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이상을 그렇게 연장해드리는 것은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시스템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그때는 불가피하게 아예 중지를 하시던가 해야 하는데...”
“왜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거죠?”
“죄송합니다만, 그게 저희 카드사에서 직접적인 결제가 되는 경우에는 대처할 수 있지만, 통신사를 통해 한 다리 걸러 결제가 된 것이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그러면 보이스 피싱의 진화된 형태들이나 해킹을 통신사를 통해서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죠?”
어이가 없어 날 선 말이 나오려고 하던 중,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시스템이....”
“시스템 때문이라는 소리 그만하시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하고 통신사에 이 부분이 정말로 시스템 때문에 그러는 건지, 그리고 원천적인 해결방법이 정말로 없는 건지 알아보고 다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도록 하지요.”
“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꾸지람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요. 난 양해해준다고 말한 적 없고, 특히 응대를 그따위로 했던 실장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만....”
“아,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당장 알아보고 사과 전화라고 올리라고 할까요?”
“내가 그 껍데기만 번드르르한 사과받는 건 의미도 없고, 그 친구에게 가장 따끔한 건 실질적인 징계일 테니까 본사의 관리자 입장에서 확실하게 문제시하여 중징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식적으로 경고하는 절차를 밟아주시고, 다른 소비자들에게 그따위 안일한 응대를 다시는 하지 않도록 조치해주세요.”
“그, 그건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확인까지 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월권이다 싶어 거기까지는 안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해서 알아들으셨으리라 생각하는데, 피드백을 받지 않아도 내 루트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확하게 처리 부탁합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하고 통신사와 통화하고 난 뒤, 도움이 또 필요하면 연락하지요. 그럼 먼저 끊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딸아이에게 귀찮겠지만, 전화기를 들고 경찰서로 가서 해킹 피해 신고를 접수하라고 일러주었다. 또 경찰서에 갔다가 얼마나 시간을 낭비할지 몰라 바쁘다며 나중에 주말 저녁시간을 이용해 가겠다는 볼멘소리를 듣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SK 텔레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해킹 피해로 금액이 인출되신 건가요?”
상담원은 상담한 척(?)하는 목소리로 응대하는 듯했지만 문제의 사안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다시 말하면, 인출은 아직 안되었구요. 애플 아이폰으로 통해 앱스토어의 특정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매했다면서 200여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 결제되었는데, 그게 SK텔레콤에 연계가 되었다면서 부가 서비스로 결제될 예정이라고 카드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현재 카드사에는 한 달 결제를 미뤄둔 상태인데, 카드사 측에서는 일단 SK텔레콤에서 자신들에게 청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도와줄 수 없다고 이쪽에 문의하라고 해서 연락한 거라구요. 나 벌써 세 번째 이거 설명하고 있는 거 맞죠?”
“죄송합니다. 일단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은데요. 지금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건, 소액결제 신청을 2021년 11월 9일 저녁 10시 30분경에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해 요청하셨고, 승인 관련 SMS 문자가 발송되었다는 것까지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9월 10일에 한국에서 출국해서 여태 외국에 체류 중이라고 아까부터 말했잖아요.”
“그건 저희는 알 수가 없구요. 저희는 SMS로 정상 문자가 나가 인증을 받아 소액결제가 승인되었다는 점만 확인해드릴 수 있습니다. 애플 측에서 게임 아이템의 구매로 거액이 결제되었고 그것이 고객님이 사용하시지 않았다면, 그건 애플사측과 해결한 문제이지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는 나름 자신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강변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러면 SK텔레콤에 결제하지 않으면, 그냥 카드결제를 막아버릴까요? 그건 SK텔레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결국 고객님의 전화가 끊기게 될 테고 고객님이 불편해지실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당신도 일 마치고 퇴근하면 똑같은 고객의 입장이잖아요. 내가 쓰지도 않은 해킹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금액에 대해서 고객이 알아서 처리할 때까지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 일단 납부하라고 하고 자기네는 모른다고 하는 게 말이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애플사에서 해킹당한 것도 당한 거지만, 그렇게 말하면 애플을 통해서 신청하는 소액 결제를 인증 문자만 내주고 확인했다는 식으로 SK텔레콤이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그러면 애플 앱스토어를 통하기만 한 해킹이면 SK텔레콤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식이네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희 회사에서 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 봐요. 그러면 그쪽 서버에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체크해주겠다고 해도 지금 이해할까 말까인데, 무조건 돈은 결제하고 나서 애플에 따지라고 하는 게 말이 돼요?”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건, 언제 소액결제를 신청하셔서 SMS 문자를 받아 인증하셨는지의 날짜 정도밖에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하네요. 본인 상관이 누굽니까?”
“네? 제 상관은 왜 찾으시죠?”
“당신이 지금 계속 매뉴얼에 나와있는 내용만 책처럼 읽으니까 말이 통하는 사람한테 당신의 이 잘못된 응대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지요.”
“제가 뭘 잘못했죠?”
“뭘 잘못했는지 지금부터 다시 설명해줘야 하나요?”
“네?”
“당신 상관이 누구냐고! 내가 본사에 직접 연락을 취해야 하나?”
언성이 높아지자 그녀가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인지한 듯 말했다.
“본사에서는 전화로 응대하는 부서나 사람이 없습니다. 저희 팀장님이 연락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실장 김현선이라고 합니다. 저희 상담원 때문에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안에 대해서는 설명을 간단히 듣고 통화 내용 녹취도 스킵해서 중요한 부분을 듣고 연락드렸습니다.”
