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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Oct 02. 2018

엄마 이후의 삶이
두려운 후배들에게

지난주 금요일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앞자리에 섰었습니다. 쓱 훑어보니 한 눈에 봐도 앳된 얼굴이 많더군요. ‘혹시 아이 있으신 분 계신가요?’ 여쭤보니 참석자 중 3분의1만 손을 드셨습니다. 3분의2는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아이가 없으시면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우실텐데…’ 싶었으니까요. 동시에 ‘왜 이 자리에 오셨지?’ 궁금했습니다. 준비한 이야기를 끝내고 한 분 한 분 만나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저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일을 계속 할 자신은 없어요.


우연히 책을 읽게 됐다고 했습니다. 정말 일과 가정 둘 다를 놓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또한 엄마가 되기 전 불안했던 부분이고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뒤늦게 기억나더군요. 먼저 엄마가 된 선배 입장에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 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많은 여성들이 같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임신을 하고는 덜컥 겁이 났던 게 사실입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산 친정엄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공부시키는 거다. 네 밥그릇, 평생 꿰차고 있어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취직해서 만난 워킹맘 선배들은 남자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야근을 했고 똑같이 술자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명예남성’이 된 선배들을 보며 아이도 낳고, 일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따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세대는 일과 가정 사이의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남자=일, 여자=가정’을 담당했던 세대였죠. 우리 어머니 세대는 일과 가정 사이에 선택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일 아니면 가정,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아휴직은 커녕 출산휴가가 2개월 뿐이었던 그 시절의 선배들은 “붓기도 다 빠지지 않은 채 출근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다릅니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년이 있습니다. 임신기 근로시간단축제가 있고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가 있습니다. 아직 제도적으로만 보장될 뿐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용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올해 7월부터는 주52시간 근무제도 도입됐습니다. 



2012년에 첫째를 낳고, 2014년에 둘째를 낳은 저는 매번 육아휴직이 눈치보였지만 올해 아이를 낳은 후배는 한 번도 육아휴직을 쓸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질문은 ‘육아휴직 얼마나 쓸거야?’로 바뀌었습니다. 일과 가정, 둘 다를  포기하지 않으며 내 삶을 사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일을 선택한 ‘워킹맘 1세대’였다면 우리 세대는 일과 가정,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워킹맘 2세대’입니다. 이전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너희들은 나같은 후회 남기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라는 선배들의 다독임이 있지만 ‘나 때는 이렇게 일하지 않았다. 이렇게 일 하려면 차라리 그만 둬라’는 호통도 여전합니다.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 아니면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과 가정 둘 다를 놓지 않고, 그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 어느 정도가 균형인지 시험하고 부딪히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물어보고 서로에게 배우면서요. 서로의 동료,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내뱉는 ‘엄마라면’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만의 엄마상(象)을 만들고, 나만의 성공을 재정의합니다. 


그러니 덜 겁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이 두려워도 

그 길을 힘들지만 웃으며 걷고 있는 선배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에서 만난 한 워킹맘은 “육아휴직을 쓴 첫 사례도 나,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한 첫 사례도 나,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첫 사례도 나다. 매번 선례가 되는 게 부담스럽지만, 그래서 더 좋은 선례를 남기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면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도 수월하게 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 이야기가 ‘워킹맘 1세대’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버텨주셨기에 육아휴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근로시간단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졌고요. 


그리고 새 선택지를 받은 ‘워킹맘 2세대’인 우리들의 역할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잘 버티면 우리 후배들은,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은 덜 힘들고 더 행복하게 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 길이 멀었다는 것보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다는 것, 이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어떨까요. 같은 길이라도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질 겁니다. 


+ 엄마가 된다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엄마로 변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해지는 것 뿐입니다. 역할이, 그것도 중요하고 묵직한 역할이 추가된 만큼 그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는 한 사람의 그릇도 넉넉해집니다. 그러니 너무 겁내지 마세요. 


▼워킹맘 2세대, 우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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