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통로로 된 일식집의 가장 안쪽의 문만 닫혀 있었고 긴 테이블로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눠 앉아 심각한 얼굴로 맨 끝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가장 안쪽이었고, 문도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는 방 전체를 휘감듯 울려 퍼졌다.
“죄, 죄송합니다. 다 잡은 기회였는데. 그게...”
“그게....?”
문 저편의 묵직한 저음이 떨며 땀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혀가고 있는 남자의 말꼬리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제, 제가 반드시 남은 탈들을 찾아오겠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쓸모없는 놈! 내가 얼마나 죽을 고생을 해서 로비를 한 건데...”
중간 즈음에 앉아 있던 여자 국회의원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방 저편의 눈치를 보며 한 마디를 보탰다.
“그렇지 않아도 위안부 집회니 뭐니 다시 시끄러워져서 움직이기도 만만치 않은데....”
그녀가 문 안쪽의 눈치를 보며 남자를 탓하려고 떠드는데 다시 안쪽에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누가...”
그녀가 다시 거북의 목이 움츠려들 듯이 쏙 자리에 앉아 눈치를 살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도 된다고 했지? 네가 여기서 목을 빳빳이 세우고 말할 수 있는 서열이던가?”
“죄, 죄송합니다.”
불똥이 여자 국회의원에게 튀었는지 여자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되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며 불안해했다.
“너의 아버지대에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 대에 어떻게 우리 덕분에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는 것들이 되었는지 벌써 잊었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어떻게 그 은혜를 제가 감히 잊을 수가...”
“그럼 그 입 다물라.”
“하이.”
“이 땅은 우리가 대동아 제국으로 대륙을 뻗어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도약대로 사용되었던 땅이고 이곳에 사는 것들은 모두 신민(臣民)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지금 이따위 꼴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말이다. 모두 지금의 자리에 누구 덕분에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의 쩌렁쩌렁한 일갈에 기운이 퍼지며 양측으로 도열해 앉은 사람들에게 바람이 날리듯 차가운 기운이 파도처럼 퍼지며 뺨을 때렸다. 마치 겨울의 냉기 어린 혹한의 바람처럼 매섭게 직접 얼굴을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리를 매만지고 온 짜리 몽땅한 여자 국회의원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거나 변호사 배지를 달고 있었다. 언뜻 경찰의 문양이 그려진 시계를 차고 있는 반백의 남자도 있었고, 방송가에서 패널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여자도 있었으며, 국세청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업무를 하는 이에서부터 각 기관의 간부라고 하는 이들이 고르게 섞여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나,. 남아 있는 탈을 찾을 방법을 꼭 찾겠습니다.”
“아니. 넌 늘 그렇듯이 내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그저 그거면 되는 것이야. 너희가 언제 너희 머리를 쓰며 사는 민족이던가?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주는 말 역할이나 잘하란 말이다.”
“하, 하이!”
머리를 바닥에서 좀처럼 들어 올릴 엄두도 내지 못하던 그가 겨우 고개를 들며 일어섰다. 마츠모토였다. 마츠모토는 목덜미가 잔뜩 흐른 땀으로 흥건해져 반쯤 다 젖어 있었다.
“요즘 경제계 쪽으로 자금이 흘러들어 가게 하는 것은 어찌 되어가고 있나?”
“네. 사채시장이 급격히 양지로 나오게 되면서 제2금융권이 회사의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해서 저희 쪽 자본이 일정 부분 깔려 있어 언제든 뒤흔들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최근 케이블 쪽의 광고가 많아진 대출업체의 사장 명함을 앞에 둔 남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최근 한류 그룹들이 많아지고 있던데 연예계 쪽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연예계 쪽이라 하시면....”
마츠모토가 손수건이 다 젖을 정도로 얼굴을 씻어내며 다시 방 안쪽을 향해 물었다.
“최근 우리 대일본 제국의 문화가 조금 주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 문화라고 하면 못살겠다며 달라붙는 오타쿠들이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 관련 가게들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12살의 생일에 눈을 뜬다는 조건을 탈의 영혼이 원한다면 그것들이 눈을 뜨기 전에 막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기에는 연예계 쪽을 통해 아이들을 우리 목적대로 돌려놓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그렇다 하시면...”
마츠모토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그에게 다시 되물었다.
“어떤가? 키사키!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해온 ‘핫 스타즈’도 제법 인지도가 높아져서 한류 그룹 쪽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본토의 음악풍이라던가 본래 일본식의 화장법이라던가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그룹 멤버들을 통해 마니아층과 오타쿠들을 포섭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멤버들의 사건은 잘 마무리한 것인가?”
“아, 그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서 그쪽에 사람을 붙여두었습니다. 히카루의 말에 의하면 상대가 영적인 힘을 사용하는 상대가 분명하다고 했었는데, 그날 방송국에서 그 일을 당하고나서부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워낙 놀라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쪽 놈들에게 당한 것은 아닌가 싶은데,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조선이 마치 새로운 나라인 양 독립된 나라인 양 그렇게 설치고 커지고 세계인들에게 인식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 각별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탈의 영혼을 사용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나머지 탈의 영혼을 하루라도 빨리 주군의 명령대로 막아내지 못하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알겠나?”
