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땋아 넘긴 아무런 표정이 없는 표정의 여자가 그 둘을 막고 섰다.
“여기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보살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른 별실로 드시랍니다.”
무표정한 여자는 감정이 없는 톤으로 미끄러지듯 그들을 별실로 안내했다. 사극에나 나올법한 거대한 한옥은 건물도 궁궐처럼 여러 군데에 나누어져 있는 듯했다. 별실이라고 하는 곳을 복도를 통해 들어가자 첫 번째 방 같은 곳이 나왔다. 벽에 온통 무서운 사천왕들이 달려들 듯이 벌을 받는 인간들의 몸을 짓밟고 눈을 부라리며 매니저와 산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여쭙고 바로 부르면 들어오시면 됩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자동문처럼 열리는 문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대기실로 보이는 그 방에서는 매캐한 향과 묘한 향들이 뒤섞여 엄숙함을 자아냈다. 어떤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음산함과 무거움이 차분한 단조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 낮은 소리가 깔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 아주 익숙해요.”
산이 다시 해맑은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매니저에게 물었다.
“야! 난 무섭다. 흐익!”
두리번거리며 신기한 그림과 구조를 구경하던 매니저의 얼굴 앞으로 언제 왔는지 아까 안내하던 무표정의 여자 얼굴을 스윽하고 떠오르듯 앞에 나타났다.
“들어오시랍니다.”
“아, 네.”
함께 일어서려는데 여자가 매니저 한석의 어깨를 한 손가락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 시주님만 들어오시라는 분부십니다.”
“네? 아니, 제가 들어가서 얘기를 들어야....”
“여기 시주님만 혼. 자. 서. 들어오시랍니다.”
무표정한 여자가 다시 손가락으로 한석의 어깨를 꾸욱 누르며 일어서려는 그를 제지했다.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였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바위돌로 누르는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아아! 아파요. 알았어요. 저는 그냥 여기 있으면 되는 거죠?”
벌써 산은 스르륵 열리는 어둠 속의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왔으면 앉아.”
방의 가장 안쪽에 촛불이 하나 켜져 있고, 그 약간의 후광 뒤로 작은 여자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참말이네! 할망의 말이 정말 맞네?”
주섬거리며 그 앞의 커다란 방석에 앉자마자 산은 놀라서 앞에서 말하고 있는 이의 얼굴을 눈을 끄게 뜨고 다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기 어른은 안 계시니?”
한참 어린 꼬마 여자아이가 약간 이상하게 생긴 기다란 한복을 차려입고 그 천을 바닥 전체에 깔릴 정도로 꽃처럼 펼치고 촛불 앞에 앉아서 자신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 요 녀석 봐라! 할망보다 여기서 더 어른이 어디 있다고 여기서 어른을 찾는다니?”
분명히 얼굴은 소녀였는데 목소리가 완전히 늙은 할머니의 쇳소리가 섞여서 묘한 위화감을 조성하는 목소리였다.
“어떠신가? 요즘에 많이 힘들었지? 참 기구하고 기구하구나!”
“네?”
자신도 모르게 한참 어린 소녀의 앞에서 산은 공손히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요즘에 오락가락하잖여. 너 같으면서도 너 같지 않고 이상하게 기억 안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들끼리 떠들고 그러잖여? 안그냐?”
“어떻게 아셨어요?”
“넌 중이었지?”
순간 산의 표정이 잠시였지만 굳었던 것이 읽혔다. 소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영감한테 물은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어. 할망이 아직 그렇게 대놓고 나다닐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제가 동자승이었던 것은 어떻게....”
“죽을 뻔 한 걸 대신 살려오면서 달려온 것이구나. 할망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네. 정말로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네그려.”
소녀는 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혼잣말하듯 산에게 내뱉었다.
“목숨 살려준 주지스님이 성불하시면서 주신 거 있지?”
“네? 그건 또 어떻게...”
“할망이 다 알려준다니까 그러네. 할망 좀 나와봐.”
소녀가 할망이라는 존재를 부르자, 갑자기 소녀가 목을 비틀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경기 들린 아이처럼 방석 위로 부들부들 튀어 오를 듯이 몸이 용수철처럼 위아래로 날뛰었다. 산은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덥석 소녀를 챙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녀가 갑자기 털썩 자리에 엎어지듯 고개를 앞으로 철퍼덕 떨구며 온 몸에 기운이 빠진 사람처럼 쓰러졌다.
놀라서 방석 뒤로 반걸음 물러나던 산이 뒤쪽의 문을 보며 뭐라고 외치려는 찰나였다.
“저기요...저기....”
“오랜만이구만 이 영감탱이!”
아까 조금 남아 있던 소녀의 목소리가 사라져 버리고 전혀 처음 듣는 걸쭉한 할머니 같은 목소리와 함께 거세고 거칠어 보이는 손이 앞으로 쑥 나와 산이를 제지했다.
“네? 우왓!”
잡은 손을 보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쑥 드는데 소녀의 얼굴이 아닌 묘하게 생긴 얼굴의 할머니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누, 누구세요?”
“언넝 나오시게.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세.”
“아니, 저....”
