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온 것도 두 눈을 믿을 수 없었지만, 세찬, 고운, 우람은 분명히 그림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앞에 폭포수가 떨어지는 심산유곡의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회장이 그를 도술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하고 우현이 놀란 눈으로 그에게 주춤거리며 인사를 하는 동안 그는 들고 있던 두루마기를 묶고 있던 끝을 툭 풀며 족자를 벽에 던졌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족자가 날아서 벽에 걸렸고 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깊은 산속의 골짜기가 있고 절벽 꼭대기에 허름한 집 하나가 있고, 그 앞에 정자가 있는 그야말로 신선이나 살고 있을 법한 그림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들어가자.”
“네?”
세 친구가 황당한 눈빛으로 저벅거리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물었다.
“들어가자구!”
우람이와 세찬이의 목덜미를 쥐고 마치 토끼를 들어서 옮기듯 가볍게 족자의 그림 쪽으로 휙 하고 던졌다. 제법 체구가 있는 우람이를 가볍게 액자 쪽에 던지자 우람이가 그림에 빨려 들어가듯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세찬이의 눈에 들어왔다.
“어어?”
세찬이가 두 번째로 던져지고, 눈을 찔끔 감았다 싶은 순간 다시 눈을 떠보니 데굴거리며 구르는데 땅에서 풀내음이 났고, 고운이와 그 남자가 천천히 안으로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이곳이 당분간 선술을 익힐 수련장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도 흐르지 않는 곳이지.”
“네? 우현이 형의 공간 같은 거예요?”
우람이가 주섬거리고 일어나며 물었다.
“나는 선술을 쓰는 도사라서 그런 기계의 힘을 빌리는 잡술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옷차림이 마치 회장의 양반이 입고 있는 옥색 빛 도포같이 길게 날리며 저벅거리며 천천히 절벽 위에 있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 저기... 땅을 밟지 않잖아?”
우람이가 앞서 걸어 나가는 남자의 발 쪽을 보며 세찬이와 고운이에게 말했다. 세찬이와 고운이의 눈에도 그가 거의 지면에서 살짝 위로 떠서 걷듯 성큼 거리며 공중을 걷듯이 벌써 눈앞에서 멀어져 정자 쪽에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얼른 오지 않으면 점심은 없다. 시간이 흐리지 않더라도 너희들 배꼽시계는 변함이 없으니 굶고 싶다면 거기에서 그래도 천천히 노닐고 오너라.”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골짜기에 울려 퍼지듯 명확하게 귀에 들어왔다.
“가보자, 얼른.”
서둘러서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가 단 몇 초만에 도착했던 절벽 꼭대기에 있는 정자까지는 한 시간이나 걸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헉헉! 이렇게 먼 길을 어떻게 그렇게 몇 초만에 날아서 오듯이 도착할 수 있는 거죠?”
“축지(縮地)*라고 한다. 선술(仙術)*의 기본 중 기본이지.”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한 거예요?”
고운이가 지쳐 숨을 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법이구나. 벌써 흉내를 낼 생각을 다하고...”
남자가 세찬이를 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응?”
우람이와 고운이가 뒤에 서 있던 세찬이를 돌아보며 남자의 뜻 모를 말에 의아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지금부터 보물 찾기를 시작한다. 저 정자에 내가 감춰둔 보물이 있다. 그것을 찾아서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두마.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오늘 점심은 없다. 시간의 제한은 없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면 빨리 찾는 것이 좋을 게다. 밥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남자가 도포를 휘날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언뜻 보이는 부엌에서는 언제 나타났는지 두 여성이 왔다 갔다 하면서 열심히 점심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찬이가 먼저 앞서 집 뒤편으로 보이는 정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조금이라도 쉬었다가 가자. 어차피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람이가 힘겹다는 듯이 죽는 소리를 내며 고운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운이도 이내 세찬이의 뒤를 따르며 우람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한 걸 갚아주려면 도술이든 선술이든 다 배워주겠어.”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않아도 간다고 가!”
우람이가 투덜거리며 고운이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 뭔가 이상해.”
세찬이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따르던 두 친구에게 뭐라고 외치려는데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세찬이의 모습이 화면에서 지워지듯 사라져 버렸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지난번이랑 똑같은 술법이야. 그, 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던...”
고운이가 뭐라고 외치려는데 고운이도 이내 검은색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나만 남겨두고 너희끼리 사라지면 어차피 나도 그 앞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잖냐!”
