 몰라서요.”
“아무래도 이대로 그냥 가는 건 안될 것 같다. 한율이가 문제가 아냐. 산이를 우리가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키웠냐? 그런데 이제 정점에 올라서 꽃 피울만한데 이런 일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지?”
“예. 대표님.”
“그래서 말인데, 내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정치권에서도 한번 만나려면 반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신기 내린 무당을 찾았다. 얘기는 다 해뒀으니까 내일 산이 데리고 가서 만나봐.”
“무당이요?”
“내가 그 영상을 봤는데, 아무래도 이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야. 너도 봤을 거 아냐? 그게 우리 산이 얼굴이디?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안 그래?”
대표는 다시 생각해도 그 공포스러운 사천왕의 노기 어린 얼굴을 띤 산이의 얼굴에 소름이 끼쳤다.
“대표님. 산이가 들으면 아무래도...”
“왜? 지 잘되라고 그러는 건데, 일단 어디 간다고 얘기하지 말고 내일 아침에 바로 불러서 데리고 가봐.”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산이 내일 고등학교 입학하고 첫날이라고 학교 절대 안 빠지죠. 아이돌 활동하는 계약서에 유일한 조건이었잖아요. 학교 수업을 무조건 빠지지 않는다.”
매니저 한석이 곤란한 얼굴로 대표의 눈치를 봤다.
“에휴! 지금 이 상황에 학교가 문제냐? 이 화상들아. 누가 동자승(童子僧)* 출신 아니랄까 봐. 이렇게 꽉 막힌 소리를 하고 그러냐?”
“아무리 힘든 밤샘 연습이고 스케줄 강행군도 군소리 없이 하는 녀석이라 뭐라 할 수도 없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학교 빠지라는 말만 나오면 정색을 하고 단호해진다니까요.”
“알았어. 그러면 학교까지 가서 끝나자마자 데리고 태워서 다녀와. 그래서 일단 산이 녀석을 제대로 보이고 부적을 받아오든 굿을 하든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받아와.”
“알겠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받아와라. 두 번 말 안 한다.”
대표는 다시 한번 한석에게 다짐을 받아내고는 심란한 듯 커피를 술 마시듯 벌컥거리며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