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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an 07. 2020

부모가 되고 도움받은
심리학 개념 5가지

대학 시절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심리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여성인 나를 이해하고 싶어 여성심리, 앞으로 노인이 될테니 노인심리, 언젠간 아이를 낳을테니 발달심리학을 공부했지요. 공부를 하며 내가 이해되는 게 신기해 졸업을 하고도 관련 책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그러다 부모가 되고는 아이가 주 관심사다보니 육아에 대입하며 심리학 서적들이 읽혔고, ‘부모’라는 역할이, ‘아이’라는 한 사람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바람직한 어려움


고등학생 때 괴짜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쉽고 재밌게 수업을 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는데 가끔 “이 부분은 오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야. 그래서 일부러 어렵게 설명할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우~~~’ 야유를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정말 어렵게 설명하셨습니다. 어렵게 설명을 해야 이해를 하려고 집중하고, 그래야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야유는 했지만 선생님이 옳았습니다. 어렵게 배운 부분은 시험에서 틀리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이런 경우를 인지심리학에서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라고 하더군요. 쉽게 배우면 쉽게 잊고, 어렵게 배우면 어렵게 잊는다는 겁니다. 물론 공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었을 때 인지적·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합니다.


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도 어려움을 마주해 극복할 때 크게 성장합니다. 그러니 부모는 아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이가 그 어려움을 마주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인가 판단해보고, 아이가 극복할 수 있다면, 혹은 실패하더라도 자꾸 시도하면서 나아질 수 있는 어려움이라면 부모는 한 발 빠지는 겁니다. 부모가 한 발 빠질 때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려움에 한 발 다가서게 되니까요. 


아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엄마가 지켜줄게. 걱정 마’가 아닌 ‘엄마 품 안에 있을 때 다 해봐. 성공도 실패도 괜찮아. 엄마가 응원할게’로 대하면 ‘바람직한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충족적 예언


첫째인 웅이는 편식이 심한 편입니다. 온식구가 외식이라고 하려면 웅이가 먹는 음식이 있는 식당을 찾는 게 일이었죠. 그러다보니 모임이 있으면 “아이가 편식을 해서요. 식당은 저희가 후보 몇 개를 정해서 제안해도 될까요?” 양해를 구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친정식구나 시댁식구와의 모임에서는 저희가 식당을 고르는 게 당연했고요. 


웅이의 편식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사회학자인 토머스 머튼이 명명한 ‘자기 충족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를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자기 충족 예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마음속에서 사실이라고 믿으면,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상황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국은 사실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아이에게 부모의 말과 믿음이 ‘상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가령 부모가 “너는 어떤 일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더라”라고 하면 아이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라고 믿게 되고 실패하더라도 한 번 더 시도하게 됩니다. 반대로 (제가 웅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너는 편식이 심해”라고 하면 아이는 자신을 ‘편식하는 아이’라고 믿고 편식을 고착화하고요. 


그 뒤로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특히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자기 충족 예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면아이


‘내면아이inner child’는 어린 시절 당연히 경험해야 할 사랑과 관심, 안전한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자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내면에 남아 있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무의식에 남아 성인이 되어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특히 정신의학자인 휴 미실다인에 따르면 내면아이는 가정이나 편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공적인 모습일 때는 내면아이를 숨긴 채 성숙하고 합리적인 어른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불합리하거나 완고하고 명령적이거나 수줍어하고 연약한 내면아이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라온 과정이 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내면아이와 마주해야 한다는 거죠.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첫 단계는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충족되었어야 할 의존적인 욕구들이 채워지지 못한 것을 당신의 내면아이가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단계는 내면아이의 내면부모가 되는 것. 기존의 내면부모는 내 부모였다면 새로운 내면부모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입니다. 그러니 나는 나의 내 내면아이를 성장시키고 돌볼 최적의 내면부모입니다. 





시간시야


연령대별 행복도를 조사하면 행복감은 20대부터 40대까지 감소하다가 50대를 지나며 상승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40대부터 50대가, 50대보다 60대가 행복합니다. 스탠퍼드장수센터 로라 카스텐슨 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어르신들은 시가에 관해 젊은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말할 때 시간은 ‘하루 동안’을 말하는 반면 어르신들에게는 ‘남은 일생’을 뜻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내일 또 주어질 것이지만 어르신들께 내일은 없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내 삶에서 중요한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무엇을 남길지를 생각하며 시간을 씁니다. ‘시간 시야’를 좁히는 것이죠.


부모에게 아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남은 일생을 떠올리며 하루에 충실하다면 부모인 저는 아이들의 ‘이 순간’이 지나갈 것을 알기에 가급적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장아장 걷는 순간, 자면서도 더듬더듬 내 품을 찾는 순간, 부정확한 발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은 지금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순간인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고 아쉽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미래가 걱정될수록 지금 너무도 행복한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속감정

아이의 감정을 읽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임신을 하기 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 신호를 해석해서 다시 들려줌으로써 아이는 자신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 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했기 때문에 감정코칭은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짜증났구나’ ‘속상하구나’ ‘슬프구나’라며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읽어준 뒤로는 대화가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겉감정’. 표면 감정이 들게 한 속감정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겉감정을 드러낼 때 부모는 속감정을 읽어줘야 한다는 거죠. 가령 웅이가 “결이가 내 장난감 만져서 짜증나”라고 하면 저는 “결이가 웅이 허락을 받지 않고 웅이 장난감을 만져서 속이 상했구나”라고 읽어줘야 한다는 거죠. 


처음부터 속감정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감정을 읽은 적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감정목록을 프린트해 냉장고에 붙여넣고 수시로 보면서 내 감정상태를 확인하는 연습을 합니다. 아이가 자라고는 같이 보면서 지금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 지 3가지를 고르라고 하기도 하고요. 처음에 고른 감정이 겉감정, 다음에 고른 감정이 속감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까, 고민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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