“하!”
키사키는 최근 있었던 사건 때문에 그런 추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불쾌했지만 그런 내색을 그의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아, 그리고... 본토에서 오기로 했던 지원 해주기로 한 주술사는 어찌 되었나?”
“조만간 들어온다고...”
키사키라고 불린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주변머리는 짧게 인디언처럼 문양을 낸 남자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잠시 정전인 것처럼 전기가 깜박거렸다.
“뭐,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경찰의 로고가 그려진 시계를 차고 있던 남자가 막 일어서려는데, 빈자리였던 그의 옆자리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이. 스데니 토오차쿠시테오리마시타[네. 벌써 도착해있었습니다.]”
마치 속삭이는 듯한 어둠 속에 스며들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경찰 간부는 흠칫 놀라 그의 모습을 쳐다봤다. 중세의 마술사처럼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하지만 굉장히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다부진 체격이었다. 등이 무척이나 굽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웅크리고 있는 듯한 자세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오, 와있었는가? 그래 본토에서 명성이 자자한 자라 하더니 실력도 그러한가?”
“슈쿤와 이마 코노 조오쿄오오 타이헨 신파이시테이마스. [주군께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굉장히 큰 우려를 하고 계십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대까지 부른 것 아닌가? 지난번 키츠네멘이 저 바보 같은 마츠모토와 그들의 함정에 빠져 대 일본제국의 체면에 금을 가게 한 것에 대한 확실한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코코 스우지츠 코노 치노 키운오 시라베타 토코로 와레와레가 타치킷타토 오못테이타 먀쿠가 후타타비 츠즈이테이루 코토가 타스우 카쿠닌사레마시타[요 며칠 이 땅의 기운을 조사해본 결과, 우리가 끊어놓았다고 생각했던 맥이 다시 이어져있는 것을 다수 확인하였습니다.]”
“그럴 리가... 불과 몇 년이나 지났다고 그것을 다시 이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방 안쪽의 남자가 불쾌해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와타시가 코노 치오 하나레테 스데니 햐쿠 넨치카쿠 탓타노데 와타시노 조오쿄오토와 즈이분 치가우토 오못테이마시타가 코레마데노 호오코쿠레베루이조오데스 노코리노 타루 카멘노 레에콘가 마다 메오 사마시테이나이토 유우 요소오모 카와리마스[제가 이 땅을 떠난 지 이미 10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제가 있었던 상황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이건 그간 보고받아왔던 수준, 그 이상입니다. 나머지 탈의 영혼이 아직 눈을 뜨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꽝-
방 안쪽에서 테이블을 크게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주술사라고 불린 존재 이외에 도열해 앉아 있던 사람들이 움찔하며 몸을 사리며 눈치를 살폈다.
“난닷테? 소레데와 슈쿤노 케에카쿠니모 몬다이가 쇼오지루노데와 나이카[뭐라구? 그러면 주군의 계획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화가 많이 났는지 방 안쪽의 남자는 어느 사이엔가 일본어로 날카롭게 되물었다.
“소레가 초토 오카시이데스 이젠니 스가타오 아라와시타토 유우 손자이토와 치갓테 키운와 칸지라레마스가 마다 효오멘니 다시테 카츠도오오 미세나이노모 오카시이데스네 모오 스코시 시라베테미루베키데스가 타시카니 메자메타 손자이노 키운가 츠요쿠 칸지라레루노와 지지츠데스 시카모[그것이 좀 이상합니다. 기존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존재들과 달리 기운은 느껴지지만 아직 표면에 드러내놓고 활동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합니다. 좀더 조사해보아야겠지만, 분명 눈뜬 존재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시카모[게다가...?]”
“하지메테 미루 메가 욘 츠닷타토 유우 소노 카멘노 손자이가 키니나리마스 맛타쿠 베츠노 손자이노요오데 와타시사에 하카리시레나이 레키시오 모츠 손자이카모 시레나이노데[처음보는 눈이 네 개였다는 그 탈의 존재가 마음에 걸립니다. 전혀 다른 존재인 듯하여, 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역사를 가진 존재일 수도 있기에...]”
“아나타호도노 손자이가 오소레루요오나 손자이가 코노 치데 와가 다이니혼테에코쿠니 타이테키데키루 하즈가 나이자 나이카[당신정도의 존재가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이 땅에서 우리 대일본제국에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흐흐흐흐흐흐.”
갑자기 그가 대답을 하지 않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듯이 소리를 울렸다. 그 웃음소리는 길게 이어진 방안을 가득 채우며 사람들의 표정을 일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치카이 우치니 초쿠세츠 와타시가 돈나 손자이나노카 미루 코토가 데키루요오니 시마스 히사시부리니 치가 와키하지메마스네 와타시가 토지코메테오이타 마사니 코노 치데데스 데와 쿄오와 코코데[조만간 직접 제가 어떤 존재인지 보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피가 끓기 시작하는군요. 제가 가두어두었던 바로 이 땅에서 말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그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불이 다시 깜박거리며 암전이 이루어지는 듯하더니 자리에 흰모래 같은 연기가 꺼지며 그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옆에 앉아 그의 등장과 그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경찰 간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