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의 한 종류. 알코올 도수는 대개 40도 이상이며 주로 칵테일을 제조하는 데 많이 쓰인다. 네덜란드에서는 국민 술로 널리 애용되며, ‘게네베르(Genever)’라 부른다. 17세기경에는 알코올 증류 기술이 미숙하여 마실 수 없을 정도의 냄새가 났다.
진(Gin)의 역사부터 알아볼까요?
네델란드 독립전쟁 당시
1649년 네덜란드 의학박사인 프란시스퀴스 실비우스 드 부베(Franciscus Sylvius de Bouve)가 제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부 독일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인 선원과 식민자를 위하여, 드 부베는 당시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던 주니퍼 베리(Juniper berry, 노간주나무 열매)를 알코올에 침전시켜 증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약용주를 만들었다. 이것을 레이덴(Leiden)의 약국에서 ‘주니에브르’라는 이름을 붙여 이뇨, 해열, 건위에 효과가 있는 의약품으로 처음 판매했다. 1664년 주네버를 처음 완성된 상품으로 출시한 곳이 바로 리큐르로 유명한 회사인 볼스이다.
이후 1689년 윌리엄 3세가 네덜란드의 지지를 받아 영국 왕위에 오르자 프랑스산 와인이나 브랜디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 진을 영국 내에 보급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값이 싸고 취할 수 있어 영국 노동자들은 곧 ‘거지도 진을 마시고 취하면 왕이 된 기분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과음해서 급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네덜란드를 돕던 영국군들에게 소개된 진
그러나 맨체스터 · 브리스틀 등 지방도시에서 주정뱅이가 갑자기 늘어나 부작용이 있다는 여론이 일어 정부는 그 억제책으로 진의 세금을 4배로 인상하고 유수의 공공 주점에서만 한정 판매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빚어 인민 폭동이 일어나고 한동안 혼란이 계속되었다가 간신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765년경이었다.
진(Gin)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19세기 당시 영국
처음엔 쥬니퍼 베리의 프랑스어인 쥬니에브르에서 따서 ‘쥬니에브르 와인’이라고 했다. 이 ‘주니에브르(Genièvre)’라는 이름을 ‘제네바(Geneva)’로 착각한 영국인들이 앞글자만 따서 'Gen'이라고 불렀고, 점차 발음이 영국식으로 ‘Gin’이라고 변성되면서 오늘날의 진이 되었다.
오리지널 네덜란드 진은 약용주로서 주니퍼 베리에서 유래된 송진(테르빈) 향과 밑술에 사용된 몰트에서 유래된 몰트 향이 강했으며 단맛이 나는 술이었으나, 영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향이 약해지고 단맛이 없어지는 등 맛이 드라이하게 변했다.
원래 진이 소개되기 이전에 영국을 지배하던 국민주는 앞서 공부했던 ‘럼’이었다. 미국이 독립하고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기에 들어가자 영국은 아이티 및 서인도 제도를 프랑스에게 빼앗겨서 당밀 공급이 끊겨버렸고 럼에 맛 들인 영국인들은 럼의 대체제를 확보하기 위해 주니에브르를 선택했지만 주니에브르는 향을 내는 생산공정이 만만치 않아 단가가 높은 데다가 노간주나무 특유의 향이 영국인들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현지화해 드라이 진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진은 위스키 등과 달리 숙성기간이 필요 없고, 값싼 곡물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싼값에 대량으로 주조가 가능했기에 생산 초기부터 싸구려 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당시 저자에서는 “Drunk for 1 penny, Dead drunk for tuppence, Straw for nothing(1페니면 제대로 마실 수 있고 2펜스면 죽고도 남을 만큼 마실 수 있으니 어디 한 번 제대로 취해 보자!)”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출간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초반부를 보면 등장인물 어터슨 변호사에 대해 설명할 때 “맛 좋은 와인을 좋아하지만 (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와는 달리) 혼자 있을 때는 욕구를 억제하고 대신 진을 마신다.”라는 묘사가 있다. 이 말 자체는 어터슨이란 인물이 혼자서 비싼 와인을 흥청망청 마시는 대신 값싼 진을 조금씩 홀짝이는 금욕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동시에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을 조금씩만 마시는 절제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진(Gin)이 영국을 알코올 중독에 빠뜨렸다구요?!
