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출산을 앞둔 워킹맘들에게

by 틈틈이

둘째가 세상에 나오길 가장 기다린건 엄마인 저도, 아빠인 남편도 아닙니다. 오빠인 첫째입니다. 엄마 배가 불러 놀이터에서 그네를 같이 타지 못하자 배가 쏙 들어가기만 기다렸고,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가 당분간 회사에 가지 않는다는 말에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이유로 들떠 둘째를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첫째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동생을 맞는 아이들을 위한 ‘동생이 태어날거야(존 버닝햄, 2010, 웅진주니어)’, 첫째들이 모유를 먹느라 엄마에게 찰싹 붙어있는 동생을 ‘덜’ 질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젖의 비밀(야규 겐이치로, 2007, 한림출판사)’을 읽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남편은 육아 전쟁을 위해 체력을 길렀습니다.

저는 대청소부터 하고 창고에 넣어뒀던 신생아 용품도 하나둘 꺼냈습니다. 미리 휴가를 내서 둘째를 맞을 준비를 할까 싶었지만 최대한 늦게 휴가에 들어가서 최대한 늦게 복직하려고 출산예정일 전날까지 열심히 출근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산 전날까지 출근한 게 첫째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는다며 좋아했는데, 엄마가 동생을 낳겠다며 병원에 가서 2박3일 집에 오지 않으니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동생을 낳으면 병원에서 두 밤 자고 집에 온다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도 엄마없는 밤을 힘들어했습니다. 퇴원해서 집에 오니 첫째는 열이 펄펄 나고 있었는데 소아과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날 밤 엄마 품에 안겨서 꽃잠을 잔 첫째는 열이 뚝 떨어졌습니다.

첫째의 스트레스는 베이비시터 거부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베이비시터가 우리집에 머물며 첫째를 돌봐주셨습니다. 첫째는 시터 이모님이 오면 엄마가 회사에 간다고 알고 있는데, 엄마가 없는 2박3일간 이모님이 상주했으니 ‘시터=엄마의 부재’라는 생각이 강화된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시터 이모님이 곁에 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집안에 계신 것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견디지 못한 이모님이 스스로 그만두셨고 첫째는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리지만 첫째를 위해 첫째를 돌봐주시던 시터 이모님을, 둘째와 저의 산후조리를 위해 산후도우미를 부르면 우리 모두가 괜찮을 것이라는 완벽해 보였던 계획은 어긋났습니다. (덕분에 저는 산후조리는 포기하고 출산한지 일주일 만에 내복입고 놀이터에 나가고 마을버스타고 동네 한바퀴도 돌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출산 직전까지 회사를 다닌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유있게 휴가를 내서 첫째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요.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는 게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이 된 다음에 둘째가 태어났으면 첫째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도 하며 오빠가 됐을 겁니다.

당시 첫째는 동생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부모 교육서 ‘부모와 아이사이(하임 G. 기너트, 2003, 양철북)’에 따르면 동생을 본 아이는 배우자가 바람피우는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첩을 들일 때 조강지처의 마음과 같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첫째는 그저 엄마가 24시간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둘째를 임신한 워킹맘을 보면 출산 전에 미리 휴가를 내서 첫째와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첫째가 마음이 편해야 동생을 받아들이기도 쉽고, 엄마도 산후조리를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을 유령취급하던 첫째는 어느덧 아빠엄마가 회사에 가면 동생은 본인이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멋진 오빠가 됐습니다. 물론 아주 가~~~~~~~~~~~~~~~~끔 이지만요