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3부 –14

일곱. 활빈당 당수, 홍길동 등장. - 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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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국장은 방송국의 사장실에서의 호출이 달갑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지금 마무리를 향해 달리고 있는 심층 취재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사장실로 향하는 복도에 한 걸음 한 걸음에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사장님. 국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노크와 함께 국장이 막 방에 들어서는데 국장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일성에 얼굴을 찡그렸다.


“야! 너 죽고 싶어?”


사장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씩씩거리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국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당장이라도 달겨들 기세로 외쳤다.


“아이, 사장님. 저도 있는데 이렇게 험악하게 하시면 일부러 찾아온 제가 민망하지 않습니까?”


빨간 투피스를 입고 구두까지 붉은색으로 깔맞춤을 한 짜리 몽땅한 여자 국회의원이 붉은 립스팁을 바른 입술을 모아 뾰로통한 표정으로 간드러진 목소리를 냈다.


“아닙니다. 의원님. 아무리 언론이 자유화되었네 뭐네 하더라도 조직이라는 게 위계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인데... 사장한테 그 중대한 사실에 대해서 보고도 없이 국장 멋대로 그런 보도를...”


짧은 순간이었지만, 국장은 사장실을 자신의 회의실처럼 앉아 있는 전직 여자 국회의원과 익숙한 얼굴의 판사 출신 변호사와 검사 출신 변호사 등을 보며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이미 이들은 취재 사실을 모두 알고 사장을 통해 보도를 막기 위해 물밑 접촉을 통해 압박을 가해 온 것이었다.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을 해봐! 워낙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으니까 아니라고 발뺌은 못하겠지? 이제 무슨 개망신이야, 개망신이! 내가 이 방송국 사장은 맞냐?”


사장이 여자 국회의원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씩씩거리며 자리에 쓰윽 앉았다.


“사장님.”


“그래.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왜 그따위 짓을 함부로 해서 이 사달을 만든 거야? 방송이 너튜브야? 그렇게 사실관계도 확실하지 않은 카더라 소문을 바탕으로 해서 심층 취재까지 만들어서 도대체 우리 방송국에서 얼마의 손해배상을 하고 회사에 똥칠을 해야 만족을 하겠어? 엉?”


“아이, 그러지 마시고... 국장님 일단 좀 앉으시지요. 사장님이 좀 흥분하신 것 같네요.”


여자 국회의원은 마치 자신이 그 방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국장에게 자리를 내주며 앉기를 권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 알고 계신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활빈당의 당수 홍길동의 인터뷰를 오늘 새벽에 땄습니다.”


순간 화기애애하던 여자 국회의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고, 의기양양 씩씩거리며 사장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떤 리액션을 보여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변호사들과 국회의원의 눈치만을 살폈다.


“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 활빈당의 당수, 인터뷰를 직접 따, 땄다고?”


“그렇습니다. 내일 보도할 예정으로 스케줄 비워놓고 심층보도로 한 시간짜리 편집 중이었습니다. 워낙 내용이 파급력이 큰 것이라 지난달에 옷을 벗으신 판사님에게 조언까지 구해서 내용 공유하고 저희 회사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검토 마친 상태입니다.”


“야! 그, 그게... 그러니까... 그러면....”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가 방송 나가기 전의 내용을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여자 국회의원의 옆에 있던 판사 출신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풋!”


국장이 자신도 모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웃깁니까? 지금 이 상황이?”


여자 국회의원이 잔뜩 화장으로 범벅을 한 고상한 얼굴을 구기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아까 보였던 여유로운 미소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웃음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도대체 판사, 검사까지 하셨던 분들이 다 아실 텐데 방송도 되기 전의 내용을 버젓이 그 방송국 사장실에 와서 먼저 자신들에게 공개해달라는 상황이 그럼 웃기지 않습니까?”


“이런... 씨이...


여자 국회의원이 뭐라고 따지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함께 온 동료가 다급해서 말하긴 했지만, 국장이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진작이라도 보도국의 책임자나 실무 책임자가 자신들의 네트워크에 포섭되었다면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꼴을 보이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만이 뒤늦은 후회로 밀어닥쳤다. 어쩔 수 없이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내며 눈짓했다.


“이봐. 장 국장. 내가 먼저 흥분한 건 좀 미안하게 됐네. 일단 좀 앉아봐. 그러니까 그 활빈당의 당수라는 자가 확실한지는 확인을 한 건가? 뭐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저희가 객관적으로 크로스 체크할 수 있는 자료를 그쪽에서 다량으로 먼저 제공해주었습니다. 친일파 조직 ‘복광(復光)’의 정체와 그들의 조직운영방식, 그리고 간부급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모두 확보한 상태입니다.”


‘복광(復光)’이라는 조직의 이름까지 국장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여자 국회의원과 변호사들은 물론 사장의 얼굴까지 이미 패닉 상태로 변해버렸다.


“그, 그걸 다 내일 방송에 맞출 정도로 촬영까지 마치고 지금 펴, 편집 중이라는 건가?”


사장이 이젠 말까지 더듬으며 국장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복광(復光)’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도 놀라시거나 그게 뭐냐고 묻질 않으시네요?”


장 국장이 작정한 듯이 사장과 변호사들을 쏘아보며 물었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아니야. 내가 무조건 방송을 덮으라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전혀 보고가 안되었잖아. 그러니 최소한 내가 사장으로 있는 이상, 내가 보고받고 확인하고....”


“저는 사장님과 다르게 부모님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기자 출신입니다.”


