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씨의 탈> 3부 –16

여덟. 21세기에 사는 선비, 도사로 돌아오다. - 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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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열광하는 소녀팬들의 앞쪽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열광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오빠~~! 결혼하자~! 산!”


“네! 다시 한번 이번 주 1위를 차지한 XYZ에 큰 박수를 보내주세요.”


가요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은 남녀 배우가 입을 맞춰 무대를 내려가는 아이돌 그룹 XYZ를 열광하는 팬들의 환성에 추임새를 넣었다.


“XYZ! XYZ!”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올라온 핫 스타즈의 멤버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XYZ를 열광하는 목소리는 스튜디오 전체를 꽉 채우며 울려 퍼졌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표정으로 진이 빠진 멤버들이 무대를 내려와 분장실 쪽으로 가면서 복도에 털썩 들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 와중에도 뒤 따라온 매니저가 건네는 이온음료통을 하나씩 들고 수분을 보충하기에 급급했다.


“산이는? 왜 산이는 같이 안 왔어?”


갑자기 보이지 않는 산이에게 줄 이온음료를 들고 매니저 한석이 귀신에 홀린 듯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산이 없으니까 그거 내가 마셔도 되는 거죠?”


한율이 냉큼 매니저의 손에 들려 있던 이온음료를 낚아챌 듯 손을 뻗었다.


“안되지, 인마! 산이가 그래도 리더인데! 산이를 챙겨야지. 산이 어디서 또 떨군 거냐?”


“팬들이나 매니저나 그놈의 산이 산이!”


한율이 손에 들고 있던 다 마신 이온음료 통을 벽에 던지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매니저는 한율의 욕을 뒤로하고 산이가 또 어디서 옆으로 샜는지 여기저기 뒤지며 다시 역으로 왔던 길을 가며 여기저기 다른 팀의 대기실을 기웃대며 산이를 찾았다.



“뭐예요, 누구세요?”


분명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팀들에게 인사하고 정신없이 걸어 나오는데 옆쪽의 대기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가느다랗지만 힘 있는 손이 불쑥 튀어나와 자신의 팔목을 잡아 안으로 잡아끌었다. 끌려들어 온 공간에는 마치 문도 없는 사각 공간처럼 환하게 육각체로 둘러싸인 공간의 한가운데였다. 그 앞쪽으로 쌓여있는 하얀 박스 같은 위에 하이힐에 정장을 한 몸매가 탄탄한 여자가 안경의 밑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 편하게 걸터앉아 있는 탈 같은 것을 쓴 존재가 보였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한데, 아무래도 우리 쪽 사정이 급해져서 네 대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져서 찾아왔어.”


정면 꼭대기의 존재와 달리 오른쪽에 귀퉁이 한참 위쪽에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꼬마 여자아이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 허리가 굽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머리가 하얀 탈을 쓴 존재가 또 한 명 지팡이를 쥐고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고민을 오래 한다고 좋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늙고 걸쭉한 목소리로 백발의 존재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누, 누구신데,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여긴 아무도 없어. 우리가 만든 독립 공간이야.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모른 척 그만하고 얼른 대답하라구!”


산이가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처음 말을 걸었던 가면을 쓴 사람의 얼굴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등 뒤를 쳐다보며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산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회색 승복을 입은 스님의 탈을 쓴 기골이 장대한 존재가 팔짱을 끼고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하, 할아버지.”


산이는 탈을 쓰고 있었지만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꿈에라도 한번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에게 그렇게 많이 절하고 빌었던 그 존재가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짓까지 해가면서 내 존재를 산이에게 드러내는 것이 너희들 목적인 게냐?”


“하, 할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아이에게 모습을 감추고 그렇게까지 몸에 스며들어가면서 아이를 지키려고 했던 영감의 의도가 도대체 뭔데?”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백발의 허리가 굽은 존재는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하회탈의 할미탈을 쓰고 있었다. 허리가 굽어 있고 지팡이를 쥐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느껴지는 것이 연약하거나 늙고 힘없는 할머니의 존재라는 느낌은 눈곱만치도 들지 않았다.


“너희에게 이루고 싶은 이상이 있다면, 나에게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는 것뿐이다. 나는 산이가 힘겨운 일을 겪는 걸 원치 않아.”


“그러면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드러내지 말았었야지. 스님도 그 놈들의 존재에 대해 용서 못할 정도의 분노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이번엔 정면에서 내려온 각시탈을 쓴 존재가 산이를 스쳐 지나며 산이가 할아버지라고 부른 승복의 스님 탈을 쓴 존재에게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우리가 원래 가진 사명을 지키기 위해 굳이 내게 산이를 보호하는 것을 포기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산이의 안전을 위해 사명을 모른 척하고 천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거 다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시나요? 우리가 지금 이 잘생긴 청년에게 위해라도 가할 것처럼 말씀하시네? 스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이 항상 안전하고 아무 탈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내놓고 사지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스님 정도의 능력이라면 이 친구 한 명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쯤도 아니라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깔끔한 투피스를 입고 있던 안경을 쓴 여자가 까랑까랑한 소프라노톤으로 발음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가며 스님 탈의 존재에게 말했다.


“물아일체를 이룬 너희와 산이는 달라. 아직 산이는 내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스님 탈의 존재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려는데 산이가 그의 말을 막으며 어렵게 입을 뗐다.


