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여동생에게
7년 연애 끝에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
“결혼하면 여자에겐 손해야. 다시 생각해 봐.”
사실 나도 겁이 나긴 했었어.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하니 이제야 내 몸 하나를 건사하는 것 같은데, 가정을 꾸리면 모든 게 뒤흔들릴 것 같았거든. ‘내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고?’ 상상도 되지 않더라.
친구들도 비슷했나봐. 어르신들은 나를 보면 “넌 언제 결혼할거냐?”라고 물으시는데 우리끼리 모이면 “넌 결혼할 거야?”라고 묻곤 했거든. 얼마 전에 실시된 설문 조사를 보니 미혼남녀 10명 중 6명은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답했더라. 맞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결혼하면 손해라느니,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느니 부정적인 말들을 하니 더 두려울 수밖에. 어쩔 땐 결혼을 하겠다는 내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기도 했다니깐.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이 사람’하고 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어. 7년 연애하며 지켜본 이 남자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거든. 남편은 프러포즈하면서 이렇게 말했어.
“앞으론 넘어지지 않게 해 줄게.”
난 평지에서도 잘 넘어지는 편이라 다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잖아. 데이트할 때도 넘어질 뻔할 때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있어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어. 그래, 손해면 얼마나 손해겠어. 손해가 있으면 이득도 있겠지. 그리고 이 남자랑 살면 내가 손해를 좀 봐도 억울하진 않을 것 같았어.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지.
로맨스는 여기까지.
충분히 생각하고 결심했는데도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어. “넘어지지 않게 해 줄게”라고 프러포즈했던 남편은 약속을 충실히 지키더라. 소파에서 과자를 먹고는 휙 일어나 걸어다니니 남편의 걸음걸음마다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어. 나는 그 부스러기가 밟혀서 치우며 걷느라 넘어질 수 없었지. 그런데 사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그랬어. 부끄럽지만 내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엄마가 치우셨지. 엄마한테 매번 “칠칠치 못하다”라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칠칠치 못하면 좀 어때?’하고 한 귀로 흘렸었어.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내가 갑자기 칠칠한 사람으로 변하더라. 노력한 것도 아닌데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변해버렸어. 엄마가 “네가 이렇게 바지런한 줄 몰랐다”라며 놀란 건 당연했지. 물론 나도 그런 내 모습이 낯설었어.
왜 그렇게 바지런해졌을까? 돌이켜보니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아. 결혼했으니 빨리 그럴듯한 아내가 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던 거지.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아.
신혼여행을 다녀왔더니 주변에서 “집들이는 언제 할 거야?”라고 묻는 거야. 집들이?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김치찌개 하나. 결혼 전에 입던 옷은 아직 정리도 하지 못해서 방 한쪽에 그대로 쌓여 있는데 “집들이할 거야?”도 아닌 집들이를 ‘언제’ 할 거냐고 다짜고짜 계획을 물으니... 한 마디로 ‘오 마이 갓!’이었어.
매번 그랬던 것 같아. 나는 이제 막 결혼한 ‘초보 주부’이니 어설픈 게 당연한데 그걸 스스로 ‘무능력한 주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니 ‘능력있는 주부’가 되려고 아등바등했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했어.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박성덕 소장은 “여자는 결혼하면 이내 아내의 역할을 파악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책무를 다한다”라고 했어. 맞아.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아내로서 남편에게 책무를 다하고 주부로서 최선을 다했어. 그래서 더 빨리 초보 딱지를 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 문제는 결혼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반쪽짜리 결과 밖에 얻지 못한다는 거야. 내가 ‘고수 주부’, ‘고수 아내’가 된다고 해서 남편도 저절로 ‘고수 남편’이 되는 게 아니거든. 오히려 내가 ‘고수 아내’가 되어갈수록 남편에게 ‘당신도 노력해서 어서 초보 딱지를 떼라’고 잔소리를 하게 됐던 것 같아.