싸고 독한 술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알코올 중독은 영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았다. 이 시대(18세기) 때 진은 이발사, 행상인, 식료품 잡화상들이 팔았고 심지어는 시장 가판대에서도 대놓고 팔았다. 프랑스산 와인이나 브랜디는 하층민들이 사 마시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진은 가난한 자들이 마시는 대표적인 술이 되었고, 일부 노동자들은 월급의 일부를 진으로 받기도 했다.
1갤런(약 4.54리터)에 4실링 9펜스나 하는 고도수 맥주에 비해 고작 2펜스밖에 하지 않았을 정도니 얼마나 싼지를 알 수 있다. 1730년대에 정부가 조사를 해보니 런던에 있는 술집(dram shop)만 7천 곳이 넘었고, 한 해에 1천만 갤런의 진이 증류되었다고 한다. 당시 런던 주민 하나가 소비하는 진의 양이 14갤런(약 52리터)에 이르렀을 정도. 지나친 알코올 섭취는 성기능 부전을 일으켜 남자는 발기불능, 여자는 불임을 초래하는데 런던 주민의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더 높은 이유였다.
진을 마시는 데에는 남녀가 따로 없어서 여자들도 거리낌 없이 마셨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이 돌봐야만 할 자식들은 방치당했고 진을 살 돈이 없어서 딸을 성매매 업소에 팔아버리는가 하면, 유모들이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진을 먹이기까지 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서 그야말로 사회 전체를 알코올 중독에 빠뜨린 최초의 술이 되고야 말았다.
이를 보다 못한 영국 정부에서는 1736년에 ‘진법(Gin Act)’을 통과시켜 면허세 50파운드를 납부하지 않은 사람이 ‘증류한 독한 술’을 파는 것을 금지했으나. 법 통과 후 정식 면허를 받은 사람은 7년 동안 겨우 3명뿐이었고, 암시장을 통해 계속 거래가 이루어졌기에 공급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새로운 진 법을 통과시켜 술에 세금을 매기고 증류 업자, 식료품 상인이나 잡화점 상인 등이 진을 판매하는 걸 금지시켰고, 그제서야 진의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830년에는 웰링턴 공작 하의 행정부에서 맥주 판매법(Sale of Beer Act)를 통과시켜 맥주에 부과된 세금을 전부 없애고 2기니(1 기니는 옛 금화로서 21실링, 현대의 1.05파운드 상당하는 단위다.)만 내면 누구나 맥주 가게를 차릴 수 있게 하면서 영국인들의 술은 맥주가 되었고 진의 밀수는 끝을 맺게 된다.
