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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ug 08. 2017

어린이집 방학, 워킹맘에게 필요한 것

"엄마, 나 어린이집 안 갈래. 동생 형님들이랑 다 같이 있는 거 싫어. 친구들 다 오는 날 갈래."


웅이가 발버둥을 치며 웁니다. 이렇게 심하게 우는 일이 드문데 벌써 30분 째입니다.


"그래도 준성이 태희 하윤이는 올꺼야. 형님반 준형이 형 시후 누나도 올 걸?"

"싫다고! 민찬이 재형인 안 오잖아! 내 선생님도 없어!"


'어린이집 1년차' 결이는 오빠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끔뻑끔뻑. 반면 '어린이집 3년차' 웅이는 방학이 뭔지, 통합보육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금요일 어린이집 선생님의 "다음주는 방학이니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고 오세요"라는 말씀이 기쁘지 않았을 겁니다.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대뜸 묻더군요.


"엄마, 나 방학이래."

"맞아. 다음주 웅이 방학이야.

그래서 우리 내일 시골에 놀러가기로 했잖아."

"몇 밤 자고 와?"

"세 밤 자고 오지."

"그럼 방학 끝나?"

"아니. 우린 화요일에 집에 오고, 방학은 금요일까지야."

"그럼 나 어린이집에 가?"


네. 수요일부턴 어린이집에 가야합니다. 웅이 결이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낼 수 있으면 좋았을테지만 남은 휴가가 많지 않습니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바뀔 때, 아이들이 아픈 날 휴가를 썼습니다. 아끼고 아껴도 부족한 걸 알기에 남편과 번갈아가며 휴가를 냈지만 남은 날이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가족행사, 겨울방학을 계산하니

딱 이틀 휴가를 낼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시골에 간다고, 잠자리 매미 많이 잡는다고 커다란 채집망 가져가겠다며 들떠있었는데, 기운이 쭉 빠진 웅이를 보니 할 말이 없습니다. 시골에 다녀와서 어린이집에 잘 가기로 약속했었지만 그 약속도 잊은 듯 합니다. 이럴 땐 그냥 정면돌파입니다.


"엄마아빠도 웅이 방학에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해. 그런데 엄마아빠 회사는 방학이 아니잖아. 엄마아빤 1년에 딱 15번 회사에 안 갈 수 있거든. 웅이가 아플 때도 옆에 있고 싶고 어린이집에서 동요제를 하면 웅이 응원도 가고 싶어. 그래서 아껴써야 해. 웅이도 맛있는 과자는 한 번에 다 안 먹고 조금 먹고 남겨두고 다음에 또 먹고 그러지? 엄마아빠 휴가도 그래. 이번 방학엔 엄마가 두번만 회사 안가고, 다음에 쓰게 남겨둬야 할 것 같아. 웅이가 이해해주면 좋겠어."


고작 6살짜리 꼬맹이한테 이해를 바라는 게 미안한데, 웅이 울음이 잦아듭니다. 그리고 한마디.  


"엄마아빠 회사에 휴가가 많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입니다.

어린이집 방학,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쉬셔야 합니다. 그래야 또 힘을 내서 우리 예쁜 아이들, 잘 돌봐주시죠. 방학 기간에 맞춰 휴가를 쓰셔야 하니 오히려 그게 죄송할 뿐입니다.


웅이가 우는 것, 당연합니다. 저 또한 학교에 다닐 때 방학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늦잠도 잘 수 있는 방학이 참 좋았습니다. 웅이 결이에게도 방학이 필요합니다. 한 학기 열심히 어린이집 다녔으니 아이들도 방학을 누릴 권리 있습니다.



바램과 현실은 다릅니다. 어린이집 방학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입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주6일 하루 12시간 운영해야 하며 영유아의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을 때만 휴원할 수 있지만, 휴원하여 영유아 및 부모에게 심한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자율등원기간'이라는 이름의 방학을 하고, 이 기간 등원한 아이들은 한 교실에서 통합보육을 합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23조
다. 어린이집의 운영일 및 운영시간
1) 어린이집은 주6일 이상, 하루에 12시간 이상 운영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자의 근로시간 등을 고려하여 보호자 및 그 영유아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어린이집의 운영일 및 운영시간을 조정하여 운영하는 경우로서 어린이집의 원장이 미리 영유아의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어린이집은 천재지변이나 감염병의 발생 등 어린이집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등 정당한 사유 없이 휴원하여 영유아 및 부모에게 심한 불편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어린이집이 갑자기 단축수업만 해도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자율등원기간에 등원을 원하는 경우 체크해달라'는 안내문을 받으면 '얼마 남지 않은 휴가 또 어떻게 쪼개야 하나' 머리가 아파옵니다.


통합보육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부모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어린이집이 '연중무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씁쓸합니다. 아이를 생각한다면, 부모의 사정에 맞춰 통합보육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방학에 부모가 휴가를 내고 '아이와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자율등원기간'이 아니라 어린이집도 당당히 방학을 하고, 어린이집 방학 기간 동안 부모에게 '부모휴가'를 준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욕심이지 싶다가도 육아 선진국들을 보면 그렇게 큰 욕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등 육아 선진국은 어린이집도 방학을 하고, 휴가가 넉넉한 부모는 큰 부담없이 휴가를 내니까요.


조금 더 아이 중심인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아이 걱정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부모고프지 않게 자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합니다.


웅이 결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길, 얼마 전부터 일부 공무원들에게 연간 2일 '자녀돌봄휴가'가 도입됐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주최하는 행사 또는 교사와의 상담에 참여할 경우 사용할 수 있다는데요. 부러우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이런 제도가 더 많이 확충되고 누구나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웅이 결이가 친구들과 함께 "오예! 방학이다" 만세 부를 수 있길 바랍니다.


+ 웅이 결이 여름방학 중 이틀은 제가 휴가를 냈고, 하루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평소보다 일찍 하원시켜주셨고 하루는 친언니, 남은 하루는 시터 이모님께서 일찍 오셨습니다. 웅이와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동료 워킹맘을 회사 화장실에서 만났습니다. '고작 일주일 방학도 겨우겨우 지나가는데 우리 애들 초등학교 가면 어쩌니…' 같이 한숨만 쉬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 쯤 이런 한숨 쉬지 않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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