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그래도 한 나라의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당대표까지 했다는 양반이 시치미를 떼겠다는 건가?”
각시탈이 표정을 알 수 없는 웃고 있는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를 놀리듯 되물었다.
“나는, 사과할 것도 실토할 것도...”
“닥쳐!”
그가 더듬거리며 뭐라고 변명을 할 틈도 없이 각시탈의 존재가 날카로운 소프라노톤으로 소리쳤다.
“니가 검사 짓을 하면서 했던 부정부터 시작해서, 너의 아버지의 형, 아니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의 큰아버지가 판사로 있으면서 했던 친일파들의 토지 환수 재판에 대한 얘기부터 해줄까? 아니면 너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금괴를 훔쳐 도망가지 못한 조선총독부의 회계사 전속 인력거꾼으로 일하며 정보를 팔아먹었던 것부터 얘기해볼까?”
“그, 그건...”
“그 그그그, 그건? 어쩌라구? 너랑 무관하다구? 너는 너의 큰아버지와 공조해서 네 멋대로 죄가 되는 자들에게 돈을 받고 기소를 덮어주는 짓을 했어.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정치판에 나가서 돈을 더 굴리겠다고 그 짓을 했다구. 너와 네 큰아버지가 했던 짓거리가 결국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켰는지 알기나 아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는 그저...”
“그래. 네가 그렇게 환수했던 돈을 또 국가에 빼앗길까 아니면 형제들과 나눠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 친일파 놈은 그 돈을 바로 해외 계좌로 송금하고 도주 같은 이민을 하고 말았어. 원래 그 땅에 짓기로 했던 고아원 시설들의 기부를 약속받았던 재단에서는 사기 아닌 사기를 맞아서 그 거액의 기부가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그 사이에 또 해외입양으로 돈을 벌던 장사꾼 놈들에게 아이들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다구.”
“우리는.... 아니, 나는...”
“아니. 솔직하게 말하니까 좋네. 우리잖아. 너희들이 그런 거잖아. 넌 혼자가 아니었고. 그 나이 먹도록 쌓은 그 알량한 부와 명예를 위해 조국을 배신했어. 친일파는 일제 강점기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준 사례인 거지.”
“....”
일본도를 들고 있던 그는 뒤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오지 않는지를 계속해서 살폈다.
“네 생각, 아주 잘 읽었다. 그런데 어쩌냐? 네가 그렇게 돈을 주고 사서 널 지켜달라고 했던 자들은 이미 모두 꿈나라에 보냈어, 우리 동료가 말이지.”
“뭐 뭣이?”
“자아. 마지막이다. 이제 모두 끝낼 시간이야. 네가 한 짓에 대해 모두 고백하고 이 알량한 재산이라도 지킬 텐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정치계의 대부로 남되, 동전 한 푼 없는 거지가 될 텐가?”
“어떻게 너희 같은 자들이 감히...”
“알겠어. 넌 둘 다 잃고 싶지 않다는 의견으로 결정한 거야. 그러니까 너의 욕심으로 그 두 가지를 잃는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야. 그렇게 알고 남은 생은 어딘가에서 벽에 똥을 묻히며 죽어가길 바라마.”
각시탈이 그에게 다가서자 그가 마지막 안간힘을 뽑아내듯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크고 빠르게 휘둘렀다. 그의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던 각시탈의 존재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느려서는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겠다.”
갑자기 황망해하며 축 늘어진 그의 뒤편에서 각시탈의 얼굴이 어둠을 뚫고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외쳤다.
“이런! 으윽”
다시 칼을 들기도 전에 각시탈의 하얀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이 그의 눈앞에서 마법처럼 펼쳐졌다가 사라락 접혔다. 그리고 그의 눈이 스르륵 감기며 시체처럼 온몸이 축 늘어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자아, 네가 강제 커밍아웃의 1호가 되어주어야겠다.”
쓰러진 그를 넘어 자리를 뜨려는 각시탈의 뒤쪽에서 서늘한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 건가?”
뭐라 말을 떼기도 전에 각시탈이 앞으로 훌쩍 날아 등 쪽에서 나타난 존재를 경계하며 방어자세를 잡았다.
“밤을 틈타 마실 나오신 선비신가? 조만간 만나게 될 거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군.”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키가 훤칠하고 마른 듯하지만 다부진 체격으로 팔다리가 길쭉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각시탈의 시선은 그보다도 그가 나온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속 주시하며 서 있는 장검을 허리에 찬 선비 탈에 꽂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이 많은 친일파의 후손들을 일일이 직접 치겠다는 건 아니겠지?”
“왜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고 있나?”
“암. 있지. 내가 일단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지.”
남자가 가만히 주머니에서 검찰 신분증을 꺼내 각시탈의 앞에 내보였다.
“뭐 하긴, 이런 거 신경 쓰는 입장이라면 일을 이렇게 크게 거하게 벌이진 않았겠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야!”
각시탈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활빈당의 수장이 그대인가?”
“백정 회광의 기운은 일반 사람이 맞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비켜주세요.”
우람이가 앞을 막은 남자에게 말하며 힘으로라도 뚫을 기세를 보였다.
“주군의 명령이다.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쪽에서 먼저 손을 씁니다. 후웁!”
