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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Sep 06. 2018

당신에게 직장은 '유한 게임'입니까 '무한 게임'입니까

뉴욕대학 종교학 교수인 제임스 카스는 인생은 ‘유한 게임finite game’과 ‘무한 게임infinite game’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게임으로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유한 게임은 승자와 패자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는 것으로 이 게임의 목적은 한 쪽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한 게임을 벌이는 사람들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합니다. 운동경기나 사업 등이 여기에 속하죠. 무한 게임은 반대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없고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이기고 지고에 관심이 없습니다. 게임을 지속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직장은 유한게임입니다.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승진을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팀장이 되고 누군가는 좌천되니 승자와 패자가 확실한 유한 게임이 분명합니다.  



유한 게임 안에서 게임 참가자들은 승리를 위해 경쟁하고 최선을 다해 달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보다 더 큰 성과를 내고 인정받기 위해 야근을 자처하고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되며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을 쓰니 경력에 공백이 생겼고 복직해서는 칼출근 칼퇴근하며 ‘엉덩이’ 충성심에 흠집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수시로 아프고,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수시로 휴가를 내니 주요 업무를 맡기기에 불안한 직원이 됐습니다. 유한 게임에 ‘핸디캡’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끝이 보였습니다. 어차피 질 게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만신창이가 되어 끌려나오긴 싫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다 ‘이만큼이면 됐다’ 싶을 때 나 스스로 끝내자고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려올 생각을 하니 억울했습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패자가 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 10명 중 4명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아이를 낳고도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여성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우리 모두는 패자가 되어야 할까요. 



직장이 유한 게임이 아닌 무한 게임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닌 규칙을 바꾸고 개선해나가며 게임을 지속하는 데 그 목적을 두는 겁니다. 똑같은 목적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닌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하는 겁니다. 


모든 직장인이 승진을 위해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승진을 해야만 능력을 인정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문화 속에서 승진을 강요받는 것 뿐 승진을 한 사람만이 승자는 아닙니다.  


학창 시절을 기억해볼까요. 우리 모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달렸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승자로 보였던 친구가 시간이 지나며 똑같이 방황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습니다. 패자인 줄 알았던 친구가 오히려 본인의 적성을 발견해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똑같은 목표가 승자 아닌 승자를, 패자 아닌 패자를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이제 직장에서의 승리를 재정의할 때입니다. 직장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승진을 거듭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닌 직장을 그만두는 날 “그동안 행복하게 일했고, 그 덕분에 앞으로도 행복할 거야.”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일했는데!” 울분을 터뜨리며 회사 문을 나선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게 패배일 겁니다.   


직장에서의 성공 기준을 바꾸려면 직장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유한 게임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이 무한 게임으로 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카스가 말했듯 직장도 유한 게임과 무한게임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무한 게임의 관점에서도 바라보자는 겁니다.  



지금의 직장은 ‘엄마 직장인’들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시한부 직장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배려’라는 포장으로 주요 업무에서 엄마 직장인들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벗어나 엄마 직장인이 중요한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엄마직장인인 우리는 당당하게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 직장에 몰두하면 가정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결국 직장에도 집중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돌보려고 정시에 퇴근하는 게 직장인으로서의 핸드캡이 아닌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맞춰 행복하게 오래 일하려는 노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경제학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직원이 행복할 때 생산성이 12%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싶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나조차 변하지 않으면서 무엇이 변하길 바라는 건가’ 싶었습니다. 나부터 변하기로 했습니다. 유한 게임이라는 직장의 속성을 받아들이되 무한 게임의 사고방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직장은 최선을 다하다 한계에 부딪히면 미련없이 떠날 ‘유한 게임’이 아닙니다. 평생 즐기며 성장할 ‘무한 게임’의 장입니다.   


길게 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최대한 맞추다가 더는 못 뛰겠다 싶을 때 그만두자’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지치지 않고 오래 뛰어볼 생각입니다. 게임장에서 깔끔하게 내려올 때를 찾는 대신 게임장에서 내려오지 않을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승진 욕심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꼭 승진하고 싶어졌습니다. 승진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모습의 나를 인정을 받아 승진하고 싶습니다. 가정과 나를 희생해 승진하는 것이 아닌 가정과 나를 지키며 승진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세로 일을 할 때 내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이 글은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두번째 챕터 ‘일’ 중 ‘‘유한 게임’에서 버틸 것인가, ‘무한 게임’을 즐길 것인가’ 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부터 일, 성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 어떨까요.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제목만 봐도 찡하다면 읽어보세요. 힘이 나고 방법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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