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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03. 2020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부모’에 대한 오해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 中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 


유대인 격언입니다. 중학생 때 접한 문구인데 처음 읽자마자 밑줄을 긋고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내 곁에 있는 엄마가 신을 대신하는 존재였다니, 숨겨져 있던 보물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문구는 한참을 잊고 지내다 부모가 되고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엔 묵직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신이 될 차례였으니까요.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마법처럼 모성이 샘솟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모성은 아이를 돌보고 부대끼며 조금씩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책임감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해줄게. 행복하게 해줄게’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무얼 해줘야 할까 고민했고, 아이가 불편하거나 힘들게 느낄 일들을 미리 차단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내 품에 있을 때라도 마음 놓고 즐겨라. 엄마·아빠가 지켜줄게”라고 입버릇처럼 하셨던 것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이 험할수록 더 강한 부모가 되어 아이를 더 단단히 지키려 했습니다. 



#아이가 정말 행복하길 바란다면

웅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늘 저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아이가 “어린이집 가자~”고 하면 현관문에 앉아 스스로 신발을 신으려 했습니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발을 오른쪽 왼쪽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신발에 넣으려고 하는 게 귀여웠습니다. 동시에 안쓰러워 “엄마가 해줄게” 나섰습니다. “아냐! 내가!”라고 도움을 거절해도 “힘들잖아. 엄마가 금방 신겨줄게”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원 시간에 어린이집 로비에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주저앉아 신발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바쁘신가’ 싶어 둘러보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차피 옆에 계실 거면 아이들 좀 도와주시지’ 불만이 가득 찰 때쯤 알림장이 왔습니다. 



어머니, 어제는 웅이가
스스로 신발을 벗고
스스로 신었어요. 
혼자 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웅이도 뿌듯했는지 신발을 신고는
저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자랑했어요.
칭찬 많이 해주시고
집에서도 혼자 해볼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



“힘들잖아. 엄마가 해줄게”라며 대신해주던 저와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오버랩됐습니다. 편하게 집을 나서던 아이와 뿌듯해 하이파이브하는 아이가 오버랩됐습니다. 어떨 때 아이가 더 행복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습니다. 아이를 편하게 하는 것과 행복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 



#스스로 행복을 쟁취하는 아이

행복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가 있습니다. ‘행복한 삶에 공식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일명 ‘하버드 그랜트 연구Harvard Grant Study’입니다. 연구진은 1937년에 하버드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68명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결혼 생활, 일, 취미, 대인관계 등을 72년 동안 추적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고통에 대응하는 능력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등이 행복한 삶을 좌우하는 일곱 가지 요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름 아닌 고통에 대응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그동안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하면 고통을 피하게 해줄까만 고민했던 저에게 뜨끔한 일침이었습니다. ‘엄마가 신겨줄게’ 나섰던 것도 낑낑대며 애쓰는 게 힘들어 보여서였으니까요. 그 당시엔 마침내 혼자 신발을 신었을 때 아이가 얼마나 뿌듯할지, 얼마큼 자랄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해볼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지금은 혼자 신기 힘들지만, 마음대로 신어지지 않아 짜증이 나고 속이 상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노력할 수 있게 시간을 주고 격려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게요.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마주할 어려움을 평생, 모두 막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알았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애달파도 결국은 아이의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부모 품 안에 있을 때 작은 어려움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익히는 것이 낫습니다. 프랑스의 아동발달심리학자 디디에 플뢰Didier Pleux의 말처럼 아이의 균형있는 성장 발달을 위해서는 사랑과 좌절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뒤로는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 는 격언이 다르게 읽힙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신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 때 떠올리면 힘이 나는 신이요. 아이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로 뿌리내리면 될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고 깨달은 17가지 성장문답, 더 많은 이야기는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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