그런데 사람이 변하는 게 쉽지 않잖아. 스스로 변하겠다고 작심해도 그 노력이 3일 가기가 힘든데 옆에서 변하라고 다그쳐봐야 소용없어. 말하는 사람 입만 아프지. 우리 남편만 그러나 싶었는데, 그게 남자들 특성이래. 텍사스 대학 로버트 조지프 교수는 남자의 자아존중감은 타인에게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했어. 그래서 남자들은 결혼 후에도 자신만의 삶을 유지하며 혼자 있을 공간을 찾는 거라고 하더라. 그러다보니 여자가 아내로 변하는 속도와 남자가 남편으로 변하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야.
내가 결혼 생활을 안정 궤도에 올리려고 남편을 다그칠수록 남편은 내가 낯설었을 것 같아. 하루빨리 안정된 부부가 되고 싶은 마음과는 반대로 남편과의 관계만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어.
그러니 ‘완벽한’ 주부, ‘완벽한’ 아내가 되겠다고 너무 서두르지 마. 결혼은 두 사람이 한배를 타는 거야. 한배에 탄 이상 노도 같이 저어야 해. 서둘러 결승선에 닿고 싶다고 한쪽이 노를 빨리 저으면 어떻게 될까? 한쪽이 너무 빨리 저어도, 너무 느리게 저어도 배는 뒤집히기 마련이야. 그러니 배를 잘 운전하고 싶다면 조바심내지 말고 남편과 속도를 맞춰 노를 저어야 해.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대체 아내의 역할, 아내의 책무가 뭐길래 나는 그렇게 빨리 ‘아내’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되려고 하는 ‘아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내’를 떠올리면 친정엄마가 가장 먼저 생각나. 기억 속 엄마는 늘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어.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요리가 식탁에 올려져 있었고, 아무리 지저분한 곳도 엄마가 지나가고 나면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았지. 물건을 찾다 찾다 못 찾겠어서 엄마한테 물어보면 단박에 찾아주셨어.
아빠가 “‘그것’ 좀 줘 봐”라고 하시면 나는 “그게 뭔데?” 하고 되묻는 반면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아듣고 ‘그것’을 가져다드렸어. 그럴 때면 엄마한텐 보이지 않는 레이더가 있어서 집안 구석구석 그리고 우리 식구 마음속까지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무서울 정도였어.
엄마는 나에게 ‘아내 정답’이었어. 결혼을 하면 엄마 같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지. 그런데 어느 날 궁금해지는 거야. 난 정말 엄마 같은 아내가 되고 싶은 걸까? 결혼하면 으레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고,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엄마와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다른 삶을 살아왔어. 엄마는 ‘여자는 얌전히 있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살림 잘하고 애 잘 키우면 된다’는 시대에 나고 자라셨지. 나는 “여자라고 못할 것 없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 그 말을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건 다름 아닌 엄마였어. “엄마처럼 집에만 묶여 있지 말고 훨훨 날아다니며 살라고 공부시키는 거다”라고 하셨어.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남자 친구들과의 경쟁에서도 지지 않았어. 대학입시에서도 취업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을 하는 동시에 다들 엄마처럼 살라고 하더라. 사회도, 나 스스로도 한 치의 의심 없이 ‘엄마 같은 아내’가 되라고 한 것 같아. 엄마 같은 아내는 ‘남자는 바깥주인, 여자는 안주인’인 세상의 정답이었어. 그런데 우리는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 아니,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잖아. 그러니 ‘아내 정답’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나부터 우리가 보고 자란 아내상(像)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아내상(像)을 만들어야 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이런 아내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아내가 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아내의 역할과 남편의 역할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 거야.
결혼하며 주어진 역할이라면 아내, 남편이 아닌 ‘부부의 역할’이니 같이 상의하고 같이 해나가는 것이 맞아. “집들이 언제 할 거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 혼자 압박을 받는 게 아니라 집들이를 할지 말지, 음식을 집에서 할지 밖에서 먹을지, 집안은 어떻게 치울지를 먼저 남편과 상의해서 정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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