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3부 – 5

세엣. 귀신을 보는 아이 - 상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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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엣. 귀신을 보는 아이

“아! 송 변호사님의 생각은 다르시다는 거, 알겠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안 교수님 말씀을 끝까지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가 차고 나오던 변호사의 말을 제지하며 다시 여자 정신과 교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 거 들어보나 마나라니까...”


끝내 여자 교수의 말을 막으려는 태도를 보며 여자 교수가 한쪽 눈썹을 씰룩 들어 올리는 특유의 표정으로 그에게 던지듯 물었다.


“나왔다, 저 표정!”


방송 통제실에 있던 PD가 신난 표정으로 화면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송 변호사님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 불편하신가 보네요. 그렇다면 저랑 내기 하나 하실까요?”


사회자를 포함한 패널들이 카메라의 클로즈업과 함께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꿀꺽-


그녀가 새초롬하게 입술을 모으며 사람들의 주목을 즐기는 듯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정면을 바라보며 애를 태우듯 말을 멈췄다.


“뭐죠, 그 내기라는 건?”


사회자가 감질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전부를 대신해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조만간 경찰이나 검찰에서 공개수사의 일환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지 말지에 대한 겁니다.”


“뭡니까? 그 무당 같은 예언은? 쳇!”


검사 출신의 송 변호사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의 제안을 무시하듯 말했다.


“제가 이제까지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내기에 틀렸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아시나요?”


그녀가 도발적으로 송 변호사를 노리며 물었다.


“그렇지. 이렇게 나와줘야 시청률이 빡빡 올라가지? 역시 얼음 마녀라니까! 지금 시청률프로까 올랐어?”


방송 통제실에서 그 긴박감 넘치는 화면을 보고 있던 PD가 신이 난 듯 시청률 조사 게이지를 보고 있던 스텝에게 물었다.


“아까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벌써 10%를 넘었어요. 전의 기록을 경신하겠는데요?”


“방송쟁이들이 이 맛에 저 언니를 섭외 1순위로 올려놓는다는 거 아니냐! 하하하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방송 통제실의 상황을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여자 교수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송변호사 쪽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자아, 대답이 없으시니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만약 1주일 안에 제가 이야기한 대로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송 변호사님이 앞으로 방송에 다시는 얼굴을 내미는 일이 없는 것 정도로 하면 어떨까요?”


“아니,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얼굴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송 변호사는 당황하며 그녀의 말에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물론 내기니까 만약 제 얘기대로 그런 상황이 일주일 내로 공표되지 않는다면 이후 모든 방송활동을 접도록 하겠습니다. 이 토론은 현재 전국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이니 제 분석과 설명이 맞는지 아닌지는 제 전문성에 대한 도전이니까요. 그때 제 말이 맞다면 설명은 그때 들으셔도 무방합니다.”


“아! 그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과연 그들이 남겼지만 경찰이나 검찰에서 내놓지 않는 메시지라는 게 뭘까요?”


사회자가 PD의 주문을 레시버를 통해 받은 대로 긴박감을 연출하며 여자 교수와 송 변호사를 번갈아봐 가면서 물었다.


“그러니까 그 분석과 설명에 대해서는 제 말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다음 주에 설명드리기로 하죠. 그래도 정신과 교수라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개인적인 망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면 갈 데까지 간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정도 명예를 걸고 당당할 수는 있어야죠, 안 그런가요? 검찰 출신의 송 변호사님?”


그녀는 특유의 여유만만한 미소로 눈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변호사를 도발했다.


“자아, 이렇게 되면 일이 조금 커졌습니다, 송 변호사님. 송 변호사님께서 방금 안 교수님의 설명이 나오기도 전에 안 교수님의 의견에 대해서 개인적인 망상에 지날 뿐이라고 말씀하신 건 사실이니까요. 그렇다면 안 교수님이 먼저 제안하신 내용대로 다음 주 저희 생방송 토론 시간 전까지 경찰이나 검찰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활빈당 측의 또 다른 메시지가 있었는데도 아직 공표를 안 했다는 안 교수님의 예언, 아니 분석이 맞다면 그리고 그 내용이 다음 주 저희 방송 전까지 공표가 된다면 둘 중에 한 분은 다음 방송에 나오시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다 되어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시청자 여러분들도 다음 주에 어떤 분이 방송에 나오지 못하게 되실지 주목해주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토론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오케이~!”


방송 통제실에 있던 PD의 한껏 신이 날대로 난 목소리로 방송 종료를 알리는 싸인이 들려왔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앉아 있던 패널들은 사회자를 포함해서 막 목을 졸리다가 한꺼번에 풀린 사람들처럼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자신들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그 긴박감에 제대로 숨을 어디에서 내쉬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장을 했다는 증거였다. 유일하게 발언의 당사자였던 안 교수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부착했던 마이크를 FD의 도움을 받아가며 찬찬히 빼내고 있었다.


“이봐! 방송계의 신데렐라라고 여기저기서 불러주고 대접해주니까 세상이 만만해? 엉? 지금 이제 누구한테다 대고 도발이야 도발이! 엉? 어 이리 와 봐!”


터질듯한 양복 위로 흠뻑 젖은 땀 자욱이 그대로 드러나 덜렁거리는 마이크도 채 떼지 못한 채 송 변호사가 그녀에게 달려들 듯 뛰어나왔다.


“어멋!”


안 교수를 도와 마이크를 빼주던 FD가 놀라 세트 뒤로 주춤거리고 빠지는데 100킬로도 훨씬 넘은 육중한 체구의 송 변호사를 감히 누가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순간 송 변호사는 그녀의 앞 책상 세트까지 가서 책상을 쾅 치며 뻘겋게 아직도 식지 않은 얼굴을 들이대 외쳤다.