우람이의 보폭이 좁아지는 듯하더니 회광과 더불어 빠르게 남자의 좌우로 달려 나갔다. 속도가 빨라지자 마치 두 명이 네 명인 것처럼 좌우에서 남자를 향해 포위를 좁혀가는 듯 보였다.
툭툭-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가 다가서는 회광과 우람이를 향해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간닷!”
회광이 붉어진 주먹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우람이의 발차기가 들어갔다. 상대가 사람인지라 조금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분명히 제대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 회광이 옆으로 비틀거리며 밀리는 것이 보이고 우람이도 눈앞이 번쩍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뒤로 밀렸다.
“회광!”
백정 회광이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상대는 어느 사이엔가 빈틈을 보인 우람이의 앞쪽으로 튀어 오르듯 달려들었다. 피할 틈이 없었다. 남자의 주먹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막 우람이의 앞쪽으로 날아드는 소나기 같은 잽 앞으로 회광이 손을 뽑어 남자의 펀치를 일일이 손바닥으로 막아냈다.
“보, 복싱?”
우람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듯 말했다.
“후후훅!”
남자의 입에서 짧고 가느다란 숨소리가 끊기듯 들려왔다. 분명히 그저 인간일 뿐인데 백정 회광이 우람이에게 쏟아지던 그의 소나기 잽을 막는 것만으로도 백정 회광의 능력에 필적할만한 능력을 갖추었음을 그는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다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다음 공격을 노렸다. 뒤로 넘어질 뻔하던 우람이를 한 손으로 받쳐 세우며 회광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노려보았다.
“너희 엄마랑 같은 능력인 거니?”
다시 보이지 않는 기분 나쁜 아이의 목소리는 고운이를 덮쳤다.
“좋아. 더 이상 봐주지 않겠어.”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고운이가 기운을 모으자 손 안에서 푸른빛이 올라오며 활의 형태가 갖춰졌다. 눈을 감은 채 다시 한번 긴 호흡을 들이마시고 공중을 향해 화살을 불꽃처럼 쏘아 올리며 고운이가 외쳤다.
“빙설난무(氷雪亂舞;얼음눈이 어지럽게 춤춘다)!”
곧장 하늘로 올라간 큰 빛덩어리는 다시 불꽃이 터지듯이 사방으로 퍼지며 타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찾아가는 듯 저마다 공간에 가서 꽂혔다. 어둠이 잠시 빛들의 퍼짐과 동시에 형체를 드러냈다. 사방으로 가서 꽂힌 화살들은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나무와 돌 위의 부적 위에 꽂히며 부적을 찢었다. 부적은 찢어짐과 동시에 파란 불이 확 붙어 타오르며 사라졌다.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이에요.”
부네가 고운이의 주변을 경계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속삭이듯 말했다.
“벌써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뭐죠? 아까 그 존재는?”
고운이가 귀신에 홀린듯한 얼굴로 아까 들었던 ‘엄마’라는 단어에 아직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것을 부네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뒤쪽 계단에서 천천히 부채를 한 손에 쥔 회장이 걸어 올라오며 물었다.
“뭐야? 분명히 들어오지 못했을 텐데...”
“질문은 이쪽에서 먼저 한 것 같은데...”
회장이 앞의 남자와 뒤의 회장을 경계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회장의 생각을 읽겠다고 한 순간 머릿속이 까매지며 서늘하고 공허한 느낌만이 되돌아왔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생각의 기운이 아니었다.
‘생각이...’
“안 읽히겠지.”
회장이 계단을 다 올라와 그녀의 앞에 우뚝 서서 읊조리듯 말했다.
“다른 사람의 기운과 생각을 읽는 것이 본래 각시탈의 능력 중 하나이니까...”
“그걸 어떻게...?”
“나에 대해 각시에게 듣지 못했나 보군. 아직 그 경지에는 못 다다른 겐가?”
회장이 뜻 모를 혼잣말에 각시탈의 귓가에 다시 조용한 속삭임이 들렸다.
-모두 다 정리가 되었어요.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우리 쪽이 다 정렬이 안되어서 오늘은 이쯤으로 첫 만남을 정리하도록 하지. 말로만 듣던 양반이 이 정도로 소름 끼치는 존재일 줄은 몰랐네?”
각시탈이 특유의 실룩거리는 동작으로 가볍게 뒤의 어둠으로 몸을 던지는가 싶더니 마치 공간이 있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남자와 회장을 사이에 두고 그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을 각시탈은 새롭게 만든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우현이 만든 이공간으로 빨려 들 듯이.
음양의 변화에 따라 몸을 숨기고 길흉을 택하는 용병술이다.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수(數) 배열원리 및 이를 이용한 『주역』 건착도(乾鑿度)의 구궁(九宮)의 법이 그 원형이다. 기문둔갑(奇門遁甲)으로 불리기도 하며 하도·낙서를 병진(兵陣)에 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도형의 진법은 주로 공격형으로 사용되는데, 전방·후방·좌방·우방·중앙은 각각 선발대·보급군·좌군·우군·중군으로 대응되며, 중군은 진(陣)의 핵심이기 때문에 여기에 또한 좌·우군을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하도·낙서는 원래 음양오행설을 적용시켜 만든 것으로 수의 배열은 음수와 양수로 되어 있고, 포진법(布陣法)은 동서남북 및 중앙으로 되어 있어서 음양의 화합과 오행의 상생을 이루도록 만들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