“아니요. 할아버지. 알고 있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느끼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랬잖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는 중이 될 사람이 아니니까 할아버지가 입적하시고 나면 절을 떠나라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유품을 찾다가 발견한 그 탈을 봤을 때, 정신을 잃고서 열흘만에 병원에서 일어났을 때, 그 탈이 없어졌고, 그렇게 찾던 그 탈이 제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를 꿈에서라도 뵙고 싶었는데, 늘 뒷모습만 보여주시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제 안에 어딘가에 함께 계시다는 걸요.”


말을 하면서 산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저한테 그렇게 감추셨어요? 그냥 할아버지 얼굴을 꿈에서라도 뵙고 싶었어요.”


“저런! 쯧쯧. 불쌍한 것 같으니... 저 영감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던 게로구나?”


할미 탈의 존재가 혀를 끌끌 차며 눈물을 흘리는 산이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산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스님 탈의 존재를 바라보며 조금씩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산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야.”


스님 탈이 당황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려 들었다.


“영감이 말하기 그러면 내가 설명해줄까?”


“닥쳐! 이 빌어먹을 할망구 같으니!”


스님 탈의 존재가 버럭 화를 내며 할미탈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봐. 아이돌 오빠. 지금부터 내가 간단하게 정리해줄 테니까 잘 들어.”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에게 다가서는 산이를 스님 탈의 존재가 몸에 힘을 빼며 두 팔을 벌려 맞았다. 산이가 이내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뛰어들며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했다.


“할아버지!”


“그래. 내 새끼. 그동안 참느라 힘들었지? 고생했다. 그래도 이 할애비가 다 보고 있었다. 잘 참고 꿋꿋하게 잘 커주었구나.”


“원래 하회탈의 영혼을 네게 건네주어야 한다는 운명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할아비는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운명을 타고난 네가 이런 힘겨운 운명을 또 안는 것이 내키지 않아 네게 갈 운명을 막아섰단다. 그 이유로 본래 스님 탈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내 영혼이 붙어 있는 채로 너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이고...”


“상관없어요, 그게 뭐가 되었든. 저는 할아버지만 다시 볼 수 있는 걸로 됐어요.”


고개를 흔들며 오열하는 덩치 큰 열일곱의 소년은 그렇게 할아버지의 품에서 한참을 울고서야 지쳐 잠들 듯 기절했다.


“조금 자고 일어나며 괜찮을 게다.”


스님 탈의 할아버지가 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옆에 가만히 눕히고 다시 일어나 앞에 있는 두 사람과 두 존재를 맞아 섰다.


“너희 같은 과격한 방법으로 노골적인 친일 청산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저쪽이랑 손을 잡겠다는 건가?”


각시탈이 시비를 걸 듯 산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쪽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산이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게 누가 되었든 간에 내가 운명을 거슬렀던 것처럼 언제든 누구라도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하던 공간이 우르르거리며 흔들리며 번개 같은 전기가 빠지직거리며 주변을 돌았다. 약간이긴 했지만 눈에 보일 정도의 전기 같은 것은 그녀들의 옷자락을 약간이지만 태워 들어갔다.


“아니 아니. 우리는 싸우자고 온 게 아니라구. 그렇게 바로 흥분하면 곤란하다구.”


“그리고 나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 내 힘이 필요하다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부탁을 하거라. 다시는 어쭙잖게 산이를 빌미로 내 의지를 실험하는 짓은 너희들의 목숨을 걸고서 하는 게 좋을 게야.”


삐거억-


“제가 좀 끼어도 되겠습니까?”


문이 열리며 선비 탈을 쓴 존재와 키가 훤칠한 남자가 들어섰다.


“뭐, 뭐야? 어떻게 이 공간에....”


한쪽 귀퉁이에서 손으로 뭔가를 계속해서 짚어가며 눈이 동그랗게 커져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놀랐다면 사과하지요. 이런 공간에 들어오는 것쯤 저에게는 큰일도 아닌지라... 지난번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터라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여러분이 계신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선비는 남자의 뒤쪽에 가만히 서서 주변의 각시탈과 할미탈, 그리고 투피스를 입은 여자와 당황해하는 여자아이를 한꺼번에 경계하는 듯 분위기를 압도했다.


“스님에게도 정식으로는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저는 선비 탈을 부리는 승환이라 합니다.”


남자의 등장에 계속 바쁜 손을 놀리던 여자 아이는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분해할 것 없다. 선비는 원래 우리와는 맥이 다른 도가(道家) 쪽의 명맥을 이은 도사(道士)란다. 그에게는 신물(神物)까지 있으니 네가 만든 공간에 들어온 것에 대해 너무 분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그럼.”


할미탈이 어느 사이엔가 분해하는 여자 아이의 곁에 가서 등을 토닥이며 설명해주었다.


“스님을 포함하여 활빈당 쪽에 제안을 하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제안?”


선비를 뒤에 두고 정중한 듯한 태도와 말씨를 쓰는 승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당당하게 제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일단 한번 들어보기나 하죠.”


투피스의 안경을 낀 여자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와 승환의 앞에 서서 그와 선비를 날카로운 눈매로 응시했다.


“하회탈의 영혼들도 동의하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적대적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여기까지가 현상황입니다만, 맞습니까?”


“그건 이미 모두 파악하신 대로일 테니... 그래서요? 우리 검사님의 생각은 어느 쪽이신지...?”


여자가 미미하게 웃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승환에게 되물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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