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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an 15. 2018

엄마인 나,
왜 일하냐고 물으신다면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될 때까지
경력단절여성이 되지 않았다면,  
경제적 이유 외에도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2년 전 겨울, 웅이가 아프고 결이가 아프고 다시 웅이가 아프고, 회사일은 회사일대로 꼬이고 꼬였을 때. 여기가 한계인가 이젠 정말 사표를 내야 할까 싶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읽은 기사입니다. ‘경제적 이유 외에도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이 문장이 머리 속을 맴돌고 맴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을 계속할 만큼, 나는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었습니다.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그보다, 좋아한다면, 대체 얼마만큼 좋아해야 이런 순간에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SNS에 주저리주저리 글을 올리며 초등학생 아이를 둔 선배 워킹맘들에게 정말 일을 좋아해서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네.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이 순간을 버틸 만큼은 좋네요.”  


그리고 얼마 전 이렇게 답을 했던 그 선배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당시 1학년이었던 아이는 이제 3학년입니다. 장난스럽게 “여전히 일이 좋으세요?” 물었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그러시더군요. “좋아해야하나? 그냥 하는 거지.” 



“그냥 하는 건 또 뭐예요!” 피식 웃어버렸지만 그 대답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즐깁니다. 하지만 워킹맘이 되고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복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회사 근처에서 고모부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복직한 걸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회사 다니고 있었어? 일 엄청 좋아하나봐”라고 하시더군요. 저 스스로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 하려고 금쪽같은 새끼 떼어놓고 출근하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엄마’라는 사람이 출근을 하려면 아이를 두고 출근할 만큼 월급이 많거나, 일에 대한 애정이 넘치거나,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는 아이 떼어 놓고 출근할 때면 ‘내가 얼마나 번다고’ ‘얼마나 좋아하는 일이라고’ ‘뭐 얼마나 중요한 일 한다고’라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일은 그저 일일 뿐입니다. 일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 얻고 있는 것만 생각해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 여유


일을 하며 경제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맞벌이라고 우리집 수입이 두 배가 되는 건 아닙니다. ‘맞벌이 비용’도 있어 당장은 남는 게 많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남편 혼자 벌 때보단 여윳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금전적인 여유보다 더 큰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얼마를 버느냐를 떠나 나도 돈을 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일 때도 있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직장인 열 명 중 아홉 명은 맞벌이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위기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37.7%)를 꼽았더군요. 남편과 같이 일을 하니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일하는 순간의 즐거움 


일을 즐깁니다. 일을 해서 내는 성과나 결과물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알아보고 정리하는, 무언가를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편입니다. 차분히 나를 쓰는 느낌이 꽤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에서 승승가도를 달리는 그런 앞날을 바라진 않습니다. 물론 한 때는 저 또한 승진을 바랬었지요.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해 전력질주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싶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급한 순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순으로요.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원칙을 정해두고, 최소한 그 원칙은 지키려고 합니다. 그 원칙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동기들이 먼저 승진할 때, 동료들과 비교될 땐 내가 초라해 보이지만 그럴 땐 눈감고 귀 닫고 내 안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직장에서의 승진보다는 내 삶에서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 되뇌입니다. 일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일을 좋아하느냐를 떠나 반대로 일이 나에게 주는 것들을 생각하면 일 하는 장점이 보입니다. 일을 통해 얻는 경제적 여유, 만족감들을 자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일을 즐기는데 도움이 됩니다.   


+ 얼마 전 한 워킹맘이 물으셨습니다. “저는 월급받는 게 좋아서 일을 해요. 너무 의미없나요?” 아뇨. 왜 의미없나요. 월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그 월급이 좋으면 됐죠. 저도 월급 좋은걸요. 내 힘으로 버는 월급도 좋고, 월급을 받아 더 많은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도 좋습니다. 뭐든 좋으면 좋은 겁니다.

++ 그러니까 일을 좋다는 거야 안 좋다는 거야! 물으신다면,  직장은 좋아하지 않지만, 일은 좋아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밀입니닷!) 


틈틈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 4학년에 언론사에 입사해 14년째 그 언론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 7살 5살이 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워킹맘 생활을 더 즐겁게, 덜 힘들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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