“어디서 나이도 어린 게 입을 그렇게 함부로 놀려? 잘 나간다 잘 나간다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내가 당신 콩밥 한번 먹게 해 줘?”


그러자 남아 있던 마이크 선을 자리에 가만히 두고 차분하게 일어난 안 교수가 카메라의 붉은 등이 꺼진 것을 확인하곤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자기 얼굴 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송 변호사의 돼지 같은 얼굴 옆으로 자신의 얼굴을 대고서 뭐라 중얼거리듯 아주 차갑고 소름 돋는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오늘 받아먹은 돈 때문에 이 짓거리 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니 차 트렁크에 받은 그 현금 박스 어떤 성격인지 여기서 내가 오늘 까발려서 개망신당하고 감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이제 카메라도 꺼졌으니까 오버 연기 그만 좀 하고 그 냄새나는 얼굴 내 앞에서 당장 치워, 이 돼지 같은 자식아!”


순간이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본 사람조차 없었다. 마치 인형을 부리는 복화술사처럼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바로 그 옆에 귀를 대고 있던 송 변호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자신의 귀에만 마치 영어 듣기 평가를 귀에 레시버를 꽂고 듣는 것처럼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얼음송곳이 되어 자신의 귀에 후비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온 몸의 솜털이 하나하나 삐쭉삐쭉 서는 기분이 들었다. 수십 년간 검찰에서 저승사자 검사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윽박만 지르며 지내왔던 자신에게 이런 공포감은 처음이었다.


안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송 변호사의 어깨에 먼지를 털어내 주듯 툭툭 치며 미소를 잊지 않고 말했다.


“송 변호사님이 너무 토론에 집중하셨나 봐요.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수고들 하셨어요~!”


완벽한 몸매로 모델처럼 세트장을 걸어 나오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만이 송 변호사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자신의 트렁크에 아직도 박스째 담겨 있는 2억의 돈을 생각하며 침을 꼴깍 삼켜야만 했다.




“형! 굳이 여길 들어가야 돼요?”


커다란 한옥이 보이는 앞에서 차를 세운 매니저를 보며 산이 물었다.


“야! 저 줄 안 보이냐? 우리도 여기서 차를 대고 걸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저 차들 봐라. 한국에 있는 희귀 외제차들은 여기 다 왔나 보다. 와! 기사들이 다 나와 있다. 한 자리하는 사모님들은 다 왔나 보다.”


“아이, 이런 데 들어가기 싫은데....”


“얼른 내려~! 대표님한테 또 욕먹기 싫으면...”


매니저와 산은 골목 어귀에서 내려 기사들이 모두 도열해있는 듯한 자동차 대열을 거슬러 멀찍이 보였던 한옥 집 앞에 섰다.


“여긴 뭐냐? 무슨 성도 아니고, 옛날 영화에서나 보던 요정 같은 거냐?”


매니저가 두리번거리며 돌계단을 올라서는데 뚱뚱해 보이는 여자와 홀쭉하고 날씬해 보이는 여자가 막 문을 나서고 있었다.


“지가 기껏해야 무당이지,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해! 무슨 집이 한꺼번에 풍비박산이 난다는 거야? 내가 그 인간 여자가 있는지 보러 온 거지 무슨 이런 저주나 듣겠다고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순서까지 바꿔가면서 온 줄 아는 거냐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뚱뚱한 여자가 하이힐에 비틀거리며 몸이 뒤뚱거리면서 씩씩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 사모님. 뭐 저런 무당이 한 말에 그렇게 흥분하시고 그러세요.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마치 비서쯤으로 보이는 홀쭉한 30대 중반의 여자가 옆에 달라붙어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매니저와 산이 잘 정돈된 잔디를 들어서는데 두 일행이 거의 마주쳤다.


“어? 얘 어디서 본 적 있는데?”


중간에 멈칫하면서 산을 보고 나이 든 뚱뚱한 여자가 자리에 우뚝 섰다.


“어머어머! 산이잖아요!”


옆에서 따라오던 홀쭉한 비서가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뚱뚱한 여자와 부딪히며 비틀거렸다.


“어어!”


산이 재빠르게 넘어질 듯한 비서의 허리를 감으며 넘어지는 것을 부축해주었다.


“괜찮으세요?”


“어머어머! 내 괜찮아요!”


놀라 얼굴이 발그레해져 비서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이돌도 이런데 오나보네?”


뚱뚱한 여자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산이의 얼굴을 다시 여기저기 살폈다.


“산아! 얼른 가자.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냐.”


매니저가 막 산이의 어깨를 감싸며 나서려는데 다시 산이 홱 돌아서며 자신을 보고 있던 뚱뚱한 여자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 비계 덩어리 같은 몸 덩이를 들이냐? 온통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장사꾼 집안의 딸내미 같으니라고! 네 남편이 예쁜 여자 연예인이라 만나고 다니는 게 샘은 나더냐? 꼴에 여자라구!”


아주 잠시였지만, 돌아선 산이의 얼굴은 아까 비서를 받쳐주던 예의 바르게 미소를 띠어보이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험악하게 눈에 쌍심지가 치켜 올라가 무섭게 놀려보며 일갈을 하는 것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다. 산이의 일갈에 자신도 모르게 뚱뚱한 여자는 그 자리에서 하이힐의 뒤축이 부러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야! 여기서 왜 또 그래? 어서 가자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사모님! 일어나 보세요! 사모님!”


겁을 먹고 주저앉아버린 넋이 나간듯한 여자의 뺨을 때리며 비서가 당황해하는 순간, 매니저는 모른 척 산이를 둘러업듯이 어깨에 걸치고 안채로 뛰어들어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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