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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26. 2016

여자 서른, 커리어 잔치는 끝났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20대에 '커리어 하이'를 겪는다고 평가받는다. 서른살을 전후해 결혼이라는 인생 일대의 '대' 행사를 앞두면, 남자는 대부분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여성들은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고민하기 시작하곤 한다.
(회사 후배의 페이스북)


기회가 왔습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틈틈이 준비를 했었고,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두근두근했던 마음은 잠시였습니다. 기회이지만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살 3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

시간 관련 연구에서 최악의 시간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워킹맘.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다는 만 5세 이하의 아이가 둘인 상황.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사표를 낼까싶은 순간이 일주일에도 여러번.


이런 상황에 찾아온 기회는, 잡는 순간 나에게, 내 아이들에게, 내 가족에게 위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의 신은 앞머리만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라, 지나가고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한 손에는 저울,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생각하면 기회를 잡을 것 같아서 잠시 두근거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확 걷어찹니다.


얼마 전 회사 후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생각납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20대에 '커리어 하이'를 겪는다고 평가받는다


그 글에 댓글을 쓰다 지웠다 쓰다 지웠다, 여러번 반복하고 결국 댓글 대신 좋아요만 눌렀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20대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어느 날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모든 사람의 아쉬움 속에 정년을 맞는, 그런 직장생활을 그렸습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자, 한 계단 올라가는 대신 한 계단 내려온 느낌이었고,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할 땐 또 한 계단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둘째 임신, 두번째 육아휴직. 두 계단을 내려왔죠. 두번째 육아휴직을 끝낸 시점. 한 계단이 아닌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오는 것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아직은 끝내기 아쉬웠고, 복직을 했습니다. 업무 공백을 메우려고, 애엄마 일 못한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서, 엄마가 바깥일하면 꼭 티난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서 일도 가정도 열심히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계단에서 내려왔지만, 열심히 하면 다시 올라갈 수 있을꺼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로 일을 얼마나 하느냐를 직장 충성도로 측정하는 이 사회에서는 재택야근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칼출근 칼퇴근이 부각될 뿐입니다. 한 계단 올라가기? 내려가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래서 여자의 커리어 하이는 20대라는 후배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전업맘이어도 워킹맘이어도, 평사원이었어도 과장이었어도, 우리의 커리어하이는 결혼과 임신 전 그 자리입니다.


결혼을 앞둔 후배가 있습니다. 이직을 하고 싶지만, 관심을 보였던 회사에선 미혼이라는 이유로 후배의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30대 초반. 곧 결혼할 나이니까요.


결혼한 뒤 이직?

결혼한 여성의 이력서는 곧 임신할 직원의 이력서이고,

임신한 여성의 이력서는 곧 휴직할 여성의 이력서,

유직했던 여성의 이력서는 어린 아이를 둔 엄마의 이력서가 됩니다.

모두 마이너스가 되는 스펙들입니다.



임신을 미룬 후배가 있습니다. 커리어를 쌓기에 임신과 육아는 걸림돌이란 걸 알기에 일단 커리어 쌓는 것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새벽에 퇴근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동기들보다 빠르게 과장이 됐습니다. 이제 임신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난임 판정을 받았습니다. '난임 휴직'을 한 후배는 순서를 바꾸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 둘의 엄마인 저는 '마이너스 스펙'의 직장인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니 고맙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잡지 않았습니다. 기회를 잡았으면 한 계단 올라갈 수 있었을텐데,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내 커리어의 끝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짐작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회를 잡을 순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복직한 선배는 그랬습니다.


"내 커리어의 끝이 어딘지 매일 궁금해.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데, 언제 어떻게 끝날지 너무 궁금하지 않아?"


온라인에서 만난 한 워킹맘은 "언제까지 출근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매일 출근길이 이벤트같다. 이렇게 뾰족구두 신을 수 있는 날이 오늘까지 일 수도 있어 발이 아파도 뾰족구두를 신는다"고 했습니다.


그냥, 그게 슬픕니다. 여성은 20대에 '커리어 하이'를 겪는다는데, 20대였던 그 시절, 그게 나의 '커리어 하이'였다는 걸 몰랐다는 걸요. 노력하면 더 높이, 열심히 하면 더 높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20대에 겪은 그것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는게 두고두고 슬픕니다.



+ 그렇다고 기회를 잡지 않은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기회를 놓친게 아니라, 잡지 않은 것이고

아이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이를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엄마이자 직장인인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강요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지금 내가 기회를 잡지 않은 건, 한숨 돌릴 기회를 잡은 걸지도 모른다고요.

30대 중반 워킹맘에게 기회란 그런 의미입니다.


+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헷갈립니다. 이 글의 분류는 직장인지 육아인지 말입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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