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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Sep 17. 2018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 행복해지는 방법 5가지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께 지적을 받은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힙니다.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제가 뭘, 어떻게 해도 예쁘게 봐주셨거든요. 몇 안 되는 지적 중 하나는 호칭이었습니다. 네 살 터울 남편을 전 ‘오빠’,  남편은 절 ‘아연아’ 부릅니다. 어머니는 결혼했으니 서로 호칭을 바꾸라고 하셨고, 저희도 동의했습니다. 닭살스러운 우리만의 호칭을 가지고 싶기도 했으니까요.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아직도 ‘오빠’ ‘아연아’ 부르고 있습니다. (시댁에 가면 ‘애들 엄마’ ‘애들 아빠’로 호칭을 바꾸고요!) 닭살스러운 호칭을 골랐다가도 막상 입 밖으로 내진 못하겠더군요.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아예 마음을 접었습니다.



엄마가 되니 놀이터에서도, 병원에서도 ‘웅이 엄마’로 불렸습니다. ‘아가’ ‘아연아’ 부르시던 시어머니도 ‘웅이 엄마야’ 부르셨습니다. 때론 ‘웅아’ 부르시는 게 웅이가 아닌 저를 부르시는 거였습니다. 엄마가 되니 김아연으로 불리는 순간이 사라지더군요. 유일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남편이었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아연아’ 큰 소리가 들리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래, 내가 김아연이지’ 기억났습니다.

엄마가 되고 가장 힘들었던 건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사라진 것 같은 순간이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짜릿하게 행복하면서도 순간순간 기운이 빠졌습니다. 웅이의 10년 후가 궁금할수록 내 10년 후는 막막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노릇이 힘든 건 엄마노릇에 ‘내’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돌보고 나도 돌봐야합니다. 

아이도 사랑하며 나도 사랑해야합니다. 

‘엄마인 나’와 ‘엄마를 제외한 나’를 모두 살펴야 합니다. 





#내 밥그릇 챙기기

둘째 결이가 첫 돌이 지나자 제 체중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아이가 자라 그런가 싶었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하며 무조건 외출을 하자고 할 때라 몸은 더 피곤했었습니다. 원인은 밥이더군요. 내 밥이 아니라 결이가 남긴 밥이요. 제가 먹었죠. 한 두번 그러다보니 나중엔 ‘어차피 남길텐데, 내 밥 따로 담지 말자’ 하게 되더군요. 4인 밥상에 밥그릇은 3개가 됐습니다.


요즘은 다시 밥그릇을 4개 올립니다. ‘남기면 내가 먹으면 되지’ 넉넉하게 담지 않고, 남기지 않을 양만 담습니다. 그래도 남는 건 (아깝지만!) 버립니다. 



#자는 아이 옆에서 칭찬하기

‘낮버밤반’이라고들 하죠. 낮에는 버럭하고 밤에는 반성합니다. ‘화내지 말껄’ ‘놀자고 할 때 스마트폰 쥐어주지 말껄’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부족했던 부분만 생각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충분했던 순간이 더 많습니다. 아이랑 땀이 나게 뛰어놀았고, 나란히 엎드려 책도 읽었습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최고’ 신호를 주고받았습니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엄마노릇 열심히 했습니다. 잘못한 건 반성해야겠지만,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합니다. 반성보다 칭찬 먼저입니다. 



#‘좋은 엄마’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다른 엄마와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케바케’라고 하죠.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르고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엄마라면 자연분만해야 한다’ ‘엄마라면 모유수유해야 한다’ 등 ‘좋은 엄마’를 따를 필요 없습니다. 한 때는 분유먹고 자랐다고 하면 ‘있는 집 자식’이라며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만의 ‘좋은 엄마’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저는 ‘웅이 결이가 자라 이런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 싶은’ 부모를 떠올리고, 제가 먼저 그 부모상(想)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자식만큼 나를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가 아닌 자식과 같이 성장하는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겨우 돈 때문에?

아빠가 출근하면 ‘돈 버느라 고생한다’고 격려하고 엄마가 출근하면 ‘애 떼놓고 얼마나 번다고…’ 손가락질 합니다. 아이를 낳고 출근하며 견디기 힘든 시선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아끼고 쪼개 봤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유명브랜드 옷만 입히고 1++ 한우만 먹이는 엄마가 아닌데도 가계부는 늘 적자였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벗어나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겨우 돈 때문에 아이를 떼어놓은 게 아니라, 돈도 벌고 아이도 키우는 겁니다. 



#‘조언 편식’하기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다보니 “아이 두고 일하러 나와도 돼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굳이 한 마디 보태십니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아이 마음 속에는 상처가 자라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말을 들으면 애써 숨겨둔 상처가 찔린 듯 마음이 아려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하나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내 아이를 가장 열심히 지켜보는 건 부모인 나입니다. 적어도 아이가 정말 괜찮은지, 괜찮은 척하는 건지, 괜찮으려고 노력하는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능성을 앞세운 타인의 말에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흔들릴 때는 의도적으로 내가 듣고 싶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도 좋습니다. 일종의 ‘조언 편식’입니다. 조언만큼은 굳이 골고루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귀에 쓴 조언을 들어봤자 마음에 상처만 깊어집니다. 달콤한 조언을 듣고 기운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습니다. 



한 때 나를 잊고 

엄마로만 살려고 했습니다. 

엄마가 된 이상,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나를 지키며 엄마가 될 때

진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로만 살지 않을 때, 

엄마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엄마가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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