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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10. 2020

'~구나' 감정코칭이 통하지 않았던, 숨은 이유

결이의 겨울방학이 끝났습니다. 방학 중에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유치원 언제 가냐고 묻더니 막상 개학을 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것도 싫은 눈치입니다. 아침에 “결아 일어나자~” 깨우면 눈도 뜨지 않고 “오늘 유치원 가는 날이야?” 묻습니다. “목요일이니 유치원에 가는 날이지”라고 하면 졸리다며 이불 속을 파고듭니다. 


‘유치원 가기 싫구나’ 라고 육아서에서 배운대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결이는 ‘응. 가기 싫어’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세우면 아침을 먹는 것도, 양치를 하는 것도, 옷을 갈아 입는 것도 줄줄이 억지로 끌고가야 할 게 뻔합니다. 결국 저는 소리를 지르고 결이는 울며 집을 나서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러고싶진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작년까지의 일입니다. ‘~구나’체로 대표되는 감정코칭을 하려고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싫어. 나 지금 밥 먹기 싫단 말이야.”

“결이가 밥이 먹기 싫구나.”

“응. 안 먹을래”

“안 졸려. 더 놀래.”

“웅이가 자기 싫구나.”

“응. 나중에 잘거야.”


마음을 읽어주면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마음을 굳히고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 엄마들의 감정코칭을 잘못하면 아이들이 ‘구나병’에 걸리고 만다며 서투르게 감정코칭을 하려다 상황을 악화시키느니 하지 말라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그럴까? 감정코칭이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감정코칭을 권하는 일은 없을텐데... 싶었습니다. 그리고 감정코칭에 대한, 감정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었습니다. 알고보니 감정에는 겉감정과 속감정이 있더군요. 


겉감정이란 어떤 상황에 대해 말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입니다. 저를 예로 들면 아이를 키우며 ‘육아는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으니 힘들고 무거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체력이 부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힘든 것만은 아닙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육아를 잘해내고 싶어서 더 힘든 것이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들여다볼 때 알게 되는 게 속감정인 거죠. 즉 ‘육아는 너무 힘들어’라는 말은 ‘육아를 그 어느 것보다 잘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힘들어’ 였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의 속감정을 이해하게 되니 육아가 힘든 게, 힘들지 않더군요.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힘듦이라는 걸 알게 되니 나 자신을 토닥이게 됐습니다.


문제는 겉감정은 빙산의 일각일 뿐 속감정이 더 크고 다양하다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읽어주며 감정코칭을 하면 십중팔구는 실패로 이어지는 거죠. 속감정을 읽어줄 때 감정코칭을 할 수 있습니다. 겉감정 속에 숨겨진 속감정이 무엇인지 한 번 더 깊게 들어가고, 속감정에 담긴 메시지를 파악할 때 감정코칭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결이의 “유치원 가기 싫어”에 대응하는 제 말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단순하게 “가기 싫구나”라고 했다면 그뒤로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유치원은 빠질 수 없으니 싫구나.”로 읽어줍니다. 결이가 ‘유치원 안 가’가 아닌 ‘유치원 가기 싫어’라고 말한 건 결이 스스로도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테니까요. 그래서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는’ 마음을 읽어줬습니다.


맑은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이임숙 소장의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감정도 있고,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감정도 있다.”는 말처럼  아이 안에는 다양한 속감정이 있으니까요. 부모가 어떤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감정을 읽어주느냐에 따라 아이는 그 감정에 의지해 힘을 낼 수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겉감정이 아닌 속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속감정 중에서도 아이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감정을 먼저 읽어주며 감정코칭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속감정을 딱 읽어줄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겉감정은 쉽게 보이지만 속감정은 다양하고 숨어있는 만큼 단번에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짐작되는 마음들을 하나 하나 읽어줬고, 이야기해기며 찾아갔고, 그 중 아이가 반응하고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마음에 집중해 해결책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아이 마음을 이해하며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아이도 자신의 마음을 다양하게 들여다보게 되니 천천히 진정되어 갔고요. 그렇게진정이 되면 마음을 움직일 방법을 찾습니다. 저는 주로 “어떻게 하면 ~하고 싶어질 것 같아?” 아이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질문하거나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방법을 제시하거나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힘이 날까?” 도울 방법을 묻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감정코칭을 해두면 다음부터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은 반복될 때가 많고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우리 지난번에 이렇게 생각해서 마음이 편해졌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볼까?” “우리 지난번이 이 방법으로 해결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볼까?” 바로 물어볼 수 있거든요. 아이도 그 상황을 기억해내며 “맞아! 해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정코칭이 좋았던 건 감정코칭을 할수록 아이들의 마음과 가까워진다는 것,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하며 내 마음을 읽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때 억누르거나 부정해왔던 게 사실이거든요. 화가 나면 참고 슬프면 오히려 웃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짜증내지마” “화 내지 마” 라고 했었고요. 내가 내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억압과 부정이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역으로 아이들의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괜찮다 위로하고, 그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다보니 나 스스로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도 바뀌고 있습니다.


화가 날 때는 왜 화가 나는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저 혼자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나누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도 감정을 다루는 연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감정코칭을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코칭해준다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이와 같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아이와 부모가 같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부모와 아이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더 많은 방법,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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