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둘째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점심시간이 가장 분주했던 것 같습니다. ‘힘내서 애 잘 낳으라’며 회사 선후배 동료들이 맛있는 밥을 서로 사주셨거든요. 하루는 평소 어려워했던 워킹맘 대선배님 다섯 분의 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만삭으로 뒤뚱뒤뚱 모임에 갔더니 선배님들이 “빨리 낳고 싶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가 걸어다니면 누워있을 때가 편했지, 뛰어다니면 걸어다닐때가 편했지, 학교에 다니면 사랑해 주기만 하면 될 때가 편했지, 결혼시키면 끼고 있을 때가 편했지…. 유행가 한소절 같습니다.
남자들에게 군대 무용담이 있다면 여자들에겐 출산 무용담이 있죠. 어쨌든 끝이 있는 출산이야 뭐… 할 만 합니다. 진짜 입 벌어지는 무용담은 육아입니다.
“내가 아이 낳았을 때만해도 출산휴가가 두 달이었어. 요즘은 출산예정일 몇 주 전에 휴가 들어가서 아이 맞을 준비도 하고 쉬기도 하잖아. 우리땐 그런게 어딨어. 진통오면 그 때 회사에 전화해서 ‘진통와요. 오늘부터 휴가냅니다’ 했지. 출산휴가가 딱 두 달인데 하루라도 늦게 들어가야 산후조리를 하루라도 더 하고 나올 꺼 아니야. 그 땐 다들 그랬어.”
한 선배님은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도 두 달 먹이고 끊을 자신이 없어 아예 분유로 키웠는데 그게 가장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는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냐고도 물으시네요.
아이가 둘이 되면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부탁하는 것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천방지축 ‘미운 4살’ 첫째와 아직 걷지도 못하는 둘째를 부탁드리기엔 부모님 연세가 걸립니다. 엄마들끼리 ‘아이들이랑 있으면 그냥 실시간으로 늙는다’는 말을 합니다. 30대인 저도 애둘 돌보며 체력저하로 허덕였는데 양가 부모님은 6,70대 이십니다.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려니 우리집은 베이비시터들이 선호하지 않는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 조건이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내기에 둘째는 아직 어립니다. 적어도 기저귀를 떼고, 어느 정도 말을 하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기관에 보내자는 것이 우리부부 생각입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보니 남는 건 제가 사표를 내는 것뿐입니다. 주변에서는 둘째를 임신했다는 건 사표 낼 각오를 했다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그래서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를 두고 고민이 깊습니다.
그런 속내를 모르실 리 없죠. 한 선배님께서 조언을 하십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3년은 아이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시기라고 하지. 세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게 가장 좋다고 하잖아. 아이 낳고 그 말이 계속 떠올랐어. 출산휴가 끝내고 출근하는데 못 할 짓이더라고. 그래도 회사를 다녔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니까 주변에서 초등학교 1학년은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인데 계속 회사를 다닐꺼냐고 묻는거야. 공부습관도 잡아줘야하고 챙겨줄 일이 많으니 엄마가 아니면 안된다고. 그때 또 사표를 낼까 망설였지. 그리고 아이 사춘기가 오니 엄마가 일하는 아이들은 사춘기도 더 독하게 겪는다며 주변에서 말들이 많고…. 고3이 되니 또 엄마가 아이 옆에 꼭 붙어있어야 되는 시기라고 하더라. 지나고 보니 자식 인생에 엄마가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어. 그 시기마다 난 내 아이 옆에 없었구나 싶어 미안할 때도 있지만, 아이의 모든 순간에 엄마는 절대적이니까 일을 해야 한다면 마음먹은 그 때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
‘아이의 일생에 엄마가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는 말에 사표를 썼다가, ‘아이의 모든 순간에 엄마가 함께 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 다시 일을 해야 한다면 지금 나에게 기회가 있을 때 해보자’며 사표를 찢고 다시 사표를 쓰고 찢고…. 대체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을 코앞에 둔 어느날, 박혜란 선생님(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하시죠, 여성학자이시고요)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아이 들여다볼 시간에 나를 들여다보라고 하죠. 백 살까지 살아야 되는데, 아이만 키우면서 살다 보면 나중엔 내 삶을 감당할 힘이 없어져요. 이런 얘기 하면 어떤 엄마들은 '일단 아이 다 키워놓고 할게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럼 아이를 다 키우는 게 언제입니까? 대학 갔을 때? 결혼시켰을 때? 아이는 이미 자랐어요. 그걸 결정하는 건 '통념'이 아니라 '엄마의 의지'죠.
복직하기 좋은 시기란 정답이 없기에 고민의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 결정해야 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 선배의 말씀처럼, 박 선생님의 말씀처럼. 복직하기에 좋은 시기가 없다면 '엄마의 의지'로 그 시기를 정하는게 정답이 아닐까요.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에 어렵지만, 나와 내 아이, 내 남편과 내 가족, 내 일 모두를 가장 잘 아는건 결국 나 자신이니까요. 그 모든걸 고려해 결정했다면 그게 정답일 겁니다.(라고 믿고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