우람이가 달겨들 듯 정면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한번 경험했던 그 컴컴한 어둠의 공간으로 빨려 들 듯 들어왔다.
“회광, 느끼고 있지?”
어느 사이엔가 우람의 뒤에 백정 회광이 주변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공간이다.”
우람이가 말하려던 의도를 이해했는지 백정 회광이 읊조리듯 말했다.
“우리를 떨어뜨려놓는 방식도 같고, 지금 저 앞에서 걸어오는 것도 결국 똑같은 걸 보니 그 기억을 확실하게 다시 나게 만들고 싶으신 건가 보네, 새 선생님께서...”
우람이가 양쪽 주먹에 기운을 모으고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앞에서 달려 나오는 다부진 체격의 존재에게 달려갔다.
한편, 똑같은 어둠에 다시 갇혀 기분 나쁜 기억을 되살리게 된 고운은, 이전과 똑같은 일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생각했다.
‘엄마 얘기에 내가 흔들릴 정도라면 엄마와 했던 수련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라구.’
입술을 앙 다물며 손을 모아 물의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흩어져라!”
고운이의 손자락 끝으로 맺혀있던 푸른색 물기운들은 마치 하나하나가 전기가 담긴 구슬 등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공간을 환한 게 비췄다. 발 밑으로 복잡하게 그려진 그물망 같은 선과 그 안에 역시 이리저리 적혀 있는 빼곡한 글자들이 보였다.
“부네, 알겠어?”
“네. 방위에 맞춰 식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옵니다.”
오른쪽과 왼쪽 허공에서 하얀 무언가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잔뜩 벼르고 있던 고운이와 부네가 함께 각자의 오른손과 왼손을 모아 다시 기운을 모아 얼음 덩어리 같은 것을 잔뜩 뿌렸다.
파파팍-
작은 칼처럼 날카로워진 얼음은 날아가 그 존재들을 향해 일일이 박혔지만 실제로 나무에 가서 박힌 하얀 것의 존재는 사람 모양으로 오린 종이였다.
“아까 오던 방향이 동남쪽이었으니까 지금 이쪽으로 향하면 정 반대인 서북쪽이 되겠구나.”
어둠 속에서 세찬이가 조용히 구시렁거리며 뭔가 계산하는 듯 발치를 보며 보폭을 계산하며 걷고 있었다.
“결국 진법이었다는 거지? 방위와 부적의 위치만 알면 깨뜨리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건데.”
“누가 너에게 그렇게 쉽게 문제를 풀 수 있게 놔두겠다고 하더냐?”
어둠의 저편에서 가느다랗지만 묘한 힘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이 안에서 아무도 너의 목숨을 해할 존재가 없다고 착각한 것부터가 너무 안일한 것 아닌 거냐?”
언뜻 불그스름한 눈빛이 보였다 싶은 순간 상대의 살기가 세찬이를 덮쳤다.
얼른 몸을 옆으로 굴려 반사적으로 피하긴 했지만, 느낌상으로 방금 간발의 차이로 옷을 찢고 날아든 것은 분명히 차가운 화살촉이 느껴지는 화살이었다. 바로 이매 탈을 소환하려고 주머니로 손이 갖지만 펜던트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아까 화살을 피하다가 떨어뜨렸나 보구나.’
“자아,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휘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기가 다시 덮쳤다. 앞으로 몸을 굴리는데 또 다른 무언가가 피할 수 없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앞에 보이는 것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얼굴을 스치며 상처를 내고 화살이 뒤쪽으로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치잇!”
간발의 차이였지만 다시 얼굴에 상처까지 아려왔다. 얼굴을 만지며 따끔한 피를 만지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가늠하려는 세찬이가 문득 눈빛이 변했다. 막 얼굴의 옆쪽으로 날아들던 화살을 세찬이가 마치 막아내듯 잡아냈다.
“그랬구나!”
“오호! 운이 좋았구나!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자. 이번엔 10개다!”
상대의 목소리는 가차 없었지만 세찬이는 미미하게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아까 남자가 보여주었던 축지의 보법을 흉내 내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땅을 접는 법’이란 뜻으로, 같은 거리를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도술의 일종이다.
선술(仙術)
원래 방술(方術)에서 출발한 단어로, 방술(方術)이란 자연현상에서 규칙성을 이끌어내고 그러한 규칙에 의해 길흉을 점치거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학문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발달하였으며, 현상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탐구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과학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다.
이 방술은 처음에는 도교에서 신선에 이르는 여러 방법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방술은 다른 말로 도술(道術) 또는 선술(仙術)이라고도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