나름 아까 상담원보다 나이도 있고, 실장이라면서 상담센터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듯하는 톤이 군기를 꽤나 잡는 스타일인 듯했다.
“그쪽의 설명만 들었을 테니 내가 지금부터 2분간 뭐가 문제인지 간략하게 내 입장에서 브리핑해줄 테니 사실관계가 뭐가 다르고 입장 차이가 뭔가 들어보세요.”
그렇게 간략하게 2분간 핵심만 설명하자 그녀가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실 아까 상담원의 무례한 태도까지 감안하면, SK텔레콤에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소액결제 승인 건부터 해킹당한 것이니 그 문제의 해결까지 요구하고 싶지만, 상황 자체가 애플사의 아이디 해킹에서 출발한 것 같으니까 애플사와 이 문제를 해결하고 환불의 형태가 되었든 없었던 일로 무마하든 결제내역이 취소될 때까지 결제 요구를 동결해주기를 요청하는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그건 저희가 이미 애플사에 부가서비스로 청구를 받아 처리가 진행되었고, 그 결제가 시작된 것은 12월부터인데 1월인 지금 결제가 청구된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는 이미 시스템상 그것이 애플 측에 지불이 된 부분도 있어서 동결시켜드리거나 하는 도움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스템상? 그 말, 내가 참 많이 듣네요. 그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건가요? 당신에 회사가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당신네들의 시스템에 고객이 맞춰서 움직여야 하나요? 해킹은 범죄고 범죄로 인한 피해가 발생되었을 때, 보이스피싱이나 해킹 같은 금융범죄의 경우 범죄 피해액의 인출은 모두 홀딩되도록 법제적으로 국가적 시스템으로 막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나 국민카드사 따위의 시스템이 국가 시스템의 상위에 있다고 우기는 겁니까?”
“네?”
그녀의 사고 회로가 정지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슬슬 들렸다. 나는 이런 동일 프로세스를 수십 년간 반복해오는 것도 지긋지긋하지만, 이들의 이 허접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고 회로가 이리도 쉽게 제대로 돌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순간이 가장 기분이 안 좋다. 거기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고 예의를 갖추고 말하고 그러지 말라고 여러 방식으로 경고를 하지만, 그들이 듣지 않고 결국 스스로 논개인지 심청의 심정으로 벼랑 끝까지 스스로 뒷걸음질 치다가 주춤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그건 아니지만...”
“후우! 마지막으로 결론만 설명할게요. 애플사가 최초의 문제 발생지는 맞는데, 지금 돈이 나가는 방식이 SK텔레콤에서 청구되었잖아요. 만약 SK텔레콤의 소액결제 자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슨 짓을 해도 금액을 청구할 수가 없잖아요. 맞아요?”
“......”
대부분의 전화 상담원들은 자신들이 늘 대하는 내용이거나 매뉴얼에 나온 상황일 경우에는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상황이거나 자신이 자신 있게 설명한 내용의 논리를 파고들어 문제점을 지적하여 상황이 뒤집히거나 공격받게 되면 말을 멈춘다. 하긴, 이 본능은 굳이 전화상담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자신의 논리가 박약한 인간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택하는 방식이기는 했다.
“자아, 이렇게 합시다. 본인은 그냥 SK텔레콤 본사도 아니고 CS팀의 책임자잖아요. 그쵸?”
“......”
“대답!”
내 목소리가 날카롭고 조금 높아졌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 결정권이 있거나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잖아요, 그쵸?”
“네.”
“그러면, 본사에서 CS팀에서 문제가 커지거나 응대가 제대로 안될 때, ‘고객 보호원’이라고 해서 책임관리를 맡고 있는 부서가 있죠?”
“네? 아, 네.”
내가 어떻게 내부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당황하는 내색이 역력했다.
“당신은 실장이라고 총책임자라고 말해놓고 결국 매뉴얼을 반복하는 고장 난 라디오 같은 응대로 일관했어요. 만약 당신이 처음 전화를 받았던 상담원이었다면 그냥 그렇게 넘어가 줄 수도 있었겠지만, 선을 넘고 무너뜨린 건 당신이 먼저예요. 그리고 나는 이런 문제로 고객상담원의 팀장과 전화를 연결하는 게 처음이 아니에요. 그쪽에도 ‘시. 스. 템’이라는 게 있을 테니 내 전화번호로 상담기록을 최근 5년간 찾아봐요. 내가 본사랑 직접 연락해서 누가 징계받은 흔적이 있는지 나올 거예요.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그쪽의 팀장이 나한테 전화 오면 직접 따지도록 하지요. 그렇게 보고하고 연결해주세요. 한 시간 줄게요.”
“아니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아까 처음 전화통화 시작할 때, 잘 생각해서 판단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당신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그저 일상적으로 하듯이 무식하게 응대하셨고, 나는 그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드려야겠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안에는...”
“나한테 또 한 소리 듣고 싶은 거 아니죠?”
“알겠습니다. 시간은 장담은 못 드리지만 최대한 빨리 원하신다고 메시지 남겨두겠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간당간당 넘지 않았을 즈음, 다시 연락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SK고객 보호원의 손명선 팀장입니다. 이번에 이렇게 고객님에게 불편을 끼쳐드리는 일이 발생하여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자아, 이제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명은 생략합시다. 문제의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받고 파악하신 거지요?”
“네.”
“그럼 브리핑은 생략하고 결론만 물을게요. 지금 이 부분의 결제,동결됩니까? 안됩니까?”
“제가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해 드려서.”
“오케이. 그리고 이전 상담원과 그 문제의 실장에 대한 잘못된 응대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