진이 중증 알코올 중독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면서 당대 영국에서는 진이 인성을 파괴한다는 식의 인식도 생겨나, 해군에서는 럼을 배급했던 것이 진의 해악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도 나왔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는 대량 배급을 위한 저질 술이라며 ‘빅토리 진(Victory Gin)’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진(Gin)이 럼을 재끼고 영국의 국민술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나라의 서민들을 알코올 중독으로 빠지게 했던 가장 큰 영향력은 바로 ‘싼 가격’이었다. 이 영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 서양의 칵테일 대부분이 진을 베이스로 할 정도로 오래지 않아 럼을 확실히 대체하는 데는 성공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유럽인들이 맛없는 진을 좀 더 맛있게 만들어 보고자 했던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진(Gin)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무색투명한 술로, 곡물을 당화 시켜 발효. 증류시켜 주정을 만든다. 이때 알코올 도수는 90~95% 정도이며 이를 60% 정도로 희석시킨 후 노간주 열매(주니퍼 베리), 고수, 당귀의 뿌리, 레몬 껍질 같은 방향성 물질을 넣고 다시 증류한 후 알코올을 40% 정도로 조정하여 판매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싸구려 술의 대명사였지만 오늘날에는 칵테일 베이스 용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향신료를 넣은 고급 진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고급 진은 고급 위스키나 브랜디보다는 낮지만 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프리미엄 진들은 상표마다 맛이나 향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오늘날 진은 네덜란드 스타일(지금도 ‘게네베르(Genever)’라 부른다)과 영국 스타일(일반적으로 현대에 진(Gin)이라고 협의의 영국 스타일만을 가리킨다)이 존재한다. 시판되는 진(Gin)에 ‘London Dry’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영국 스타일 진(Gin)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영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된 진이라도 이 스타일대로만 만들면 ‘London Dry’라는 호칭을 쓸 수 있다. 칵테일에는 자기주장이 약한 영국 스타일 드라이 진을 주로 쓴다. 주네바와 드라이진의 중간 형태인 올드 톰 진도 있고, 주네버 중에서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리큐르 제조사인 Bols사에서 제조한 볼스 주네버가 잘 알려져 있다.
진 제조용으로 쓰이는 원료에서 알코올은 어느 것이든 가능하나, 영국 · 미국에서는 그레인 스피리츠(Grain Spirits : 곡물 주정)만을 쓰며 연속 증류기로 증류한다. 네덜란드의 게네베르(Genever)의 경우에는 호밀의 몰트를 원료로 쓰는데 포트 스틸(구식 증류 솥)로 여러 번 증류하여 불순물을 제거한다. 독특한 향기를 내도록 주니퍼베리(Juniper Berry : 필수 향미료로 많은 양이 필요), 기타 코리안더(Coriander) · 시나몬(Cinnamon) · 안젤리카 · 레몬 필 등을 사용하는데, 이것들을 알코올에 첨가하고 다시 1번 증류한다.
또 주니퍼베리(Juniper Berry)는 독일 ·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 · 유고슬라비아 등으로부터 수입해서 쓴다. 영국제의 진(Gin) 중에서 세계적으로 많이 음용되는 런던 드라이진은 극히 감미가 적은 술이다.
다음으로 올드 톰(Ald Tom)도 유명한데 감미가 약간 더 있는 편이다. 또한 플리머스(Plymouth)라는 영국 군항에서는 플리머스라는 진이 생산된다. 네덜란드의 게네베르(Genever)는 원료나 제법이 모두 영국과 다르기 때문에 풍미 역시 다르다. 또 슬로진이란 것은 진이란 이름은 같지만 플럼(Plum : 서양 오얏)의 일종인 슬로 베리(Sloe Berry)를 향미료로 써서 제조한 리큐어이다. 마시는 방법은 스트레이트도 좋고 소다수나 토닉워터로 칵테일해도 좋다. 비터(Bitter)를 약간 가미하면 더욱 풍미가 좋아진다.
보통 칵테일의 베이스로 많이 쓰이나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도 한다. 본고장인 영국에선 등장 초기부터 상쾌한 술로서 사랑받았다. 단, 독특한 향취(강한 솔향)가 있으므로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좀 위화감이 있는 편이다. 앉은 자리에서 위스키나 보드카를 몇 병씩 마시는 이들은 있을지언정, 진 한 병을 비우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꼭 칵테일 베이스로만이 아니더라도 온 더 락으로 한두 잔 정도 마시면 딱 좋은 술이다. 특히 독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솔향(한국의 음료수 ‘솔의 눈’과 거의 흡사한 향이 느껴진다.)에 적응할 수 있다면, 얼음을 쓰지 않더라도 여름에 마시기엔 맥주 다음으로 최고인 술이다. 탄산수나 클럽 소다를 타서 희석시키면 ‘솔의 눈’ 같은 시원한 솔향이지만,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는 흡사 명절에 송편 찔 때 찜기 바닥에 깔아놓았던 솔잎에서 나는 냄새가 강하게 나기 때문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