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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Nov 13. 2017

다시 생각해 본
'아들 사람' 키우는 법

우리집 책장 한 쪽엔 만화 칸이 있습니다. 남편이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신혼시절 집을 꾸미며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모은 ‘애장품’ 만화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만화를 한 권 한 권 꽂으며 남편이 그러더군요.


“어렸을 때 소공녀를 보고 만화에 푹 빠지기 시작했어. 소공녀를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지금 봐도 또 울 것 같아.”


내 눈앞에 있는 이 듬직한 30대 남자가 만화를 보고 운다? 그 때만 해도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공녀를 보고 울었어? 그리고 지금도 울 수 있다고? 오빠가?”


저도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이 울 때면 부모님은 물론 주변 어르신들은 모두 ‘남자는 평생 딱 세 번만 우는 거다’ 나무라셨습니다. 제가 울면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천상 여자네’ 꼭 안고 토닥여주셨죠. 그래서 남편이 만화를 보고 울었다는 말이, 지금도 울 수 있다는 말이 좀 어색했습니다.



웅이가 뱃속에 있을 때, 아들이라는 걸 안 순간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한 남자로 키워야겠다’ 생각했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부들부들한 편이라 우리 아이는 더욱 단단하고 카리스마있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막상 웅이가 태어나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웅이는 남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자아이라고 여자아이와 다를 게 하나 없었습니다. 꽃을 좋아했고, 옷가게에 가면 분홍색 모자달린 옷을 잡고 놓지 않았고, 자다깨서 뒤척일 땐 인형을 안겨주면 다시 푹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선배 엄마들의 말들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학교 들어갔더니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 불리해 보일 때가 있어. 나도 아들 딸 키우지만, 딸한텐 ‘여자라고 못 할 거 없어.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야기하는데 아들한텐 ‘우는 거 아니다. 참아’라고 이야기했거든. 딸은 거리낌없는데 아들은 움츠러드는 거 보면 내 잘못인가 싶더라.”


저 또한 그랬습니다. 딸인 결이에겐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 말해주며 인형과 자동차 장난감을 같이 보여주고, 파랑 노랑 초록 분홍색 옷을 골고루 입히지만 웅이에겐 “우리 소꿉놀이하면서 놀까?” 물은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아들을 딸처럼 키울 때까지 
이것은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미국 사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러다 지난 6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이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아들딸 성별 구분없이 '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기사에서 구체적인 팁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영유아 시기에는 우는 횟수와 양이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5살이 되면 화를 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 외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사회적인 압력을 받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울음을 참게 되는 것이죠. 기사에서는 남자 아이도 눈물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억압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화나면 건강하게 화를 내고 슬플 땐 울고, 무서울 땐 ‘에이, 이게 뭐가 무서워.’ 하는 대신 무서워하고 용기를 낼 수 있게 두라고 합니다. 


#2. 


남자아이에게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의식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사분담을 보고 자라야 웅이 결이가 자라 가정을 꾸려도 가사분담을 잘 할 것 같아 일부로 아이들 앞에서 집안일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웅이한테는 “웅아, 아빠가 설거지하지? 남자도 설거지 하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니 조금 더 바꿔야 하겠더군요. “남자도 설거지 하는거야”가 아닌 “누구나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할 줄 알아야해. 내 앞가림은 내가 할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남자도 설거지를 하는 거야’라는 말에는 원래 설거지는 여자의 몫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요. 기사를 읽은 뒤로 남편과 저는 ‘남자도’ ‘여자도’라고 시작하는 문장은 의식적으로 피하기로 했습니다. 살면서 익혀야 할 일이라면 ‘누구나’라는 말을 시작하며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켄터기 대학의 발달 심리학자 크리스티아 브라운(christia brown)은 아이들은 3살부터 고정관념을 잘 발견하고 습득한다고 말합니다. 이 때 아이가 보고느끼는 것들을 고정관념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이 세상은 이게 당연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네요. 


동화책을 고를 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담긴 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웅이 결이가 좋아하는 프랑스 전집이 있는데요. 이 책은 엄마보다 아빠가 더 많이 나옵니다. 아빠가 요리를 하고 아빠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날이 많습니다. 엄마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일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많고요. 여자 과학자, 여자 덤프트럭 운전사, 남자 간호사가 그려진 책을 보여주고 그런 그림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아빠가 출근할 땐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1절을 불러주고 "엄마가 출근할 땐 뽀뽀뽀, 아빠가 안아줘도 뽀뽀뽀" 개사해서 2절을 불러줍니다. 


+ 결이를 딸보다 사람으로, 웅이를 아들보다 사람으로 대하자고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둘부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남편과 내가 아이들의 가장 큰 교과서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노릇이 무겁고, 그래서 부모가 되면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웅이 결이보단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 ̄^ ̄)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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