“언넝~~!”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산이가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갑자기 축 늘어지더니 이내 귀신같은 웃음소리로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어찌 알았는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사천왕의 무서운 얼굴로 변한 산이의 얼굴에서 걸쭉한 노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산이의 몸이었지만 그렇지도 않은 그 존재는 벌떡 일어나서 팔짱을 끼며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고는 했지만 부리부리한 눈에 괴팍하게 생긴 표정이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아, 명색이 장안에 모든 귀신들이 섬기는 신녀 아니신가? 이 소녀를 감지하지도 못하고 이 영감탱이 나이를 헛으로 잡수셨네?”
“할미야말로 오래 살더니 이젠 한참 어린 꼬마한테 깃드신 건가?”
“누가 할 소리를? 제대로 기다리지도 못하고 운명의 짝도 기다리지 못하시고 급히 들어가신 곳이 아이돌 스타신가?”
“기다리지 못하긴, 기다린 것만 수백 년일세그려. 이 아이에 대해 읽었다면 그리 말하진 못할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섞일 시간은 주고 찬찬히 깨워줘야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은가 말이야!”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건 만신*이 더 잘 알지 않은가 말이시?”
“딱해서 그러지 딱해서. 그 어린 것이 벌써 명이 끊길 것을 자신의 명과 바꾼 그 주지가 영감의 기운을 받았던 자인 것도 운명이었던 것이지.”
“이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 했더라면 그 아이는 벌써 죽었을 몸이야. 남의 명을 끌어와서 대신 산다는 것 자체가 업보라는 거 주지 영감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요즘에 벌이고 있는 일이 할망이 하고 다니는 짓 맞지?”
‘주지’라고 불린 산의 몸을 가진 존재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안에 들어앉아서 볼 거 못 볼 거 안 들어도 될 거까지 모두 듣고 보고 다 하시는구먼?”
‘할망’이라고 불린 등이 약간 굽어 보이는 할머니가 자리에 다시 좌정하듯 앉으며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뭣하러 그런 짓을 계속하는 것인데?”
“뭣하러라니?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어허! 우리 존재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하는가 말이야!”
“어허! 그런 사람이 아이돌 안에 들어앉아 사람들이 이지경으로 애를 정신병자 취급하도록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 그 못된 성질머리로 섬나라에서 온 놈들한테 죽비질을 해댔는가?”
“아! 이 할망! 만신 안에 들어가더니 이제 모르는 게 없고 안 보이는 게 없나 보네. 그건 또 어찌 알았는고?”
“아니. 지금 막 들어오면서 그 돼지 같은 여편네한테는 왜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노 들이밀길?”
“아니 나라 팔아먹어가며 잘 먹고 잘 사는 것들이 이리 천지가 될 세상일지 내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건 뭐 부아가 나서 참고 앉아 기다릴 수나 있어야지?”
“됐고! 오늘 영감을 만나려고 어렵게 택일하고 이 흐름을 받은 것이니,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을 텐가?”
“우리?”
주지가 다시 할망에게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럼 나 혼자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 생각했는가베?”
“나는 일단 지금 완전히 이 아이와 동화된 것이 아니라 기운을 배합하는 것도 그렇고 이 아이가 융합된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게 하는 수련도 할 시간이 필요한지라 뭘 할 형편이 아닌데...”
“그냥 우리 쪽에 와주면 내가 그다음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리 해볼 테니까?”
“다짜고짜 몇 백 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지들 패거리에 들어오라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다른 패거리들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하여간 머리 돌아가는 것 하고는 하나도 변함이 없구만. 일단 내가 오늘 이 아이의 영이 영감과 조금 잘 방을 나눠 쓰도록 조절을 해줄 테니까 편안해지거들랑 다시 한번 생각해보소. 그러면 내가 이런 방식으로 안정되도록 그놈의 단련이고 수련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조절해줄 요량도 있으니까.”
“이 할망보소? 뭐 내가 거래에 응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네 그려? 웃기지 말어. 내가 언제 자네 말 듣고 남의 말 듣는 사람이었는가? 내가 판단하고 자네 패거리가 하는 짓이 하도 위험해 보이니 한 마디 한 것이고, 도대체 이 뒤죽박죽인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구만?”
“어허! 일단 오늘은 그냥 좋게 말한 대로 편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얼른 정해서 따르는 것이 좋을 거요. 우리 대장은 나처럼 속이 느긋한 사람이 못되니....”
“대장? 대장도 벌써 있어, 그 무리는? 아! 안되겄네. 이 아이가 한계에 왔나 보네.”
“벌써 무리가 오니, 이래서 어디 쓸 수나 있을까 모르겠네. 여기 누워보시게나.”
주지라 불린 산의 몸이 가만히 방에 누우며 눈을 가만히 감았다. 할망이 가만히 손을 얼굴과 배 쪽에 대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촛불 뒤쪽으로 장군 옷을 입은 그림자부터 여러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소녀의 얼굴과 외모로 돌아온 무당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이 오빠가 자기를 잃을 일은 결코 없는 거네, 할망!”
주지의 얼굴은 어느 사시엔가 다시 산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고, 소녀가 빛이 감돌던 양손을 가만히 떼기가 무섭게 산이 가만히 눈을 떴다.
“좀 괜찮아?”
산은 아주 푹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해맑은 미소를 띠며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아! 정말 몸이 편하고 개운 한대?”
“이제 가봐도 돼. 당분간은 기억이 끊기거나 할 일은 없을 거야. 조만간 또 보자구, 아이돌 오빠.”
볼이 발그레한 이제 10대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앳된 소녀가 산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