국장의 뜬금없는 일갈에 사장이 어안이 벙벙하여 대꾸도 못하고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우리 회사 사장 일가의 이름까지 해당 조직에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고, 현장의 기자와 피디들이 해당 사실에 대해서 객관적인 근거가 될만한 기록과 자료들을 모두 확보하여 방송에 녹여 넣은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의 당사자가 우리 회사의 사주 일가라고 하여 보도를 하지 않고 사장님에게 보고한다는 것 자체가 언론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이 중대한 사실을 알려야 할 사명이 언론인에게는 있는 겁니다.”


사장은 노조의 강경한 반발에 큰 이슈가 없는 시기에 잠시만이라도 그저 허수아비 역할로만 삼게 하겠다는 생각에 장 국장을 그 자리에 앉힌 것을 후회했다. 지금처럼 후회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방송국에서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일가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어떻게 돈을 벌어서 건설사를 차렸고, 그 건설사를 통해 정치 쪽과 줄을 이으면서 방송분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것은 폭탄이 집안의 방 한가운데에서 터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나나 우리 집안에 연루되었다는 건 전혀 사실무근이니까... 일단 모든 거 홀딩하고 관련 자료 가지고 다시 보고와.”


“죄송합니다. 저희는 비상체계로 지금 편집도 혹시 몰라 모처에서 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활빈당의 당수 말인데요.”


“어! 그거! 그것도 내가 일단 좀 체크를...”


“그 부분만 벌써 인터넷 너튜브와 SNS를 통해서 활빈당 측에서 이미 조금 있다가... 그러니까...”


장 국장이 사장실의 큰 괘종시계를 보며 말했다.


“6분 있다가 저희 방송의 예고편 격으로 모두 풀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뭐? 그걸...?”


“요즘은 TV보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세대들이 훨씬 더 많아져서 그 편이 파급이 더 빠를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그렇게 알고 저는 내일 방송 준비가 바빠서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터벅거리며 사장실을 나서는 장 국장을 사장실 안에 있던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상황은 터져버렸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여자 국회의원은 전화기를 황급히 눌러대기 시작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치 해킹이라도 한 것처럼 인터넷과 SNS에 각시탈 가면이 가득 차기 시작했고 포탈 검색어에는 각시탈과 활빈당, 홍길동, ‘복광(復光)’ 등의 검색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활빈당 당수의 단독 기자회견 같은 방송이 인터넷과 SNS의 쓰나미를 만들어내 버렸다. 모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뉴스나 영화 광고를 내보내던 전광판에까지 그 통보 방식의 방송이 터져 나왔고,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이나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핸드폰에는 모두 각시탈의 얼굴로 도배가 되는 듯했다.


“안녕하십니다. 저는 활빈당의 당수 홍길동입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라 생각합니다만 저희 단체가 워낙 최근 다양한 활약을 벌이는 통에 제 신분을 공공연하게 밝힐 수 없어 불가피하게 탈을 쓰고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내일 심층 취재로 방송될 MBS의 방송 프로그램에 저희 단체가 최근에 벌일 일들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복광(復光)’이라는 조직의 정체를 밝히고자 합니다. 우리가 1945년 광복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그들 조직은 그때부터 자신들이 빛을 잃었다고 여기고 일본의 대동아 전략에 부흥하여 일본의 자본과 일본 우익들의 철저한 관리하에 한국 내에서 한국인이면서도 선대가 친일파였던 이들에서부터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그 조직에 달라붙은 이들의 민낯을 공개 저격하고자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 이름 ‘복광(復光)’처럼 언젠가 다시 일본의 대동아 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미에서 일본을 빛으로 여기는 정신 나간 조직들입니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어색하게 기계음으로 변조된, 하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전달하는 그 기자회견 영상은 삽시간에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의 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시탈을 쓴 홍길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활빈당의 당수는 방송에서 객관적으로 증빙 과정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며 간략하게 소개하며 무엇을 증명하는 과정을 방송사에 맡겼는지, 이제까지 피해자라고 막연하게 방송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대법관 출신의 대형 로펌의 수장, 전직 외교부 장관, 최근 마지막 있었던 전직 여당 당대표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복광(復光)’의 핵심 멤버였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그리고 방송이 예정되어 있는 내일 찾아가게 될 전직 법무부 장관이자 총리인 그의 이름까지 빠짐없이 확실하게 공개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냈다는 메시지의 전문을 인터넷에 공지하겠다고 하고는 바로 영상의 밑에 붙여버렸다.




“일이 커져 버렸습니다. 이대로라면 조직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본국의 네트워크까지 치고 올라갈 기세입니다.”


인사동의 지하 창고에 나와 있던 마츠모토가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보고 중이었다.


“카마와나이. 모노와? 준비데키타?[상관없다. 물건은? 준비됐나?]”


“하이. 그런데 진위여부를 확인하셔야....”


상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우겠다고 나와 전화를 하던 중이었는데 서늘한 기운이 전화기의 손등과 얼굴을 스쳐 지나가듯 눅눅하게 덮어왔다.


“코레카이? 아케테미요오.[이건가? 열어보도록 하지.]”


“누, 누구세요?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잠시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온다고 나갔던 마츠모토 대신 물건의 앞에서 몰래 전화기로 메시지를 보내던 국보(國寶) 브로커의 앞에 거적 같은 망토로 전신을 뒤집어쓴 불쾌한 남자가 일본어로 명령하듯 말한 것이었다.


분명 아무도 없었고, 3단계의 CCTV에도 이런 복장의 남자가 잡힌 것은 확인한 적이 없었다.


“아! 벌써 오셨습니까?”


뒤늦게 그의 인기척에 놀란 마츠모토가 따라 들어오며 브로커를 안심시켰다.


“이 물건을 구하시던 분이시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만 껌벅거리는 브로커는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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