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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Oct 14. 2018

애엄마가 그렇지 뭐?
'엄마 경쟁력'을 소개합니다.

벌써 엄마가 된 지 7년째입니다. 엄마는 엄마아빠의 딸, 언니의 동생 처럼 태어나면서 주어진 역할과 14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라는 역할을 빼면 제가 가장 오래 담당하고 있는 역할입니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가지고 갈 역할이고요.   


40년 가까운 인생 중 엄마로서의 7년은 시간으로 치면 길지 않았지만, 영향력으로 치면 가장 강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엄마 이전의 나’와 ‘엄마가 된 나’는 전혀 다른 사람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히 달라진 게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vs 효율적으로 

엄마가 되기 전 저는 자타공인 모범생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성적표는 ‘수수수수수’는 아니어도 ‘수우수수수’는 받았습니다. 학년 말 가정통신문에는 매년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아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취업해서도 가장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인정받았고 나 스스로도 흡족했습니다.  


엄마가 되자 달라졌습니다.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이 생겼습니다. 뭐, 괜찮았습니다. 복직하고 다시 열심히 하면 되니까요. 1년 정도의 공백은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더군요. 복직을 했지만 엄마가 되기 전처럼 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으니까요.   


더는 ‘이 일 다 끝내고 퇴근해야겠다’ 계획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내팽개치진 않습니다. ‘퇴근시간까지 이 일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효율성을 고민하고 업무집중도를 높입니다. 퇴근 시간을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일과 중 느슨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엄마가 된 지금은 밀도있게 일합니다.  



#많이 vs 중요한 

엄마가 되고는 늘 일의 우선순위를 따집니다. 할 일이 쏟아지니까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내면 좋으련만, 해야 할 일은 순번대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빨래를 하다가도 아이가 울면 젖부터 물려야 하고, 때론 우는 아이를 기다리게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밀려드는 일 가운데 더 중요한, 더 시급한 순서를 가려냅니다. 미련이 남아도 놓을 줄 알고, 힘들어도 버틸 줄 압니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패기가 넘쳤다면 엄마가 된 나는 노련합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엑셀을 잘 밟았다면 엄마가 된 지금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을 줄 압니다. 모든 일에 달려들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무작정 달리다간 지쳐 쓰러질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속도를 내는 건 쉽습니다. 내 상황에 맞춰 알맞은 속도를 유지하는 건 어렵습니다. 엄마가 된 덕분에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해야 한다 vs 하고 싶다 

직장인 10년차가 넘어서자 어느 날부터 ‘일을 꼭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일을 하냐고 자문했지만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가듯 직장인이니 일을 해야 한다 정도가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 시기에 임신을 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게 기뻤지만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고, 동시에 육아휴직을 할 생각에 기쁘기도 했습니다. 1년을 회사와 떨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은 고됐지만 행복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훌쩍 자라있는 아이가 기특했고 그래서 눈에 더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아이와 한 몸처럼 꼭 붙어 지내며 엄마로서의 날들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내 책상, 내 자리, 내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회사였는데 아침이면 출근하는 남편이 부러웠습니다. ‘회사로 도망가고 싶을만큼 육아가 힘든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일이 그리웠습니다.  떨어져보니 알겠더군요. 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복직을 하니 일이 즐겁습니다. 매일이 전쟁같았지만 그 전쟁이 괴롭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의사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읽습니다. 아이에게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지만 그 마음을 누르고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고 기다립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빠르게 수습합니다. 이해력, 공감력, 인내심, 순발력은 엄마가 되었기에 익힐 수 있었고, 지금도 익히고 있는 ‘엄마 경쟁력’입니다.  


+ 얼마 전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 둔 친구를 만났습니다. 아이가 6살이 되었고,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력서를 쓰려니 인생의 그 어느 시점보다 치열하게 지낸 지난 6년이 ‘공백’처럼 느껴지는 게 속상하다고, 그 시간을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엄마로 살며 익힌 능력은 직장에 다닌 14년 동안 익힌 것보다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그 시간을 당당하게 ‘엄마 경쟁력’으로 소개하길, 친구의 이력서를 본 담당자들이 그 경쟁력에 제대로 가치를 매겨주길 바랍니다.



▼더 큰 엄마, 더 큰 나를 꿈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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