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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Feb 02. 2017

현실 워킹맘이 바라는 ‘워킹맘 지원 정책’

얼마 전 아이 셋의 엄마이자 공무원이었던 한 워킹맘이 과로사했습니다. 안타까움과 애도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관련 부처는 부랴부랴 토요일 근무를 금지했습니다. 3년 육아휴직제, 근무시간 단축제 등 대선후보들은 앞다투어 워킹맘 지원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상하죠.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림의 떡’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니야?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워킹맘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바쁜 것, 잠 잘 시간도 쪼개고 있다는 것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길 바란다면 목소리를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며 아쉬운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새로운 제도를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의 제도를 현실화해주세요.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육아휴직 사용률, 모르시진 않겠지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첫아이를 출산한 15~49세 직장인 여성 788명 중 41.4%만이 육아휴직을 썼습니다. 직종간 차이는 컸습니다. 공무원 교사의 육아휴직 사용률(75%)에 비해 일반 회사 직장인의 사용률(34.5%)은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1년간의 육아휴직을 쓰는 민간 기업 직장인이 34.5% 뿐이라는 겁니다.


 
같은 조사에서 출산휴가 사용률조차 60%에 그쳤습니다. 되묻고 싶습니다. 출산전후휴가조차 3명 중 1명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면 누가 사용할 수 있을까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부터 높이는 게 먼저 아닐까요.
 

출처: 직장맘이 궁금한 100문100답


2013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사용률은 1% 였습니다. 2015년에는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한 경우 임금과 처우 부분에서 모두 손해를 봤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승진에서 누락됐고, 주요 업무에서 밀려나는 등 고용 불안정이 컸다는 것입니다.
 
‘서류상의 제도’는 이미 충분합니다. 발표될 때마다 ‘이제 아이 키우며 일 할 만 해 지겠네’ 기대했던 제도들입니다. 결국엔 ‘그림의 떡’으로 남은 제도들이고요.
 
엄마들은 육아휴직을 늘려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발 첫돌까지만이라도 눈치보지 않고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요.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는 대신, 출산휴가 육아휴직 가족병가 근로시간 단축 등 지금의 제도를 현실화하고 강제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출산휴가가 부여되고, 출산휴가가 끝나면 육아휴직이 자동신청되면 좋겠습니다. 육아휴직 신청서를 쓰는 것 대신 반대로 육아휴직을 쓰고 싶지 않다면 복직신청서를 쓰면 좋겠습니다.




# 워킹맘’만을’ 위한 정책은
워킹맘을 고립시킵니다.
 
10시부터 4시까지 단축근무제를 실시하겠다고 합니다. 월급도 똑같이 주면서요. 실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아이가 1등으로 등원해 꼴찌로 하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마냥 반기기엔 회계법인 언스트앤영 사례가 생각납니다. 언스트앤영은 1980년대에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탄력근무제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탄력근무제는 엄마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고, 결과적으로 불만만 더 높아졌습니다. 워킹맘들은 자신들이 밀려날까봐 걱정했고 다른 직원들은 워킹맘의 공백을 메우려 야근을 늘려야 했습니다. 탄력근무제가 워킹맘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직원을 위한 정책으로 문화가 바뀐 뒤에야 이 정책이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1년씩 두 번 썼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격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일손 부족한데…’ 눈총도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은 권리야!’ 당당하기엔 미안했습니다. 저의 공백을 동료들이 메울 것이 뻔했으니까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단축근무를 시행한다면, 이 제도가 워킹맘 만을 위한 제도라면, 워킹맘만 특혜를 누린다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회사 입장에서는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장기간 단축근무하며 회사에 집중하지 못 할 워킹맘보다는 남자 직원을 키우는 게 낫다고 계산할 겁니다. 워킹맘은 주변부를 맴돌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워킹맘을 넘어 워킹대디,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부모가 되면 누구나 받게 되는 지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서 엄마아빠 역할의 균형도 맞출 수 있습니다. 엄마만 단축근로를 하게 된다면 육아의 축은 계속 엄마에게 치우치게 됩니다. 엄마에게 더 기울어지겠죠.



덴마크에서 1960년대에 맞벌이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엄마들에게 육아휴직, 시간제 근무, 탄력근무 등 온갖 형태의 휴가를 주는 정책을 도입한 결과 여자들이 노동강도가 높은 민간부문 일자리에서 밀려나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공공부문 일자리로 몰렸다. 정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북유럽 국가들은 이른바 ‘직업의 성별 분리’가 철저한 나라가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지배하던 분야들, 기업의 고위직, 사업가들의 세계에서는 여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북유럽 국가들이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것을 비롯한 성중립적 가족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런 현실들이 있다.
(출처: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더퀘스트)




주변에서 ‘난 맞벌이 할 만해’라는 가족을 보면 엄마의 근로시간이 짧은 것보다 아빠의 퇴근 시간이 빠릅니다(정확히 말하면 야근이 적습니다) 핵가족 시대입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습니다. 친정 혹은 시댁과 합가하지 않는 한, 육아는 엄마와 아빠의 몫이지요. 엄마가 기댈 사람은 아빠가 유일합니다.
 
아빠가 회사에 묶여있으면 육아는 오롯이 엄마가 감당하게 됩니다. 엄마가 갑자기 야근을 해야 할 때, 회식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있으니까, 마음 편히 남편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요즘 아빠들, 달라졌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시간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마음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몸이 피곤하면 ‘친구같은 아빠’가 되기 힘듭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야 합니다. 웃음꽃이 넘쳐나다 아빠가 퇴근하면 조용해지는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어야 합니다.
 
근무시간 단축에 앞서 정시퇴근을 보장해 주세요. 단기적으로는 일주일에 두번이라도 ‘가족의 날’을 지정해 주세요.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게, 퇴근시간에 눈치보며 ‘칼퇴근’하는 대신 당당하게 ‘정시퇴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디 엄마를 직장에서 외로운 여직원이,

아빠를 집 안에서 외로운 가장이,

우리 아이들을 엄마아빠가 고픈 외로운 아이들이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게 아이 둘의 엄마이자 경력 12년차 직장인, 5년차 워킹맘의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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