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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25. 2016

두 번의 산후조리, 두 번의 후회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이 있어. 뭐부터 들을래?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이 있어. 뭐부터 먹을래?


전 항상 후자입니다. 슬픈 소식 먼저 듣고 맛없는 음식부터 먹습니다. 끝이 좋은게 좋아서요.


실패담과 성공담이 있어. 둘 중 하나만 들어야 한다면, 뭘 들을래?


실패담이요. 실패를 통해 배운 게 있으니 들려주겠다는 걸테고, 배운 것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안에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패담을 듣는 것도, 들려주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 중 가장 자주 들려주는 실패담은 산후조리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니 산후조리를 두 번 했고, 두 번 다, 후회가 남았습니다.


첫째를 낳고 두 주간 산후조리원에 있었습니다. 26시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싶은 진통이 지나갔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지만 그 다음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방군데로 흩어진 뼈 조각들이 재조립되는 느낌이랄까요. 병원에서 2박3일을 지내고 집에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눈도 못 뜬 아이를 돌봐야 하죠. 산후조리원을 잘 예약했다 싶었습니다.


편했습니다. 산모이기에 하루 네끼 미역국에 맛있는 반찬을 대접받았고 태어나서 처음 전신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보고싶을 땐 어그적어그적 신생아실에 걸어가 창밖에서 아이를 보면 됐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제가 할 일은 먹고 자고 쉬고, 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2주 간 한 일이 그것 뿐이 없었다는 겁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날, '퇴소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니 한 팔에 아이 전신을 올려 내 몸에 밀착시키고, 손은 아기 머리를 감쌉니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니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접어 귓구멍을 막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를 씻기는 것이죠. 씻기는 게 아니라 묘기같은데, 내일부턴 내가 해야 한답니다.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기는 팔 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이면 놀란다고 합니다. 그러니 24시간 속싸개로 단단히 싸줘야 안정합니다. 아기가 편하게, 단단히 싸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처음 하는데 잘 할리 있나요. 이것도 내일부턴 내가 해야 한답니다. 끙.



그래도 난 엄마니까, 다 할 수 있을꺼야. 화이팅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는 수시로 똥을 싸고 더 수시로 젖을 달라고 하고 더 더 수시로 웁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도 저도 아기도 피난민이 따로 없습니다.


산후도우미 업체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당장, 오실 수 있는 분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시자 모든 게 안정됩니다.


2주 동안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함께 했습니다.


아기를 씻기는 걸 봤고, 연습했고, 같이 했고, 혼자 했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갈 때 다리를 너무 들면 배가 눌려서 응가가 흘러나오니 너무 들면 안된다는 걸 봤고, 연습하고 배웠습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젖을 찾으려고 입을 벌리고 혀를 낼름거리며 신호를 보낸다는 걸 배웠고, 혀를 낼름거릴 때 옆에 있었고, 울기 전에 젖을 물렸습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집에 계신 시간은 내내 배움과 연습의 시간이었습니다.


"저 산후조리원 괜히 갔던 것 같아요. 이모님이 계셔서 집에서도 충분히 몸을 회복하면서 아기를 돌보는 법도 배울 수 있었는데 돈 낭비했나봐요"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땐, 산모는 바람 맞으면 바람든다고 창 문도 못 열게하고 절절 끓는 방에서 쉬게 했지. 그런데 요즘은 아니잖아. 적당한 온도 맞춘다고 산후조리원에서도 에어컨 틀고, 운동도 적당히 해야 한다고 요가도 하고 그러지. 집에서 살살 움직이는게 운동인데 말이야. 집에서 못할 건 없어."


아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 젖냄새 심장소리 한 번 듣고 신생아실로 옮겨지죠. 2박3일이 지나고 겨우 엄마 품에 안겼는데 이번엔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입니다. 2주, 한 달간 또 젖먹을 때만 엄마 품에 안깁니다. 먹고 자고 싸는게 일이니 아무 것도 모른다지만, 엄마 품에서 먹고, 엄마 곁에서 자고, 엄마 곁에서 싸는 것과는 다를 겁니다.




둘째는 산후조리원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면 첫째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엄마 없이 24시간 넘게 지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첫째때 산후조리원에 갔던 걸 후회하고 있었으니까요.


입주형 산후도우미를 쓸지, 출퇴근형 산후도우미를 쓸지, 쓰면 얼마나 쓸지만 고민했습니다.


산후조리원 2주 비용은 입주형 산후도우미 한 달 비용과 같습니다.

입주형 산후도우미 한 달 비용은 출퇴근형 산후도우미 두 달 비용이고요.


경제적 상황과 몸 회복기간을 고려한 결과 입주형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2주,  출퇴근형 산후도우미와 한 달을 보내면 무리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둘째가 내 마지막 출산이니 산후조리를 잘 하겠어. 이 계획이면 잘 할 수 있을꺼야! 완벽한 것 같았습니다.


이건, 분명 연출된 사진일 겁니다!!


하지만 변수는 첫째였습니다. 둘째를 낳고 병원에 있는 동안 첫째는 엄마를 오매불망 기다렸고, '엄마는 아기를 낳았으니 누워 있어야 해' '엄마는 지금 아프니까 쉬워야 해'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길 수 있는데 왜 나는 안 되냐고 떼를 쓰고, 엄마랑 놀이터에 가고 마을버스를 타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남편의 휴가가 끝나고 출근한 날, 전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출산 5일 만에 (여름이었지만) 중무장하고 놀이터에 나갔습니다. 집에서도 누워있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어주고 같이 놀았습니다.


아파트 같은 동에 비슷한 시기에 둘째 출산을 앞둔 엄마가 있었는데, 그 엄마는 놀이터에 나온 저를 보고 뒤늦게 산후조리원을 예약했습니다. 첫째가 있는데 둘째를 집에서 산후조리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안 것이죠.


저 또한 후회했습니다. 첫째 때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걸 후회한 가장 큰 이유는, 신생아를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둘째는 둘째니까, 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까먹었더라도 한 번 보면, 한 번 해보면 몸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를 낳고는 집에서의 산후조리를 방해할 사람이 없었는데, 둘째를 낳고는 산후조리를 완벽히 막을 수 있는 첫째가 집에 있습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동생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직 임신을 하지도 않았는데) 산후조리 이야기까지 하게 됐지요.


"형님, 산후조리원 들어가야 할까요?"

"첫째잖아. 산후조리원 들어갈 돈으로 산후도우미를 길~~~게 써. 마사지도 더 많이 받고."


저의 실패담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이미 실패한 거 어쩌겠습니다. 미래의 실패 하나 줄일 수 있다면, 그걸로 위안 삼아야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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