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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an 28. 2018

엄마 노릇이 힘든 '진짜' 이유

“엄마. 어디야?”  


주말에 친정에 갔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외출할 지도 모르니 출발할 때 연락하라’던 엄마의 말이 뒤늦게 생각났습니다.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전화해서는 볼멘소리를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기 전에 전화하라니까.” 

“까먹었지 뭐. 어딘데?” 

“거의 다 왔어. 다리 아프니까 차에서 기다려.”  


남편, 웅이 결이와 함께 현관 앞에 앉아있으니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학교에 갔는데 몸이 좋지 않아 조퇴했습니다. 엄마는 전업주부이시니 당연히 집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그래왔으니까요. 그런데 그날은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평소엔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을 열어주시던 엄마인데 (발자국 소리를 듣고 마중나오신거죠) 벨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몸은 안좋은데 현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엄마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엄마! 어디 갔었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놀란 엄마가 뛰어올라오셨고, 집에 들어간 저는 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엄마가 방문을 열고는 “엄마는 왜 맨날 집에 있어야 하는데? 엄마가 니네들 대기조야?” 큰 소리를 내셨습니다.  


놀랐습니다. “미안해. 엄마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사과하실 줄 알았습니다. 평소엔 그러셨으니까요. 그런데 그날은 화를 내셨습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씩씩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 말이 맞더군요. 

엄마가 매일 집에 있어야 한다는 건 내 바람이었을 뿐, 엄마가 매일 집에 있는 게 당연한 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매일 밥을 차려주고 옷을 챙겨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당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내 행동이 민망해져 엄마 얼굴을 마주하기 어색했습니다. 이불 속에 끝까지 누워있다가 저녁 먹으라는 엄마 말씀에 못 이기는 척 나가 저녁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과일까지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지금 생각해도 괘씸한 딸이지요. 미안 엄마! ㅜㅜ)


그 날 이후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어느날 다시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엄마는 항상 집에 있어야 해’라고 생각한 게 엄마에겐 얼마나 큰 무게였을지, 그 땐 몰랐습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부모님의 딸이고, 언니의 동생이고, 남동생의 누나이고, 학생이었고, 동아리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인이고 아내이며 며느리입니다. 아직까지 끌고오는 역할도 있고 과거가 된 역할도 있지요. 그 역할들 중 가장 무거운 역할은 ‘엄마’입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참 무섭더군요. 수시로 깨는 아이를 돌보고, 의사표현 할 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읽고, 화장실에서 문 닫고 볼일 볼 자유조차 없는 게 ‘엄마’였습니다. 선배 엄마들이 경고(?)했듯 하루하루 영혼까지 탈탈 털렸습니다.


극기 훈련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건 끝도 없는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겁니다. 소위 ‘엄마 정답’을 따르면 ‘좋은 엄마’, 따르지 않으면 ‘불량 엄마’로 손가락질 당합니다. ‘엄마 정답’ 앞에선 우리 가정의 상황이나 내 노력 따위는 변명이 되더군요. 정답과 어긋나면 자책하게 되고 ‘엄마 노릇’이 버거워집니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우울한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부모라고 말합니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에 즉시 반응하는 능력, 즉 ‘민감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민감성이 떨어지면 아이를 먹이고 재울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 정서적 반응을 하기는 어려워집니다. “민감성은 엄마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때” 발휘된다고 합니다. 엄마들에게 ‘정답’을 강요하고 부담을 지우면 결국 엄마들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괴롭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져 민감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좋은 부모가 돼라는 압박이 심할수록 좋은 부모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압니다. 어설퍼 보일 겁니다. 당연하죠. 엄마 노릇, 처음이니까요. 그래서 너도나도 엄마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는 걸 겁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엄마’가 되도록 돕고 싶다면 충고나 조언이 아닌 응원이 필요하다는 걸 이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부터 진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엄마 정답’에 귀를 닫기로 했습니다. 대신 나와 남편, 웅이와 결이. 우리 가족에게 귀를 활짝 열기로 했습니다.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기준을 사회가 아닌 우리 집 안에서 찾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언제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한지 우리 가족 안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부담은 줄고 웃음은 늘고 있습니다.


+ 내가 잘 하고 있나, 싶으신 분들께 감히 응원 한 마디 드릴까요. 잘 하고 계십니다. 부모가 되니 없는 힘도 만들어 아이에게 잘 하고 싶어집니다. 언제나 더 잘 해주고 싶어 노력하게 되는 거지, 지금 못 하고 있어서 반성하는 거 아닙니다.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우리집 바른말 대장 결이도 그랬습니다. “엄마 최고!”


틈틈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 4학년에 언론사에 입사해 14년째 그 언론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 7살 5살이 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워킹맘 생활을 더 즐겁게, 덜 힘들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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